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lasted Reincarnated Life RAW novel - Chapter 12
〈 빌어먹을 환생 13화 〉 혈계식
“이걸 하나씩 가지고 차고 들어가세요.”
모든 아이들이 무기를 만든 뒤. 로베리안은 푸른 보석이 매달린 목걸이를 건넸다.
“그 목걸이는 여러분의 정신과 연결됩니다. 만약 미궁에서 과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목걸이의 반응을 통해 제가 개입할 겁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도저히 미궁을 돌파할 수 없겠다 싶으면, 목걸이의 보석을 두드리면서 ‘도와주세요.’라고 말하세요. 그럼 아무 일 없이 미궁을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것은 한센을 비롯한 떨거지들이었다. 어디까지나 전통을 거스를 수 없어 참가한 것 뿐. 그들은 혈계식에 아무런 야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 그럼. 사이좋게 다 같이 들어가도록 합시다.”
해야 할 이야기를 마친 뒤. 로베리안은 활짝 웃으며 동굴의 입구에서 비켜주었다.
“다 같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동굴에 들어간 순간부터 여러분은 다른 길로 인도될 겁니다. 너무 당황하지 말고, 처음에는 길이 하나뿐이니 똑바로 나아가도록 하세요. 거기서부터 못하겠다 싶으면 보석을 두드리시고.”
아이들이 걸어 나간다. 유진은 왼쪽 팔뚝에 찬 방패를 의식하면서 성큼성큼 걸었다.
“힘내.”
동굴의 입구로 들어가기 전. 곁을 따라 걷던 시엘이 유진을 향해 활짝 웃었다. 가르기스와 디자이라는 말없이 유진을 향해 눈짓을 주었다. 유진은 그들의 시선에 비죽 웃으면서 말했다.
“너도 힘내.”
“응!”
대충 던진 격려에 시엘은 힘있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동굴에 들어간다. 하나 뿐인 입구를 지난 순간. 주변이 확하고 어두워졌다. 누군가가 놀란 소리를 낼 법도 한데, 그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유진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소환마법으로 불러들인 미로.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와 보니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로베리안이 대마법사를 자부할 만큼 뛰어난 마법사여서기도 하겠지만, 아직 미숙한 육체가 마법 특유의 위화감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나를 수련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철저하게 육체의 감각에만 의존해야 한다. 다행히 그건 유진이 자신 있는 분야 중 하나였다.
유진은 호흡을 낮고 길게 내쉬었다. 애당초 흥분은 하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심신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오감을 하나씩 의식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은? 미궁 탐색에 별 쓸모는 없는 기관이다. 하지만 유진은 혀끝을 살짝 씹는 것으로 입안에 피의 맛을 감돌게 만들었다.
그렇게.
의식 된 감각이 집중된다. 반복해서 내쉬는 호흡이 정신을 일깨운다. 그렇게 해서 열리는 직감은 가히 육감이라 할 만 했다.
깨워낸 정신에서 불러들이는 것은 우둔한 하멜의 경험이다.
미궁 탐색? 전생에서 질릴 만큼 해보았다. 땅속으로 파고드는 몬스터들 대부분은 제 둥지를 미로처럼 만든다. 한낱 개미새끼도 그렇게 둥지를 만들고, 심지어 고블린조차도 그렇게 둥지를 꾸린다.
마물은 말할 것도 없다. 마경 헬무드. 현대에 이르러서는 비싼 돈을 치르며 관광여행까지 가는 곳이라는데. 하멜이 떠돌았던 헬무드는 이 세상에서 존재해선 안 될, 끔찍하기 짝이 없는 지옥이었다.
그곳에서 몇 번을 죽을 뻔 했는지. 자신하던 실력의 대부분이 헬무드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그 등신같은 모론조차도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스스로를 대마법사라며 추켜세우던 세냐는 자신의 마법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언제나 신이 보살펴 주실 것이라던 아니스도 헬무드에서는 신보다는 동료의 이름을 더 많이 불렀다.
유일하게 베르무트만이 동요하지 않았었다.
“…”
유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용사 베르무트와 동료들… 맞는 말이다. 일행의 중심은 베르무트였다. 놈이 없었다면 다들 헬무드를 돌파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멜도, 모론도, 세냐도, 아니스도. 처음 헬무드에 들어갔을 때에는 어리고 미숙했다.
그러나.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베르무트만큼은 아니어도, 동료들 전원은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놈이라는 착각을 한 번쯤은 했던 놈들이었다. 그러니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동료들은 헬무드에서의 매일을 일상처럼 여겼다. 모론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고, 세냐는 제 마법에 확신을 가졌으며, 아니스는 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했다.
하멜은.
베르무트보다 나약한 자신이 싫었다. 두려움에 몸이 떨리는 것이 싫었다. 그는 도저히 베르무트처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제 자신에게 억지를 부렸다. 베르무트처럼 못하니까, 자기방식대로 성장하고자 했다.
베르무트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멜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니 두려움에 익숙해져 극복한다.
베르무트는 무엇이든 쉽게 해버린다.
하멜은 쉽게 할 수 없다. 처음에는 곧잘 해도 언젠가는 벽을 맞닥트린다.
그러니 벽을 부수고 나간다.
미궁.
이곳도 마찬가지다.
베르무트는 처음 접하는 미궁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언제나 길을 찾으려 들었다. 놈도 사람은 사람이라 언제나 맞는 길을 고르지는 못했다.
놈이 실패할 때마다. 또 맞는 길을 고를 때마다. 하멜은 베르무트가 어떤 근거로 옳은 길을 찾았고, 무엇이 잘못 되어 옳지 않은 길을 골랐는지를 살폈다. 하멜은 베르무트 같은 타고난 직감 따위는 없었기에, 그런 식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메웠다.
그 경험은 유진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애들보고 돌파하라고 만들어 놓은 미궁이야. 죽일 작정으로 만든 미궁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노골적이고 뻔하지.’
유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로베리안이 말한 것처럼 시작은 외길. 여전히 주변은 어둡다… 하지만. 일정 거리를 나아가니 천천히 어둠이 걷힌다.
좌우의 벽.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 난감하지 않을 만큼 거리는 넉넉하다. 하지만 창을 마음껏 휘두르려면 제 위치를 여러모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유진은 창을 고르지 않았다. 검과 방패. 이 기본적인 조합은 거의 모든 상황에 대응이 가능한 만능의 조합이다.
‘천장은 막혀있군.’
벽을 기어 올라서 넘어가는 꾀는 쓸 수 없다. 유진은 예민하게 깨운 감각 중에 후각을 의식했다. 아직까지 입안에 감돌고 있는 피의 맛. 피의 냄새. 그것을 우선해서 배제하는 식으로 이질적인 냄새를 찾는다.
엷게나마 기름 냄새가 난다. 마나를 다룰 수 있다면 보다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텐데. 유진은 작은 아쉬움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 걷자 갈림길이 나왔다. 이어지는 길의 형태는 똑같다. 기름 냄새가 나는 것은 왼쪽. 마법으로 만들어놓은 함정인데도 기름의 냄새가 난다. 과연 노골적이고 뻔했다.
하지만 유진은 왼쪽 길로 나아갔다. 제 판단이 옳은가 확신을 얻기 위해서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척 하면서, 발바닥에 전해지는 체중을 걸음 한 번 한 번에 집중해서 싣는다.
하나, 둘, 셋, 넷…
일곱.
닿는 발판이 아래로 조금 내려간다. 거기서 하나, 둘…
‘셋.’
파악! 벽돌의 흠에서 화살이 쏘아진다. 유진은 당황하지 않고 방패를 들었다. 투웅! 화살은 방패를 꿰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유진은 더 나아가지 않고 몸을 돌렸다.
‘쉽네.’
역시 애들 수준을 맞췄다는 것이지. 유진은 피식 웃었다. 이렇게 굳이 틀린 길까지 확인할 때마다 세냐가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과거의 회상은 경험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추억까지 함께 불러일으킨다.
“씁.”
유진은 속이 쓰려지는 것을 느끼며 오른쪽 길로 돌아갔다.
*
“돌아가서 쉬거라.”
길레이드는 싸늘한 시선을 거두었다.
한센은 가장 먼저 목걸이를 두드리며 포기를 선언했다. 어차피 경쟁이 안 될 것이라 생각했고, 괜한 고생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부모님도 아들이 무언가 이변을 일으키리란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다.
“네… 네.”
쭈뼛거리며 서있던 한센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구조요청이 들려왔다. 10살의 쥬이스는 미궁을 나아가기는 했으니 한센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첫 번째 함정에서 화살을 맞고, 눈물을 질질 짜며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조금 지난 후. 다시 구조요청이 돌아온다. 11살의 데콘이었다. 몸에 화살을 맞은 것은 꾹 참았지만, 그 뒤에 맞닥트린 슬라임에게 된통 당해버린 것이다. 슬라임은 날병기로 상대하기 곤란한 몬스터다. 데콘은 슬라임의 점액질 몸뚱이에 삼켜져서 살려달라며 비명을 질렀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홉 명은 여섯 명이 되었다. 한심하단 생각은 들지만, 예상했던 바이긴 했다. 그 누구도 저 세 떨거지가 무언가를 보여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가르기스… 어설프지만 멈추지 않는군.’
로베리안은 허공에 미궁의 영상을 띄워놓았다. 여섯 명의 아이들이 나눠진 화면에 비춰진다. 가르기스는 함정을 피해가는 것보다는 우직하게 돌파하는 것을 택했다. 몸에 화살이 맞아도, 몬스터를 맞닥트려도. 제 몸뚱이만큼 커다란 대검을 휘둘러 으깨고 나간다.
‘디자이라는 날렵해. 직감도 있고…’
함정에 당하면 즉시 길을 바꾼다. 몇 번인가 함정을 피하기도 했다. 몬스터와도 굳이 싸우려 들지 않는다. 다른 길이 있다면 돌아간다. 그녀가 창을 휘두르는 것은 물러설 수 없을 때 뿐이었다.
‘시안은 너무 신중해. 하지만 나쁘지 않아.’
애니실라는 유명한 모험가들의 수기나 여러 미궁의 설계도를 구해 쌍둥이들에게 교육시켰다. 그렇게 쌍둥이는 미궁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와 공략법을 학습했다. 그건 이 노골적이며 뻔한, 쉬운 미궁을 돌파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가령. 저 미궁은 사방이 막혀있다. 하지만 마법으로 인해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간다면 길을 찾는 것에 도움이 된다. 잘 살핀다면 길에 인위적인 흔적을 찾아낼 수 있고, 그런 것이 없다면 함정이 발동 된 순간의 판단에 따라 회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안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다만, 신중한 것에 비해 어설픈 구석은 있었다. 생각이 유연하지 않다. 떠올린 기억만 무조건 의존하려다보니 시야가 좁아진다. 그래서 쉬운 함정에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시엘은 감각적이야. 사고도 유연하고. 하지만… 어린애다운 구석이 있어.’
시엘은 신발 따위의 물건을 던져보는 식으로 함정을 발동시켰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서 굳이 함정이 있는 길로 나아간다. 길이 막힌다면 다시 돌아오고, 막혀있지 않다면 계속해서 간다. 몬스터와 만났을 때에는 바로 싸우지 않고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괴롭혀 본다.
이오드는.
“…어떻소?”
“마법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군요.”
이오드는 미궁을 돌파하는 것에만 열중하지 않았다. 그는 함정을 하나하나 살피고, 몬스터를 보면 감탄을 터트렸다. 환영으로 만들어진 몬스터인데 이만큼이나 생동적이라니. 어찌 몬스터를 쓰러트린 뒤에도 곧장 떠나지 않고, 꽤 오랫동안 몬스터의 사체를 살피며 눈을 빛내었다.
검을 휘둘러 몬스터와 싸울 때에는 눈이 칙칙하게 죽어있었는데. 마법과 접할 때에는 웃는다.
“…어려서부터 그랬지. 육체와 기술을 단련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어. 특히 마법에 관한 동화를 들려줄 때마다 즐거워했지. 그거 아시오? 이오드, 저 아이는 선조인 위대한 베르무트보다 현명한 세냐를 더 존경한다오.”
“세냐님은 모든 마법사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이시지요.”
로베리안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용사 베르무트의 모험’에서 베르무트님보다는 세냐님의 이야기가 좋았지요. 일행이 곤궁해 처할 때마다, 세냐님의 마법은 놀라운 해답을 내놓곤 했잖습니까.”
“그 동화는 나도 어릴 적부터 읽었지. 나는… 하멜을 좋아했지만 말이오.”
“우둔한 하멜 말입니까?”
“그가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면 동화책은 아주 지루했을 거요. 그는 심술궂은 인물이었지만 정의로웠고… 선조 베르무트님에 대한 열등감을 스스로 노력하는 것으로 극복하려 했소. 모두가 베르무트님의 의견을 따를 때에도 하멜 혼자만 다른 의견을 내었지.”
“전 어릴 때부터 하멜이 싫었는데 말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멜 덕에 일행은 몇 번이나 위기를 겪었으니까… 하지만 그 위기 때마다 하멜은 항상 자신이 책임을 지려 했소. 나는 도저히 하멜을 미워할 수가 없더군…”
길레이드는 빙긋 웃으며 영상을 보았다.
“…이오드. 저 아이는 어려서부터 마법을 배우고 싶어 했소. 실제로 배우기도 했지. 수도의 마법교사를 초빙하기도 했고… 그런데 도중부터는 마법을 더 익히려들지 않더군.”
“그 이유를 아십니까?”
“현실에 포기한 것이오. 어미를 위해서… 자신이 가주가 되어야 한다 결심한 것이지. 마법은 승계경쟁에서 유리하지 못하니까.”
승계경쟁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뭐 이해는 합니다. 마법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만큼, 가야 할 길이 험난하고 멀지요.”
“솔직히 나는 이오드가 마도(魔道)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소.”
길레이드는 씁쓸히 웃으며 로베리안을 돌아보았다.
“방계 중에서도 마법을 전문적으로 익힌 가문은 하나뿐이오. 그래서 몇 번이나 이오드를 그쪽에 보내보려 했지만, 이오드가 거절하더군. 하지만… 적색마탑주의 제자라면 거절하지 못할 것이오. 이오드의 마음에는 아직 마법에 대한 열망이 있으니까.”
“확답은 못 드립니다.”
로베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나 제자로 들일 수 없으니까요. 길레이드님과의 인연도 있으니 데려가기는 하겠습니다만… 자질이 눈에 차지 않는다면 제자로 들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소. 나도 억지를 부릴 생각은 아니오. 다만, 저 아이가 꿈에 몰두하게 해주고 싶소.”
시안과 시엘의 계승권을 위해서가 아니다. 장남이 하고 싶지도 않은 일에 몰두하며 썩어드는 것이 괴로울 뿐이다.
정실인 테오니스를 납득시키기 위해. 그리고 이오드의 등을 떠밀기 위해, 적색마탑주까지 직접 데려왔다.
“…뭐 이오드님의 자질은 찬찬히 살피도록 하죠. 이번 미궁에서 이오드님은 마법을 쓸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요.”
로베리안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화면을 보았다.
“…그런데… 유진. 저 아이는 대체 뭡니까?”
감탄은 이미 몇 번이나 터트렸다. 이제는 감탄보다 당혹스런 감정이 앞선다.
“…나도 모르겠소.”
길레이드는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화면 속의 유진은 트롤의 환영을 찢어발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