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66)
171화. 철혈쌍괴
“크흐… 크, 으헤헤헤!”
“주… 죽여… 사, 사지를 몽땅 잡아 뜯어서… 큭, 크흐흐흐……!”
“….”
잠에서 깨지 못한 언미희를 제외한 일행들은 모두 마차 바깥으로 나섰다.
이내 주변의 나무들 사이로 살기등등한 인영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적들의 머릿수는 어림잡아도 스물 이상이었으며, 동시에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닌 듯한 기척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괴소 혹은 헛소리를 내뱉거나 입가로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으며, 또한 눈빛들은 붉었다.
“…어디서 많이 본 몰골이죠?”
“케헤, 그러게.”
공손수와 파진성은 눈을 마주쳤다. 사패련을 나선 이래, 마을을 점거한 산적들을 상대했을 때를 떠올렸다.
또한.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그 정체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녹림, 그리고 혈교를 떠올렸다.
“뭐… 별로 무섭진 않네요.”
“케헤! 이따위 잡것들보다야 우리 대주가 빡쳤을 때 내뿜는 살기가 수억 배는 더 살벌하지!”
두 사람은 가볍게 웃었다.
허나 물론 방심할 수는 없다.
비슷한 모양새의 광인들이라곤 해도, 그저 삼류에 불과했던 예전과는 달리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광인들 중에서도 나름대로 정예인 모양이었다. 철컥, 두 사람은 각자의 병기에 손을 대었다.
“…이거야 원.”
선두에 선 양호명이 말했다.
“순 인간이길 포기한 짐승들 뿐이로군. 한 놈이라도 똑바로 말을 할 줄 아는 놈은 없나?”
“카하핫! 그래, 패기 좋은 놈이 하나 섞여 있구나!”
그리고 그때, 정면의 적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양호명에게 답했다.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저벅.
광인들을 밀쳐내며 두 명의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한 명은 거대한 철제 곤봉을 짊어진 거구의 사내였으며, 다른 한 명은 한 쌍의 낫을 쥔 얄쌍한 사내였다.
“어디 보자, 비룡대의 애송이들이 맞으렷다?”
“카하핫! 미리 말하는 데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다면 말야!”
낫을 쥔 사내가 먼저 물었으며, 곧이어 쿠웅, 거구의 사내가 곤봉으로 땅을 내려찍었다.
“…핫.”
양호명이 팔짱을 꼈다.
“함부로 남의 목숨 걱정하기 전에 본인들의 목숨부터 걱정하는 게 좋을 텐데.”
“…뭐라? 이놈이—”
두 중년인이 양호명을 향했다.
이내 무언의 긴장 속에서 서로의 기세를 살폈으며, 서로가 절정에 이른 고수임을 확인했다.
“…네놈은 누구냐? 다시 보니 애송이는 아니로군. 비룡대의 보호자라던 그 거지 놈은 아닌 것 같고.”
“남의 이름을 물을 때는 우선 본인들의 이름부터 먼저 밝히는 게 도리 아닌가?”
양호명이 다시 작게 웃었다.
“하긴, 딱 봐도 두 놈 다 도리는커녕 제 이름도 종종 까먹을 것 같이 생기긴 했다만.”
“…클클. 하기사 네놈이 누군들 무슨 상관이겠나? 보아하니 사지가 찢겨봐야 정신을 차릴 놈 같은데.”
“어머, 누군가 했더니 철혈쌍괴(鐵血雙怪)로군요?”
그때였다.
한발 늦게 마차에서 내린 월향이 양호명에게로 다가서며 말했다.
“호오, 우리를 알아보는 녀석이 있다니, 제법 귀여운 계집이로군. 네년은 누구냐?”
“모를 리가요. 곤봉 쪽이 철괴, 사슬낫이 혈괴. 양쪽 다 우리 수호대의 초연서 대협께 구멍이 숭숭 뚫려서 목숨만 건져 도망친 녹림의 채주분들이시잖아요?”
“…‘우리’ 수호대?”
흠칫, 철혈쌍괴가 흔들렸다.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네년… 하오문 수호대로군.”
살기가 번뜩였다.
혈괴가 입술을 핥았다.
“…좋아, 아주 좋아. 네년은 특별히 그 입에서 제발 죽여달란 말이 나올 때까지 가지고 놀다가 갈기갈기 포를 떠서 죽여주마.”
“어머.”
월향이 입을 틀어막았다.
슥, 양호명의 팔짱을 꼈다.
“악적들이 절 괴롭히고 찢어 죽인대요… 어쩌죠? 가가, 나 너무 무서워요.”
“…….”
양호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하, 그렇단 말이지?”
“더러운 시궁창 계집이 어디서 아랫도리로 쓸만한 사내놈을 하나 꼬셨나 보군. 카하핫!”
“…귀가 썩는 것 같군.”
철컥, 양호명이 검을 뽑았다.
“됐으니까 얼른 덤비도록. 상황은 대강 알겠고, 어차피 죽여야 할 놈들과 이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
“클클, 성격도 급하시구만?”
혈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벌겋게 충혈된 눈이 문득 공손수와 파진성을 향했다.
“우리도 물론 그러고 싶다만… 일단은 애송이들을 생포하는 게 목적이라서 말이지. 자, 뭘 하느냐? 살고 싶다면 어서 무기를 버리고 이리 오너라.”
“…뭐, 뭐라구요?”
공손수가 당황한 소리를 내었다.
일행들 사이로 눈빛이 오고 갔다.
“항복하면 우릴 살려준다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클클, 그렇다마다. 자애로운 녹림왕께서는 네놈들에게 살 기회를—”
“아니… 철혈쌍귀 같은 별호부터 잡스러운 산적 주제에 왜 항복을 권하고 지랄이래?”
“…뭐, 뭐라?”
일순 혈귀의 말문이 막혔다.
“케헤헤! 자기 부하들은 싸우고 싶어서 침을 뚝뚝 흘리고 있구만. 불쌍하지도 않나?”
“그러게요. 자애로운 산적이라니 무슨 정직한 도둑이나 가슴 따뜻한 색마 뭐 그런 건가?”
“…….”
으득, 혈귀가 이를 갈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놈들이군.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이것이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
“아니, 기회고 뭐고… 김빠지게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사패련주가 무서워서 그래요? 그럴 거면 습격하지나 말지, 왜 튀어나와서 이빨만 털고 있냐구요?”
“…푸훗.”
“케헤헤!”
월향이 웃음을 흘렸다. 그것을 기점으로 일행들 사이로 작은 웃음이 번졌다.
“이 개 같은 년이 감히!”
철괴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 즉시 뛰쳐나가려 했다. 허나 혈괴의 팔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큭, 크큭. 그렇군. 사패련주라. 역시나 네놈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일그러진 혈괴의 표정이 서서히 미소로 번져갔다. 그리고 일행들을 한 명 한 명 둘러보았다.
“클클, 딱하도다, 딱해! 천하가 이미 뒤집혔거늘 이미 무너진 기둥에 달라붙어 위세 등등한 꼴이라니!”
“…자꾸 뭐라는 거예요?”
“…글쎄. 아무래도 가만히 놔뒀다간 삼 일 밤낮을 주둥이로만 나불댈 속셈인 것 같군.”
양호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행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각자의 역할을 이해한 뒤, 이내 주변을 포위한 적들을 향해 산개하려던 찰나였다.
“그래, 불쌍한 애송이들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니 내 친절하게 말해주도록 하지.”
클클, 혈괴가 어깨를 으쓱했다.
“알겠나? 네놈들이 그렇게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사패련주 혁군악은… 안타깝게도 우리 위대한 녹림왕의 칼날 앞에 이미 모가지가 잘려버렸다네.”
“……!”
* * *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게 뭔 개소리에요?”
그리고 마침내 공손수가 말했다.
“클클클! 그야 믿기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허나 천지개벽이란 원래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라네!”
“…….”
공손수가 월향을 향했다.
벙찐 표정을 한 월향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오문도인 그녀로서도 전혀 금시초문인 모양이었다.
“…하, 어이가 없네. 녹림왕인지 삼림왕인지 모르겠고 누가 누구의 목을 베었다구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헛웃음이 나왔다.
“천하십대고수의 목이 무슨 통나무 채벌도 아니고… 저기, 싸우기 싫으면 그냥 집에 가던가 하세요.”
“카하하핫! 믿건 안 믿건 아무래도 좋다. 미안하지만 사패련은 이미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왔고, 너희 모두 끈 떨어진 신세에 불과하다!”
쿠웅, 철괴가 땅을 두드렸다.
“…….”
공손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허나.
‘…뭐가 이렇게 자신만만해?’
이러니저러니 해도.
상대는 녹림, 그리고 혈교의 소속으로 추정되는 절정고수였다. 아무 이유도 없이 이따위 허풍을 떨지는 않을 터였다.
서서히 찜찜함이 싹을 틔웠다.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인가?”
허나 그때였다.
양호명이 담담히 목소리를 냈다.
“왜들 쓸데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나? 저 산적 놈의 혓바닥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직접 잘라서 확인해보면 그만 아닌가?”
“……!”
“천하가 뒤집혔건 말건,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은 아무래도 달라질 게 없다.”
“…그것도 그러네요.”
공손수가 답했다.
훗, 작게 웃었다.
“사파 소속 아니라고 참 쉽게 말하시네요, 대협. 그래도… 여기까지 건너오신 김에 저 허언증 산적들 좀 잘 부탁드릴게요.”
“핫.”
양호명이 코웃음 쳤다.
“쯧! 결국은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뜻이군. 클클, 정히 죽겠다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훅, 그리고 혈괴가 낫을 뻗었다.
“쳐라!”
“크… 크아아악!”
“죽여… 죽여어어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을 둘러싼 광인들이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훅.
찰나의 순간.
일행은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마차를 중심으로 재빨리 산개했다. 각자가 맡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타닷.
공손수는 우측으로 파고들었다. 우르르 달려드는 일곱의 적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크하, 크하핫!”
“크아아아악……!”
“…거 시끄럽기는. 파진성 같네.”
적들은 제정신은 아니었으나 기세만큼은 얼추 일류에 이르는 듯했다.
둘러싸이면 퍽 난처할 것이다.
“뭐, 둘러싸여 줄 이유도 없고.”
푹.
공손수의 비수가 번뜩였다. 그대로 자루만 남긴 채 선두에 선 적의 명치에 쑤셔박혔다.
쑤걱, 한 바퀴 휘저어졌다.
“커…억.”
슥, 그리고 비수가 도로 회수됨과 동시에 피와 다져진 내장 조각이 우르르 쏟아졌다.
털썩, 적이 무릎을 꿇었다.
광인이건 뭐건, 사람이라면 명치와 위장을 잘게 다져진 채 움직일 수는 없다.
후웅, 훙.
“크아아악!”
허나 나머지 적들은 주저앉은 동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공손수의 양측을 쳐왔다.
세 자루의 칼날이 휘저어졌다.
훅.
허나 공손수는 그때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주저앉은 적의 등 뒤로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푹.
주저앉은 적의 뒷목을 그었다.
“컥, 커어억……!”
이내 목덜미에서 분수와 같은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잠깐의 경련 끝에 축 늘어졌다.
“우선 하나.”
서걱, 서걱.
공손수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비수가 한 번 번뜩일 때마다 적들 중 누군가의 급소에서 피가 솟구쳤다.
이미 무력화된 이라고 해서 방치하지는 않았다. 공손수는 한 명씩, 확실하게 숨통을 끊었다.
챙, 서걱.
“케헤!”
한편, 좌측으로 파고든 파진성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아가던 파진성은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달려드는 여섯의 적을 상대로 파진성은 제자리에 굳건히 선 채 마주했다.
휭, 채앵, 챙!
적들의 기세는 예사롭지 않다.
허나 손발의 조합은 엉터리였으며, 합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크아아악, 주, 죽여어—!!”
“케헤헤! 그래! 내가 널 죽여—!!”
파진성은 기세를 드높였다.
허나 동시에 광인들을 상대로 함께 미쳐 날뛰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수비에 치중하되.
마냥 밀리지는 않는다.
챙, 채앵!
파진성은 이벽의 검을 떠올렸다.
퍽 오랫동안 이벽의 검을 곁에서 지켜봐 왔으며, 또한 비무를 반복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문득 근래에 들어 파진성을 사로잡았다.
발검과 회검.
허나 자신이 지닌 해남의 검으로는 이벽의 검이 지닌 묘리를 흉내 낼 수는 없었다.
물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 대신, 파진성은 이벽의 움직임을 자신의 검에 맞게 해석했다. 그러자 다시, 청해십이검의 새로운 경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밀물과 썰물.’
흐름을 읽는다.
물러날 때와 몰아칠 때를 알고서 다룬다면, 날카로움은 굳이 요란하지 않아도 된다.
탕, 서걱!
일순 파진성의 눈이 번뜩였다.
“크아악!”
“크억… 으이아악!”
그리고 검을 쥔 적들의 팔 두 개가 허공을 날았다. 잘린 어깨에서 피를 뿜어내며 괴성을 질렀다.
푹, 푸욱.
“케헤헤! 놀랐냐, 새끼들아?! 나도 나의 실력이 놀랍다, 이 새끼들아!”
허나 끝난 게 아니었다.
한 번 기세를 타고 들이닥친 파도는 팔을 베고도 멈추지 않았다. 서걱, 적들의 가슴께를 스쳤다.
쩌억.
그리고 이내 적들의 상체가 장작처럼 크게 벌어지며 뼈와 내장을 훤히 드러냈다.
“꺽, 끄으으…….”
적들이 허물어졌다.
서서히 호흡이 잦아들었다.
“크으… 이거지. 케헤헤!”
찌르르, 그리고 퍽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살육의 감각이 파진성의 팔다리를 휘감았다.
“크아… 크아아악!”
“드루와! 몽땅 드루와, 케헤헤헤!”
그리고 파진성은 다시 그 자리를 꿰어 찬 나머지 적들과 싸움을 이어갔다.
챙, 서걱.
공손수와 파진성은 그간의 성장을 증명하듯, 같은 일류급의 적들 여럿을 상대하고도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압도했다.
또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것은 적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산적들이자 혈교의 끄나풀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이 자리에는 이벽이 없으며, 언미희는 마차 안에서 잠들어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배려해야 할 동료는 없다.
두 사람은 사파의 후기지수였다.
‘…걱정할 것 없겠군.’
양호명은 그 모습을 일견했다.
그리고 마차의 후방을 향했다.
그곳에는 공손수, 파진성과 마찬가지로 월향과 마부 사내가 적들을 상대로 분투하고 있었다.
정면 승부가 주특기는 아니라곤 해도, 월향 역시 그럭저럭 하오문 수호대라는 이름값은 하는 듯했다.
또한 과묵하고 존재감이 옅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하오문의 마부사내 역시 도를 쓰는 실력이 퍽 수준급이었다.
역시 걱정할 것은 없다.
양호명은 다시 정면을 향했다.
“클클클,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굴더니 안 들어오고 뭘 하나? 이제 와서 목숨이 아까워졌나?”
“…….”
이 대 일의 상황.
다른 이들이 어떻게든 분투해서 무찌른다 해도 결국 승부는 이쪽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또한… 부하들이 일방적으로 죽어가고 있음에도 태연자약하다. 무언가 믿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걱정은 말거라. 내 네놈은 특별히 숨통을 붙여놓은 채 네 계집이 당하는 모습을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여줄 테니 말이야. 클클클!”
“…….”
말을 섞을 가치조차 없다.
탓, 양호명은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