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42
42
당신의 소리를 듣고 싶어.
“A대? 쟤가 A대를 간다고?”
“쟤 그래도 공부는 좀 잘했잖아?”
“야 장애인이 잘해 봤자 얼마나 잘하겠냐. 사배자 전형으로 운 좋게 합격한 거겠지.”
“장애인 특혜 받고 명문대가니까 좋겠다. 안 그래?”
“발음도 구린데 면접은 어떻게 통과했지?”
성민이 입 모양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학생들이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고개 숙이지 말고 똑바로 봐야지, 김성민.”
그래야 우리말이 잘 들릴 거 아냐? 학생들이 낄낄대며 성민을 조롱했다.
“성민이 왔니?”
문이 열리는 소리에 성민의 엄마가 후다닥 현관으로 그를 맞이했다. 성민은 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성민아?”
성민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까지 푹 덮었다. 성민의 엄마가 그를 살살 흔들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성민아, 엄마 봐야지.”
“엄마… 나 대학 안 가면 안 돼요?”
성민이 상체를 들어 엄마를 바라보았다. 어눌한 말에선 곧바로 울음이 터져 나올 듯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 거기 간다고 많이 노력했잖아.”
“하지만….”
‘사람들이 무서워요. 대학이라고 다를까요? 대학 가도 똑같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삼킨 성민이 고개를 숙였다.
“고생해서 합격했으니 한 학기라도 다녀 보자.”
성민의 엄마가 그의 양 볼을 잡고 부드럽게 그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남들과 똑같이 살자, 아들. 막상 가 보면 뭐가 달라질 거야.”
내가 바란 게 아니라 엄마가 바란 거잖아요. 자신의 심정을 못 알아주는 엄마가 밉고 화나서, 그의 눈이 순식간에 새빨개지며 물기가 한가득 고였다.
* * *
“대필 도우미?”
“응, 너 속기사 준비했으면 타자도 빠르지 않아? 딱 적임인데….”
“해 보고 싶기는 했는데.”
유라가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 안에 쏙 집어넣었다. 유라는 고민하는 듯 포크를 이로 잘근잘근 물었다.
“자소서에 한 줄 채울 수도 있고 시급도 받을 수 있고.”
“그래?”
“요즘 도우미 구하기가 힘들어….”
학교에서 일하는 유라의 친구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음식을 다 비운 유라가 포크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럼 경험 삼아서 해 볼까?”
“진짜? 그럼 바로 지원서 넣어 보자!”
유라는 복잡한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서를 넣었다.
“수업 내용 뿐만아니라 수업 분위기랑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농담까지 되는 대로 전부 적어 주셔야 해요.”
“네.”
“늦거나 결석하실 경우에는 꼭 미리 전화 주셔야 하고요.”
하지만 필수로 듣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뒤로 그냥 수업 내용만 옮겨 써 주면 될 줄 알았는데, 사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괜히 한다고 했나?”
내심 귀찮아지던 유라가 전화를 받았다.
(야 운명이다 운명. 너랑 시간표 비슷한 사람 있어.)
“정말?”
그래, 이미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해야지. 유라가 끙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개강 날이 다가왔다. 평소보다 일찍 나온 유라가 코트 자락을 꽉 여몄다.
“으 추워….”
아직 3월 초라 쌀쌀한 날씨였다. 첫 수업을 듣는 날에는 수업시간보다 일찍 나와 도와줄 학우를 만나 대필에 관한 얘기를 해야 했다.
“저기….”
누군가 유라의 어깨를 톡톡 쳤다.
“안녕하세요… 우와, 대박.”
유라가 성민의 얼굴을 보고 감탄한다. 그녀가 허둥지둥 핸드폰을 꺼내 톡톡 두들겼다.
(진짜 잘생기셨어요.)
그 말을 읽은 성민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가 톡톡 문자를 두들기고 그녀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그냥 말로 해도 돼요. 입 모양 읽을 수 있어요.)
“그래요?”
유라가 얼굴이 망가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입을 크게 벌렸다 닫으면서 안면 스트레칭을 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녀가 입 모양을 크게 벌리며 또박또박 말을 하자 성민이 하하 웃었다. 그 모습을 유라가 홀린 듯이 바라본다.
그들은 강의실 맨 앞에 앉아 어떤 식으로 대필을 할지, 수업이 끝나고 정리하는 시간은 얼마로 잡을지 상의를 했다.
‘뭐야? 왜 쳐다봐?’
그러는 도중에 그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강의실로 들어오는 사람들에 유라가 표정을 찌푸렸다.
“뭐야? 장애인이야?”
“잘생겼는데 아깝다.”
유라가 한숨 쉬며 말한다.
“저기요, 말이 좀 심하시네요.”
대놓고 항의하자 그 사람들이 움찔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이 뻔뻔하게 표정을 굳히며 대답한다.
“왜요? 어차피 저 사람은 안 들리잖아요.”
아무리 안 들려도 그렇지 저게 사람이 할 말인가. 유라가 발끈했지만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애써 자리에 앉아야 했다.
* * *
“좋아, 복기는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밥이나 같이 먹을래요?”
성민이 고민하는 듯 손가락 끝을 만지작댔다. 고민하는 얼굴도 잘생겼다. 대화의 집중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고 했었나. 괜히 빤히 바라보는 성민의 시선에 유라가 볼을 붉혔다.
“아직 새내기면 이 근처 맛집 모를 만도 해요. 내가 싹 다 알려 줄게요.”
성민이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는 아싸! 소리 지르며 그를 이끌었다.
“근데 아까 나 부르지 않았어요? 저기, 라고. 왜 지금은 말 안 해요?”
오티에서 듣기로는 구화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유라가 고개를 홱 돌려 입 모양을 보이며 말하자 성민이 흠칫 놀란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 따돌림 기억이 생각나 그런 것이다.
“무슨 일 있었구나?”
그 행동을 유라가 기민하게 바라봤다.
“아깝잖아요. 애써 배웠는데. 목소리도 좋았단 말야.”
“…….”
“마음 괜찮아지면 나중에 말로 해 줘요, 폰 화면 말고. 그 소리로.”
식당으로 가는 골목길에 지나다니는 차가 많아서 유라는 성민을 잡아 골목 안쪽으로 밀어 넣고 도로 쪽에 유라가 섰다. 그 배려에 성민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 * *
“유라 오랜만이다. 복학했어?”
“아 예….”
유라가 표정을 굳혔다. 유라보다 선배인 남자는 그녀의 옆에 앉은 성민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장애인 봉사 한다며, 얘가 걘가 봐?”
“선배님, 저희가 수업 복기 중이라서요….”
“에이, 내가 커피 사 줄게.”
남자는 눈치 없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는다. 유라는 체념의 한숨을 쉬고는 녹음본과 대조해 가며 미처 쓰지 못했던 곳들을 채웠다. 둘만의 묘한 분위기에 남자가 괜히 질투 나서 그녀에게 말을 건다.
“우리 유라 착하네?”
‘우리’ 유라? 누구 맘대로 우리야? 유라가 복학생 선배에게 일침을 가했다.
“제가 착해요? 그냥 봉사학점 준다길래 한 건데요?”
“그… 그래?”
“불쌍한 장애인 도와주니까 착해 보이나 보죠?”
유라가 어이없다는 듯 숨을 뱉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였었다. 하지만 성민이 받는 시선에 점점 이입되어 대신 화를 내고 있었다.
“얘는 불쌍하지 않고요, 조금 배려가 필요할 뿐이에요.”
“어….”
“그리고 선배는 그 배려가 전혀 없으신 것 같네요.”
이제 가 주실래요? 유라가 축객령을 내렸다.
* * *
“오늘 학교는 어땠니?”
성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강 첫날 죽상을 하고 집을 나섰던 그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눈에 띄게 밝아졌다. 성민의 엄마가 웃었다.
“도우미분이 괜찮은 사람인가 보네? 막상 가 보니까 괜찮지?”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말하긴 싫구나? 성민의 엄마가 걱정으로 굳어지려는 표정을 애써 밝게 했다.
“밥 먹자.”
* * *
“걔는 귀만 안 들릴 뿐 그냥 똑같은 사람이라니까!”
‘저 사람은 왜 화를 낼까?’
사람들이 그를 차별하고 무시하거나 불쌍하다며 동정을 하는 건 그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대신 화를 내주는 유라를 보며 성민의 기분이 점점 이상해진다.
“난 니 얼굴이 좋아. 그리고 너 자체도 좋아. 넌 어때?”
성민은 당당하게 고백해 오는 말에 차마 나도 좋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당당한 그녀에 비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쨘, 내가 자막 다 입혀 왔지롱.”
거절도 승낙도 하지 않은 애매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끊임없이 그를 찾았다. 성민은 그녀의 밝고 당찬 에너지가 좋았다.
“남들 시선 신경 쓰지 마. 넌 어쩌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성민은 자신 때문에 인생의 일부를 포기한 부모님 보기가 죄스러웠다. 줄어드는 살림살이와 집 안 평수에 나만 없었더라면, 나는 태어나선 안 됐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성민이는 “우리 친구들이 도와줘야 해요!” 당연하게 말하는 선생님의 말에 반발심이 드는 아이들, 그것 때문에 시작된 따돌림 그 모든 게 귀가 안 들리는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건 당연한 게 아냐. 저 사람은 무례했어.”
하지만 그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의 속마음을 대변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고 성민은 점점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 * *
“엄마는 나를 낳은 걸 후회하지 않아?”
다시 말문을 연 성민이 고민 끝에 물었다. 하지만 그의 엄마는 후회도, 체념의 낯빛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먼지 한 톨을 보듯 당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혀.”
* * *
“말 이제 안 해 줄 거야? 목소리 듣기 좋았는데.”
“저도 좋아해요.”
성민의 말에 유라가 놀란 표정으로 뒤돌아 그를 보았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고백에 유라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만 벌렸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덕분에.
그가 그녀에게 한 발짝씩 다가갔다.
“난 잘못되지 않았으니까.”
그냥 좀 다를 뿐이지.
유라의 바로 앞에 선 성민은 모든 걸 떨쳐 내 버린 사람처럼 후련하게 웃었다. 그가 유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카메라로 눈동자를 굴린다.
한참을 카메라와 아이 컨택을 한 이안의 귀에 감독의 컷 사인이 울렸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을 끝마친 이안이 박주연 작가에게 다가갔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가에게 이안이 말했다.
“결국 유라는 작가님의 확성기인 거죠?”
“들켰네요.”
박 작가가 희미하게 웃었다. 당소듣은 주로 주변 사람들이 말하면 유라가 일침을 가하는 구조의 반복이었다.
“유라를 통해 말하고 싶었거든요. 그냥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우리 언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잘못 태어난 사람은 없다고.”
‘저 집은 딸을 잘못 낳았어.’
‘보청기만 끼면 다 들리는 거 아냐?’
‘쟤는 발음이 왜 저래?’
가족들이 받았던 편견에 가득 찬 말, 걱정이라 포장하고 찌르는 비수 같은 말. 들리지 않아도 분위기로, 표정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점점 자존감이 없어지는 언니를 보며 썼던 시나리오였다.
사람들이 이걸 보고 조금이라도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뻔한 순정만화 같지만 저는 이게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아시다시피 성 소수자가 관련된 드라마는 슬슬 나와도 장애인 관련된 드라마는 아직 별로 없잖아요.”
박 작가가 드디어 할 말을 다 끝냈다는 듯 해맑게 웃었다.
* * *
방송 이후 ‘당소듣’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갔다. 감독의 섬세하고 잔잔한 연출이 돋보이는 편집과 더불어 매체에는 잘 보여지지 않았던 소수자의 이야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오늘 단막극도 쩔었다
-엔딩 얼굴 미쳤다 얼쳤다 진짜ㅠㅠㅜㅜ
-흔한 K신파인줄 알고 보다가 괜히 울었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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