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ucky Encounter From the Game Turned Into Reality RAW novel - Chapter 93
게임 속 기연이 현실로 93화
25. 한발 걸치다(2)
작전 테이블에는 제거 대상과 이미 제거가 된 요인들의 정보와 사진이 종이로 인쇄되어 복잡하게 놓여 있었다.
이미징이란 3서클 마법을 활용해 만든 홀로그램이 일상화되어 있는 세상에서 종이는 오히려 귀물에 속했지만, 혁명군 사령관은 본인이 대마법사이면서 손으로 직접 만지며 자료를 살필 수 있는 종이를 선호했다.
나는 홀로그램을 사용하면서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기에 특별히 종이 사용을 고집하지 않았지만, 자료를 직관적으로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휙. 휙.
제거 대상인 요원 중에서도 거의 꼭대기에 위치한 가르시아 국무위원장의 서류를 집어 든 나는 손으로 엑스자를 쳤다.
그러자 종이에 붉은색이 입혀지며, 대상이 제거되었다는 사실이 기입됐다.
가르시아 국무위원장.
지난번 만났을 때 불쾌함을 느끼긴 했으나, 죽일 정도의 감정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를 죽인 것에 대해 미안함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그는 부패한 공직자로 국민들이 만성 빈곤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은커녕, 그런 국민을 약탈하듯 부당 이익을 취해 큰 부를 누렸다.
죗값을 생각하면 죽어 마땅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제거가 되었으니, 오히려 쓸모 있는 죽음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을 죽여놓고 이제 와서 이런 악당을 죽였다고 씁쓸해하는 것도 웃기지.’
내 손은 이미 피로 물들었다.
굳이 정당화할 필요 없다.
그는 계획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었으니, 제거가 되었다.
‘당장의 목표는 다음 단계 기연 퀘스트를 완료해 8서클을 달성하는 것이지만, 최종 목표는 모든 기연을 수습하여 9서클을 달성하고,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력 체인을 형성하는 것.’
때문에 이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타인을 죽이는 것에 망설임을 두지 않기로 했을 터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안나와 세드릭이 죽일 땐 통쾌하기까지 했으며, 영지전에서 적 뱅가드를 사살할 때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가르시아 국무위원장도 적이고 악당이었으며, 이 나라 5억 국민의 생존과 계몽을 위한 초석인데…….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불편한 마음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윽.
그런데 그때.
태연함을 가장한 채 책상 위 상황판을 살피던 내 손을 누군가가 붙잡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렸더니, 아르시아가 특유의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가족도 부당 이득으로 취한 부를 함께 누린 죄인입니다.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그건 텔레파시 마법이었다.
상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그녀와 나눠 가진 아티팩트의 기능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불쾌한 기분의 원인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아무리 직접 보지 못하게 했다지만, 가족 앞에서 아버지를 죽였다는 게 나 자신을 감성적이게 만든 이유였다.
“고맙다.”
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조언을 해준 아르시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어깨를 다독인 나는 불필요한 생각을 떨쳐냈다.
그리고 혁명군 사령관인 ‘이즈라엘 오스카 프리우스’에게 물었다.
“안센 원수와의 접촉은 순조롭습니까?”
함께 상황판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영문 모를 우리의 행동에 그는 웬 애정 행각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네, 내일 중으로 만날 수 있게 약속을 잡았습니다.”
“설득하면 넘어올까요?”
“그나마 그는 대화가 통하는 인물입니다. 더구나 지금의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끔찍이 싫어하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입니다.”
현재 정치적 해결 가능성을 차단한 프리우스 공화국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두 개뿐이다.
첫 번째는 브링엄 제국과의 전쟁의 불리함 속에서도 철저한 항전을 외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브링엄 제국을 향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극단적이지만 이외의 선택은 생각할 수가 없다.
한껏 흥분한 브링엄 제국을 상대로 타국의 도움을 얻어내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공화국과 사이가 좋은 트리톤 대륙의 6개국조차 브링엄 제국의 강력한 조치에 공화국과의 손절을 결심할 수밖에 없을 정도니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변수가 존재한다.
때문에 철저 항전을 외친다면 브링엄 제국을 상대로 승리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승리 가능성을 퍼센티지로 따진다면 한없이 0%에 가까울 것이란 점이지.’
또한 철저 항전 시 패배한다면 프리우스 공화국은 멸망 수준을 넘어 민족 자체가 해체될 가능성이 컸다.
브링엄 제국은 쉬이 정복 전쟁을 하지 않는다.
이번 전쟁도 엄연히 따지면 기연을 내놓으란 의미의 협박성 항의일 뿐이지, 목적이 공화국의 정복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멍청한 공화국 정부에 의해 그 전쟁의 목적이 바뀌어 버렸다.
그 와중에 공화국이 철저 항전을 외친다면, 전쟁의 목적이 공화국의 멸망, 정복이 될 것이다.
브링엄 제국은 정복을 선언한 국가를 향해 아주 가혹하다.
우선 해당 국가의 민족을 모두 고향에서 쫓아내 재기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극지의 황제령으로 보내 버리니 말이다.
비인도적이지만, 원수였던 자들에겐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것이 브링엄 제국의 방식이었다.
이성적으로 지금 프리우스 공화국이 취해야 할 포지션은 아무리 잃는 게 많더라도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것뿐이었다.
“그를 끌어들인다면 국내 정세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래야죠. 그것을 위한 요원 암살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정부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할까?
그렇지 않다.
정부는 철저 항전을 외칠 생각이다.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간 브링엄 제국의 승자 권한 행사에 의해 권력이 한순간에 거품이 되고 재산은 압류되어 사라질 테니 말이다.
때문에 철저 항전을 주장하면서 물밑으로 도주 준비를 하는 게 현 정부와 정치인들의 행태였다.
그래서 현 정치인들의 힘과 정부의 의견을 꺾기 위해 요인 암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취한 것이다.
정부의 힘을 꺾어놔야 우리가 안센 원수를 비롯한 군을 끌어들였을 때, 조금 더 수월한 청소가 가능할 테니 말이다.
“후작님의 덕이 큽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렇게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나실 거라곤 생각지 못했거든요.”
“운이 좋았죠.”
“이걸 어찌 운이라 표현하겠습니까? 후작님은 볼 때마다 사람을 놀래키는 것 같습니다.”
다짜고짜 돕자고 나서면 의심할 수밖에 없으니, 처음에는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그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블루문을 통해 제공한 정보의 질에 감탄하며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 결과 직접적으로 그들의 행사에 한 발 걸치는 형태가 되었다.
“안센 원수를 만날 때 함께 자리를 빛내주시면 너무 든든할 것 같은데,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더구나 이렇게 이즈라엘 사령관이 나를 의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부하들 중엔 불편하단 기색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관계: 타산적 / 동맹] [상태: 관찰 / 호의]하지만 만경을 가진 나는 그가 단지 나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딱히 이용을 당한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없다.
그래서 그의 뜻에 어울려 줄 뿐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하하, 든든합니다. 이 친구들은 모두 무엇을 지키는 재주는 있지만, 정치적 관념은 부족해서 문제거든요.”
“그런 분들이니, 신뢰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뜻을 함께하는 같은 편이라도 너무도 타산적인 사람이 있으면 피곤하니까요.”
“하하, 그렇죠.”
똑똑한 그라면 내 말의 의미를 잘 알아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뜻이 맞아 함께하고 있지만, 선을 지키라는 경고였다.
“혹시 제가 너무 부담을 드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얻는 게 있는 만큼 열심히 밥값을 해야죠.”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참고로 아무리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을 내가 했다고 해도, 무료로 돕기만 한다면 이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과 계약을 통해 도움을 주는 대신 많은 것을 약속받은 상태다.
즉, 이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 * *
아드리안이 혁명군과 함께 열심히 요인 암살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가장 큰 대어라 할 수 있는 카트로 페어몬트 대통령과 그의 아들 루이스 페어몬트(가짜 기연자)를 내버려 두는 이유는 건들고 싶어도 건들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대통령 궁엔 오러마스터와 대마법사가 상주하고 있으며, 2,000에 달하는 뱅가드와 천공요새 10대가 빈틈없는 감시를 펼치고 있어서 몰래 침투하여 암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통령 궁이 이렇게도 밀집 방어 상태인 이유는 한창 벌어지고 있는 요인 암살 때문이 아니다.
바로 대통령이 자신의 목숨을 끔찍이 여기는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대통령 각하, 안센 원수가 대통령 궁 방위에 현 병력은 너무 과하니, 병력의 절반을 전선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평소 대통령 궁의 방위 병력은 이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런데 카트로 대통령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국군에서 전략 기동 군단 1개를 통째로 빼돌려 대통령 궁 경호 임무를 맡겼다.
그렇게 욕심도 많고 겁도 많은 인물이 그러한 요청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만약 브링엄 제국이 수도 함락을 위해 병력을 돌린다면 우린 꼼짝 없이 죽는 것 아닌가!”
“안센 원수가 브링엄 제국의 특성상 정면 대결을 고집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만! 그 요청은 들어줄 수 없네! 요즘 반란군의 요인 암살이 한창인데, 방어 병력을 줄이라니! 제정신으로 할 소리가 아니군!”
“그렇다면,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을 대통령 궁에서 머물게 하는 게 어떨는지요. 그들의 경호를 위한 전력만이라도 뺄 수 있다면 전황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 내가 미쳤나?”
“네?”
“그 인물 중 누가 반란군의 끄나풀일 줄 알고 궁에 들인단 말이지? 대통령 궁의 운영 방식은 절대 바꿀 수 없네.”
대체 어쩌라는 건지.
워낙 적과의 전력 차이가 커서 패색이 짙은데, 조금이라도 힘을 합치지 못할망정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병력 지원 요청에 이리도 비협조적으로 행동한다니.
이게 과연 결사 항전을 주장하는 자의 행동인지 의문이 들었다.
안센 원수의 전언을 전하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선 대통령 궁 상황실의 장교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가, 각하!”
“코스차 비서, 무슨 일인가.”
그리고 그때, 상황장교에 이어 대통령 비서실 소속의 남성이 급히 집무실에 들어섰다.
그에 상황장교는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이어진 비서의 말은 가관이었다.
“루이스 도련님께서 대통령 궁 스퀘어 홀을 사용하고 싶으니 허가해 달라고 합니다.”
“스퀘어 홀은 왜?”
“파티를 개최하고 싶으시다고.”
지금 나라가 어떤 꼴인지 잊은 건가?
상황장교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무슨 파티?”
“주요 기업 후계자들을 초청해 교류를 가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답니다. 덤으로 그들을 응접하기 위한 연예인들도 함께 들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라고 해.”
“네?”
대통령의 허가에 놀라서 반문한 건 비서가 아니었다.
바로 전장에서 브링엄 제국군을 상대하는 안센 원수의 다급한 요청을 전하러 온 상황장교였다.
“뭐야? 자네 아직 안 나갔나? 어서 나가서 일 보지 않고 뭐 해?”
“아니, 전쟁이 한창인데 파티라뇨?”
상황장교의 표정에 분노가 깃들었다.
그에 대통령은 움찔했으나, 이내 당당하게 말했다.
“전쟁을 공짜로 하나? 루이스가 하려는 건 단순한 파티가 아니야.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교섭이지.”
퍽이나 그러겠다.
루이스의 평소 행실을 잘 아는 상황장교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다른 정치인들을 대통령 궁에 들이는 건 싫어도 돈이 되는 기업인은 들이겠다니, 상황장교는 제발 그의 반응이 농담이길 바랐다.
“더는 할 이야기 없네. 자넨 그만 나가도록.”
“각하! 전선의 상황을 조금 더 고려해 주십시오!”
“어허! 할 말 없으니 나가라고! 전쟁은 군인들의 몫이 아닌가!”
그리고 상황장교는 대통령 경호원들에 의해 집무실에서 쫓겨나듯 내쳐졌다.
“미쳤어.”
상황장교의 공허한 목소리가 대통령 궁 집무실 앞에 울려 퍼졌다.
“이 나란 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