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47)
147 좌(左)헬가 우(右)라파
공작가의 연회장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곳은 ‘정령의 날개’라 불리는 곳이다.
원래 이름은 다른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그곳은 정령의 날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게 불리게 된 이유는 어떤 당주의 죽음 때문이다.
당시의 당주가 그곳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종종 그 대연회장의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보며 웃곤 했다고.
그가 죽을 때도 그랬다고 한다.
걷지도 못하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 해, 결국 침대째로 대연회장에 옮겨졌다.
왜 그토록 그 장소를 좋아하는지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몰랐다.
당주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죽어가던 당주가 마지막 숨을 쉬었을 때,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겨우 그 이유를 알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아름다운 날개들이었다.
빛나는 색색의 화려한 날개가 대연회장 허공을 가득 메우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날개는 당주가 막 숨을 거두는 순간, 그의 몸으로 날아들었다.
마치 날개로 이루어진 바람이 당주를 감싸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해진다.
화려한 날개는 당주의 몸을 여러 번 휘감은 뒤 환상처럼 사라졌다.
그 뒤부터 그곳은 ‘정령의 날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당시의 당주가 바로 왕국을 침략한 적국의 배를 거대한 풍랑으로 물리친 영웅이다.
그는 걸출한 마법사가 많은 공작가 안에서도 가장 특별한 존재였다.
유일무이한 마법사.
그런 당주가 사랑했던 곳, 그 당주를 기리는 장소.
오늘 클라우스가 연회를 여는 곳은 그렇게 특별한 연회장으로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매우 특별한 경우에만 쓰이는 곳이었다.
‘역시 아버지는 마음을 정했어.’
이 연회장은 당주 허락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곳이다.
아버지는 이미 라파를 클라우스 다음의 후계자로 정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돼. 절대로.’
아버지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당주 말에 수긍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기회조차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없는 여기에서 봉신들을 제대로 들쑤신다면, 클라우스가 무능하다는 것과 라파가 야만인의 피라는 걸 잘 활용하면, 그래서 모두가 당주로서 클라우스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때는 시류가 바뀔 거다.
아버지도 여러 사람이 입 모아 함께 말하면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아니, 반드시 바꾸고 만다.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해도.
‘쳇.’
커트는 작게 혀를 찼다.
그 작은 가능성에 온 인생을 거는 자신은 아마 바보일 거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니까.’
앞으로는 그 기회마저 없다.
클라우스가 공작이 되면.
커트는 지나가는 시종의 쟁반에서 술잔을 하나 잡았다.
그대로 한입에 털어 넣는다.
커트에 동조하는 자들은 사람들 틈에 넓게 퍼져 있었다.
그들이 몇 명만 떠들어도 여기저기서 여러 사람이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커트가 동조자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는데, 연회장 입구 쪽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소곤거림이 퍼진다.
“맙소사!”
“어느 게 헬가야?”
“헬가가 둘?”
“이건 참 볼만하군.”
“둘을 나란히 붙여 놓으니 정말 구분이 안 가는데.”
“클라우스 님도 짓궂으시네. 부인을 저런 모습으로… 하하하.”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밀려 퍼져갔다.
커트가 있는 자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사람들을 헤치고 조금 앞으로 나가는데, 클라우스가 연회장에 준비된 단상 위로 올라갔다.
‘맙소사. 저게 뭐야.’
클라우스를 중앙에 두고 양쪽에 똑같이 생긴 남자가 둘 서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클라우스의 왼쪽에는 남자가, 오른쪽에는 쌍둥이 같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
하지만 클라우스가 같은 얼굴의 남자 사이에 끼어 있다는 구도가 너무 강렬하다.
여성도 매우 아름다웠지만 클라우스와 쌍둥이 남자의 인상이 강렬해서 그쪽은 왠지 희미해졌다.
남자는 둘 다 거한이었다.
남들보다 머리 두서너 개는 큰 것 같다.
게다가 근육이….
‘정말로 저게 인간인가.’
자기도 모르게 멍청하니 입을 벌린다.
그때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커트의 귓가에 들렸다.
“뭐야, 저건!”
“저것도 인간인가?”
“혹시 저 뒤에 오는 게 헬가?”
“그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크잖아.”
대체 또 뭐야, 여기에서 더 놀라운 게 또 있어?
당황한 커트가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말을 탄, 말보다 더 큰 갑옷 차림의 기사가 들어오고 있었다.
앞 뒤로 나란히 둘이 말을 탄 채 연회장 안으로 들어온다.
“진짜 뭐야, 저건.”
커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클라우스 옆에 있는 거한들을 본 뒤 다시 갑옷기사에 눈을 돌렸다.
이쪽도 저쪽도 둘이다.
대체 어느 쪽이 헬가와 라파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전에… 왜 아무도 저지하지 않는 거지?’
이 대연회장은 매우 특별한 곳이다.
공작가 사람 중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은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데 그런 장소에 말이 들어와?
커트는 자기도 모르게 다시 클라우스를 보았다.
제정신이라면 클라우스가 그만두게 할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집사나 사무관들이.
하지만 아무도 갑옷기사를 제지하지 않았다.
갑옷기사는 말을 탄 채로, 마치 제집에 들어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향했다.
두 마리의 말 역시 전신이 웅장한 갑옷으로 덮여 있었다.
말 갑옷 밑으로는 화려한 천이 길게 늘어져 바닥까지 닿아 있다.
원단에는 공작가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말에 공작가 문양이…..”
누군가가 그걸 보고 중얼거리자, 속삭임은 순식간에 회장 안으로 퍼졌다.
공작가 문양은 아무나 걸치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말에 걸칠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그 말이 아무리 특별하다 해도 마찬가지다.
클라우스를 지지하는 노인네들의 얼굴에도 곤혹스러운 빛이 어렸다.
‘이건 사용할 수 있겠어.’
이 회장을 사용하는 것까지는 아버지의 허락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본 방침은 실패든 성공이든 각자가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편이다.
이번에도 세부 내용까지 아버지가 결정한 것은 아닐 거다.
이건 분명 클라우스의 연출이다.
‘뭔가 거창해 보이려고 한 것 같지만 이건 분명 실패야.’
원로까지 못마땅한 마음이 드는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클라우스의 생각이 너무 지나쳤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탓에 마음이 조급해졌는지도 모른다.
클라우스, 한때는 영민하던 너도 나이 먹고 오랫동안 야만인한테 잡혀있더니 둔해진 것 같구나.
커트는 주위에 있는 동조자에게 시선으로 신호를 주었다.
동조자 몇 명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인다.
커트가 말을 꺼내면 곧바로 옆에서 동조해줄 거다.
‘좋아, 이제 시작이다.’
커트가 속으로 미소하며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마치 그것을 막는 것처럼 클라우스가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다.
인형처럼 가만있던 클라우스가 갑자기 움직이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대연회장의 거대한 문이 일시에 닫히기 시작했다.
대연회장을 둘러싼 문은 곳곳에 있다.
그 문이 모두 한꺼번에 닫히자, 회장 내의 사람들이 당황해 웅성거린다.
“왜 그러지?”
“갑자기 무슨 일이야.”
“뭐 하는 거지.”
사람들의 당황 속에서 클라우스가 조용하라고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소란스러움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회장 중앙에 놓여 있던 테이블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꺼졌다.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테이블이 완전히 박살 나 바닥에 흩어져 있다.
클라우스 왼쪽에 서 있던 거한이 어느새 뽑았는지 도끼를 들고 부서진 테이블 가운데에 서 있었다.
“….”
“….”
“….”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
어머니, 조금만 진정하시고!
어머니의 돌발 행동에 심장이 벌컥벌컥 뛰고 간이 콩알만 해졌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방금 부서진 테이블은 엄청나게 비싼 거다.
공작가에 있는 물건이 원래 싸구려일 리 없지만,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자리에 있는 게 보통 물건은 아니라는 걸 그냥 알겠어.
특히 아버지 앞에 놓여 있던 테이블은 그중에서도 가장 비싼 걸 거다.
아마 높은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아버지가 말씀하시려는데 시끄럽게 구니 화나는 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게 화난다고 마음 내키는 대로 깨버릴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원래 그런 식으로 물건 부수는 건 예정에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저 옆에 서 있으라고만 했고, 얌전하라는 말까지는 안 했어도 사고 치지 말라는, 아니, 그런 말도 안 했구나.
“….”
혹시 아버지는 이런 일을 이미 예견했을까.
문득 아버지를 보았지만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오늘의 아버지는 마치 가면을 뒤집어쓴 것 같다.
약간의 미소가 입가에 붙어 있는데 이 회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입술이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예쁘게 만든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무서워.
아버지 같지 않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엄격하지만 다정하고 부드럽고 또 약간은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이 사람이 내 아버지가 맞나 싶을 만큼 낯설었다.
행동 하나, 손가락 놓는 방식 하나하나가 계산해서 나오는 느낌이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아버지가 문득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아버지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아….’
조금 부끄러워졌다.
다 큰 어른이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아버지가 아버지지, 그럼 뭐겠어.
나는 다시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의 컨셉은 좌청룡 우백호다.
아버지가 그런 걸 알 리 없지만, 처음 나와 어머니를 양옆에 두고 입장할 거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그 말이 떠올랐다.
막상 옷을 입고 어머니와 마주 섰을 때는 좌청룡 우백호가 아니라 이건 그냥 쌍둥이 컨셉이구나 생각했지만.
실제로 외모뿐 아니라 옷도 똑같은 것이다.
어머니가 내 옷을 입었으니 어떻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색깔까지 동일한 건 아버지가 노리고 입힌 거겠지.
다른 부분은 보석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 눈동자 색인 보라색 보석으로 장식하고, 나는 타티아나의 머리색인 황금이다.
금이빨 한 것처럼 옷 여기저기가 금으로 번쩍번쩍하다.
무기도 도끼로 동일했다.
어머니는 지난번에 도끼가 부러졌기 때문에 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은 새 도끼를 등에 멨다.
나는 원래 사용하던 것이다.
“….”
도끼를 등에 메고 연회에 참석하는 건 좀 어떨까 싶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러라고 했으니까.
아니, 기다려 봐, 이건, 하아….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의 난동은 아버지가 허락한 거구나.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해서 마음껏 행동하는 게 아닐까.
곤란해졌다.
‘안 그래도 어머니는 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뭔가 벼르는 것 같았는데.’
잘못하면 오늘 정말로 사람이 죽을 것 같다.
아버지 형님이라고 했나.
마누엘을 두들겨 패서 사람 구실 못하게 만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원만하게 이 자리를 마무리하고 싶다.
그러니까 어머니, 제발 그 도끼는 집어넣으세요.
무서운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보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속으로 간절히 중얼거렸다.
조용해진 가운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회장 안으로 울려 퍼졌다.
“먼 곳에서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여러분을 뵙는군요. 오늘은 제 아내와 아들을 소개하려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만… 후후, 굳이 소개할 것도 없겠습니다.”
아버지가 말을 끊고 미소 짓는다.
아버지의 시선이 어머니를 향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제 아내 헬가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었던 일일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부인으로 가문의 연감에 이름이 오른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다들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왜일까.
일부 사람들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뭐, 마음은 알겠다.
들어서 아는 것과 현실에서 눈으로 보고 실감하는 건 아무래도 다르지.
나도 기린을 처음 봤을 때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실제로 목이 긴 동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보니까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라구.
하지만 기절은 좀 너무하지 않을까.
젊은 아가씨 몇 명이 치마 속으로 꺼지는 것처럼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젊은 아가씨만이 아니구나.
나이가 제법 있는 여성도 몇 명 쓰러지고 있다.
왕도와 달리 이곳은 본가이고, 아버지와도 자주 만났을 테니 면역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아버지가 들어올 때 비명을 지르지 않은 걸 보면 나름대로는 익숙해져 있었던 걸까.
그럼에도 결혼했다는 말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푹푹 순서 따지듯이 쓰러지는 모습이 마치 도미노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빙긋 미소 지으며 중앙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커트, 오랜만이네요. 한데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밀어내려고 젊은 아이들을 선동질한다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형님?”
아버지 말에 중년을 넘긴 듯 보이는 남성의 얼굴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