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 is becoming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37)
소집 (1)
얼핏 보기엔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무너진 잔해를 이리저리 얽어 만든 거처들이 모인 거주 구역.
“그럼 갔다 올게, 라뮤.”
“콜록, 콜록! 조심히 다녀와, 오빠···.”
그중 한 움막에서 나온 후줄근한 청년이 병색이 완연한 작은 소녀의 배웅을 받고 길을 나섰다.
이제야 막 밝아지기 시작한 이른 시간이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입장에서 빛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맨눈으로도 주위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밝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까.
‘먹을 것도 부족한데 사치스럽게 연료를 쓸 순 없으니.’
커다란 배낭을 메고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던 청년, 리앙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잔뜩 금이 가고 깨져서 곳곳이 떨어져 나간 회색빛 하늘.
그 결손 부위 너머로 일렁이는 칠흑 같은 심연에 그는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후우, 조심해야지. 나까지 잘못되면 라뮤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심연에 홀려 광인이 되어 버린 이들의 말로는 오직 죽음뿐이다.
나이 많은 어른들 얘기를 들어 보면 원래 하늘은 맑고 깨끗한 푸른색이었다고 하는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저런 하늘만 보아왔던 그에겐 동화 같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진짜 동화책에 그런 그림이 있긴 했지.’
오래전 운 좋게 얻은 그림책을 떠올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생이 굉장히 좋아하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끼고 살 정도로 좋아했던 물건이었다.
결국 식량과 바꿔 버려서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땐 먹을 게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었어. 부모님의 유품인 목걸이를 포기할 순 없으니까. ···그래도 이번엔 또 다른 동화책이라도 건졌으면 좋겠는데.’
최근 여동생인 라뮤의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치료사에게 데려갈 형편도 못 되는 만큼 여기서 더 악화되면 정말 위험했다.
이럴 때 그 아이가 기뻐할 만한 선물이라도 가져가면 기운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될 텐데···.
그런 마음을 품고 평소보다 더 멀리까지 와서 작업을 시작한 것 덕분일까.
“찾았다!”
폐허가 되어버린 무너진 도시의 잔해를 뒤지며 쓸 만한 물건들을 탐색하던 그는 오래지 않아 정말로 동화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한두 권도 아닌 알록달록한 동화책 세트, 심지어 오랜 시간 폐허 속에 파묻혀 있었다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양품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늘따라 운이 따라주는 건지, 그 주변에서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물건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명당이구나! 앞으로 며칠 동안은 이 주변만 뒤져도 되겠어.’
그렇게 열심히 주변을 뒤진 그는 고작 몇 시간 만에 가방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지금 얻은 수확만큼 몇 번만 더 나와 준다면, 앞으로 몇 달간은 매 끼니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여동생을 치료사에게 데려갈 수 있을지도···.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네. 그래, 모처럼이니 오늘은 쥐고기 파티다. 고기를 먹으면 라뮤도 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 거야.’
주변 잔해들을 끌어와 헤집은 흔적을 다시 덮어둔 건 물론,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남긴 리앙이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해가 질 때는 멀었으나 가방도 가득 채웠으니 오늘은 일찍 돌아갈 생각이었다.
‘밝아야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으니까. 기뻐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리앙은 자신에게 찾아온 작은 행운에 기뻐하게 크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고.
빠지직—
그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에 그대로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들려오는 파열음.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본능적으로 직감한 그가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
스르륵 팔에서 힘이 풀리고.
퉁—
그의 등에 매달려 있던 배낭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오늘 하루, 그에게 찾아온 작은 행운이 가득 들어찬 가방.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거기에 신경 쓰지 않고 전력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라뮤—!!”
자신만 기다리고 있을 여동생이 있는 집을 향해.
빠지직— 빠직! 쿠르릉—!
아직 밤이 올 때도 아닌데 세상이 조금씩 어둠에 잠겨갔다.
단순히 이 지역뿐만이 아닌, 세계 전체에 울려 퍼지는 파괴의 전주곡을 따라서.
그렇게.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
이미 지구의 시간으로도 몇 년 전에 ‘닫힌 차원’ 판정을 받은 세계— 코시야스.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해 전 지역에서 모여든 영웅들이 끝내 모두 산화한 이후, 시시각각 멸망을 향해 치닫던 차원에 마침내 종지부가 찍혔다.
“드디어 끝났군.”
어떻게든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최후의 메시아’가 쓰러진 지금, 더 이상 그를 막아설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남지 않았으니까.
그 덕분에 차원의 저항을 무시하고 재차 이곳에 진입할 수 있었던 번천회주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능감이 끝없이 치밀어 올랐다.
그와 더불어 공들여 뿌려둔 씨앗을 마침내 수확하게 됐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원 포식자. 네놈이 기어코···.]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슬쩍 시선을 올린 그가 앞에 선 상대를 바라보았다.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금발과 금안을 가진 존재.
주변엔 빛 한 점 없는 어둠만이 가득했으나, 그와 마주한 이는 여전히 모든 법칙을 무시하고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흐, 이거 안타깝게 됐군. 제법 애쓰긴 했다만 여기까지다. 뭐,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 여한은 없겠지?”
[네놈···!]번천회주의 조롱 섞인 말에 상대의 몸에서 거센 분노가 터져 나왔다.
그건 어떤 기운 따위가 아니었다.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 추상적인 개념들까지 포함한,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적대감을 드러내며 침략자를 배제하기 위해 날을 세웠다.
“소용없다.”
[큭!]하지만 그런 격렬한 반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으니.
가볍게 휘저은 번천회주의 손짓에 따라 세상이 비틀리며 휘어지다가 이내 한곳에 뭉쳐 단단히 고정되었다.
이미 차원에 대한 영향력의 과반수를 점유해 인과율을 확보한 그를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은 남아있지 않았다.
제약을 받을 때와는 달리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그는 말 그대로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설령 그 상대가 이 세상에서 추앙받던 신의 강림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상대도 신격을 지닌 존재라면···.
“슬슬 끝내도록 하지. 이래 봬도 바쁜 몸이라서. 얼마 전에 입은 손실을 만회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거든.”
[용납할 수 없다! 이대로 끝낼 수는···!]든든한 한 끼 보양식이 될 뿐이었다.
[커헉!]“영락해서인지 많이 인간다워졌군. 전보다 훨씬 보기 좋아.”
아무렇지 않게 강림체의 가슴에 손날을 박아 넣은 번천회주가 무언가를 쥐고 천천히 밖으로 끄집어냈다.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신성의 결정체.
이 세계 코시야스에서 유일신으로 취급받으며 오랜 세월 섬겨지던 존재의 모든 것이었다.
“과연, 이 정도면···.”
무너져 가는 세상 속.
손에 쥔 신성을 매개로 차원 곳곳에 흩뿌려진 업을 순식간에 빨아들인 그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곤 자신을 응시하는 관리자의 시선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떤 세상에선 주신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관리자는 차원을 유지하는 시스템과 같은 존재.
적법한 방법에 따라 인과율을 확보한 이상, 이쪽이 신을 살해하든 세계를 멸망시키든 자신을 제재할 방법은 남아있지 않았다.
사실상 마지막 수단인 ‘최후의 메시아’가 쓰러진 순간부터 이미 게임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제 여기서 할 일은 모두 끝났군.’
코시야스 차원은 이걸로 끝이다.
곧 이곳도 완전히 사라지고 머지않아 모든 것들이 무로 돌아가리라.
신으로서 세계 전체를 내려다보는 인지 능력으로 아직도 남아있는 자신의 추종자 몇을 수습한 그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가볍게 한 걸음 내디뎌 차원을 넘어선 순간.
“으음.”
시야가 흔들리며 그의 몸을 가득 채웠던 전능감이 한순간에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자유롭게 풀어헤쳐졌던 인과율이 답답하게 전신을 옭아매고, 온갖 제약이 덕지덕지 달라붙으며 전지에 가깝던 인지가 흐트러졌다.
구속복을 착용한 채 백태가 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감각.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았던지라 그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인 번천회주는 곧바로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모처럼 다시 지구에 돌아왔으니,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확인하고 새로 지시를 내릴 생각이었는데···.
“허?”
적잖은 수확을 거둔 직후였던지라 흡족함에 차 있던 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혹시 자신이 잘못 본 건가 싶어 오라클까지 호출해 확인해 본 사항은 더욱 가관이었다.
“동남아시아 지부가 괴멸한 것도 모자라··· 처형자까지?”
-죄송합니다, 회주.
면목 없다는 듯 사죄부터 입에 담는 오라클.
그 대답에 눈을 가늘게 뜬 그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점유율의 상승세가 꺾였군.’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거점은 이곳 지구였다.
다른 차원에서 신성을 강탈하고 에너지를 끌어오는 건 오로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최근 방해꾼의 존재로 인해 다소 부진했다곤 하나, 그동안 잘해온 게 있는 만큼 믿고 맡기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마스커레이드라···.’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온 번천회의 아성에 도전하는 대적자.
놈들이 본격적으로 세를 이뤄 활동하기 시작한 만큼, 아무래도 원활한 대응을 위해선 다시 한번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또 하나의 세상을 먹어 치운 괴물이 돌아온 직후.
지구 전역에 퍼져 있던 번천회의 간부들이 일제히 소집되었다.
***
할리가 독검파의 본거지를 불시에 습격한 이후.
추적을 거듭하며 서서히 숨통을 조여 오던 가디언의 조사대도 머지않아 그곳에 들이닥쳤다.
이런저런 제약 때문에 다소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가디언은 쉽게 대체하기 힘들 정도로 유능한 조직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능력이라도 다양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시너지가 더해지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법.
거기다 사실상 모든 귀환자의 인권을 대표하는 ‘귀환자 협회’에 소속된 만큼, 직접적인 인재풀은 물론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외부 인력의 능력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준 덕분에 우리 새 직원들도 더 편하게 놈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했지.’
그게 아니었으면 그렇게 빨리 배후를 파악하긴 힘들었을 거다.
거기다 그 배후에 있던 놈까지 사로잡는 일은 더욱 요원했을 터.
여러모로 세금이 아깝지 않은 활약일 수밖에 없었다.
‘그쪽에 추가 지원금이라도 좀 기부해 줘야겠군.’
그렇게 가디언은 물론 수사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 범죄수사과의 요원들이 독검파에 들이닥쳐 흑야차 권철용을 연행해 가고 있을 때.
한발 먼저 방문한 할리는 이미 현장을 유유히 벗어나고 있었다.
진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그림자 괴인을 당당하게 확보한 채로.
[큭, 어떻게 이렇게 빨리 꼬리를 잡은 거지? 그리고 넌 대체 누구냐? 설마 진짜로 혈맹에 팬텀 이외의 초월자가 있었다니···!]“카하핫! 뭐야? 자기소개 타임이야? 뭐, 나야 그래도 상관없긴 한데. 그래도 더 편한 방법이 있어서 말이야. 조금만 더 참아 달라고.”
짐짝처럼 옮겨지던 괴인, 흑영이 쥐어 짜내듯 의문을 토했지만 할리는 시원하게 웃으며 계속해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내달렸다.
그러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는 녀석에게 꿀밤 한 대를 먹여 얌전하게 만들길 잠시.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들고 있던 녀석을 바닥에 휙 던져 놓았다.
[큭!]당연히 놈은 그 즉시 그림자로 화하며 재차 도주하려 들었지만···.
“그만.”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 앞에선 모든 게 헛수고일 뿐이었다.
[끄으윽! 젠장···. 팬텀, 하인즈···!]“과연,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건가. 극의에서도 끝자락에 이른 녀석답구나.”
자기들 둘이 바로 옆에 있는데 탈출이 가능할 리가 없건만.
여전히 눈빛을 빛내며 주위를 살피는 모습에 하인즈 2세가 나직이 감탄을 토했다.
역시 이 방법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무슨 짓을···!]“얌전히 있어라. 금방 끝날 테니.”
그리곤 한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쥐며 손톱 끝에 자신의 「정제혈정」을 집중했다.
[네, 네놈 설마!]목을 파고들어 오는 이물감에 대경한 흑영이 눈을 부릅떴다.
상대가 무슨 짓을 시도하고 있는지 눈치챈 그가 이를 악물고 하인즈를 노려보았다.
[소용없다! 나는 모든 독성에 면역인 몸. 차라리 죽인다면 모를까 아무리 초월자인 9레벨 흡혈귀라도 나를 오염시킬 순 없을 거다!]과연, 그 말대로 놈을 흡혈귀로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경지가 올라갈수록 이런 쪽의 내성이 올라가는 판국에 그는 암살자로서 쌓아 올린 면역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도 내가 평범한 성혈의 뱀파이어였을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내성? 면역?
알 게 뭐냐.
초월의 경지에 올라 존재로서의 한계를 탈피했다면 모를까, 아직 벽을 넘어서지도 못한 이의 저항 따위는 자신의 신혈 앞에선 무의미할 뿐이었다.
[끅! 어떻게···? 이럴 리가—!]그때서야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두 동공이 당황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도 한참 늦은 뒤였다.
[······!]그의 전신으로 파고든 흡혈인자가 세포의 근간을 뿌리부터 갈아엎기 시작했다.
전신에 잠재되어 있던 기운이 혈마력에 변질되고, 굳건하던 정신에는 혈맥에서 기인한 금제가 단단히 자리 잡았다.
‘지구에서 흡혈귀를 탄생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이세계에서의 열 배가량. 거기다 경지에 따른 저항력을 무력화하는데 소모되는 것까지 생각하면···.’
그게 그동안 자신이 함부로 혈족을 늘리지 않았던 이유였다.
원래 흡혈귀였던 존재의 소속만 바꾸는 거라면 모를까, 아예 종족부터 바꿀 경우에는 소모되는 혈정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뭐, 그래도 이렇게 가끔이라면 큰 상관없겠지.’
마침 상대가 가진 능력도 굉장히 유용해 보이기도 하고.
또 그 입에서 꼭 들어야 할 말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지구에서의 혈맥, 헤테로시스에 신입 흡혈귀가 하나 추가되었다.
“흑룡회라고? 이거 잘만 하면···.”
귀가 솔깃해지는 새로운 정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