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47
46회
거듭된 NG 끝에 한 신이 마무리되었다.
모니터까지 꼼꼼히 확인한 심이지가 한숨을 내쉬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지, 괜찮아?”
대기실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녀가 한 남자의 음성에 멈춰 섰다.
한 시간 전, 같은 장면에서 상대역으로 대면했던 강태주였다.
그는 이지와 데뷔 동기였지만 나이는 2살 더 많았다.
신인을 함께 거쳐 온 이들은 그 시간만큼의 의리와 친밀감으로 돈독해져 있었다.
“어? 어쩐 일이야? 외출한다더니?”
이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태주가 곧 뒷짐에 진 것을 내보였다.
“커피 사러 다녀온 거야. 라떼 취향 여전하지?”
“훗……”
“이제야 긴장이 좀 풀리나 보네? 이래서 내가 커피까지 사와서 자리를 지켰다니깐?”
“무슨 이유로?”
이지가 피식 웃자 태주가 능청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동기 사랑이라고나 할까?”
“훗, 너무 과해도 부담스러우니까 태주 씨 일에나 신경 써. 라떼는 잘 마실게.”
이지가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유유히 사라지는 뒷모습이 태주의 시선에 담겼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곧 제 손에 든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커피를 한 모금 삼킨 그가 나직이 웃었다.
‘참 예쁘다. 너……’
잠시 라떼의 달콤함을 느끼던 이지가 곧 미간을 찡그렸다.
조금 전의 NG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본을 완벽히 숙지했다고 자부했지만 대사 량이 너무 많은 게 함정이었다.
여자 주인공에게 부여되는 대사는 보통 그랬다.
하지만 전문 용어까지 겹치다보니 달달 외운 것마저 얽히고 만 것이었다.
“휴우……”
이지가 한숨을 내쉬더니 곧 핸드백에서 폰을 꺼냈다.
친구 영은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바쁜가? 준이 씨 소식이라도 듣는다면 한결 기분이 나아질 것 같은데……’
이지의 검지가 재빠르게 클릭을 이어가자 영상 하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준이 촬영 중인 의 한 장면이었다.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는 입소문을 타며 시청률을 서서히 높여가는 중이었다.
그의 열연을 지켜보는 이지가 저도 모르게 웃었다.
경쟁 방송사의 작품인데다가 빡빡한 촬영 일정으로 편안히 시청할 수 없었지만 이지는 그의 작품 모두를 이미 저장해놓은 상태였다.
준의 얼굴을 보는 건 그녀만의 힐링이었고 돈이 얼마가 들던지는 상관없었다.
함께 할 수 없다면 폰 안에 준을 넣고 다니는 방법도 나쁘지 않았다.
어디에서든 그를 볼 수 있다는 건 지금 이지가 가장 원하는 것이자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준이 씨…. 다음번에 당신과 함께 할 기회가 온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예요.’
“자자, 어제 드디어 시청률 15% 찍었습니다!”
감독의 한 마디에 현장은 곧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환호성과 박수는 물론 커다란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바로 전 달의 드라마가 14%로 월, 화극 1위를 달성한 터였다.
방송 초반, 15%의 달성은 꽤나 큰 의미가 있었다.
밤샘으로 열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겐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자 앞으로의 작업에 힘을 얻는 순간이었다.
기뻐하는 무리의 한 가운데에서 준의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태프들의 격려와 박수에 자신도 똑같이 화답했지만 웃는 얼굴을 간신히 유지할 뿐이었다.
20부작의 절반을 앞두고 있는 현실은 곧 윤설과의 인연이 끝나 감을 의미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한 사람 때문에 선택한 드라마였다.
그 어떤 설명으로도 해석이 안 되는 일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마치 무언가에 강하게 이끌리듯 준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자신을 이끈 존재와 곧 헤어져야 한다는 건 준에게 당황과 슬픔, 그 자체였다.
눈앞에 캄캄해지는 건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쭌, 앞으로도 힘내라! 파이팅!”
윤 매니저가 흥에 겨운 음성으로 준의 어깨를 툭 치자 그가 곧 현실로 돌이켰다.
오래지 않아 촬영이 재개되었다.
지친 모습이 일상이던 이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재빨리 준비에 돌입했고 분장을 마친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오빠, 괜찮아요?”
극중 그의 여동생 역을 맡은 영은이 애교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신이 예정되어 있었다.
“네, 괜찮아요.”
중견 배우들까지 합세하자 곧 준비된 밥상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리를 잡고 앉은 이들이 잘 차려진 상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에게도 조선의 밥상은 귀한 구경이었기에 매 신마다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밥상을 훑어보는 준의 마음이 다시금 안타까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윤설 씨….. 계속 만나고 싶은데….. 우린, 여기까지 인가요…..?’
한 신이 마무리된 후, 스태프 하나가 조연출을 향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로부터 무언가를 들은 조연출이 곧 당황한 얼굴로 김 감독에게 다가왔다.
“저….감독님, 비상입니다.”
“뭐? 무슨 일인데?”
“그, 그게…. 서예 선생님께서 촬영장으로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곧장 병원으로 가셨답니다. 오른손을 다치셔서 경과를 봐야 한다며…”
“뭐? 뭐야?!”
벌게진 얼굴로 말을 더듬던 조연출이 고개를 푹 숙이자 김 감독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서예 선생이 크게 다치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곧 서예 신을 앞두고 있었다.
에선 음식과 함께 서예가 주된 매개체가 되고 있었다.
조선의 규수가 서예를 쓰는 장면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배우는 캐스팅되었지만 대역을 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서예를 잘 쓸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란 꽤나 어려웠다.
더군다나 거기엔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한문을 잘 구사할 것….. 그리고 손이 희고 가녀린 여성일 것…..
두 조건에 모두 맞는 사람을 겨우 구해둔 터라 김 감독에게 이번 일은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휴우… 이걸 어쩐다? 조연출! 지금 현장에 서예 가능한 사람 있는지 어서 알아봐!”
김 감독의 성난 명령에 조연출이 흠칫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감독님, 혀…현장에서요? 보시다시피 그럴 만한 인물이 없을 텐데요?”
“얌마! 지금 그거 따질 때냐? 그럼 당장 다음 신은 어쩌려고? 빨리 이 잡듯이 다 뒤져봐. 혹시 알아? 어렸을 때 잠깐 서예 학원에 다녔던 사람이라도 있을지?”
호통에 가까운 소리가 조연출을 달리게 만들었다.
그가 무전기로 스태프들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며 현장을 누비기 시작하자 곧 주변을 둘러싼 이들로부터 근심이 흘러나왔다.
서예 신을 잠시 미뤄둔 채 다른 장면이 먼저 촬영되었다.
그리고 마무리가 될 즈음 조연출이 한껏 신난 얼굴로 김 감독에게 돌아왔다.
“감독님, 드디어 구했습니다! 우하하하….”
“오, 그래? 누군데?”
“아주 가까이에 금손께서 계셨지 뭡니까?”
모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상황을 살피는 가운데 곧 조연출의 뒤로 윤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엥? 음식 선생님께서 어쩐 일로? 설마….. 서예까지 섭렵하신 겁니까?”
해인과 함께 나타난 윤설이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저….소일거리 삼아…. 조금 배웠을 뿐입니다만…. 도움을 간절히 원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나! 그럼요.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릅니다. 이제 보니 우리 음식 선생님께서 은인이셨구만요. 우하하. 자아, 연습을 좀 하셔야겠죠? 지필묵 준비됐냐?”
조연출이 대꾸하려는 찰나, 윤설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글귀를 알려주시면 바로 쓸 수 있을 듯합니다.”
“아, 역시! 좋습니다. 좋아요. 조연출, 우리 음식 선생님 어서 분장해드려라. 자아, 다들 파이팅 합시다!”
주변에서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이 몰리는 순간, 윤설이 수줍은 듯 고개를 들지 못했고 해인은 한껏 신난 얼굴로 손뼉을 쳤다.
대기실에서 소식을 들은 준이 서둘러 일어섰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연신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형,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깐. 하핫, 정말 재밌지 않냐? 조선 음식의 대가가 서예까지 겸하다니… 하긴, 뭐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얌마, 너 그런데 왜 그리 좋아하냐?”
“아, 아니….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신기하기도 하고….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치? 캬캬…. 지금 다들 구경한다고 난리 났어.”
“형, 그럼 저희도 가서 봐요.”
한 마디를 내던진 준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밖으로 뛰쳐나가자 윤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 뭐냐? 방금 지쳐있던 사람은 누규? 앗, 나도 구경해야지. 준아!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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