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73)
178화. 잃어버린 물건 (1)
“…후우.”
이벽은 한숨을 내쉬었다.
피식,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왔다.
“터무니없구려.”
“허헛, 뭐가 말인가?”
“잃어버린 물건이니 뭐니… 노야께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퍽 벅차오. 허나.”
이벽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신은 이 절벽에서 또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는 모양이었다.
“천하의 독왕께서 떡을 먹여주신다는데… 이가 몇 개쯤 나가더라도 어떻게든 씹어 삼켜야겠지.”
이벽은 몇 번에 걸친 취풍신개의 훈수를 떠올렸다. 절대고수들의 가르침이란 대개 비슷한 방식을 취하는 모양이었다.
철컥, 이벽은 검을 넣었다.
그리고 발검의 자세를 취했다.
“어디 한 번 먹어보겠소.”
“좋은 마음가짐이네. 허헛!”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미소가 오고 갔다. 그리고.
훅.
당평세의 손이 움직였다.
그 즉시 몇 개의 암기가 소리 없이 이벽을 향했다. 우웅, 이벽은 그 즉시 강기를 일으켰다.
챙, 채앵!
허나 미처 상쇄되지 못한 충격이 이벽의 몸을 뒤로 밀려나게 피했다.
“이보게, 뒤는 절벽일세. 그렇게 쉽게 공간을 내어주어서야 목숨이 남아나겠나?”
“…그렇군.”
이벽은 이해했다. 역시 ‘땅에 붙어있는 힘’으로는 상대조차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훅.
그리고 다시 당평세의 소매가 흔들렸다. 그 순간, 일거에 수십 개의 암기가 빗줄기처럼 밀려들었다.
쩌저적.
이벽은 선천의 힘을 찢었다.
재차 목천의 영역을 일으켰다.
날아드는 암기들의 속도와 방향을 확인한 뒤, 이내 내력의 흐름을 만월무변심공으로 전환했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만월(滿月).
해는 채 지지 않았으나 만월의 강기가 떠올랐다. 후두둑, 쏘아진 암기들이 원 안으로 휘어졌다.
타앗.
그리고 이벽은 다시 청강유엽공을 일으켰다. 경신법을 펼치며 벌어진 빈틈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허나.
“……!”
채앵!
그 순간 이벽은 다시 밀려났다.
어느덧 새로운 암기들이 다시 빈틈을 메꿔버린 것이다.
“미안하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장난이나 칠 생각은 없네. 그 수는 이미 일전에 보여주지 않았나?”
“…….”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이식(拔劍第二式).
쾌검(快劍).
채앵!
이벽은 쾌검을 뻗었다. 그리고.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회검제이식(拔劍第二式).
변검(變劍).
챙, 채앵!
다시금 변검을 회수했다.
목천의 영역 속에서 청강유엽검식의 무리들이 연이어 번뜩였다. 암기들을 가까스로 쳐내었다.
허나.
후우욱.
이벽이 다시 세 번째 청강유엽검식을 뻗는 것보다 당평세의 남은 암기가 지척까지 파고드는 게 더 빨랐다.
‘…벗어나기엔 늦었다.’
탓.
이벽은 미련 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뒤에는 더 이상 땅이 없었으므로, 이벽의 몸은 다시 추락을 시작했다.
후우욱.
아래로 추락하며, 이벽은 암기들이 더 이상 쫓아 오지 않고 다시 되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타앙.
그 즉시 이벽은 다시 쾌보를 밟았다. 절벽의 표면을 딛고 힘껏 몸을 밀어 올렸다.
후욱, 이벽의 몸이 솟구쳤다.
취풍신개마냥 절벽을 걸어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어찌 되었건 쾌보가 있는 이상 추락을 두려워할 이유는—
“……!”
허나.
쐐애액, 채앵.
솟구침과 동시에, 이벽은 다시 암기에 가로막혔다. 암기들은 회수되지 않은 채 이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절벽은 피난처가 아니라네. 다시 말하네만, 독을 쓰지 않을 뿐 나는 꽤 진심으로 자네를 ‘죽일’ 생각이야.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 말일세.”
“……!”
당평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더는 웃음기가 섞여 있지 않다.
‘…죽는다.’
위기감이 바짝 조여들었다. 접전을 시작한 지 겨우 다섯 초식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챙, 채앵!
죽음의 위기를 직감한 순간, 이벽의 검끝에서 다시 청강유엽검식이 연달아 펼쳐졌다.
쾌검, 그리고 변검이 전방을 휩쓸며 목전까지 다다른 몇 자루의 암기를 가까스로 쳐내었다. 허나.
후우욱.
그러고도 남은 암기는 여전히 헤아리기 어려웠으며, 날아드는 속도조차 제각각이었다.
또한.
이벽의 몸은 여전히 허공에 머무른 채 땅을 딛지조차 못한 상태였다.
슈슉.
발디딤이 없는 검로는 불안하다.
이벽은 얼른 착지하려 했다. 허나 그 순간, 발밑에서 솟구치는 암기 다발을 발견했다.
“……!”
휘휙.
이벽이 황급히 보법을 밟았다.
청강유엽신법, 변의 묘리가 발끝에서 펼쳐졌다. 다리가 허공에 잔영을 남기며 솟구치는 암기들을 피했다.
그러나… 땅을 딛지 않은 보법과 경신법 역시 운신에 한계가 있다. 이내 살갗 위로 자잘한 상처가 스쳤다.
“…큭.”
슈욱.
그때, 설상가상으로 전방을 조여들던 암기들이 일제히 가속하며 날아들었다.
채앵!
피할 구멍은 어디에도 없다.
다급히 막아서는 한편, 이벽은 다시 절벽 바깥으로 물러서는 것 외에 남은 방법이 없음을 직감했다.
아니, 그러나.
‘…애초에 물러서선 안 됐다.’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쾌보를 믿고서 순순히 절벽으로 물러서는 것을 택했던 조금 전의 선택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떠밀어서 죽인다’고 하였다.
말인즉슨 몇 번을 기어 올라오건, 이벽의 발이 땅에 닿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또다시 물러선들… 결국은 같은 짓의 반복이 될 뿐이며, 그만큼의 체력과 심력을 소모할 뿐이다.
즉.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나마 힘이 남아있는 지금, 어떻게든 ‘파훼하는 것’이 최선이다.
“…핫.”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곤 해도 팔절구궁필법마저 막혀버린 이상, 파훼할 재간은 없었다. 즉,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다.
보기 좋게 걸려들고 말았다.
허나 물론, 죽어줄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마음은 오히려 가라앉았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전방에서, 발아래에서 암기들이 일거에 조여들었다.
훅, 챙, 채앵!
청강유엽검식.
청강유엽신법.
이내 같은 뿌리를 지닌 두 가지 무공이 이벽의 검과 발에서 동시에 펼쳐졌다.
직, 쾌, 강, 곡, 변, 유.
춤을 추듯 여섯 개의 묘리가 맥락도 없이 마구잡이로 펼쳐졌고, 검강에 밀려난 암기들이 우수수 추락했다.
허나.
슥, 서걱.
쳐내어진 것은 일부에 불과했다.
날벌레처럼 끝없이 주위를 맴도는 암기들 속에서 이벽의 몸은 빠르게 피투성이가 되었다.
치명상만큼은 피한다.
그저 그것이 최선이었다.
후두둑, 채앵!
그리고.
무아지경 속에서 십수 번의 초식이 폭풍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혹사된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듯 아려왔다.
서걱, 채앵.
다만 아직은 죽거나 의식을 잃지 않았으므로 이벽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
허나 문득, 위화감이 스쳤다.
몇 번의 초식을 펼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은 자명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벽은 쓰러지지 않았다.
한계는 올 듯 올 듯 오지 않았다.
생각과는 다르게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암기를 쳐내는 것이 수월해지고 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떻게든’ 따위가 아니다.
언제인가부터… 자신의 발은 당연하다는 듯 ‘허공에 머무르고’ 있었으며.
또한 자신의 검은 ‘청강유엽검식에서 어긋난’ 검로를 펼치고 있었다.
“…이건 무슨?”
욱신.
허나 그 순간, 두통이 일었다.
검의 움직임을 의식하자 무아지경이 깨어지며 암기를 상대하던 균형이 급격히 무너진 것이다.
후두둑, 채앵!
“컥……!”
그 즉시 암기 몇 자루가 이벽의 몸과 검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이벽의 몸이 충격으로 훅 밀려났다.
“뭘 하는 건가! 이 멍청한 놈!”
그때, 당평세가 일갈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게! 놓치지 말라고! 바로 그걸세! 집중하란 말이네!”
“……!”
충격에 밀려나는 한편, 이벽은 생각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깨달음이 무아지경 속에서 자신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허나.
‘…대체 뭐였나?’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일순, 검로가 멋대로 변화했다.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뿐인데, 그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채앵.
그때, 또다시 충돌이 일었다.
그리고 하릴없이 밀려난 이벽의 몸이 이내 절벽의 경계를 벗어나 다시 추락을 시작했다.
“하! 됐네! 한심하기 짝이 없군!”
당평세가 외쳤다.
“잘 가게, 그리고 다시는 올라오지 말게나! 적에게 희롱당하며 개죽음을 당하느니 그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네!”
“……!”
그리고.
추락하는 이벽의 눈에 무수한 암기들이 하늘을 빽빽이 뒤덮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야말로 만천(滿天)이었다.
우수수수.
또한 화우(花雨)처럼 내리꽂혔다.
* * *
휘오오오.
형언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목천의 영역에 의해 느려진 시간 속에서, 이벽은 쏟아지는 암기들을 올려다보았다.
천하십대고수란 자연재해와 같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신 역시 아래로 추락하고 있으므로, 당장은 저 비에 젖을 것을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 이전에.
‘지면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겠지.’
피식, 이벽은 웃었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쾌보를 통해 어떻게든 다시 솟구친다 해도… 저 소나기를 뚫고서 절벽 위로 올라설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즉.
위로 향하건 이대로 있건.
결국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다만… 당평세가 정말로 자신을 이렇게 죽게 놔둘 생각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독왕이었으나, 동시에 무려 오십 년 전의 은혜를 갚고자 자신을 권왕으로부터 구해준 의인이기도 하다.
아마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판단이 들었다. 허나.
저 암기의 비는… 이를테면 당평세가 이벽에게 제시하는 최소한의 자격 조건이었다.
즉, 이 상황을 스스로 살아남지 못한다면, 결코 이벽을 사패련으로 보내주지 않겠노라는 뜻이었다.
“…….”
이내 이벽은 생각에 잠겼다.
쏟아지는 하늘과 가까워지는 땅.
두 죽음의 사이에 끼인 채 이벽은 조금 전 무아지경 속에서 펼쳐진 초식들을 돌이켜보았다.
몸은 저절로 움직였었다.
감각도,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
허나… 당평세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즉, 지금의 자신에게 가능성이 있다면 오직 그뿐이다.
이벽은 차근히 되짚었다.
청강유엽검과 청강유엽신법.
위기의 순간, 이벽의 몸은 같은 무리에 근거하는 두 무공을 동시에 펼쳤다.
아니, ‘동시에 펼친 것’이 아니다.
시작은 분명 그와 같았으나… 앞서 신법과 보법이 하나로 거듭났듯, 이번에는 경신법과 검공이 하나로 거듭나는 듯했다.
무공과 무공 사이의 간극.
즉, 그렇다면 그것은 취풍신개가 말했던 ‘기예’의 일종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휘오오오.
생각은 그 이상 전진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이벽의 몸은 빠르게 추락하여, 어느덧 저 아래의 바닥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일순 초조함이 스쳤다.
허나 마음을 졸여본들 의미는 없다. 아래를 일견한 이벽이 다시 하늘을 향했다.
“……!”
움찔.
그때였다.
빽빽하게 하늘을 메운 암기의 폭우 속에서 이벽은 무언가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