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67)
172화. 괜찮지 않은 것
탓, 후우웅.
“카하핫! 곤죽이 되고 싶으냐?!”
양호명의 신형이 직선으로 파고들자 그 즉시 철괴의 곤봉이 휘둘러졌다.
우우웅.
봉의 끄트머리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불그스름한 강기가 맺혀있었다.
바람을 가르는 기세는 퍽 무시무시했다. 정면으로 부딪쳤다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허나.
훅.
봉이 다가오는 순간, 양호명은 그 즉시 허리를 숙였다. 파고드는 양호명의 머리 위로 봉이 스치고 지나갔다.
위력적이지만.
속도는 형편없다. 제힘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심지어는 이미 빗나간 이후에도 철괴는 휘두른 봉을 회수하지 못한 채 마구 빈틈을 드러냈다.
훅.
물론, 그냥 넘어가 줄 이유는 없다. 양호명의 검끝이 그 즉시 철괴의 몸통을 향해 파고들었다.
채앵.
“클클! 그렇게 놔둘 것 같나?”
허나 그때, 혈괴의 낫이 양호명의 검을 가로막았다. 양호명은 망설임 없이 검을 거두었다.
훅, 후욱.
그리고 사마귀의 발톱이 사냥감을 갉아내듯 한 쌍의 낫이 마구잡이로 휘둘러졌다.
역시 강기가 둘러져 있었다.
콰앙, 쾅!
양호명은 이리저리 피하는 한편, 강기를 일으켜 걷어내었다. 강기의 충돌이 몸에 누적되자 미간이 찌푸려졌다.
“…….”
두 자루의 낫.
허나 결국은 한 명의 인간에 의해 휘둘러지고 있을 뿐이다. 일순 양호명의 머릿속에 하나의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스윽.
사일검법이 그 선을 따랐다.
콰앙!
이내 검 한 자루와 두 자루의 낫이 얽혀들었다. 허나 튕겨 나간 것은 오히려 낫이었다.
“클클!”
“……!”
훙훙훙.
허나 그때였다.
두 자루 낫의 손잡이에 이어진 사슬이 검신을 칭칭 휘감았다. 꽉, 조여들었다.
일순, 검의 움직임이 봉쇄되었다.
후우웅.
“카하핫, 죽어라!”
그리고 마침내 한 바퀴 휘둘러진 철괴의 봉이 다시 돌아오며 양호명의 몸을 향했다.
“그렇군.”
양호명은 이해했다.
탓, 제자리에서 땅을 박찼다.
검을 놓치 않은 채 몸이 허공을 한 바퀴 회전했다. 후웅, 철괴의 봉이 또다시 빈 허공을 갈랐다.
“뭣이?!”
카가각, 채앵!
그리고 양호명의 몸이 회전하자 손에 쥐어진 검도 함께 회전했다. 사슬과 검신이 마찰하며 압박이 느슨해졌다.
훅, 탓.
양호명이 그 즉시 검을 회수했다.
동시에 발을 디뎌 몸을 빼내었다.
후욱.
“어딜 도망가느냣!”
그 즉시 사슬에 이어진 낫 한 자루가 독사처럼 날아들었다. 챙, 양호명은 검으로 쳐냈다.
휘리릭.
허나 그와 동시에 사슬이 다시 검을 휘감으려 했다. 양호명은 인상을 찌푸렸다.
‘성가시군.’
허나 이미 한 번 쳐냄으로써 위력이 꺾인 공격일 뿐이다. 퍼억, 양호명은 발로 낫을 쳐냈다.
서걱, 탓.
그리고 양호명은 착지했다.
“…쳇.”
종아리가 시큰했다.
쳐내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낫이 다리를 훑고 지나간 덕에 작은 생채기를 입었다.
훙훙훙, 덥석.
“클클! 제법 잽싸구나.”
그리고 다시 낫을 회수한 혈괴가 날에 맺힌 양호명의 핏방울을 핥았다.
“뭐, 나름대로 한 수는 있는 듯하다만… 네놈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내 다음 한 수로 기필코 그 다리를 잘라주지.”
쿠웅, 철괴가 땅을 찍었다.
“카하하핫! 물론 그 이전에 잘릴 팔다리가 형체라도 남아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
양호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나 서서히 표정이 바뀌어 갔다.
“핫. 하핫.”
그리고 양호명은 웃었다.
“호, 뭐가 우스운 거지? 이 와중에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이거 참, 싸우는 와중에도 그놈의 주둥이는 당최 멈추질 않는군. 입 다물고 싸우는 게 너희들에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뭐라?”
“대체 그런 삼류잡배에 걸맞은 대사들은 누가 가르쳐주나? 어디서 돈 내고 단체로 배워오기라도 하나?”
핫, 양호명이 다시 웃었다.
“실력이 허접하니 붙어 다니는 주제에 쌍괴 운운하며 의기양양한 꼴이라니, 우습기 짝이 없군.”
양호명은 생각했다.
파고드는 순간 봉이 기선을 제압하며, 다시 근거리에선 낫이, 장거리에선 사슬이 이쪽을 노린다.
대단할 것도 없는 수법이었다.
다루는 병기의 꼬락서니에서부터 예상했지만, 산적놈들이 그리 제대로 된 무공을 익혔을 거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허나 생각 이상으로 허접했다.
분명 힘이나 내력은 위력적이었으나… 기괴한 병기로 허점을 노림으로써 실력의 부족함을 메꾸는 것은 전형적인 삼류의 기법이다.
“네까짓 놈들이 어찌 절정에 이르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 누가 내력을 거저 내어주기라도 했나?”
“……!”
흠칫, 철혈쌍괴가 흔들렸다.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꽁무니 빠지게 도망친 주제에 입만 살았구나!”
“뭐, 간을 좀 봤을 뿐이다.”
슥, 양호명이 자세를 낮추었다.
“절정이란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유세를 떨 만한 경지는 아니다만… 그래도 네놈들 따위에게 허락될 힘은 아니지.”
우웅, 검이 잘게 진동했다.
양호명의 어깨가 한껏 젖혀졌다.
“격의 차이를 보여주지.”
“갈! 할 테면 해 보거라!”
탓, 양호명이 다시 달려들었다.
후욱, 일순 검신의 주위로 찬란한 빛무리가 일었다. 흡사 작은 태양과 같은 원형의 강기가 검신에 맺혀 들었다.
“카핫, 건방진 놈—!!”
후웅.
다시 철괴의 봉이 뻗어져 왔다.
허나 양호명은 피하지 않았다.
그대로 철괴의 봉을 향해 검을 마주 내뻗었다. 그 순간 원형의 강기가 미끄러지듯 검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쿠우우웅.
철괴의 거대한 무쇠 곤봉에 비하면 양호명의 검은 나뭇가지처럼 얄쌍했다.
허나 충돌의 순간, 바위가 쪼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양호명의 강기가 폭발했으며, 휘어진 것은 오히려 철괴의 봉이었다.
“커…억!”
철괴가 피를 내뿜었다.
힘에서 밀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듯, 그대로 균형이 무너지며 비척비척 뒤로 물러섰다.
탓.
“이, 이놈이—?!”
허나 양호명은 멈추지 않았다.
사일검법의 절초 후예사일(后羿射日)을 펼치자 심신이 꽤 뻐근해졌으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대뜸 혈괴에게로 파고들었다.
훙훙훙.
흠칫, 눈에 띄게 당황한 혈괴가 마구잡이로 낫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탓.
허나 그 순간, 양호명이 멈춰 섰다.
몸은 혈괴를 향하고 있었으나, 보법은 다른 쪽을 향했다. 양호명의 몸이 다시 철괴를 향해 쏘아졌다.
“아, 안 돼! 피해라, 철괴!”
“…컥, 커억!”
봉에 기대어 선 채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철괴가 그제서야 부랴부랴 움직이려 했다.
허나 이미 뻗어진 양호명의 검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대로 다시 한번 검이 파고들었다.
퍼어억.
“……!”
양호명의 검이 가슴을 관통했다.
허나… 그것은 철괴의 가슴이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의 몸통이었다. 부하 중 하나가 철괴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큭, 그르륵… 크륵!”
가슴을 관통당한 적이 두 팔을 앞세워 버둥거렸다. 즉사에 이를만한 상처임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이, 이게 무슨……?”
양호명은 당황했다.
가로막힌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몸을 꿰뚫는 순간 손에 와 닿은 감각은 사람의 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상대의 목은 이미 반쯤 벌어진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즉, 가슴이 꿰뚫리기 이전에 이미 일행에 의해 ‘죽은 적’이었다.
“가, 강시예요!”
그때, 공손수가 외쳤다.
“죽은 놈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어요! 눈이나 머리를 노려야 해요!”
“이런 시발, 또냐고! 케헤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험이 적지 않은 양호명이었으나, 살아있는 시체 따위를 접해본 적은 없었다.
일전에는 이벽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긴 했으나, 쉬이 와닿을 리는 없었다.
일순 양호명의 판단이 흐려졌다. 그것은 찰나의 빈틈이 되었고, 즉시 검을 거두지 못했다.
서걱.
그것이 실책이었다.
다음 순간, 혈괴의 낫이 양호명의 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불로 지진 듯한 고통이 일었다.
“…컥!”
“클클! 어리석은 놈 같으니!”
* * *
“그럼 다녀오마.”
“…하아.”
아버지가 말했다.
언미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등을 반복해서 보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이제는 헤아리기도 어려워졌다.
그것은 심마에 사로잡히기 이전에도 종종 찾아오던 꿈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매일 같은 일상이 되었다.
또한.
그 이유 역시 알고 있었다.
어긋나버린 자신의 마음이,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다시 돌이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의미 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붙잡으려 한들 붙잡힐 리 없다. 언미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꿈속에서조차.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언미희는 붙잡으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했다. 번번이 아버지는 떠나갔다.
“내 올 때에는 당과라도 잔뜩 사 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
아버지의 등은 매정했다.
문득 언미희는 화가 났다.
“아버지. 저 사람을 죽였어요.”
“…뭐라고?”
멈칫, 아버지의 등이 흔들렸다.
“물론 대부분은 죽어 마땅한 녀석들이었지만… 정파 무인의 피라고 해서 악적들과 색깔이 다르진 않더라구요.”
툭 던지듯 말이 내뱉어졌다.
“그날 이후로 자꾸만 생각이 꼬여 들어서… 내력도 꼬이고 손발도 점점 멍청해지고… 확 미치는 줄 알았어요, 정말.”
그리고.
언미희는 온몸을 붕대에 칭칭 감긴 채 자신에게로 주먹을 내뻗던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이제는 아예 내력이 말을 안 듣게 됐어요. 주변 동료들한테 민폐만 엄청나게 끼쳤고요.”
날 선 목소리가 이어졌다.
“알겠어요?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에요. 그딴 꼴이 될 거였으면 남의 일에 함부로 나서지나 말지 대체 뭐냐고요?”
“…….”
마침내 아버지가 돌아섰다.
아버지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뭐 할 말 있어요?”
언미희가 다시 쏘아붙였다.
허나 무언가 새로운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결국 꿈이며, 아버지는 환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안하구나.”
“…….”
“허나… 남들 눈에 바보 같아 보일수록 생각을 포기하지 않아야 비로소 정도(正道)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언제나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말은 쉽죠, 하아.”
언미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동네 무관주로 동네 코흘리개나 가르치면서 조용히 먹고 살았으면 아버지나 나나 이런 꼴이 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리고.
언미희는 한동안 원망과 푸념이 섞인 소리들을 마구 털어놨다. 그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랄 만큼 이기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괜찮으냐?”
문득 아버지가 물었다.
“……!”
그리고 언미희는 깨달았다.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재회’ 이래, 동료들은 괜찮으냐며 자신에게 몇 번이고 물어왔다. 그때마다 언미희는 괜찮다고밖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허나.
“…아뇨, 안 괜찮아요.”
사실 괜찮지 않았다.
모조리 지긋지긋했다.
정도 따윈 집어치우고, 모든 걸 잊어버리고, 동생의 일이나 가솔들에 대한 책임 따윈 모두 내던지고 이기적이 되고 싶다.
무관주의 딸로 돌아가고 싶다.
챙, 채앵.
그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
충돌음은 퍽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와 같았다. 허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산적놈들이 벌써 여기까지… 이젠 정말로 가봐야겠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그리고 딸아, 너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아니냐?”
“…맞아요. 산적을 잡아야죠.”
책임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손에 묻은 피를 지울 수는 없으며,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돌이킬 수도 없다. 다만.
지켜야 할 이들은 남아있다.
슥, 언미희는 얼굴을 훔쳤다.
“못된 소리 해서 죄송해요.”
“그래, 그럼 다녀오마. 올 때에는 당과라도 잔뜩 사 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당과는 필요 없어요.”
언미희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제 어린애가 아니에요. 아버지가 계셨다면 이미 계례를 치렀을 나이예요.”
“…벌써 그렇게 됐느냐?”
“네, 그니까 걱정 마세요.”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허나 마음은 퍽 시원해졌다.
언미희는 아버지에게 마구잡이로 투정을 부리는 가장 나약한 자신을 받아들였다.
언가권의 묘리는 나약한 신체를 벼리고 두드려 스스로 한 자루의 병장기로 거듭나는 것에 있다.
때문에 약한 소리를 해선 안 된다. 그런 강박에 의해 스스로를 다그쳤고 결국 금이 가고 말았다.
허나 나약함 역시 자기 자신이다.
그것은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또한 내 경험상… 일단 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나면 일어나는 건 혼자 힘으로는 잘 안 되는 것 같더군.
문득 이벽이 생각났다.
피식, 작은 웃음이 나왔다.
우웅.
그리고 단전 부근이 따뜻해졌다. 이제야 자신의 뜻을 알아주었냐며 투정을 부리는 듯했다.
“딸아.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이—”
“시끄러워요.”
“…….”
“아버지. 종희는 제가 어떻게든 낫게 할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도… 지금 천하 어느 곳에 계시건 제가 꼭 찾아서… 반드시 편하게 해드릴게요. 그니까.”
언미희는 못한 말을 뱉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언미희는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