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51)
155화. 입장 정리 (1)
남궁세가가 봉문했다.
소식은 남궁세가주와 비룡대주의 비무를 구경하고자 안휘로 몰려들었던 인파들의 입을 타고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허나.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되어 그런 결과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는 이는 없었다.
비무는 남궁세가주의 승이었다.
그것은 물론 예견된 결과였으며, 안경으로 모여든 이들 대다수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바였다.
허나 비무가 끝난 순간, 비룡대주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고 이후 세가를 둘러싼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소란이 일었다.
알려진 것은 그 정도였다.
자연히 온갖 허풍과 억측이 나돌았으나, 결국 그 사실 여부를 확인시켜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내 사람들은 서서히 사태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더욱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의혈맹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남궁세가가 당한 이상, 의혈맹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사람들은 이후의 의혈맹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에 대해 주목했으며, 혹은 무림세력 간의 충돌로 공연히 불똥이 튈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또한 당연하게도.
비룡대주를 비롯해 천하의 남궁세가를 공격하여 봉문에 이르게 만든 그 무시무시한 ‘괴한 세력’의 정체와 행방을 궁금해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
장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곳은 안휘성 남쪽 끄트머리에 장강을 끼고서 지어진 강변의 어느 객잔이었다.
객잔이라곤 해도 애초 근처에 마을이나 도시를 끼고 있지도 않았기에 손님이라곤 이벽과 그 일행인 ‘괴한 세력’들이 전부였다.
애시당초 이런 외진 곳에 자리한 객잔이 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곳이 하오문의 업장이었기 때문이다.
안경을 빠져나온 일행은 지난 며칠 이곳에 머물며 각자의 휴식과 치료를 꾀했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지려 했다.
허나 그런 일행들을 붙잡아 이렇듯 한 자리에 앉혀놓은 것은 개방의 철면개와 하오문의 월향이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
다시 일각여가 지났다.
허나 침묵은 여전히 깨질 줄을 몰랐다. 물론, 그 면면을 살펴보면 무리도 아니었다.
머릿수가 적지 않으므로 일행들은 객잔의 탁자 여러 대를 한데 모은 채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중앙 모서리에는 이벽이 앉았다.
그리고 그 왼편에 앉은 것은 월향을 비롯해 호남 사파를 대표하는 세 문주와 암영각의 공손욱, 천소연이었다.
허나 그 반대편에 앉은 것은 개방의 철면개과 비견개, 그리고 정검문주이자 점창의 제자인 양호명이었다.
정파와 사파.
하물며 소속도, 이해관계도 다르다. 화기애애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테다.
또한.
그중에서도 특히 정검문주 양호명과 무적파의 문주 채무근 사이에서는 날카로운 적의마저 흐르고 있었다.
“허험, 험!”
“…아하하.”
철면개가 헛기침을 했으며, 월향이 멋쩍게 웃었다. 허나 섣불리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당사자 간의 문제에 대해 제삼자가 먼저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쯧.”
이내 양호명이 혀를 찼다.
“크, 네 이놈 양호명……!”
그 즉시 채무근이 반응했다.
“채무근, 왜 그렇게 노려보나?”
마침내 양호명이 말했다.
“뭐라?!”
타앙, 채무근이 탁자를 두드렸다.
“네놈이 정녕 이 자리에서 머리가 으깨져 죽고 싶으냐?!”
“…….”
두 사람 사이에는 은원이 있었다.
앞서 정검문은 무적파를 비롯한 호남성 회화 지역의 사파 세력에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격노하여 정검문에 직접 쳐들어갔던 채무근은 결국 양호명에 의해 중상을 입고 쓰러져 한동안 사경을 헤매야 했다.
“그때의 일이라면 네놈이 나보다 약했으니 어쩔 수 없는 거고, 또한 남궁세가에서 한 번 살려줬으면 된 거 아닌가?”
타앙!
“닥쳐라, 이노옴—!”
채무근이 다시 탁자를 두드렸다. 허나 목 끝까지 솟구친 상소리를 애써 삼켰다.
말마따나 남궁세가의 장로들을 상대할 때 양호명에게 도움을 받은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호남의 은인인 비룡대주 이벽이 함께 하고 있다. 그 앞에서 함부로 상을 뒤엎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끄으응!”
채무근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하하… 문주께는 무리한 부탁을 드린 것 같아 참으로 면목이 없네요.”
그때, 마침내 월향이 나섰다.
“허나 그럼에도 이렇듯 자리에 남아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채 문주님.”
“…아니오. 비룡대와 하오문에는 항상 감사하고 있음이니. 이 몸이 쓰러졌을 때 제자들을 지켜준 것은 비룡대주, 그리고 하오문의 초자 성을 쓰시는 대협이라 들었소.”
채무근이 씨근거리며 말했다.
“그 은혜에 비하면 저 뻔뻔하고 역겨운 양가 놈의 얼굴을 참아넘기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지.”
“…다른 건 몰라도 네놈이 얼굴 가지고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 않나?”
“뭐라—?!”
“어험, 험!”
철면개가 다시 헛기침을 했다.
“자, 자. 진정들 하시오. 서로가 그리 편치 못하다는 건 우리 역시 잘 알고 있으니. 허나 분명한 것은… 이곳에 자리한 우리 모두 돌이킬 수 없는 남궁세가의 원한을 샀다는 거지. 그렇지 않소?”
“…….”
장내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기묘한 흥분이 흘렀다.
천하의 남궁세가를 봉문시켰다.
물론 그것은 천하십대고수 취풍신개의 힘에 의한 것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일행은 함께 버텨내었고,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후, 그러게요.”
나살문주 우진희가 말했다.
“숭무관주 남궁천수 그자에게 시달릴 때만 해도 이렇듯 남궁세가 본거지에 직접 복수를 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죠.”
우진희가 작게 웃었다.
핫, 전사욱이 함께 웃었다.
어쨌거나 퍽 통쾌한 일이었다.
“걸개, 신개께서는……?”
그때 월향이 물었다.
“글쎄, 안 보이는 걸 보니 이미 떠나신 모양이오. 원체 바람 같은 분이신지라.”
개방주 취풍신개가 움직였다.
물론, 그 여파는 가볍지 않았다. 남궁세가주 남궁천승의 말마따나 충분히 정파 간의 전면전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허나.
“하지만 뭐, 너무 걱정은 할 필요 없소. 스승님께도 다 생각이 있으실 테니. 무고한 피가 흐르는 걸 가만히 놔두실 분은 아니시오.”
철면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스승이 그러한 것조차 생각지 않고 움직일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취풍신개는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거지였고, 결국은 남궁세가주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다만… 스승님과는 별개로 우리 역시 서로의 입장을 정리해 둘 필요는 있겠지. 그렇지 않소?”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다시 없을 기회이니까요.”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월향이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모두 이해관계가 다르죠. 허나 걸개의 말씀처럼 적어도 두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한배를 탔다고 생각해도 좋을 거예요.”
“…두 가지?”
전사욱이 되물었다.
“네, 하나는 물론 남궁세가의 원한을 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월향의 시선이 이벽을 향했다.
“우리 모두, 어떤 이유에서든 비룡대주께 협력하기 위해 모여들었다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그렇군.”
전사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자리에 둘러앉은 어느 누구도 월향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야 우리끼리 사이가 좋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 허나 최소한 서로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소?”
그리고 철면개가 말을 받았다.
“서로를 믿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이라면 최소한 비룡대주를 믿을 수는 있을 테니 말이오.”
“…크흠!”
채무근이 불편한 헛기침을 했다.
어쨌거나 월향과 철면개는 퍽 죽이 잘 맞았다. 하오문과 개방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특이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 그런 의미에서.”
철면개가 이벽을 돌아보았다.
“우선은 비룡대주의 입장을 들어 볼까 하는데… 대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렇군.”
이벽은 조금 난처했다.
월향, 철면개와는 이미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에도 입장이란 말은 퍽 모호하게 느껴졌다.
허나 이들은 모두 자신을 돕기 위해 모여준 이들이다. 따라서 제일 먼저 해야 할 말은 명백했다.
“우선은 감사드리오, 모두들.”
이벽은 장내를 둘러보았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었다.
“입장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나는 그저 납치된 내 일행을 구하고자 했을 뿐인데 여러분들께서 과하게 몰려드는 통에 천하의 남궁세가를 봉문시키고 말았소.”
꾸벅, 이벽은 고개를 숙였다.
“이러한 애송이를 위해 목숨의 위협까지 무릅쓰고 모여주신 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풋.”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거 좀 너무한데요, 소협. 남궁세가주와 맞붙은 소협을 애송이라고 한다면 장로 나부랭이한테 애먹은 우리는 뭐가 되나요?”
천소연이었다.
그리고 누구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작은 웃음들이 새어 나왔다. 정사의 고수들이 모여 함께 웃고 있다.
“…….”
짧은 순간이었다.
허나 이벽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문득 이벽은 꺼낼 말들이 떠올랐다.
좌중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싸우는 게 싫소.”
“…네? 뭐라구요?”
“또한 피를 보는 것도 싫어하오. 남의 것을 빼앗고 싶지도 않고, 힘으로 짓누르고 싶지도 않고, 무명을 널리 알리고 싶지도 않소. 사실은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걸 내팽개치고 무림을 떠나고 싶소.”
“…….”
일순 벙찐 표정들이 감돌았다.
각자의 입장들을 떠나, 천하제일의 기재임에 틀림없는 어린 무인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줄은 물론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허나 물론 그럴 수는 없겠지. 그것은 그간 나름대로 많은 피를 보았고, 또 흘렸고, 그에 따른 책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오.”
무림행의 ‘결말’을 찾는다.
막상 입을 떼자 말은 어렵지 않게 풀려나왔다. 그것은 그간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해왔던 생각들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질서와 공존을 원하오.”
“……!”
“아니, 사실은 ‘질서’라는 건 무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도 모르지. 허나 최소한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일어나는 무고한 고통이나 죽음은 막고 싶소.”
이벽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월향과 철면개를 향했다.
“그렇기에 당금의 무림에 ‘남의 피’를 목적으로 하는 이가 있다면 기꺼이 적대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베겠소.”
“…….”
월향과 철면개, 두 사람이 굳이 이러한 자리를 만든 것은, 비단 남궁세가나 의혈맹 측과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자리에 모인 정사의 무인들에게 강호의 배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전하고자 함이었다.
허나 이벽은 ‘혈교’라는 이름을 구체적으로 입에 담지는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역할이 아니다.
“무림을 떠나건 말건, 나머지는 그 이후의 일이 되겠지. 여하튼 그것이 지금의 내 입장이오.”
이벽은 말을 끝맺었다.
“…….”
그리고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물론, 그것은 듣기에 따라서는 퍽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질서와 공존이라는 말은 무인으로서는 물론, 사파인으로서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핫.”
허나 그때, 잠자코 있던 공손욱이 짧은 웃음을 흘렸다.
“꽤 닮았군.”
“그러게요. 오호홋!”
우진희가 그 즉시 맞장구를 쳤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확실히 우리 사패련주님을 꼭 닮았어요. 아니, 생긴 것이나 말투나 여러모로 다른 점이 더 많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사파는 강자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다. 힘이 곧 지배력이며, 규칙이나 명분따윈 그 다음의 일이다.
그것은 경쟁이나 싸움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명분을 중요시하는 정파와의 차이였다.
허나.
당대의 사파는 달랐다.
서로를 함부로 침공할 수 없었으며 힘으로 짓누를 수도 없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강한 이’가 질서를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사파답지 않지만, 그 또한 지극히 사파다운 것이 전후 패왕가가 만들어낸 사파무림이었다.
“그래서.”
공손욱이 말을 이었다.
“비룡대주의 포부는 잘 들었소. 불과 얼마 전 일이오만, 우리 암영각을 다녀갔을 때보다 여러모로 더 성장한 모양이군. 헌데.”
월향과 철면개를 향했다.
“그래서 두 분께선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거요? ‘남의 피’를 목적으로 하는 이란 게 대체 누굴 말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