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0
10
우린 잘될 거야.
“근데 이안이 형 요즘 연기 레슨 안 받네요?”
“어.”
이안이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그들은 안무 연습에 한창이었다. 봄이 지나고 7월. 아위는 미니 앨범으로 데뷔한다. 소속사는 한창 곡을 수집하고 있었다.
“헐 이안아 레슨받아. 우리 눈치 안 봐도 돼.”
이주혁이 황급히 말했다.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다른 선생님 알아봐 준다는데요?”
“와, 재수 없어.”
김주영이 말했다. 전처럼 미묘한 어조는 아니었다. 그는 마음껏 이안을 부러워했고. 이안은 마음껏 자뻑했다.
조태웅이 김주영에게 가세하면 셋이서 티격태격하며 놀았다. 18세들끼리 초딩처럼 노는 것에 막내 박서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얘들아. 연습 끝났니?”
“안녕하세요, 이사님!”
“잠깐 회의실로 와 볼래?”
요즘 그들 사이의 최대 관심사는 ‘오늘 점심 뭐먹지?’다.
그들은 위층의 회의실로 향하면서 냉면이냐 김치찌개냐를 가지고 기나긴 토론을 시작했다. 아주 100분 토론이 따로 없었다.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는 회의실에 오면서 반전되었다. 대표가 양손을 깍지 껴 양 엄지에 턱을 얹어 근엄하게 앉아 있었고, 옆에는 처음 보는 양복 입은 사람이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그래, 앉아.”
연습생들은 건너편에 앉으면서도 어리둥절한 듯 보였다. 눈치 빠른 이안만 설마설마했을 뿐이었다.
“여기는 우리 회사 법률 자문 정현태 변호사.”
“안녕하세요!”
“하하, 애들이 활기차네요.”
변호사. 그리고 다 모인 7명의 연습생. 아이들의 표정이 상기된다.
정 변호사가 서류를 꺼냈다. 서수련이 받아 아이들 앞으로 내밀었다.
BHL Entertainment 전속계약서.
“마음 같아선 의자에 묶어서 당장 사인하라고 하는 건데.”
“…….”
“그래도 계약서는 잘 봐야 한다, 얘들아. 부모님이든 누구든 따로 법률 자문을 받아도 좋아. 계약 기간은 7년이야.”
대표의 말이 끝나자 직원이 바구니를 가져왔다. 바구니에는 각자 반납했던 휴대폰이 담겨 있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그런데, 내일까지 검토할 수 있겠니?”
“펜 좀 주세요.”
김 현은 다른 사람들이 말릴 새도 없이 서류에 사인했다.
“야야야! 내 말 못 들었어?”
“들었어요.”
“아. 오랜만에 인자한 어른 행세하고 있었는데.”
말은 그래도 대표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정 변호사가 한 부를 가져가고, 김 현은 본인 몫의 계약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들고 회의실을 나갔다.
“쟤가 저랬다고 너넨 그러지 마라. 심사숙고하고. 여기 정 변호사한테 마음껏 물어봐도 돼.”
이안도 계약서와 핸드폰을 들고 나왔다. 사진을 찍어 부모님께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전에 연습생 계약서를 말도 안 하고 사인했으니, 이번엔 부모님 말을 잘 따라야 했다.
다른 연습생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안은 답장을 기다리면서 아차 했다.
‘아 맞다 시차.’
전화를 해야 할까? 이안이 두리번거리다가 비상구 문을 열었다. 거기선 이미 누군가가 통화하고 있었다.
“어, 엄마. 나 계약했어요.”
울먹이는 목소리. 김 현이었다. 수화기 너머 환호가 들린다. 대화가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번갈아 가며 기뻐하고 있었다.
“아뇨 제대로 봤어요. 알잖아요, 나 계약서 많이 본 거.”
그가 연신 괜찮다고 대답했다. 통화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족의 격려와 환호를 받은 김 현이 통화를 끊었다.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층계참을 울렸다.
“끅… 흡….”
이윽고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 진이 황당한 듯 말했다.
[뭐야 쟤 울어?]진은 노예계약이면 어쩌려고 바로 사인하냐고, 벌써부터 힘 뺀다고 중얼거렸다. 이안은 가볍게 무시했다. 앞으로 진의 말에서 정보만 뽑아 먹을 생각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깟 종이 쪼가리라고 할 수도 있다. 진 같은 놈이야 그래봤자 망돌 될 텐데 뭐 하러 우냐고 하겠지만 이안은 그를 비웃을 수 없었다.
‘나 가수 할래, 엄마!’
김 현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연습생으로 살았다. 부모의 떠밀림에 연습생이 된 김주영과는 다르게 그는 8살 때부터 아이돌이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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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까 말까 하는 희망 고문의 연속. 몇몇의 사람들은 이미 데뷔 후 잘 지내냐고 연락이 오는데 김 현은 혼자 발전도 못 한 채 멈춰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 한 번만, 한 번만 도전하고 안 되면 공부해서 대학 갈래요.’
BHL엔터 이병헌 대표의 설득 끝에 김 현이 마지막 심정으로 소속사를 옮긴다.
고생 끝에 드디어 받은 전속계약서였다. 이 계약서에 사인할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김용민의 시절을 겪었던 이안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쉽게 비웃을 수도 가볍게 대할 수도 없었다.
이안은 비상구의 문을 조용히 닫았다.
고작 계약서. 하지만 김 현에게 있어서 그깟 종이 쪼가리의 무게는, 측정할 수 없게 무거웠을지도 모른다.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어때 보여?’
[괜찮네. 특히 정산 부분.]이안은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팔락팔락 넘겼다. 그도 계약서 본 짬밥은 있다.
‘7 대 3이네? 뭐 이리 조건이 좋아?’
이안이 깜짝 놀라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시 봐도 이안 쪽이 7이었다.
보통 정산비율은 5 대 5인 경우가 많았다. 많아야 6 대 4인데 그마저도 연습생 때 받았던 레슨비나 용돈을 제하고 받는 경우도 많았다.
한참을 꼼꼼히 살펴보니 독소조항도 없는 것 같았다. 이안은 곧바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어? 뭐야, 다들?”
“어, 왔냐?”
이안이 계약서에 사인하고 본인 몫의 서류를 챙기는 사이 회의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김주영이 비장한 표정으로 사인한 계약서를 대표에게 내밀었다.
“오케. 라스트 김주영.”
조태웅이 후련한 듯 일어났다. 뭐야? 다들 벌써 사인한 거야? 박진혁이 히히 웃었다.
“우리 이제 진짜 도망 못 간다.”
“미친 무려 7년이다, 7년. 7년 동안 함께해서 더러울 예정이다.”
“와 7년 동안 조태웅 씨 얼굴 볼 생각하니….”
“기분이 막 째져? 심장이 말랑말랑해지지?”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아이들이 긴장이 풀려 단체로 흐흐거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김 현이 없음을 지적하지 않았다.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김 현에게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들아. 자세히 좀 보라니까.”
대표가 한숨을 쉬었다.
“대표님 그러면서 광대 올라간 거 다 보이거든요?”
“흐흐 들켰네. 주영이 어머님이랑 통화 잘했고?”
“아뇨 안 했어요!”
“뭐라고?”
김주영이 해맑게 웃었다.
“엄마 아빠가 뭐라 해도 어쩌겠어요. 이미 사인했는데!”
참으로 후련한 얼굴이었다. 그에 대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성년자라 보호자 사인까지 받아야 끝나는 계약이다. 그것도 모르고 해맑은 김주영의 얼굴을 보고 초를 칠 수는 없어서 대표는 조용히 서류를 정리했다.
그는 나중에 부모들에게 확인 전화를 돌릴 생각하니 문득 뒷목이 뻐근해졌다.
* * *
“형 숙소에 술 갖고 온 거예요?”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 이안이 물을 마시려 주방으로 향했다가 본 것은 맥주 한 캔을 들고 마시던 이주혁이었다.
“미안,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 주면 안 될까?”
이안도 눈치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 팀 연령대가 미성년자가 대부분이니 숙소에 술 반입은 금지라고 해도, 이주혁은 이 팀의 유일한 20대니 마실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아 술 마렵네.’
[나도.]이안도 이 몸이 미성년자만 아니면 소주를 궤짝 채로 처마셨을 것이다.
“무슨 일 있어요?”
생각이 많아 보이는 이주혁의 모습에 이안이 말 상대나 해 줄 겸 맞은편에 앉았다. 이주혁의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설마 고작 맥주 한 캔에 취한 건 아니겠지?
“그냥… 우리 오늘 계약했잖아.”
“그렇죠.”
“그래서 그냥….”
살짝 발음이 새는 걸 보니 진짜로 취했나 보다. 이주혁은 그 뒤로 말없이 맥주캔을 만지작거렸다. 이안이 분위기를 환기했다.
“형 취했어? 오늘 우리 막 기분 좋지 않았나?”
“기분 좋아… 좋지, 그럼.”
“설마 이제 와서 괜히 사인했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겠죠?”
“아냐 아냐.”
이래저래 복잡한 모양이구나. 이안이 허허 한숨을 쉬며 웃었다.
“그냥 기쁘다고 해요.”
“…응.”
“미리 고민해 봤자 답 없어요.”
“그래.”
이안은 한참을 침묵하던 이주혁의 앞에 자리 잡아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이야 처음 보는 전속 계약에다가 데뷔가 코앞으로 느껴져 다들 신난 분위기라지만.
아마 리더라는 직책을 맡은 이주혁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팀 내 제일 연장자.
아마 이번에도 데뷔가 미뤄졌으면 몇 년 뒤에나 데뷔일 텐데. 그쯤 되면 다른 회사들도 안 받아 주고, 아이돌로 데뷔하긴 늦은 나이가 될 것이었다. 이주혁도 심장이 쫄렸겠지.
사실 이안이 보기엔 20살이면 그냥 애나 다름없겠지만 제멋대로인 멤버들을 추스르면서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데뷔는 기쁜데 나중에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데뷔하는 그룹들은 많아지는데 그중에서 뜨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반적으로 아이돌들은 데뷔 후 2년, 3년이 그들의 앞날을 결정해 준다. 그때의 성적을 보고 회사가 얘넨 안 되겠다 하고 그만둘지, 더 밀어줄지를 결정한다.
4집 5집 가서도 판매량이나 인지도가 시원찮으면 아마 대부분의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 차기 그룹을 내세울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속한 BHL엔터가 계약 종료까지 그들을 잘 밀어줄 대형 소속사도 아니었고.
아무리 회사 분위기가 좋아도 그들이 돈 안 되는 것을 붙잡고 있진 않을 것이다.
당장 블랙러시만 해도 판매량이 하락세를 타니 다음 앨범 나오는 기간은 길어지고 각 멤버들은 개인 활동으로 전환시키면서 바로 차기 그룹을 준비하는 것 아닌가.
소속 연예인은 사람이 아니라 상품이다. 그게 일반적인 세상이었다.
“형, 그만 청승 떨고 일어나 자야 해요. 내일 사진 찍을 텐데 막 얼굴 붓는 거 아니에요?”
“헐 그러면 안되는데.”
이주혁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빈 맥주캔을 재활용 봉투 깊숙이 숨겼다.
“우린 잘될 거야.”
각자 방으로 들어가기 전, 마음을 추스른 이주혁이 이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옅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