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63
62회
준은 의문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다정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윤설 씨, 그런 말씀은 마세요. 제가 당신에게 마음을 열게 된 건 바로 그런 점 때문인 걸요? 윤설 씨는 처음부터 저를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대해주셨죠. 기뻤습니다. 직업이 너무 부각되다 보니 제 자신을 잃고 산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윤설 씨를 만난 후엔 한 남자로서 순수한 사랑을 꿈꿀 수 있었거든요. 음…. 이건 제게 좋은 일이니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연애는 저도 처음입니다. 우리 둘 다 초보니까 함께 맞춰나가면 아무런 문제없어요. 이제 마음 놓으시는 거죠?”
준으로부터 깔끔한 대답이 나왔지만 윤설은 어쩐 일인지 조금 전보다 더욱 떨고 있는 듯했다.
“헌데…… 또 한 가지….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저는…..어쩌면 님께 상처를 줄지도 모릅니다. 저의 태생이 님과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허니, 제가 이상하더라도 저에 관해 더 이상은 묻지 말아 주십시오.”
잔뜩 긴장된 음성 위로 사내의 웃음이 쏟아졌다.
“태생이요? 하하, 윤설 씨도 참…. 고품격 단어를 많이 사용하시는군요. 뭐…이미 알고는 있었지만요. 요즘 세상에 태생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 윤설 씨가 외계인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저 역시 좋은 집안 출신이 아닌 걸요? 저는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말들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그렇게 구별한다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좋아하는 관계에서까지 그런 걸 따진다는 건 너무 냉정한 일이 아닐까요? 윤설 씨, 당신의 이야기들 모두 존중할게요. 더 이상 묻지 않아요. 지금 이대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아무 것도 중요치 않아요. 음…. 그렇다면 저도 미리 말씀드릴 게 있는데….”
이번엔 윤설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의아하게 여기는 눈빛을 향해 준이 겸연쩍게 웃었다.
“아마 저 때문에 남들처럼 편안한 데이트는 힘들 수도 있을 겁니다. 원치 않는 일이지만…. 죄송해요. 하지만 윤설 씨가 불편해 할 일은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해해주실 수 있죠?”
모르는 말이 들어 있었지만 전체의 의미를 파악한 윤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하고 싶은 말들을 마치고 마음이 통한 것을 깨달은 순간,
비로소 마음을 놓은 윤설이 미소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바라보던 준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웃었다.
“윤설 씨, 그럼 오늘부터 우리 1일입니다.”
“1일….이라… 하셨습니까…..?”
뜻 모를 말에 윤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준이 싱긋 웃었다.
정말로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 그에게 그녀의 모습은 그저 사랑스레 다가올 뿐이었다.
러닝머신 위를 제법 빠르게 걷고 있는 이지의 이마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운동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경사도는 높여둔 상태였다.
바디에 피트 되는 운동복은 이지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주위에서 운동하는 이목들을 단번에 사로잡고 있었다.
이지가 호텔 헬스클럽에 나타난 것은 일주일 만이었다.
특정한 장소를 정해 운동하게 된 이유는 집에서 가깝다는 것과 조용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이를 악물고 환골탈태를 택했던 그녀에겐 의욕을 다질 도구가 필요했었다.
특히 데뷔 후엔 타인의 이목을 의식한 방법이 꽤 효과가 있었다.
어차피 남에게 보여주는 직업이라면 그런 시선을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적중했고 그녀의 모습은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흐트러지지 않는 몸매는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는 이미지로 쌓여가고 있었다.
막 안으로 들어선 장 실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가 이지에게로 가까이 다가서자 주변에서 남몰래 훔쳐보던 눈들이 서둘러 제자리를 찾아갔다.
곁눈질로 매니저를 발견한 이지가 러닝머신의 버튼을 눌렀다.
익숙한 손길에 경사도가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속도 역시 느릴 정도로 줄어들었다.
“뭐야? 괜히 걱정했잖아. 속은 괜찮아? 운동 나올 거면 미리 전화하지. 난 또 쉬는 줄 알고……”
“짝사랑에게 퇴짜 맞은 거, 광고할 일 있어?”
“야, 심이지. 너……”
장 실장이 흠칫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자 이지가 피식 웃었다.
“오빤 순진한 거야? 그런 척하는 거야?”
“쳇, 이제 돌아왔구나? 농담을 다 하고.”
“바보같이 널브러져있을 수만은 없잖아? 왜 나만 아파야 하는데? 그러기 싫어. 몸이 달아 안달 나게 만들겠다고 했잖아.”
“오, 그래. 좋다. 그런 마인드로 성공하는 거지. 잘 생각했어.”
장 실장이 흐뭇한 얼굴로 대꾸하자 곧 심이지가 호흡을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 추친해줘.”
“뭐, 뭐?”
방금 편안하게 웃었던 장 실장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고 말았다.
이지는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지금으로선 가장 강력한 한 방이라며? 좋아. 내 인지도를 올려 더 좋은 작품에서 그 사람이랑 만날 수 있다면….. 거부할 이유 없어.”
느리게 작동하던 러닝머신이 멈추었다.
마무리 운동까지 완벽하게 마친 그녀가 머신에서 내려와 장 실장의 손에 든 생수병을 낚아챘다.
멍한 얼굴로 이지를 응시하던 그가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심이지, 오늘 사람 여러 번 놀라게 만든다? 번복하기 없다? 약속해.”
“훗, 이런 결단, 쉬웠을 것 같아? 심이지 자존심을 걸게. 두말하는 일 없으니까 바로 추진해.”
수건으로 제 이마를 닦아낸 이지가 걸음을 옮겼다.
장 실장이 뒤를 따르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고 그들의 뒷모습을 주변의 시선들이 조용히 스쳐갔다.
화보 촬영장에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했다.
모두가 숨죽인 채 한 사람만을 응시했고 그들의 시선 한 가운데에 강태주가 있었다.
패션 잡지 속에 들어갈 시계 화보였다.
블랙 슈트 속, 풀어헤친 단추 사이로는 단단한 가슴이 드러났고 손목에 채워진 시계는 힘줄이 도드라지는 손등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최근, 심이지와 투톱으로 출연한 드라마에서 섹시한 느낌을 소화했던 그로선 배역의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하는 셈이었다.
몇 시간이나 지루하게 이어졌던 촬영이 마무리되자 곧 여기저기에서 감탄사가 섞인 인사들이 튀어나왔다.
태주가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걸음을 옮기자 그의 곁으로 매니저가 다가왔다.
“ 성사될 것 같다. 심이지가 하겠다고 했대.”
태주의 입 꼬리가 정신없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촬영 때문에 쌓였던 피로는 급속히 사라져갔다.
이지로부터 대차게 거절당한 후 이래저래 심란했던 그였다.
제 마음을 몰라주고 뜻대로 따라주지도 않는 그녀가 미운 건 당연했다.
이제껏 제 대시에 넘어오지 않는 여자는 없었다.
마음이 있다고 표현하면 그대로 달려와 안기는 여자들은 흔하고 흔했다.
태주는 이지가 자신을 거절한 첫 여자이기 때문에 더 원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확실한 건 지금 그에겐 유일하게 관심이 가고 마음 가는 여자가 바로 그녀라는 것뿐이었다.
이지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는 궁금하지 않았다.
태주에겐 이번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는 미혼의 연예인들이 가상 커플이 되어 신혼의 달콤함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포맷이었다.
이미 출연한 친구로부터 없던 마음도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그로선 이번에야말로 이지와 더욱 친밀해지고 싶었고 그녀를 제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윤설아!”
늦은 시각, 수를 놓으며 벗을 기다리던 윤설이 반가운 얼굴로 일어섰다.
현관문에 들어선 해인의 손엔 커다란 가방이 들려 있었다.
“어서 오렴. 오늘도 애썼구나.”
“심심하지 않았니? 헐, 오늘도 청소했구나? 암튼 너 오고 난 후로 먼지 쌓일 시간이 없다니깐. 히잇.”
해인이 신을 벗으며 웃자 윤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란다. 괘념치 말렴.”
“그래도 고마워. 참, 윤설아, 너한테 선물이 도착했어. 이거 받아.”
“…..선…..물…..?”
윤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해인이 가방을 그녀의 손에 건네더니 궁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아까 상규 오빠가 편의점에 잠시 다녀갔었거든. 바쁜데 뭘 오냐고 했더니 보고 싶다며 기어이 온 거 있지? 푸흡. 아, 맞다. 이건 준이 씨가 너에게 보내는 선물이래. 어서 풀어봐. 나도 얼마나 궁금했는지 몰라. 퇴근 시간까지 기다리느라 애가 탔다니깐.”
선물 보낸 이를 떠올리는 순간, 윤설의 두 뺨이 살며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받아도 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자신이 온 시대에선 남녀 간에 정표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장래를 기약한다는 의미였다.
윤설은 준과 그런 관계까지 나아간다는 게 두려운 한편, 부끄러웠다.
하지만 조선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그에게 못 할 짓이었고 이제라도 정표를 돌이키는 게 옳지 않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머뭇거리는 사이, 해인이 가방에 든 것을 불쑥 꺼내고 말았다.
제법 부피가 있는 커다란 상자가 제 주인 앞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뭘까? 윤설아, 어서 풀어봐. 준이 씨가 얼마나 궁금해 하겠니? 히잇.”
“….궁금해….하신다고……?”
“어우 야, 당연하지. 선물은 받자마자 풀어보고 상대에게 그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는 게 예의라고. 준이 씨를 생각해봐. 너에게 첫 선물을 보낸 건데 네가 좋아할지를 얼마나 궁금해 하겠니? 나라도 그러겠다.”
윤설은 조심스러웠지만 준은 이곳의 사람이었다.
당연히 후대의 예의를 따르는 것이 옳으리라는 판단이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음을 정한 그제야 그녀는 준이 무엇을 보내왔는지 궁금해졌다.
여린 손길이 상자를 고이고이 싸고 있던 한지를 살며시 뜯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뚜껑이 열리는 찰나, 윤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리 없는 반응 위로 금세 해인의 감탄이 쏟아졌다.
“우와! 대박! 넘넘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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