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50)
154화. 참교육
“……!”
남궁천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취풍신개에게 뺨을 맞았다. 그 사실을 맞고 나서야 비로소 눈치를 챘다.
허나 하도 황당해서 뭐라 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남궁세가의 적통으로 태어나 칼을 맞았으면 맞았지, 뺨을 맞은 경험은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짜악.
다음 순간, 고개가 반대쪽으로 꺾였다. 판단을 내리는 사이 취풍신개의 손이 다시 날아든 것이다.
“어른이 묻는데 왜 대답이 없누?”
“…이, 이이!”
후웅.
남궁천승은 검을 휘둘렀다.
더는 생각할 여지조차 없었다.
비틀.
허나 취풍신개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가볍게 흔들리며 그 검을 피해내었다. 취팔선보였다.
“어쭈? 이게 이제는 어른한테 칼질을 하네? 왜, 애들 보는 앞에서 뺨따귀 좀 맞으니까 자존심 상한다 이거냐?”
짜악.
그리고 다시 고개가 돌아갔다.
뺨 세 대를 연거푸 맞고 말았다.
천하의 남궁세가주가 꼼짝도 못 한 채 거지에게 뺨을 맞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진귀한 광경이었다.
“무, 무슨 짓이오, 감히—!!”
쐐애액.
그때, 전대 대장로 남궁한철이 일갈했다. 검에 올라탄 채 하나가 된 몸이 쏜살처럼 날아들었다.
“호, 검신합일? 대단하구먼!”
취풍신개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위기의 순간, 왼쪽 발을 들었다.
콰앙—!!
그리고 다 떨어진 취풍신개의 짚신 밑바닥과 남궁한철의 검끝이 허공에서 부딪힌 순간, 충돌음이 일었다.
“……!”
남궁한철의 눈이 떨렸다.
필생의 검이 고작 발바닥에 부딪혀 전진이 멈추고 말았다. 나아갈 수 없다.
심지어 회수조차 할 수 없었다.
발가락 사이에 검이 끼어있었다.
“…허헐.”
남궁한철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해볼 만 하리라’는 생각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나를 직감했다.
타앙.
다음 순간, 취풍신개가 발을 내렸다. 남궁한철의 검끝이 그대로 추락하여 땅에 처박혔다.
“검과 한 몸이면 검 째 뒈지시게.”
뻐억.
그리고 취풍신개가 주먹을 뻗었다. 흡사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남궁한철의 몸이 튕겨 날아갔다.
날아온 것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컥, 커헉!”
쓰러진 남궁한철이 피를 토했다.
“…크하핫! 지금 이 몸의 뺨을 치셨소?! 아주 좋소, 신개!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내 검을 받아보시오—!”
후우웅.
그때였다.
남궁천승의 검이 다시 휘둘러졌다. 그 사이 빈틈을 타 공손욱을 부축하던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남궁천승의 검에 담긴 회잿빛의 탁한 강기를 확인한다. 제왕검형의 기운이었다.
“허엇, 아이고 무서워라!”
취풍신개의 신형이 다시 취팔선보를 펼치며 갈대처럼 흔들렸다. 검을 피해내었다. 허나.
후우우웅.
“핫, 그렇게는 안 되지! 남궁세가의 검이 그저 무겁기만 하다고 생각했소?!”
그때, 검이 휘어졌다.
태산의 무게를 담되 검로는 한없이 유연했으며, 심지어 그 속도마저 느리지 않았다.
“……!”
이벽의 동공이 흔들렸다.
남궁천승의 의식이 목천의 영역에 진입했으며, 동시에 저것이야말로 ‘진짜’ 제왕검형임을 직감했다.
“스, 스승님, 위험합니다—!”
위기의 순간 철면개가 외쳤다.
검의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 터무니없는 존재감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일검 하에 취풍신개의 왜소한 몸 따윈 순식간에 짓이겨질 것만 같았다. 허나.
타앙.
“……!”
다음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 말도 안 되는.”
남궁세가의 장로 하나가 침음했다. 또한 자리의 모두가 크게 다르지 않은 심정을 느꼈다.
“이, 이이익……!”
“허헛! 아무렴 어떤가? 피했는데도 안 피해지면 잡아버리면 그만이지!”
취풍신개의 두 손바닥이 제왕검형의 강기가 어린 검신을 그대로 ‘붙든’ 것이다.
제왕검형을 떠나 강기를 맨손으로 붙잡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허나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취풍신개의 두 손에도 어느새 강기가 맺혀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윽, 크으으……!”
남궁천승이 신음했다.
그대로 취풍신개를 짓이겨버리려는 듯, 안면이 일그러졌다. 온 힘을 짜내고 있는 것이다.
움찔, 취풍신개의 미간도 작게 찌푸려졌다. 천하의 그로서도 제왕검형의 무게만큼은 가볍지 않았다.
“…그래. 힘 좀 쓴다 이거지?”
후욱.
다음 순간, 검신을 붙잡은 취풍신개의 양손에 맺힌 강기가 흡사 태양처럼 밝아졌다. 그리고.
우우웅.
“…이, 이게 무슨!”
남궁천승이 대경했다.
취풍신개의 강기가 검신으로 옮겨붙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위에는 이미 제왕검형의 강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부르르르!
이내 한 자루의 검신 위에서 두 사람의 강기가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경합을 시작했다.
“끄으, 끄으으……!”
남궁천승의 안색이 달아올랐다.
더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듯 답답한 신음이 흘렀다. 반면 취풍신개의 안색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흘흘! 어데 감히 어른 앞에서 건방지게 힘자랑이나 하고 말야… 하압!”
파창—!
다음 순간, 취풍신개의 기합과 함께 검이 두 동강이 났다. 강기의 경합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커헉!”
그 즉시 남궁천승이 무너졌다.
그리고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 * *
“…….”
이벽은 부러진 검을 보았다.
천하제일검가, 남궁세가주의 검이 결코 보통의 검일 리 없다. 허나… 저토록 처참하게 꺾어지고 말았다.
남궁천승, 남궁한철, 공손욱.
절정을 넘어 목천의 영역에 발을 딛은 초절정의 고수들이며, 숙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것은 자신에게도 가늠이 되는 영역이었다.
‘같은 경지’라고 말할 수 있었다.
허나.
검신합일, 그리고 이형환위.
그 밖에 눈을 현혹하는 그 어떤 초상승의 화려한 기교조차 가볍게 휘둘러지는 거지의 손발을 이길 수 없었다.
그들과 취풍신개의 사이에는 다시금 벽이 놓여 있으며, 심지어는 그 벽이 어느 정도의 두께와 높이인지조차 가늠되지 않았다.
천하십대고수.
천하무림의 정점.
이벽은 새삼 그 무게를 느꼈다.
“끄으응, 어이구야!”
취풍신개가 허리를 쭉 폈다.
그리고 주변을 훅 둘러보았다.
“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가주를 대신해 남궁세가에서 더 나올 사람 있는가? 으응?”
“…….”
물론 있을 리 없었다.
씩, 만족스럽게 웃은 취풍신개가 이내 주저앉아 피를 토하는 남궁천승의 등을 두드렸다.
“어때? 자네가 힘자랑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길래 이 늙은이가 오랜만에 힘 좀 썼네. 만족했나?”
“…큭, 쿠윽, 커헉!”
“아,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네. 입은 하나뿐이니 마저 일 보게나! 비룡대주는 내가 데려가겠네. 그럼!”
그리고 취풍신개가 돌아섰다.
개운한 얼굴로 철면개와 송영영, 그리고 이벽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허나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이었다.
스윽, 탁.
“…신개, 당신은 실수했소.”
다시 남궁천승이 말했다.
“…에잉!”
인상을 찌푸린 취풍신개가 다시 돌아서자 그사이 어떻게든 몸을 일으킨 남궁천승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안색은 창백하고 입가에선 피를 흘리고 있었으나, 흉흉한 눈빛만큼은 결코 죽지 않았다.
“그래,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당신은 일개 무인이 아니라 하나의 세력을 대표하는 수장이란 말이오. 취풍신개가 곧 개방이며, 개방이 곧 취풍신개지.”
“…….”
“그러니… 오늘 당신은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꿈틀, 취풍신개의 눈썹이 흔들렸다. 남궁천승은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개방은 오늘 남궁세가를 쳤소. 나 남궁세가주 남궁천승을 기습했고, 모욕했지. 그리고 이것은 비단 우리 남궁세가뿐만이 아닌 의혈맹에 대한 중대한 도전행위요.”
“…그, 그만! 가주, 멈추시게!”
남궁천승의 말뜻을 눈치챈 남궁한철이 그 즉시 말리려 했다. 허나 남궁천승은 멈추지 않았다.
붉어진 눈으로 취풍신개를 향한 채 한 자 한 자 흔들림 없이 뱉어내었다.
“고로 지금 이 순간부터 개방은 우리 남궁세가의 적이며, 또한 의혈맹의 적이오. 나는 나와 내 가족과 혈맹을 위해, 감히 전쟁조차 마다하지 않겠소.”
쿠웅.
마침내 말이 뱉어졌다.
그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정도맹과 의혈맹, 구 무림맹.
그것은 즉, 솥발의 형세처럼 위태롭게 유지되던 현 정파무림의 평화를 무너뜨리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허, 참.”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저벅, 취풍신개가 다시 남궁천승에게로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졌으나 남궁천승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뻐억!
“뭘 봐? 눈 깔아, 새끼야.”
“…커억.”
다음 순간, 취풍신개의 찢어진 신발이 남궁천승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애써 일어난 다리가 휘청였다.
털썩.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허나 시작에 불과했다.
“그래? 뺨따귀 좀 맞은 게 그렇게 분하고 억울해서 황보혁이한테 가서 이르고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어이구, 무서워라~”
짜악!
남궁천승의 고개가 돌아갔다.
또다시 뺨을 두드려맞은 것이다.
“그래, 일러라 일러, 이 새끼야. 왜 황보혁이한테만 이르냐? 느그 애비한테 이르고 애미한테도 이르고 전전대 남궁가주 무덤에 가서도 또 일러야지 이 개새끼야.”
짜악! 짜악!
“호시절에 태어나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새끼가 전쟁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네까짓 놈이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아느냐? 앙?”
짜악! 짜악!
“아주 그냥, 다 큰 아들한테 가주 자리 맡겨놨더니 황보혁이 따까리 짓이나 하고 있는 꼴을 보면 느그 검왕이 퍽이나 자랑스럽겠다, 이 새끼야. 응?”
취풍신개의 손이 작렬했다.
그리고 남궁천승의 온몸이 양쪽으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고작해야 숨 몇 번 내쉴 시간 동안 두 뺨이 터져나가고 얼굴이 짓물렀다.
짜악! 짜악!
“컥, 크윽……!”
남궁천승이 몸부림쳤다.
끝없이 이어지는 취풍신개의 손길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한 저항이었다. 허나 무의미했다.
짜악! 짜악!
그 모습은 마치 남궁천승의 고개가 취풍신개의 손안으로 저절로 빨려드는 것만 같았다.
벗어날 수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격은 기실 몽둥이 없이 펼쳐지는 개방의 절기 타구봉법과 같다.
“……….”
남궁세가 무인들은 생각했다.
물론, 가주를 구해야 한다. 허나 그것을 어떻게 해내야 할지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천하십대고수의 분노.
그것은 차라리 자연재해와 같다.
무공을 익혔건 익히지 않았건, 재해 앞에서 인간은 완벽히 무력했다.
달려든다면, 자신들이 죽는 것은 물론 공연히 취풍신개의 분노를 더욱 키울 뿐이다.
“시, 신개. 용서해주십시오.”
그때, 남궁한철이 다가섰다.
대뜸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박았다.
“저, 저희 가주께서 잠시 실언을 하셨습니다. 전쟁이라뇨? 그런 일은 없을 겝니다. 이 늙은이가 막겠습니다. 그러니—”
털썩, 털썩.
“요,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세가의 장로와 원로들이 우르르 무릎을 꿇었다. 가주의 목숨 앞에서 자존심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다.
짜악!
“헹!”
취풍신개는 콧방귀를 뀌었다.
“용서를 왜 나한테 비나? 잘못을 했으면 잘못한 사람한테 빌어야지. 그게 맞는 거 아닌감?”
“……!”
짜악, 짜악!
번쩍, 말뜻을 알아들은 남궁한철이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날듯이 이벽에게로 날아들었다.
“요, 용서해주시게, 소협.”
“…….”
쿵, 그리고 땅에 이마를 찧었다.
“염치없는 소리인 것은 잘 알고 있네. 부, 부탁이니… 한 번만 신개를 말려주시게.”
이벽은 침묵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자신더러 죽음을 선택하라던 초절정의 고수가 땅에 이마를 박고 애걸하고 있다.
상황은 순식간에 급변하여 퍽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선택권이 자신에게 넘어왔으므로 이벽은 생각했다.
짜악, 짜악!
“…글쎄, 고민해보겠소.”
“그, 그게 무슨……!”
“용서는 군자의 덕목이지만, 나는 사마외도에 소인배라서 선뜻 마음먹기가 어렵단 뜻이오. 그러니 시간이 필요하오.”
짜악, 짜악!
“크… 크윽!”
이벽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거나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남궁세가의 가주가 뺨을 맞아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정말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찜찜한 일이었다. 허나.
‘…용서?’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잘못은 잘못한 이에게 비는 것이다. 취풍신개의 말마따나 용서는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미희가 이곳에 납치당한 뒤 겪었을 수모를 생각했다. 남궁세가가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은 자신 역시 아니다.
“이, 이제 되지 않았는가? 응?”
“…미안하지만 나는 용서할 자격이 없는 것 같소. 그러니 알아서 용서를 받아보시오. 그럼.”
훅, 이벽은 돌아섰다.
“제, 제발, 소협……!”
“스, 스승님! 그만!”
그때였다.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던 철면개가 황급히 취풍신개에게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을 확인한 남궁세가 장로들의 눈빛에 작은 희망이 스쳤다.
직전제자라면 그나마 어떻게든 취풍신개를 말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짜악, 짜악!
“헹, 뭐냐, 이눔 자식아? 이제 와서 갑자기 겁이 나느냐? 그렇게 물러터져서야—”
“아닙니다, 스승님!”
취풍신개에게 다가간 철면개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양손으로 공손히 타구봉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쓰시지요!”
움찔, 취풍신개의 손이 멎었다. 놀랍게도 당황한 얼굴로 제자를 돌아보았다.
“…아, 아니,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순 없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