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03)
106화. 잠영난봉
“그렇게 강한 독은 아닌 듯해요. 보통의 범인들에겐 사실상 무해할 테고… 무림인이라 해도 하루 이틀 운기의 상태가 조금 안 좋아지는 정도겠죠.”
“…….”
공손수가 말했다.
퍽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극독은 향과 색을 숨기기도 어려울뿐더러, 천하의 당가라 한들 그만한 양을 하천에 쏟아부을 만큼 썩어나지는 않을 터이다.
그 이전에, 인근의 도시와 마을 모두가 이용하는 물길에 극독을 풀었다간 이만저만한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정사를 떠나 상식 바깥의 짓이다.
“…하긴 뭐, 이미 충분히 상식을 운운할 선은 아니긴 하네요.”
공손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미소.
일행들 모두 그 웃음에 공감했다.
좌우간 이렇게 된 이상은 그 무엇도 안심할 수 없다.
최소한 인근의 물길은 모두 오염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터이다.
허나 물을 아예 마시지 않을 수도 없는 법이다. 그때, 공손수가 품에서 단약 몇 알을 꺼냈다.
“이건 우리 암영각 남촌의 해독제이지만… 산공독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니까 충분히 도움은 될 거예요.”
일행들은 단약을 삼켰다.
그리고 수분의 섭취를 최소화하며 생쌀과 육포를 씹었다. 각자 운기를 통해 일말의 독기를 씻어낸다.
타닥, 탁.
“자, 이제 어떡할까요?”
불가에 둘러앉은 채 일행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잠시 침중한 기색이 감돌았다.
“한낱 미미한 산공독이라 해도 상대가 천하의 당가라면 방심을 할 순 없겠지요. 저도 나름대로 조예가 있지만… 솔직히 그들이 마음먹고 독을 쓴다면 해독할 자신은 없네요.”
공손수가 설명을 이었다.
약과 독은 한 끗 차이에 불과하다.
하물며 극독과 미미한 독의 차이는 아주 작은 양의 무언가를 첨가하는 것만으로 뒤바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독성의 ‘증폭’.
눈치채기 어려운 미약한 독을 우선적으로 중독시켜둔 뒤, 추후에 독성의 증폭을 일으키게끔 손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화가 나는구려.”
철면개가 말했다.
“결국은 중재고 뭐고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단 말이지. 그래도 정도를 추구한다고 하는 이들이 이렇게까지 졸렬할 수가 있단 말이오?”
“뭐, 저희 사파무림 입장에서야 자주 겪던 일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요.”
“…….”
“케케케, 어쩌긴 뭘 어째?”
그때 파진성이 말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튀어야지.”
“파 소협이 그렇게 말하다니, 좀 의왼데요?”
“사릴 땐 사려야지. 내 발로 독 구덩이 한가운데로 걸어갈 이유가 뭐가 있냐? 증거도 확실하잖아?”
“그렇긴 하네요. 막상 따지고 들면 자기네 독이 아니라고 잡아떼겠지만요.”
“…아니, 이대로 부딪혀보지.”
이벽이 말했다.
“공손수, 네 말대로 언제까지 피해 다닐 순 없다. 또한 그들의 의도를 알았으니 충분히 각오하면 그만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요.”
독의 무서운 점은 은밀함에 있다.
언제 당했는지도 모르게 몸 안을 서서히 갉아 먹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제힘을 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허나.
“저들이 원하는 게 대화건 그렇지 않건 달라질 건 없다. 애초에 힘이 없어서 대화에 응하려는 것도 아니었으니.”
“케케케! 암! 죽여버리자!”
“…파 소협, 태세 전환 너무 빠른 거 아녜요?”
공손수가 피식 웃었다.
어쨌거나 이벽은 생각했다.
고작해야 다섯 명 내외라고 했다.
당청이라는 자와 더불어 팽무옥까지 두 명의 절정고수가 있다곤 하지만, 팽무옥 정도는 이전에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또한 독공에 대해서는 이미 암영각의 북촌장 백룡강으로부터 겪어본 바 있으니, 충분히 주의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으리란 계산이었다.
“저기, 송 소저…? 혹시 화산의 도움을 구할 수 있나요?”
“…화산?”
“네, 무당과 같은 정도맹인데다 도가문파잖아요? 마침 여기서 가까이에 있으니 여차하면—”
“난 꽃장수들이랑 안 놀아.”
“어… 그럼 혹시 종남은요?”
“쇠막대기들이랑도 안 놀아.”
“…아, 네.”
덜컹, 덜컹.
그리고 마차가 다시 길을 나섰다.
이튿날 정오 무렵, 일행은 서안 인근에 자리한 마을인 앵화촌에 도착했다.
마을이라곤 해도 상행 따위가 자주 지나다니는 요충지로서 퍽 번화한 모양새였다.
일행은 중심가의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사파무림에서처럼 실질적인 영향력이나 무력은 없지만, 하오문의 입김이 닿는 곳인 듯했다.
그리고 개방을 통해 당가 측에 장소를 통보했다.
“…하오문의 세력권이라곤 해도 자칫 객잔에 피해가 갈까 신경이 쓰이는군.”
“뭐, 그렇게 된다고 해도 우리 탓은 아니죠. 그렇게 되면 당가 측에 몽땅 청구하자구요.”
일행들은 짐을 풀었다.
그리고 저마다의 휴식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단순히 식사를 하고 몸을 씻는 것만으로 산공독의 기운이 스멀스멀 몸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미리 알아채지 못했다면 미처 느끼지도 못했을 정도로 미약했다.
기실 이 마을의 모든 이들이 같은 물을 마시며 산공독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손수의 단약으로 인해 일행의 몸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남은 독기들도 일행들은 지속적인 운기를 통해 꾸준히 배출했다.
하물며 이벽은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우우웅.
미처 운기를 하기도 전에, 독기를 감지한 선천의 힘이 일어나며 남김없이 태워버린다.
“…….”
이벽은 가부좌를 틀었다.
다시금 선천의 힘을 점검했다.
마음을 나누면, 선천의 힘이 두 갈래로 함께 갈라진다. 그리고 갈라진 줄기 하나가 이벽의 뇌리로 스며들었다.
욱신.
현기증이 일었다.
시간이 서서히 느려진다.
이내 의식이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허나 동시에 직감했다. 그리 오랜 시간을 붙잡아둘 순 없다.
‘…세 초식 정도가 한계겠군.’
심력이란 내력처럼 갑자의 단위로써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실전이라면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으므로, 목천의 시간 속에서 두 초식 이상을 쓰는 것은 가급적 지양해야 할 터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서 폭주하던 파진성의 내력을 다스리던 때, 무아지경 속에서 목천의 영역에 들어선 이벽은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만… 단련의 여지는 있다.’
취풍신개는 ‘상단전’이라고 했다.
결국은 여타의 체내 혈도와 마찬가지로, 숙련을 통해 보다 원숙함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뿐만이 아니다.
목천의 경지 속에서는 생각의 흐름이 빨라지며, 기의 운용 또한 그 빨라진 속도를 따라가게 된다.
허나 뼈와 근육은 그 인식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초식은 여전히 시간의 한계에 갇혀있다.
고로 나아갈 길은 명확했다.
깨달음에 심신을 적응시킨다.
“…….”
이벽은 웃었다.
또다시 벽 하나를 넘자 나아가야 할 길이 눈앞에 보란 듯이 펼쳐졌다.
퍽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여유 속에서 이벽은 깨달음을 갈무리했다.
또한 새로 얻은 힘을 체화하기 위해 열중하는 것은 비단 이벽뿐만은 아니었다.
채앵, 챙!
“케케, 케케케케!”
파진성은 침식을 아끼며 검을 휘둘렀다. 언미희, 또는 송영영을 상대로 끈질기게 매달렸다.
빠르게 격차를 메꿔간다.
오랫동안 둑에 막혀있던 물이 마침내 터져 나오듯, 파진성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마침내 일류의 끝에 섰다.
그리고 사흘 후, 형형색색으로 화려한 마차 한 대가 마침내 앵화촌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이벽과 철면개는 객잔 앞에 섰다.
이내 당가의 마차가 멈춰서고 두 사람의 젊은 무인들이 내리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무인들의 기세는 퍽 날카롭다.
그때, 거친 살기가 훅 풍겨왔다.
“네놈……!”
참마일도 팽무옥.
마차에서 내린 그는 야윈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핏발 선 눈빛이 이벽과 철면개를 번갈아 바라본다.
“…….”
딱히 할 말은 없다.
이벽은 담담히 받아넘겼다.
“팽 대협, 물러서 주시겠어요?”
그때, 나긋한 목소리가 마차 안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마차의 문 앞을 막고 계시고서야 저희가 내릴 수 없지 않겠어요?”
“…….”
크, 팽무옥이 분을 삼키는 듯했다. 죽일 듯한 눈빛을 한 채 한켠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스윽.
희고 가는 다리가 땅을 디뎠다.
훅, 분 냄새가 풍겨왔다. 여인은 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인 옷을 두르고 있었다.
그 단아한 자태는 무가의 후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여느 고관대작의 지체 높은 여식처럼 느껴졌다.
“안녕하신가요? 비룡대주 이벽 소협과 개방의 철면개 대협이시지요? 소녀는 당가의 당려옥이라 한답니다.”
여인이 우아하게 몸을 숙였다.
슥, 소리도 없이 손이 뻗어졌다.
닿기 직전 이벽은 뒤로 물러섰다.
“…무슨 짓이오?”
“어머, 실례였나요? 죄송해요. 악수를 하려고 했을 뿐인데… 너무 반가워서 그만.”
“…….”
여인이 소매로 입을 가렸다.
퍽 적의 없는 얼굴이었다. 허나 물론 방심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녀가 오룡삼봉 중 하나인 잠영난봉 당려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벽의 시선이 팽무옥을 스쳤다.
일가를 대표하는 절정고수인 그가 일개 후기지수에게 휘둘리는 듯한 모습에는… 이유가 있을 터이다.
“그쪽과 내가 정겹게 악수를 나눌 관계는 아직 아닌 것 같군.”
“쿡쿡, 많이 긴장하셨나 보네요.”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또 한 명의 인영이 마차에서 내렸다.
흉험한 기세의 중년인.
당가의 절정고수 일수멸혼 당청.
슥, 스산한 눈빛이 이벽과 철면개를 스쳤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일언반구는커녕 입조차 떼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실질적으로 이 일행을 이끌고 있는 이는… 의외로 당려옥인 모양이었다.
“식사는 하셨나요? 모처럼인데 차라도 같이 하면서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당려옥이 말했다.
“…그러지.”
그리고 이벽과 철면개, 당가의 일행들은 일제히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일 층의 식당에는 이미 비룡대 일행들이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서 둘러앉아 있었다.
이벽과 철면개, 당려옥, 그리고 팽무옥은 중앙의 탁자에 함께 마주하고 앉았다.
일수멸혼 당청과 당가의 무인 두 명은 가까운 곳에 따로 탁자를 차지하고 앉는다.
이야기에 낄 생각은 없되, 유사시에는 손을 쓸 수 있도록 자리한 모양새였다.
“…….”
이벽이 비룡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손수에게 눈짓했다. 하아, 공손수가 작게 한숨 쉬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온다.
이벽과 철면개의 사이에 앉는다.
“…….”
당려옥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이쪽의 일행이 늘어나건 말건 딱히 개의치는 않는 듯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잠자코 시간이 흘렀다.
“왜 그리 무섭게 노려보시나요? 저희는 싸우러 온 게 아니니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된답니다.”
“됐고. 용건을 말하시오. 우리를 붙잡은 것은 그쪽이니 그쪽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오?”
“아, 그렇게 되는군요. 과연.”
“…….”
짝, 당려옥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 찻잔을 한 모금 들이켰다.
“얼마 전, 슬픈 일이 있었죠.”
당려옥의 표정이 변했다.
고운 아미가 짐짓 찌푸려졌다.
“우리 당가의 절친한 벗이자 동맹인 팽가의 참마대 무인들 몇이 임무 중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요.”
“…무인이 죽는 것은 무림에서 늘 있는 일이지.”
이벽은 팔짱을 꼈다.
“그저 지나가는 길일 뿐이었소. 헌데 그쪽이 죽어라고 쫓아오더군. 그럼 우리더러 순순히 죽어주기라도 했어야 한단 말인가?”
타앙!
“닥쳐라, 이노옴!!”
버럭, 팽무옥이 고함을 쳤다.
주먹이 탁자를 두드리자 그 위로 주먹 모양의 홈이 패였다. 이벽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부터 객잔에 해를 끼치는군.’
“팽 대협, 아시잖아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 거요. 자고로 대의를 생각해 용서할 땐 용서를 해야겠죠?”
그때, 당려옥의 흰 손이 팽무옥의 주먹을 감쌌다. 크으, 팽무옥이 숨을 몰아쉬었다.
…‘용서’라.
약속이라도 한 듯 이벽과 공손수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피식, 공손수가 작게 웃었다.
“그렇지요. 비룡대주께서도 소림과 개방의 초청을 받은 입장이었으니, 분명 억울한 마음이 있겠지요. 그렇기에 저희가 이리 평화롭게 마주 앉아있지 않겠어요?”
“…….”
“하지만, 소림과 개방은 정파무림의 주인이 아니랍니다. 하물며 무당도 아니지요. 적어도 이쪽 땅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우선 의혈맹에 허가를 받는 것이 순서가 아니었을까요?”
“어흠!”
철면개가 헛기침을 했다.
“거 소저께서 말을 재미있게 하시는군, 그래. 말인즉슨 우리 개방이 행사에 앞서 일일이 의혈맹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뜻인가? 응?”
“아니요, 그럴 리가요.”
당려옥이 얼른 말을 받았다.
“하지만 걸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세요. 만일 우리 측에서 일방적으로 사파나 새외의 무림인들을 이 땅에 끌어들였다면 소림이나 개방은 과연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 그건.”
일순 철면개의 말문이 막혔다.
“뭐,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굴 탓한들 스러진 목숨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에요.”
당려옥이 곧장 말을 이었다.
퍽 자연스럽게 대화의 방향을 돌리며 짐짓 슬픈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당가는 정사중간이란 얘길 종종 듣는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남 같지 않아요. 어떻게든 돕고 싶군요.”
“…돕긴 뭘 돕는단 말이오?”
“‘용서’를 구하는 것이요.”
당려옥이 말했다.
안색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건… 소통의 부재로 일어난 ‘불의한 사고’였으니까요. 팽가는 대의와 명예를 따르는 정도무파이니, 여러분들을 용서할 거예요. 그렇죠, 팽 대협?”
“크으…….”
팽무옥이 씩씩댔으나 딱히 반박을 하지는 않는다. 물론 당연하게도 사전에 이야기가 된 듯했다.
“허나 이 소협, 팽가가 여러분들을 용서한다고 해도… 의혈맹의 입장까지 꼭 같을 수는 없답니다. 흘린 피는 열 배 백 배의 피로 갚는 것이 우리 의혈맹이니까요.”
“…….”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지금부터 의혈맹으로 향하도록 해요. 우리 당가가 함께 할 테니, 소협께서 큰 대가 없이 용서를 얻을 수 있도록 힘껏 돕겠어요.”
“그렇군요.”
마침내 공손수가 나섰다.
“하지만 소저, 제 귀에는 결국 소림과 개방, 무당이 껄끄러우니 정중하게 설득해서 압송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어떡하죠?”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암영각의 공손수예요.”
“…암영각?”
당려옥이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네요. 죄송해요.”
“…뭐, 그러실 수도 있죠. 천하의 당가에 비한다면야 작은 이름이니까요.”
물론, 당가가 의혈맹 오대세가 중 하나로 이름이 높다 하나 사패련의 사대세력 중 하나인 암영각을 정말로 모를 리는 없다.
그것은 이를테면 도발이었다.
‘네까짓 게 어딜 끼어드냐’는 듯한 말. 물론 공손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었다.
“천하에서 음습한 짓은 저희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당가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공손수가 이벽, 철면개와 시선을 교환했다. 이내 두 사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제일독문 당가에서는 의도치 않은 사고에 대한 용서의 의미로 우선 독부터 먹여놓고 시작하는 것이 관례인가요?”
“…….”
“물맛이 꽤 비리던데요.”
공손수가 찻잔을 들어 올렸다.
일순,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철컥, 철컥, 나지막한 쇳소리가 양측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비룡대의 일행들과 당청을 비롯한 당가의 무인들이 각자의 병장기에 손을 가져다 댄다.
당려옥의 표정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얼마의 침묵이 흘렀을까.
짝, 당려옥이 손뼉을 쳤다.
다시금 화사한 미소를 보였다.
“대단해요. 용케도 아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