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48)
148 영웅의 재래
아하, 저 사람이 커트로군.
잘 보면 아버지와 약간 닮았다.
정확하게는 할아버지를 닮은 거겠지만.
공작령에 도착한 뒤로 너무 정신없이 사람을 만나고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쑤셔 넣어서 솔직히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한다.
가문이나 사람 이름은 길거나 비슷한 구석도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도 저 사람 이름만큼은 확실하게 머리에 남아 있었다.
만난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이름이 바로 커트였기 때문이다.
커트는 아버지의 이복형제로, 할아버지의 첫아들이라고 한다.
이야기가 두리뭉실 넘어가서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커트는 자기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를 원망한다고 들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자식이 많으면 시끄러운 일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네.’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인상은 다혈질이고 약삭빠른 사람인 것 같았는데 의외로 온실 속의 도련님처럼 보인다.
얌전한 귀공자가 그대로 자라 중년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건 야비하고 비열한 기회주의자였는데, 듣던 인물상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이라는 게 겉으로 봐서는 정말 모르는 거구나.’
저 사람은 외모로 득을 보는데 나는 이게 뭐지.
야만인 얼굴이라 지성이 겉으로 나와주지 않는다.
인상과 실제가 나만큼 다른 사람이 또 있을까.
여기에서 내 얘기를 끌어오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갑자기 억울해졌다.
외모로 누군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아버지 질문에 잠시 굳었던 커트의 얼굴은 금세 회복되었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커트의 허리가 쭉 펴진다.
“뜻밖의 말이군, 클라우스. 네가 없는 동안 가문을 위해 노력한 건 나인데 그런 식으로 비난하다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닐까.”
“글쎄요. 한창 실력 닦는 데 신경 써야 할 젊은이들이 당신 때문에 정치질에 빠져 시간 낭비하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요.”
커트가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근처에서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것을 당신이 말합니까! 그러는 당신은 삼십 년 가까이 무엇을 했나요. 이 가문의 후계자로서 한 것이라고는 야만인한테 잡혀가 고작 애 하나 만든 게 아닙니까!”
그렇게 말한 것은 스물도 되지 않아 보이는 청년이었다.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다 싶을 만큼 어려 보인다.
아버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른 사람 눈에는 다소 화가 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 감정에는 아주 작은 물결조차 일어나 있지 않다.
내 눈에는 오히려 재미있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어쩌면 아버지는 예상했던 대사가 나와 기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왠지, 이 대사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라는 느낌이 약간 들었다.
아버지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자, 방금 전까지 분개하던 청년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
이봐, 청년아, 왜 얼굴을 붉히는 거냐.
지금 너한테 미소 짓는 사람은 남자다.
그것도 중년 남자.
나처럼 커다란 아들을 가진.
네가 방금 그렇게 말했잖아.
하아….
추측하건대, 화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미모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거겠지.
하아아아아아아.
아버지, 죄 많은 남자.
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저런 걸 보면 아들로서 마음이 조금 복잡하다.
부러워서.
아버지 미모의 한 조각, 아니, 손톱의 때만큼이라도 갖고 싶었다.
‘어머니는 왜 그렇게 강한 거야.’
유전자까지 강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 정도는 조금 약해도 되었을 텐데.
어린 청년의 말이 신호였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그에 동조하는 말이 쏟아졌다.
얼핏 들으면 여러 가지로 꾸며 말하고 있지만 결국엔 모두 비슷한 말이다.
수십 년 동안 당신이 한 게 뭐냐, 당신이 한 일은 애 만드는 것밖에 없지 않았느냐, 후계자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당신이 없는 동안 가문을 위해 일한 사람은 과연 누구냐, 뭐, 그런 거.
한쪽에서 말이 끝나면 다른 곳에서 비슷한 말을 외쳤다.
같은 말을 하고 또 한다.
이런 식이면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느낌이 들 거다.
‘하지만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네.’
성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마 연회장에 미리 퍼져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커트를 비롯한 아버지의 이복형제가 모두 힘을 합쳤다고 하니 그들의 수도 적지 않다.
비록 아버지를 지지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해도 이런 자리에서 흩어져 소리치면 모두가 아버지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거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모두 조용히 입 다문 채 비난을 듣고만 있었다.
힐끔 아버지 얼굴을 보았지만 별다른 건 읽을 수 없다.
만든 미소를 붙인 채 조용히 떠드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를 만나러 왔던 사람들은 봉신 가문의 가주나 중추들로 대부분 나이가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쓴웃음을 지으며, 또 일부는 재미있다는 듯이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아버지와 비슷한 태도다.
연회장에는 여성들도 많지만 미리 입단속을 했는지 그들 역시 조용했다.
다만 시선은 남자들보다 차갑다.
비난하는 눈초리로 떠드는 남자들을 쳐다보는 여자들의 시선은 북극 눈보라를 방불케 했다.
여자들이 한을 품으면 서리가 내린다는데 그 말이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야.
서리 아니라 눈보라도 불어닥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런 얘기는 듣지 못했다.
대부분의 자리에는 나도 참석했으니, 아마 아버지가 나에게 알리지 않고 그들과 협의한 걸 거다.
‘좋지 않아.’
아버지가 나한테 비밀을 만들 때는 몸으로 굴러가며 배워야 할 게 있거나 내가 싫어할 만한 일을 하는 경우다.
주로 부끄러운 쪽으로.
오늘 어머니와 나를 양쪽에 거느리고 들어오는 연출을 강행한 걸 보면 아무래도 후자일 것 같다.
‘이건 진짜로 좋지 않아.’
어머니랑 같은 옷 입고 연회장에 나오는 것도 정말 싫었는데 여기서 더한 걸 당하는 건가.
대체 아버지가 뭘 하려는 걸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나는 조금 주춤하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다.
그냥 연회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을 뿐이다.
낯선 물건이 있거나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딱히 내가 창피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경험상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조심해야지,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연회장 안에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소란스러워 보이던 장내도 시간이 흐르면서 썰렁한 분위기가 들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주장에 감정이 격해지면서 여러 가지 말하던 자들의 목소리가 조금 줄어들어 있었다.
원래 소란이 커지려면 누군가 주장을 반박하고 반대해 줘야 한다.
그래야 거기에서 말꼬리와 트집을 잡아 다시 새로운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거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면 결국 저희들의 주장만 되풀이하게 된다.
같은 소리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그것도 비슷한 소리만 반복해서 하다 보면 결국엔 주장하는 측에서도 감정이 식는다.
공기가 없으면 불이 타지 못하고 사그라들듯이, 제풀에 식어버리는 거야.
지금 연회장의 반대파가 그 꼴이었다.
아버지는 그걸 기다리고 있었던 듯, 좌중을 향해 손을 올렸다.
“우리 공작가는 봉신 가문 여러분의 헌신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다른 가문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주종의 연결이 강한 덕분에 지금의 공작가가 있는 겁니다. 만일 여러분의 뜻이 모두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다음 공작이 되는 건 옳지 않은 일일 겁니다.”
“…엇!”
“뭐.”
“… 서, 설마… 진짜인가.”
“진심입니까!”
아버지 말에 괴상한 소리를 지른 건 지금까지 차기 공작으로 당신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던 반대파들이었다.
커트도 놀랐는지 눈을 껌벅거리며 아버지를 쳐다본다.
어머니도 조금 놀란 모양이다.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눈이 약간 커졌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아버지가 욕심 많은 사람이라거나 공작자리에 엄청나게 집착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너 내려가라고 해서 얌전하게 그만둘 사람은 아니다.
나한테 가르쳤던 것들을 돌이켜 보면 그래.
만일 그만둘 생각이었어도 일단 자기한테 뭐라고 한 놈들은 철저히 두들겨 팬 뒤에나 그렇게 할 거다.
힘이 약한 것과 성격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게다가 아버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처럼 초연했다.
놀라는 사람은 없다.
미리 협의해두었던 일이란 뜻이다.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가 물러서는 것이 과연 모두의 의향인지 정도는 확인해야겠지요. 여러분 중에 내가 당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계십시오. 하지만 저를 지지하는 분이 있다면 이쪽으로….”
아버지가 한 팔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처음부터 비어 있었다.
대연회장은 상당히 넓지만 음식 테이블이나 소품 등을 이용해 사람들의 동선을 제한해 두었다.
애초에 이걸 염두에 두고 공간을 배치한 모양이다.
아버지 말이 떨어지자 연회 전에 아버지를 만났던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부인을 에스코트해, 그 근처에 있는 자식이나 측근까지 모두 데리고 움직인다.
처음에는 한두 개의 소그룹이었다.
빠져도 크게 표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점점 이어지면서 원래 사람들이 가득하던 자리는 들쭉날쭉 비게 되었다.
점점 휑해진다.
그대로 서 있는 자는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나 중앙에서 밀려나 커트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회생 기회가 전혀 없는 사람뿐이었다.
한군데 몰려 있는 게 아니라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썰렁해 보인다.
아버지 쪽으로의 이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수염투성이의 중년 남자가 아버지 쪽으로 자리를 옮기려 하자, 아들인 듯 보이는 청년이 당황한 듯 말을 걸었다.
“아, 아버지! 왜 저쪽으로 가십니까. 아버지는 제 생각과 같은 게 아니신가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어….”
수염의 중년 남자가 눈썹을 찌푸리자, 청년이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는…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말할 때마다 아무 소리 없이 들어주셨잖아요.”
“그래, 들었지.”
“….”
“내가 한 번이라도 네 말에 긍정한 적이 있었느냐?”
“그, 그건….”
“나는 단지 네가 하는 헛소리를 재미있게 들었을 뿐이다.”
“아버지! 나를 속이셨습니까? 이, 이럴 수가, 설마 나 말고 동생을 후계자로….”
충격받은 듯한 청년 말에 중년 남자가 주먹으로 머리를 두드렸다.
쿵 소리가 난다.
잘못하면 죽겠다.
중년 남자는 한 대 더 쥐어박은 뒤 거칠게 말했다.
“바보 같은 놈, 후계자는 너로 정했다고 이미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너를 타국까지 보내 공부시킨 게 아니냐. 그런 놈이 엄한 장단에 맞춰 춤추며 어리석은 짓이나 하고. 내가 네 말에 긍정할 리 없겠지. 미소조차 보이지 않았건만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그렇다면 왜입니까! 왜 긍정하는 것처럼… 그건 저를 속인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청년의 말에, 뒤늦게 다른 젊은이들도 소리를 올렸다.
다들 비슷한 처지였던 모양이다.
“그 말에는 내가 대답하는 게 좋겠군.”
그렇게 말하며 나선 것은 이미 아버지 곁으로 이동한 노인이었다.
수염이 성성한 노인은 제일 처음에 아버지와 면회했던 사람이다.
봉신 가문 중에서도 가장 공작가와 가까운 집안이라고 들었다.
노인이 히죽 웃으며 그 청년 외에도 모두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오래된 가문은 케케묵은 전통과 굳은 사고에 갇혀 결국 한창때의 힘을 잃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공작가는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계속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걸 전통에 융합해오며 발전해 왔네. 그래서 공작가가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군림하고 있는 게야.”
노인은 뚜벅뚜벅 아버지 앞으로 나와 청년들의 얼굴을 쭉 둘러보았다.
“우리 늙은이에게는 경험과 판단력이 있다. 하지만 그대들처럼 새로운 걸 빨리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우리처럼 세상을 많이 아는 사람 눈에는 그대들한테 빛나 보이는 미래와 이념이 허점투성이로밖에 보이지 않거든.”
그 때문에 공작가와 오래 함께해 온 가문에서는 암묵적으로 허락된 방침이 있다.
가문의 흥망에 관계되지 않는 한 젊은이의 실패에는 최대한 너그러울 것.
특히 후계자로 길러지는 자들은 최대한 뭐든 스스로 겪어보도록 놔둘 것.
그게 아무리 바보같아 보여도 최대한 스스로 회복할 기회를 주는 것 등이다.
“이번 일은 그 일환이라네. 한 번 정도는 크게 당해봐야지 싶어 놔두고 있었는데, 마침 클라우스 님도 오셨고 하니까 오늘로 날을 잡았지.”
멍청해진 청년들의 얼굴을 노인이 쭉 둘러본 뒤, 조금 차갑게 말했다.
“이번 일이 내부자의 선동이니 망정이지, 만일 적국이거나 다른 가문의 손이 닿은 자였으면 어쩔 뻔했는지 잘 생각해 보게. 그대들이 한 일은 당주를 향한 반역이야. 불만이 있으면 정식으로 가주에게 말하고 공작께 건의했어야지.”
그 말에 청년 한 명이 반발했다.
“하지만 들어주지 않으실 게 뻔하잖습니까. 그놈의 보라색 눈동자가 뭐라고, 낡은 전통에 얽매여 아무리 우리가 말해도 할아버님은 들어주지 않으시잖아요.”
손자였던 모양이다.
노인이 엄한 시선으로 청년을 보았다.
“그래, 그랬겠지. 전통에는 전통인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가 굳어져 전통으로 내려오는 게야. 그런 걸 어린 애 몇 명이 말한다고 해서 바꿀 리 없지 않느냐. 하지만 정말로 그게 불합리하고 쓸데없는 거라고 생각했다면 너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가문을 위해서 부딪쳐 이야기했어야 했다. 이렇게 몰래 몰래 뒤에서 생쥐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생쥐라는 말에 청년의 얼굴이 대번 벌게졌다.
청년이 입을 열려는데,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자네들의 말을 아까부터 곰곰이 들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아버지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애 하나 낳은 것밖에 없다고 했었지?”
“….”
“….”
“….”
사방이 조용하다.
저희들이 말할 때는 몰라도 막상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니 조금 너무 했나 싶었을까.
아버지가 싱긋 웃었다.
“사실이 그렇지. 나도 일은 꽤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 뒤를 쫓아다니는 정도이고 마법사로서는 쓸모없으니, 내 업적이라고 하면 고작해야 자식 하나 낳은 것뿐이지. 맞는 말일세.”
조용한 가운데 아버지가 뒤에 있는 갑옷 기사에게 손을 뻗었다.
갑옷 기사의 투구가 갸우뚱한다.
아버지가 손짓하자, 갑옷기사가 철컥철컥 소리 내며 말에서 내려섰다.
아버지 손짓에 따라 몸을 굽힌다.
아, 이거 며칠 전에 봤던 장면이다.
그때는 아버지가 갑옷기사와 소통하기 위해 별별 걸 다 하더니 이제 몸짓 언어가 통하는구나, 하고 감탄하며 넘어갔다.
한데 지금 보니 단순히 소통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오늘을 위한 연습이었던 것 같다.
아이한테 해주는 것처럼 커다란 몸을 앞으로 구부린 갑옷 기사가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안았다.
“헉!”
“저게 뭐야.”
“어, 얼굴이 없잖아.”
“안에 사람이 없어.”
사람들이 경악해 외친다.
아버지 쪽에 서 있던 사람들은 이야기를 이미 들었던 것 같다.
청년들이나 커트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들었던 것과 직접 보는 데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다들 눈이 커다랗게 부릅떠져 있었다.
아버지가 갑옷기사의 목 안으로 손을 넣는다.
‘아, 이거다.’
안 좋은 예감이 퍼즐처럼 딱 맞물리는 순간, 아버지가 갑옷 안에서 정령 나비 한 마리를 잡아 밖으로 꺼냈다.
접혀 있던 나비의 날개가 밖으로 나오자 서서히 펄럭인다.
그때마다 보석 가루 같은 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버지가 손에 정령 나비를 든 채 말했다.
“실제로 내 업적은 자식을 낳았다는 거지.”
아버지가 손을 뻗자, 날개를 활짝 편 나비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외적을 물리친 영웅의 재래다.”
나비가 허공을 넘어 나에게 날아온다.
빌어먹을, 안 봐도 뒤는 뻔하네.
앞으로는 나의 흑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