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95)
195 귀여운 도련님
공왕비의 모습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상상한 그녀는 신데렐라의 계모처럼 표독스러운 여자였는데, 뭐랄까, 그녀는 자기 자식을 버리는 비정한 어머니처럼 보이지 않는다.
표독스러운 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가녀린 몸과 흔들리는 눈동자는 오히려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타티아나를 정말 많이 닮았다.
시간을 넘어 미래의 타티아나와 만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든가, 내면의 미추가 외형에 드러난다는 말이 있지만, 아무래도 거짓인 것 같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딸을 버린 공왕비는 추해야겠지.
그런데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공왕의 행방이 문제야.
왕도에 도착하면 그놈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 곳에도 없었다.
왕세자도, 시종장도 아레논 왕국에 갔다고만 말한다.
뭔가 알 것 같은 사람은 그나마 타티아나가 마녀라는 사실을 아는 공왕비뿐이었다.
하지만 과연 냉궁에 갇힌 그녀가 알지, 지금은 불안하다.
“공왕은 어디에 있나?”
내가 묻자 공왕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놀란 것 같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공왕의 행방을 모르는 모양이다.
‘이상해.’
이 나라의 아무도 왕의 행방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숨기는 게 아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 분명 모르는 것이다.
뭔가 잘못되었다.
‘설마….’
공왕은 아직도 아레논 왕국에 있는 건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어?
지금 아레논에서는 공왕의 흔적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한데 그곳에 공왕의 흔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한데 어째서.
‘이상해.’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공왕비가 입술을 달싹였다.
“당신, 발테르 공작가의 야만인인가. 리아나의 남편?”
“….”
힐끔 쳐다보자, 공왕비의 표정이 서서히 변해갔다.
“설마… 리아나가… 리아나가 아니야? ”
그 말뜻을 아마 다른 사람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공왕비가 깨달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기가 보낸 가짜가 아닌 진짜 공주의 남편이라고 알아차린 거다.
“…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중얼거린 공왕비가 허우적거리며 몸을 앞으로 쏟았다.
“… 그 괴물… 괴물이 드디어 우리나라를 망가뜨렸구나… 그 괴물 때문에….”
그녀의 말에 마음이 확 뛰어올랐다.
거칠어진다.
나는 나가려고 뒤로 돌았던 발걸음을 멈췄다.
공왕비를 노려본다.
“괴물이 아니라 네 딸이다.”
“아니야!”
공왕비가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그건 내 딸이 아니다. 괴물이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괴물!”
공왕비가 내 얼굴을 보며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건 남자를 유혹하는 괴물이다! 당신도 그 아이가 유혹해서… 그래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그렇게 외치는 공왕비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이 여자, 단순히 타티아나가 마녀라서, 나라를 위해서 딸을 버린 게 아니구나.
그녀는 남편이 타티아나에게 집착하는 걸 보고 질투한 거다.
마녀 도로테를 불러 매료를 봉인할 수 있다고 알았는데도 멀리 보내버린 건 그래서였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틀림없이 눈에는 마음이 비친다.
숨길 수 없는 질투가 공왕비의 눈동자 안에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등에 있던 도끼를 뺐다.
아주 조금, 공왕비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었다.
타티아나와 너무 닮아, 거기에 죽음이 바로 그림자 뒤에까지 따라왔다고 알만큼 병들어 있다.
그냥 놔둬도 죽을 그녀를, 타티아나와 너무 닮은 얼굴을, 내 손으로 죽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저건 타티아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자기 자식을 질투해, 멀리 버리고 괴물이라고 부르는 여자.
부드럽고 순수한 타티아나와 전혀 닮지 않았다.
그대로 도끼를 휘둘러 공왕비의 목을 친다.
어, 하는 얼굴로 공왕비의 머리가 침대에 떨어졌다.
공왕비는 아마 죽는 순간까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몰랐을 것이다.
도끼 빼는 것조차 보지 못했을 테니까.
등 뒤에서 숨죽인 비명이 터졌다.
몸을 돌리자 여기까지 나를 안내한 사라문즈의 시종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나는 그를 보지 않고 그대로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이놈의 공왕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어쨌든 서둘러 여기 일을 정리하고 돌아가자.
타티아나의 곁으로.
왠지 불안하다.
에노르토스 부족 전사들이 왕궁 안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몇 명은 마구간을 발견했는지 덩치 큰 말을 여러 마리 데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눈이 뒤집힐 정도로 값비싼 보석이나 금촛대 은식기 따위에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호르지 외삼촌은 왠지 모르지만 개를 여러 마리 데리고 있었다.
에노르토스 부족의 개는 아니다.
껑충하게 키가 크고 마른 개들은 귀족이 도락으로 사냥할 때 앞장서게 하는 녀석들이었다.
“라파, 이 녀석들이 짐승의 기색을 잘 찾는 것 같아.”
나를 보자 호르지 삼촌이 흐뭇하게 말했다.
이 왕궁 안에서 어떻게 그런 걸 알게 됐는지는 묻지 않았다.
마음도 바쁘지만 변변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지 않다.
들쥐라든가 왕궁에서 기르는 귀한 새라든가, 그런 걸 사냥했다는 말이 들릴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고 사냥개를 보자 한 마리 입에 깃털과 비슷한 것이 붙은 것 같기도 하다.
눈으로 전사 틈에서 목적한 사람을 찾는데, 호르지 삼촌이 곁으로 와 투덜거렸다.
“이 개들을 보니 왕국에 두고 온 제니가 생각나는구나. 그녀도 함께 오면 좋았을 텐데. 언젠가는 한 번 정도 우리 부족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제니는 길드에서 일하니까 그건 안 된다고 할 테고… 내가 강하게 말하면 얻어맞을 것 같고.”
호르지 삼촌은 길게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라파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죄 많은 남편 아니냐. 제니한테 뭔가 말할 처지가 아니지. 때리면 맞는 수밖에 없잖아. 다른 놈들이 다들 아내와 애를 데리고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며 들떠있는데 나만…. 하아아아아. 외롭구나, 라파야.”
이곳의 일이 끝나면 에노르토스 부족은 왕궁에서 며칠 떨어진 숲에 정착하기로 했다.
에노르토스에서 연결된 그 숲에는 호수가 있다.
아주 사나운 마수도 없고 숲에는 열매가 열리는 야생 나무도 많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부족 남자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그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제니 씨와 아들이 부쩍 생각난 모양이다.
뭐, 마음은 알겠다.
에노르토스 부족 남자는 무뚝뚝하고 여자도 조금은 그런 편이지만, 부부 사이는 매우 좋은 편이다.
조용히 함께 살며 함께 늙어가는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곁에서 보고 있으면 공연히 가족이 그리워지고 부러워진다.
어머니 약혼자라고 억지 주장하는 올돈의 마음조차 이해될 만큼, 이 부족 안에 있으면 내 가족이라는 게 갖고 싶어졌다.
그러니 호르지 삼촌의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도 빨리 돌아가고 싶다.
걱정도 되고.
“삼촌, 좋은 방법이 있어요.”
“음?”
호르지 삼촌이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이 나라에 아레논 왕국의 길드 지점을 내면 돼요.”
“…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모양이다.
“이곳에 아레논 모험가 길드 지점을 내는 겁니다. 그리고 제니 씨를 지점장으로 부르는 거예요.”
제니 씨는 길드에서 오래 일해왔고 상당히 난이도 높은 것까지 한다.
능력은 충분할 것이다.
보통 길드장은 모험가 출신이거나 적어도 어느 정도 모험가를 다룰 만한 무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 부분은 호르지 삼촌이 맡으면 되고, 응, 아무 문제 없다.
처음 자리잡을 때까지는 좀 힘들겠지만, 아들도 있으니 길드 운영은 문제 없을 거다.
호르지 삼촌이 눈을 껌벅거리다 멍청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해?”
“충분히 가능하죠. 이 나라는 오늘부터 아레논의 속국이 되거나 아예 국명을 잃거나 뭐,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그렇게 만든 공신이 나와 에노르토스 부족이구요. 우리가 원하면 충분히 가능해요.”
딱히 그런 공적이 없어도 공작가 힘을 사용하면 가능하다.
이 세계는 능력보다는 혈연, 지연, 학연, 뇌물, 그런 걸로 모든 것이 연결된다.
너무 당연한 일이라 그게 나쁜 거라는 의식도 없었다.
아, 찾고자 하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좋은 생각이다, 라파야. 그렇게 부탁한다.”
호르지 삼촌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상대도 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서둘러 달려오고 있었다.
“도련님.”
연락용 새를 따라가느라 헤어졌던 무관 그레고르다.
그는 내가 왕도에 도착하기 며칠 전쯤 이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어디서 구했는지 공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걱정은 했다.
그가 무관이고 공국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해도 혼자 적지에 떨어져 괜찮을까 싶었어.
처음부터 그레고르는 자기 걱정은 할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나에 비하면 이 세상 사람은 모두가 허약한 편이니까.
무사한 걸 보고 마음 놓았다.
그레고르가 가까이 와 초조한 듯 말했다.
“도련님, 알 것 같은 놈에게는 다 확인했습니다만, 공왕의 소재를 아는 자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가 이곳에 오지 않은 건 사실인 모양이에요.”
“… 그러면.”
“아레논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레고르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왕세자를 광장에 세워줘. 지금 집행한다.”
“알겠습니다.”
그레고르는 곧바로 달려 나갔다.
처형하는 건 왕세자와 왕자 두 명이다.
다른 왕족은 도망쳤는지 원래 이곳에서 살지 않았는지 왕궁에 없었다.
뭐, 만일 위험을 미리 알고 도망간 거라면 그대로 신분을 숨긴 채 잘 살면 된다.
아레논에서 추적에 나설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도망간 왕족이 나라를 되찾을 확률은 없고, 적어도 나는 그들까지 죽일 생각은 없었다.
왕궁에는 공주가 몇 명 있었지만 그들도 그냥 두었다.
지금이라도 그녀들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도망친다면 그걸로 좋다.
반드시 죽여야 하는 자는 공왕과 공왕비, 왕세자뿐이니까.
잠시 시간이 지나자 그레고르가 부르러 왔다.
“처형 준비가 되었습니다, 도련님.”
그레고르의 안내로 성을 나가자, 제법 넓은 광장에 왕세자와 왕자들이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광장에는 이 나라 백성이 오돌오돌 떨며 모여 있었다.
나는 왕자들 앞에 서서 크게 외쳤다.
“사라문즈 공국의 모든 이는 들어라! 나는 이 나라 공주 리아나 마르게리타 빠붸지의 남편 라파 커트 마르쿠스 플로리안 파블로. 아레논 왕국 발테르 공작가의 일원이다.”
다른 도시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이번에도 외친다.
“이 나라의 공왕 스켈레는 자알 왕국, 에크빌 왕국과 결탁해 아레논 왕국을 침략했다. 너희의 왕은 선전포고도 없이 비열한 쥐새끼처럼 몰래 들어와 우리 도시를 폭격하고 우리 국민을 유린했다.”
숨은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 같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의 시선이 왕세자를 향했다.
왕세자는 알고 있었는지 눈을 감은 채 입을 꽉 다물었다.
“오늘 너희들의 불행은 모두 이 나라 왕의 탓이다. 원망하려면 너희를 버리고 도망친 왕을 원망해라.”
그렇게 말하며 나는 도끼로 왕세자와 두 왕자의 목을 끊었다.
비명이 오르고 사람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아레논에서 상황을 마무리할 자들이 오는 건 며칠 이내일 것이다.
우리가 떠나면 그때까지 왕도는 폭도와 도망자로 비참한 상황에 빠지겠지.
내가 손대지 않은 공주들도 어쩌면 성난 폭도에게 죽을지 모르겠다.
뭐, 그건 그거고.
나는 도끼에서 피를 털어낸 뒤 그레고르에게 말했다.
“아레논으로 돌아가야겠다. 길 안내를 부탁해.”
혼자서는 길을 몰라 가지 못한다.
여기까지 올 때는 아무 도시나 발 닿는 대로 도착해 영주 목만 치면 되었다.
왕도로 가는 중이기만 하면 상관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돌아가는 길은 그렇게 안 된다.
그레고르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최단 거리로 모시겠습니다.”
*
그레고르는 발테르 공작가의 조사관이다.
얼핏 보면 건장한 무인이고, 실제로 공작가 혈통을 받은 마법사로 가끔 전장에 나가기도 하지만, 그가 가진 공식적인 직함은 조사관이었다.
사람들한테 직업이 조사관이라고 말하면 스파이 같은 걸 떠올리는 모양이다.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귀족은 조사관이 어떤 직업인지 아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특히 여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빛냈다.
그의 부인도 처음 약혼했을 때는 그가 굉장히 특별하고 위험한 일을 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은 물어서는 안 되지만, 하면서 조사관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럴 때마다 그레고르는 곤란하다.
특별한 건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조사관은 사무관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더 조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일을 진행해야 할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사무관과 다른 게 있다면 거기에 육체노동이 가미된다는 점이다.
조사를 위해 여기저기 몸으로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위험한 일에 맞닥뜨리는 일이 많으므로 자기 몸을 스스로 지키는 건 필수였다.
발테르 공작가에서는 제대로 몸 지킬 방도를 익히지 않으면 정식 조사관으로 임명받지 못한다.
평생 견습이다.
조사관이 되려는 사람은 그래서 본직에서 필요한 능력 이외에도 무예를 익히는 데 필사적이었다.
무관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일 거다.
그가 이번에 받은 첫 번째 임무는 도련님의 안내역이다.
공국에서 어릴 때 잠시 살았기 때문에 도련님의 혼인 얘기가 나왔을 때도 이번에도 그가 일을 맡았다.
조사관은 때로는 전쟁에도 나가고 때로는 안내역도 하고 정말 여러 가지 일을 떠맡기 때문에, 조사관들끼리는 스스로를 잡용역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이것저것 아무거나 맡으면서 하니까.
그리고 두 번째 비밀 임무가 있는데, 그건 바로 도련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다.
그의 의견은 넣지 않는다.
그저 본 대로 사실 그대로만 적는 것이 임무였다.
처음 그 얘기를 들을 때는 기분 나빴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치 스파이 같지 않은가.
그것도 다름 아닌 미래의 우리 주군이 되실 분한테.
조사관은 하는 일 자체는 수수하지만 일의 특성상 가문의 일에 깊숙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가문의 비밀을 가장 먼저 눈치채는 사람도, 우리 가문의 불온한 움직임을 느끼는 것도 대부분 조사관이었다.
그만큼 여러 방면에서 관찰하는 게 생활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조사관으로 임명될 때 우리는 신에게 맹세한다.
영원히 변치 않는 충성을 주군께 바치겠다고.
그 맹세는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다.
그레고르가 아는 한 조사관에 배반자는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파렴치한 임무를!
잘못하면 화를 낼 뻔했지만 상사의 설명을 듣고 납득했다.
어릴 때부터 가문 안에서 자라온 클라우스님과 달리 도련님은 외부에서 태어나 근래에 들어온 분이다.
우리는 아직 그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성품이나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부족하거나 약한 면.
다다음 세대의 공작이신 도련님에게 모자라는 걸 보충하고 알맞는 측근을 붙여 보필하기 위해서는 그분을 속속들이 아는 것이 필요했다.
우리가 조사한 내용이 기초가 되어 도련님에게 꼭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어린 개인집사 모겐의 육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모겐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어떤 식으로 길러야 할지 결정하는 것도 우리 조사관의 보고서가 토대가 된다.
역시, 우리 일은 수수하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새삼스럽게 긍지와 자랑스러움이 가슴에 핀다.
게다가 주군의 조사라는 엄청나게 중요한 임무를 맡은 걸 보면 그레고르도 드디어 승진하게 될지 모른다.
주군에 대한 건 매우 중요한 일이고, 웬만한 사람에게는 맡겨지지 않을 테니까.
계속 말단에서 말단으로 구르고 있었던 그에게 드디어 빛이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 어쩌면 이건 승진시험이었을까.
그레고르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도련님이 왕세자에게 도끼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다.
매번 생각하지만 정말 멋진 솜씨다.
그 역시 무술을 배웠기 때문에 보는 눈은 있다.
단순히 도끼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여도 저 각도, 저 절묘한 손놀림, 정확한 힘의 배분, 저런 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역시 헬가, 아니 부인의 아드님.’
부인과 도련님이 이 가문에 있는 한 공작가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일 거다.
단순히 두 사람만으로도 그런데, 거기에 빛의 나비와 철갑기사단까지 있으니까.
그레고르는 보고서에 쓸 내용을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문득 미소 지었다.
‘이제 아마….’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처형을 끝낸 도련님이 그에게 말했다.
“아레논으로 돌아가야겠다. 길 안내를 부탁해.”
역시.
그레고르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최단 거리로 모시겠습니다.”
강하고 판단력도 정확하다.
가끔 엉뚱한 행동에 나서기도 하지만 그게 나쁜 방향으로 흐른 적은 없다.
대체로 끝은 좋게 맺었다.
야생의 감 같은 걸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후계자로서 완벽한 클라우스님과는 전혀 다른 유형이지만, 라파님도 충분히 완벽했다.
익히고 있는 예절이나 교양 등은 클라우스님이 직접 가르치셨으니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라파님의 단 하나 정말 어쩔 수 없는 약점은 지도를 보고도 길을 잘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사소한 약점 하나가 왠지 도련님을 귀엽게 만들었다.
“….”
그레고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귀엽다고?
방금 귀엽다고 생각했나?
뭔가 좀 이상한데.
‘착각이겠지.’
좋은 주군이라고 생각하지만, 흠, 귀여운 건 아니지, 귀여운 건.
그레고르는 아주 잠깐 떠올랐던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