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ucky Encounter From the Game Turned Into Reality RAW novel - Chapter 94
게임 속 기연이 현실로 94화
25. 한발 걸치다(3)
사람에겐 상식이란 게 있다.
하지만 그 상식의 기준은 각기 다르기 마련인데, 가끔 일반인의 시선에서 ‘쟤네 왜 저럴까?’라며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그들도 무엇이 잘못되고 올바른지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저 그 상식을 자신에게 대입할 때, 필요 이상으로 후한 기준을 들이밀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괜찮잖아?’
‘입에 발린 말은 누가 못해? 너무 착한 척 구는 것도 위선이야.’
‘어쩔 수 없었어. 너도 내 입장이 되면 이해할 거야.’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타인의 실수에는 엄하면서 자신에게만 유독 후한 경우가 많다.
더불어 이들은 일반인들과 선악의 기준도 다르기 때문에 범죄에도 쉽게 손에 댄다.
어쩔 수 없었다며, 살기 위해 한 짓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 놓여 있건 범죄에 면죄부는 있을 수 없다.
가난하고 삶이 빡빡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며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물론, 환경요인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참작은 해주겠지만, 죄가 면죄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유한 인간이, 높은 권력을 가진 인간이 범죄행위를 거듭하며 부정한 이득을 쌓는 것은 정말 변명의 여지도 없는 최악의 행위라 할 수 있다.
프리우스 공화국의 정치인들은 상식 파괴를 넘어 상식으로 줄넘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들의 부정행위가 도를 넘었다고 해서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다.
당장 익숙하지 않은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지구의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정치인들의 괴이한 행동이 많지 않던가.
그러니 이해할 필요 없다.
그것이 그들 기준의 상식인 것이니.
“이, 이게 정말 카트로 페어몬트 대통령이 저지른 짓이란 말입니까?”
“네, 뒤에 보면 그의 아들 루이스 페어몬트의 범죄행위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
그런 의미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인물인 방위군 사령관 안센 원수의 관심을 이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대통령과 그의 아들이 저지른 수많은 비리를 자료로 만들어 내밀기만 하면 됐으니 말이다.
나는 분노를 넘어 허탈해하는 안센 원수에게 추가 자료를 건넸다.
대통령과 그의 아들이 저지른 죄목이 책 세 권 분량이라면, 내가 건넨 자료는 그 책들이 모이고 모여 도서관을 이룰 정도의 양이었다.
“그 둘뿐만 아닙니다. 고위 공직자, 정치인 등, 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죠.”
“…….”
블루문을 통해 수집한 자료를 받아들었을 때, 욕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프리우스 공화국 정부와 정계의 부정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브링엄 제국과의 전쟁 중에 어렵게 마련된 자리에는 이즈라엘 사령관과 그의 호위인 혁명군 3기동 타격대 대장인 여성 오러마스터, 방위군 사령관 안센 원수와 그의 믿을 수 있는 심복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모두가 볼 수 있게 자료를 공유해 주었고, 내용을 살피던 이들은 하나같이 말을 잃었다.
“제가 굳이 자료를 들이밀지 않아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다만 사실에서 눈을 돌리며 명령에 따라야 하는 군인이니 어쩔 수 없다고 책임을 돌릴 뿐이죠.”
도발과도 같은 내 물음에 안센 원수의 심복들이 발끈하고 나섰으나, 안센 원수가 나서 고개를 내젓자 그들은 고개를 떨궜다.
부끄러울 것이다.
상식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들은 이 프리우스 공화국의 사람들이고 나는 외부인이 아니던가.
더구나 자기들이 몽매하다고 비판하는 봉건제 국가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대귀족이다.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다른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이란 뜻이다.
다행히 만경에 표기되는 그의 상태는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혁명군 사령관 이즈라엘이 거침없는 말을 쏟아내는 나를 막았다.
하지만 제지라는 행동과 달리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 속엔 감사함이 가득했다.
“안센 원수님, 더는 눈을 돌리면 안 됩니다. 브링엄 제국과의 전쟁은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처럼 정권을 심판하기 좋은 환경도 없습니다.”
“음…….”
“언제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은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망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린 아직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불리한 상황이지만, 무조건 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카트로 페어몬트의 지위를 받고 그가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계속 보겠다는 겁니까?”
아무리 나이 많은 군인이라지만, 인간이 너무 융통성이 없다.
금방이라도 넘어올 것 같으면서도 그 한 발을 이쪽으로 내딛지 않는 안센 원수의 모습에 나는 혀를 차며 추가로 사진 몇 개를 전송했다.
그 사진 속에는 한 파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게 뭡니까?”
“오늘 대통령궁의 상황입니다. 루이스 페어몬트가 돈 많은 친구들과 연예인 불러서 진탕 노는 거죠.”
“이런 미친…….”
“안센 원수께서 지원 요청하진 대통령궁 경호 부대는 지금 파티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쓸데없이 경호 부담만 시키는 다른 정치인들을 대통령궁에 들이는 것은 거부하면서 돈 많은 기업인들은 잘만 들이더군요.”
부끄러움을 넘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표정들.
그런데 안센 원수는 창피함도 창피함이지만, 놀랍다는 반응도 함께 보였다.
“대통령궁 경호는 빈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최신 정보까지 수집해내다니, 당신 정체가 뭡니까?”
이미 내가 아드리안 로렌스 후작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가 묻는 정체는 내 신분이 아닌, 더 원론적인 것이었다.
나는 이즈라엘 사령관과 어깨동무를 하며 태연하게 답했다.
“혁명군 사령관의 친구죠.”
그에 안센 원수가 꺼림칙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안센 원수를 향해 이즈라엘 사령관이 말했다.
“우선순위를 잊으면 안 됩니다. 그의 정보수집 경로보다 사태 수습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군요.”
“군인들의 노력과 의욕은 인정하지만, 우린 브링엄 제국에 이길 수 없습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선택해 주시죠.”
“이기지 못한다?”
“기적이 일어나 이번에도 어찌어찌 이긴다 쳐도, 그다음 부대는 막을 수 있겠습니까? 또 그다음 부대는요?”
안센 원수도 당연히 알고 있다.
단지 그는 브링엄 제국군을 뒤로하고 아군끼리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즈라엘에 선택을 강요하니, 이젠 안센 원수도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1. 현상황유지.
2. 혁명.
앞서 말했듯이 안센 원수는 상식적인 인물이다.
수많은 증거와 자료를 앞세운 우리의 설득을 마냥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혁명이란 야망 가득한 단어는 나와 참 안 어울리지만, 이번만큼 어쩔 수 없군요.”
“그 말씀은?”
“여러분의 설득에 넘어가기로 하죠. 사실 브링엄 제국의 이번 부대를 보고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엄살을 떨어대는 모습에 전쟁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앞선 주장이 우리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것이었단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도 계기가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그 계기를 제공한 것이고.
“하지만 수도 함락을 위해선 큰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로 계획이 있습니까?”
지금 대통령궁을 지키고 있는 부대만 뱅가드 2천에 천공요새 10대다.
거기에 수도 방위와 요인 암살을 대비해 배치되어있는 부대도 뱅가드 2천에 천공요새 10대이니, 도합 뱅가드 4천과 천공요새 20대와 전투를 벌여야 했다.
당연히 이만한 병력과 전투를 벌여 단시간에 승리를 거두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도주 시간만 벌어주는 꼴이니, 전투 시작과 함께 그들의 신병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에 이즈라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센 원수께서 우리의 손을 들어주시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안센 원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군에서 존재감이 큰 분이란 의미입니다.”
그가 미간을 좁히자, 이즈라엘 사령관이 이해하기 쉽게 작전을 설명해 주었다.
“겨우 그걸로 되겠습니까?”
“이번 혁명의 주체는 우리가 아닌, 시민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부패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겠죠.”
내가 보기에 민주주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왕가 출신의 이즈라엘 사령관이었다.
그의 계획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안센 원수는 만약을 대비한 별동 부대를 꾸리겠지만, 일단은 그 계획에 어울려주겠다고 했다.
‘혁명 시작이군.’
그렇게 론델의 유일한 민주공화국 프리우스 공화국을 살리기 위한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이제부턴 템포가 빨라질 것이다.
* * *
-위이이이이잉!
프리우스 공화국 대통령궁의 스퀘어홀엔 어제 벌어진 파티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옷을 벗고 바닥을 뒹굴고 있는 건 기본, 술병을 껴안고 탁자 위에 엎어져 있는 이도 있었으며, 토사물 위에 얼굴을 박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단체로 치고받았는지, 스퀘어홀 곳곳에 피가 튀어 있었고 다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것을 어찌 사회 고위층의 파티라 보겠는가.
그야말로 광란의 짐승 소굴이었다.
그 안에서 수많은 이성에게 둘러싸여 퍼질러 자고 있던 루이스 페어몬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뭐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깨고 싶어서 깬 게 아니다.
-위이이이이잉!
아까 전부터 요란히 울리는 이 소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깬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를 따라 파티에 참여했던 재벌의 2세, 3세들도 짜증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이 굳어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기습입니다! 대규모 뱅가드 부대가 수도에 침입했다고 합니다!”
대통령궁 수비대의 뱅가드들이 파티장에 우르르 몰려들며 그렇게 외쳤기 때문이다.
“뭐!?”
“아직 적의 정확한 수와 어느 부대인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수도방위군을 무시한 채 대통령궁으로 돌격해 오고 있습니다!”
“헉!”
“서, 설마, 브링엄 제국이 쳐들어온 거야?”
나라가 전쟁 중이란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 위해가 닥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브링엄 제국은 대국의 자존심인지 불리하지 않은 상황에선 정면 승부를 고집하는 성향이 있고, 아직 제국군은 수도로부터 2천 킬로미터 떨어진 공화국 서부에 머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기습을 가해왔다?
이는 예측을 벗어난 돌발 상황이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도망을!”
공화국 시가 총액 2위의 거대기업의 후계자가 겁에 질려 그렇게 외쳤다.
그러나 루이스 페어몬트에게 그의 외침 따윈 들리지 않았다.
“대통령궁 뱅가드들은 나를 보호하라! 내가 공화국의 미래다! 나를 지켜야 공화국이 살 수 있어!”
그는 다른 사람들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듯 뱅가드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모이게 했다.
“벙커로 이동해!”
“다른 분들은?”
“알아서 하라고 해!”
대체 어제 파티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뱅가드들이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하는 존재 기연자 루이스 페어몬트지, 파티장의 벌거벗은 재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루이스를 중심으로 방어진을 짜며 파티장을 나섰다.
“자, 잠깐! 루이스!”
“루이스 페어몬트! 뭐하는 짓이야!”
그의 등 뒤로 어제 친구가 되었던 사람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으나, 루이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