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lasted Reincarnated Life RAW novel - Chapter 394
〈 빌어먹을 환생 395화 〉 꿈
누아르가 저렇게까지 단언하는 것을 들으니 짜증보다 호기심이 더 강해졌다. 유진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진 님. 위험하지 않을까요?] [으…… 은자여, 본녀가 위대한 드래곤인 것은 사실이나, 몽마의 여왕과 대적할 자신은 없느니라…….]망토 안의 메르와 라이미르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본래라면 둘은 연회장의 다양한 진미를 즐기며, 실제 나이와는 상관없이 어린 아이다운 방식으로 파티를 즐길 셈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괜찮아.’
둘의 걱정은 타당했다. 지금부터 누아르는 유진에게 환상의 마안을 사용할 것이고, 유진은 저항하지 않고서 ‘꿈’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말은 즉, 유진의 목숨이 누아르의 수중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이다. 유진이 꿈속에 있는 한, 누아르는 아주 간단하게 유진을 희롱할 수 있다. 꿈속에서 얼마나 저항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만약 저항이 불가능하다면…… 자칫하다가는 영영 꿈속에 헤매어 현실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고, 정신이 붕괴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진은 그것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이런 감정은 스스로도 마뜩잖았지만,
유진은 누아르를 믿었다.
저 미치광이 탕부는, ‘이런 방법’으로 유진을 굴복시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연회도 화려하게 꾸며지기는 하였으나, 이 연회는 유진의 개선을 축하하는 자리이지, 누아르와 유진 둘을 위한 연회는 아니다.
이런 장소에서, 혓바닥을 교활히 놀리고 기만하여 ‘꿈’ 속으로 끌어들여서…… 손쉽게 굴복시키는 것.
‘그럴 리가 없지.’
누아르 제벨라가 그럴 리가 없다. 누아르 제벨라는 ‘절대로’ 그런 방법을 쓰지 않는다. 유진은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게 대체 뭐에요?]메르는 저 기묘한 신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 하는 주제에. 저 신뢰는 대체 뭐란 말인가?
유진은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테라스에 있던 의자 위에 털썩 앉았다.
누아르는 유진이 더 이상 묻지 않고 자리에 앉는 모습에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그녀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꾸욱 누르며 유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누아르도 유진에게서 신뢰를 느꼈다. 기쁘고, 달콤한, 그런 기분에 누아르는 자신도 모르게 활짝 웃어버렸다. 이러한 신뢰는 세상에서 오직 유진과 누아르, 단둘이서 공유하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누아르는 생전 처음으로 풋풋한 설렘이란 것을 느끼며 유진의 눈동자를 빤히 보았다.
지금. 누아르는 유진을 보고 있다. 유진도 누아르를 보고 있다……. 누아르는 자신도 모르게 가빠지는 호흡을 내뱉었다. 이러한 시선은, 의자에 앉아서보다는 같은 침대에 누워서 나눠야 제맛인데.
“……침대로 갈까요?”
“X까는 소리 말고 빨리하기나 해.”
날이 바짝 선 대답이 돌아왔다. 충분히 예상했던 대답이고,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의 미련과 아쉬움은 있어서, 누아르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까는 소리 말고 빠는 소리는 자신 있는데…….”
상상을 뛰어넘은 대답. 유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망토 안에서 듣고 있던 메르도 똑같이 입을 떡 벌렸다. 오직 라이미르아만이 대답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친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욕망에 솔직한 말을 하는 거죠. 미안, 미안해요, 하멜, 내가 실언을 했어요. 그러니까 가지 말고 다시 앉아요.”
유진이 질겁하며 떠나려 하자, 누아르는 냉큼 태도를 바꾸어 애걸했다. 결국 유진은 다시 누아르의 앞에 앉아서, 입을 꾹 다물고 눈동자에 불을 켰다.
“할게요.”
누아르는 더 이상 농담을 던지지 않았다. 그 대신 드물게도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눈동자를 똑바로 떴다. 보라색 눈동자에 여러 가지 색이 떠올라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잠이 든다.
그런 과정은 필요가 없다. 환상의 마안이 켜졌다. 유진은 그 권능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순식간에 유진의 의식은 현실을 떠나, 누아르가 만들어낸 꿈으로 인도되었다.
“이건 제 기억이에요.”
무너져 내리는 현실 속에서, 누아르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 * *
전쟁이 끝나고 300년. 헬무드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그 300년보다 긴 세월을 살아온 누아르에게 있어서, 전쟁 이후 헬무드의 발전은 기묘하고 낯설었다.
이 찬란한 문명은 유폐의 마왕이 단독으로 이뤄낸 것이다. 만약 유폐의 마왕에게 그럴 의지가 있었다면, 이미 수백 년 전에 헬무드의 문명은 지금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런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폐의 마왕은 전쟁 이전에는 자기 영지의 발전을 도모한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무심했지.’
누아르가 기억하기로, 본래 유폐의 마왕은 이렇게 정무에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유폐의 마왕은 다른 마왕들이 그러하듯 압도적인 힘으로 휘하 권속을 찍어 누르고, 마찬가지로 무식한 힘으로 영지에 군림했다. 이후 자잘한 통치는 유폐의 마왕이 아닌, 방패와 지팡이, 칼이 도맡았다.
하지만 전쟁 이후 유폐의 마왕은 변했다. 그는 가장 먼저 바벨과 제 영지 판데모니엄을 ‘수도’로 선포하고, 어떻게 생각해낸 것인지 모를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헬무드의 문명을 발전시켰다…….
지금의 헬무드는 대륙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높은 수준의 문명을 가지고 있다. 마도왕국이라는 아롯이 마법과 기계공학을 접목시켜 이동수단을 한창 개발하고 있을 때, 헬무드는 영토 전역에 마력 케이블을 매설하고, 유폐의 마왕의 마력을 전달받는 검은 탑을 세워 마력자동차를 상용화했다. 게다가 판데모니엄을 통제하는 에어피쉬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첨단 기술이다.
그 모든 것이, 유폐의 마왕이란 존재 덕분에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유폐의 마왕이 바벨에서의 마력 공급을 중단한다면, 헬무드 전역이 말 그대로 정지해 버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폐의 마왕은 헬무드의 유일하며 절대적인 군주였다.
하지만.
이 헬무드에서도 유폐의 마왕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헬무드의 찬란한 문명이 비추지 않는 곳이 있다.
헬무드 영토에서 북쪽 끝. 고요한 회색 바다, 그곳에 존재하는 유일한 섬.
그 섬의 이름이 바로 라비스타다.
‘멸망의 영지’.
누아르는 회색 바다를 응시했다.
이 바다는 다른 바다처럼 푸르지 않다. 물고기 같은 평범한 생물은 살지도 않는다.
생기(生氣)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죽음의 바다. 드넓은 헬무드 제국을 다스리는 것은 유폐의 마왕이지만, 이 회색 바다와 유일한 섬인 라비스타는 멸망의 마왕이 다스리는 영지다.
그걸…… 다스린다고 해야 할까. 누아르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저곳은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섬이다. 헬무드의 마족들이 유폐의 마왕이 제공하는 압도적으로 우월한 편의를 누리는 동안, 라비스타의 마족들은 300년 전의 시간에 멈춰 있다.
“쓰레기통.”
누아르는 회색 바다 너머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라비스타는 헬무드의 쓰레기통이나 다름없다.
300년 전. 대륙과의 전쟁에 동원되었던 그 셀 수 없는 마물이 다 어디에 갔을까?
지성을 갖추지 못하고 단순한 명령밖에 수행하지 않는, 짐승만도 못한 마물들. 약속 이후로 유폐의 마왕은 그 수많은 마물을 단순 노동자원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사용하고,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된 마물들은 모조리 라비스타에 처박았다. 지금도 그때의 수많은 마물들은, 라비스타의 주변 바다 밑, 혹은 지면 아래에 잠들어 있다.
“별로 찾아가고 싶은 곳은 아닌데.”
라비스타까지 가는 배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 섬은 용마성보다도 폐쇄적이다. 300년 전부터 라비스타에 살던 마족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죄다 멸망의 권속이며, 그들은 라비스타에 다른 마족은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게 가로막는다.
누아르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ㅡ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배편도 없고, 워프게이트도 없는 것이 무슨 상관인가? 누아르는 코웃음을 치며 날개를 활짝 펼쳤다.
“제벨라 공작님.”
해상을 가로지르는 중에 한 명의 마족이 누아르의 앞을 가로막았다.
말끔한 옷차림에 새하얀 피부. 인큐버스라 해도 믿을 만큼 요염한 색기를 흘리는 남자. 누아르는 그를 알아보고서 코웃음을 쳤다.
“그럭저럭 300년 만이네?”
몽마와 뱀파이어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하는 짓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몽마는 꿈과 교접을 통해 정기를 취한다. 뱀파이어는 피를 마셔 정기를 취한다. 자기보다 약한 존재라면 힘으로 사냥하면 될 일이나, 강한 존재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유혹하는 등 다양한 수단이 필요하다.
비슷하다고 해서 친밀감을 가진 적은 없다. 먹잇감이 겹친다면 상대의 종 자체가 방해가 된다. 그래서 누아르는 옛날에는 뱀파이어가 싫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별로 싫지 않게 되었다. 뱀파이어라는 종족 전체와의 격차는 300년 전부터 존재했고, 지금은 뱀파이어의 모든 역사를 들고 와도 누아르를 넘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누아르는 남자를 향해 방긋 웃을 수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이름은 알피에로 라사트. 전쟁 시대에서 거대한 뱀파이어 클랜을 이끌던 수장이다.
알피에로와 비슷한 규모의 클랜을 이끌던 사인은 광란의 마왕의 양자가 되어 클랜의 덩치를 불렸으나, 그 거대 클랜도 광란의 죽음과 함께 몰살당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왕에게 복속하지 않던 알피에로는, 전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멸망의 마왕에게 복속했다.
하지만 전쟁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알피에로와 클랜 뱀파이어들. 그리고 멸망의 마왕에게 복속한 마족들은, 섬기는 마왕을 따라 이 외딴 라비스타에 은둔하게 되었다.
“시간이 꽤 흐르기도 했으니, 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하하…… 저희에게 있어서 300년은 수명이 다할 만큼의 시간은 아니지요.”
“내가 알기로 라비스타에 인간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누아르는 두눈을 반짝이며 알피에로를 응시했다.
“뱀파이어가 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300년이나 살 수 있나? 흠, 너 정도 격의 뱀파이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휘하 뱀파이어들은 불가능하지 않아?”
“수가 꽤 줄기는 했습니다.”
“동족포식이라도 한 거야?”
누아르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뱀파이어가 뱀파이어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 넣고 피를 마시는 것을 상상하니 우습고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오.”
알피에로가 고개를 저었다.
“라비스타에 오고서, 저희 클랜의 뱀파이어들은 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저희 주군께서는 피에 스며든 인간의 정기보다 무겁고 진한, 그렇기에 피보다 달콤한 것을 나누어주셨지요.”
방긋 휘어지는 눈동자. 그 틈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불길하고 꺼림칙한 마력(魔力). 누아르는 키득키득 웃으며 팔짱을 꼈다.
“권속에 대한 애정이 없지는 않으신가 봐?”
“애정과는 다릅니다. 바라기에 내려주시는 것뿐.”
“그럼 왜 수가 줄었다는 거야? 답답한 은둔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이라도 한 거야?”
“하하…… 나가고 싶다 하여 내보내 주는 클랜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가고 싶은 클랜원들은 죽어 제물이 되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은 제물이 아니라 견디지 못해 죽었습니다만.”
알피에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견디지 못했다……. 굳이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감당할 만큼의 격을 갖추지 못한 뱀파이어들은, 멸망의 마력을 견디지 못했다.
“저와 제 클랜의 안부나 묻기 위해 오신 것은 아닐 텐데요.”
알피에로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꺼림칙하고 불길한 마력은 점점 강해졌다.
“제벨라 공작님.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 라비스타는 헬무드에서도 특별한 곳입니다. 독립된 곳이라 해도 무방한 자치령이죠. 라비스타는 헬무드의 지배를 받지 않고, 헬무드의 법이 통용되지도 않습니다.”
“응, 그건 나도 잘 알아.”
누아르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알피에로는 눈웃음을 거두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제벨라 공작님을 마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부디 돌아가 달라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제벨라 공작님이라 해도…….”
뻐어엉!
알피에로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는 웃고 있던 눈을 똑바로 뜨고서 옆을 힐긋 쳐다보았다. 시커먼 회오리 같은 것이 알피에로의 귀 바로 옆에 멈춰 있었다.
“네가 말하는 헬무드의 법은 제국으로서의 법이지?”
“…….”
“난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마족이야. 오히려 법이 없으면 더, 더 잘 살지.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법의 수호를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이야.”
누아르는 단 한 번도 헬무드 법의 덕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망할 법은 오히려 누아르에게는 가혹하고 과중했다. 여태까지 뜯긴 세금만 생각하면, 가끔은 세금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30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정도였다.
“라비스타에 헬무드의 법이 통용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기론…… 법이 없다면, 마족답게, 힘으로 해결한다는 거지? 그렇다면 알피에로, 네가 날…… 힘으로 돌려보내겠다는 거야?”
웃음 짓는 눈동자가 천천히 벌어졌다.
“어떻게 할 건데?”
알피에로는 대답하지 않고 누아르를 응시했다. 잠시 동안 침묵하던 알피에로는,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슬쩍 옆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부디, 돌아가 달라, 부탁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입니다.”
“그런 것치고는 마력을 슬금슬금 키워가며 날 압박하던걸? 그리고 덧붙이려면 말도 시건방져. 아무리 제벨라 공작님이라 해도, 그다음은 뭔데?”
“……라비스타의 마족들은 제벨라 공작님의 방문을 바라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그들 전체가 제벨라 공작님께 덤비려 들지도…….”
“아하하, 내 걱정을 해주는 거야? 하지만 괜한 걱정이야.”
“돌아가실 생각은 없는 겁니까?”
“응, 없어.”
“……대체 무슨 일로 라비스타에 들어오시려는 겁니까?”
알피에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서 물었다. 누아르는 까딱, 고개를 기울이더니 손가락을 흔들었다.
“저 섬. 딱 봐도 삭막해 보이는데, 유흥이 필요하지는 않아?”
“…….”
“놀 거리 말이야, 놀 거리. 내가 무상으로 시설 몇 개를 세워주는 건 어때?”
“필요 없습니다.”
“그건 네가 결정할 수 없어, 알피에로.”
누아르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발했다.
“나는 누아르 제벨라야. 이 세상에서 내 결정을 번복시킬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아. 마왕도 아닌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뜻을 거스르지?”
“……공작님께서는 멸망의 마왕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멸망의 마왕님께서 지금 내 행동이 무례하다 느끼신다면, 확실히 책임을 지도록 할게. 정말로 꾸짖으려 하신다면 말이야.”
누아르는 킥킥 웃으려 알피에로를 지나쳤다. 알피에로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라비스타에 들어오시려는 진짜 이유가 뭡니까. 방금 같은 농담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진짜 이유라……. 별로 대단하지는 않은걸. 가고 싶고, 보고 싶어서, 그래서 온 거야. 그게 전부인데?”
유폐의 마왕에게서 듣지 못한 것들. 물어봤자 들을 수 없는 것들.
월광검의 폭주.
꺼림칙하고 불길한, 멸망의 마력.
유폐의 마왕은, 누아르에게 ‘자유’를 요구하지 않았다. 누아르 본인도 유폐의 마왕에게 자유를 바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누아르는 자유롭다. 유폐의 마왕과의 문답에서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면. 아직 뿌연 의혹이 남아 있다면, 누아르 스스로 움직여 답을 모색하는 것도 가능하다.
“난 자유로우니까.”
누아르는 방긋 웃으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