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91)
197화. 흑천뇌왕 맹철극 (3)
콰앙, 콰아아아앙!!
흑천의 벼락이 이벽을 휩쓸었다.
뇌기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부와 모공을 타고 전신세맥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으며.
그 맹렬함은 앞서 맹철극과 공방을 나누며 간간이 흘려내던 뇌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파지지지직.
온몸이 터져나갈 것만 같다.
허나 동시에 이벽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뇌기는 마치 이벽의 몸을 그 자리에 못 박아둔 듯했으며.
콰콰콰콰아앙!
그로 인해 이벽은 제자리에서 몰아치는 뇌기를 몇 번이고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우우우웅.
선천의 힘이 울었다. 혈로를 내달리며 뇌기를 배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기실 그 힘이 아니었더라면 이벽은 진즉에 이미 한 줌의 새카만 재가 되어버렸을 터였다. 그러나.
파지지직.
어떻게든 배출한다 해도.
바로 다음 순간 벼락은 다시 떨어졌고, 뇌기는 비워둔 혈로 안으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콰아아아앙.
눈과 귀과 멀어버릴 것 같다.
벼락은 영겁과 같이 이어졌으며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이내 이벽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
허나 그때였다.
뿌옇게 가려진 이벽의 시야 너머로… 저만치에 앉은 누군가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것은 언미희였다.
맹종수를 비롯해 해남검파와 암영각의 인사들 사이에 앉은 그녀의 얼굴에는 이렇다할 표정이 없었다. 허나.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으며.
두 손에는 권갑이 끼어져 있었다.
—…확답은 안 할 거예요. 공자가 행여나 포기해버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부담을 줘야 하니까요.
역시 그녀에게는.
도망칠 생각 따위는 없어 보였다.
이벽의 의식이 번뜩였다. 죽지 않아야 할 이유는 그토록 많고 절실함에도 또다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벽은 분노했다.
그것은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음에도 잠깐이나마 최후를 떠올린 스스로를 향한 분노였다.
그리고.
후우우욱.
분노는 적파심공을 일으켰다.
잠들어있던 혈기가 눈을 떴다.
우우웅.
그러자 그 순간, 뇌기에 저항하기 위해 여념이 없던 선천의 힘이 얼른 반응했다.
그 즉시 쥐어짜듯 혈기를 북돋웠다.
우우우웅.
혼탁한 내력이 일어났다.
이내 한 움큼의 혈기가 혈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허나 물론, 이벽의 몸 안에는 이미 뇌기가 가득 들어찬 상태였다. 따라서.
콰아아앙.
뇌기와 혈기가 부딪혔다.
콰르르르르르!
이내 두 종류의 성난 기운이 이벽의 몸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영역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부르르르.
이벽의 몸이 경련했다.
두 기운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온몸이 조각조각으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의식을 맑게 만들었다.
꽈악.
이내 아주 조금이나마.
몸의 통제가 되돌아왔다.
이벽은 힘껏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벽은 강기를 일으켰다. 이내 범람하는 뇌기의 홍수를 뚫고서 내달린 혈기가 간신히 검에 이르렀다.
우우우웅.
붉은 강기가 일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또 한 번의 벼락이 떨어진 순간, 적파심공의 강기가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흩날렸다.
화아아악.
그리고 꽃이 피었다.
* * *
붉은 꽃, 그리고 푸른 꽃.
두 종류의 꽃이 흩날렸다.
혈기와 뇌기는 어느 쪽도 이벽의 몸을 잠식하지 못한 채, 각자의 색을 지닌 꽃으로 피어났다.
일순 장내는 꽃천지가 되었으며.
군중들의 시선은 어딜 향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멍하니 초점을 잃어버렸다.
타악.
그때였다.
뇌신처럼 줄곧 하늘에 떠 있던 맹철극이 마침내 지면으로 착지했다.
탓, 그 즉시 땅을 박차며 물러섰다. 흩날리는 꽃을 경계하듯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영원히 이어질 듯하던 흑천지뢰진의 벼락이 마침내 멈추었음을 군중들은 깨달았다.
휘오오오.
꽃잎들은 서서히 흐려졌다.
이내 잔상이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가려져 있던 비무대 위의 모습이 드러났다.
“…허, 허어.”
아니, 그러나 그곳에는.
더 이상 ‘비무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벼락에 짓이겨진 잿더미들, 그리고 파헤쳐지고 황토를 드러낸 땅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허나 가운데에.
이벽은 꼿꼿이 서 있었다.
무복은 터지고 찢어져 넝마가 되었으며, 검게 그슬린 모양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허나 재가 되지 않았고.
하물며 쓰러지지도 않았다.
“…쿨럭.”
마침내 이벽의 입이 열렸다.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었다.
허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슥, 왼팔로 입가의 피를 훔친 뒤, 마침내 이벽의 고개가 움직였다.
“…훌륭한 절기였소.”
맹철극을 향해 말했다.
“과연 흑천뇌왕이란 별호에 걸맞은 실력은 있으시군. 허나… 유감스럽게도 내 목은 아직 붙어 있는 것 같소.”
“…….”
맹철극은 답하지 않았다.
광서무림의 패자는 처음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여태껏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속에서, 마침내 이벽은 처음으로 맹철극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
퍽 청수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허나 안색은 창백했으며 눈은 붉었다.
거기에 더해 어떠한 감정도 찾아보기 힘든 냉막한 표정은 묘한 위화감을 자아냈다.
“…과묵함 또한 나쁘진 않소.”
저벅.
이벽은 한 걸음 나아갔다.
말할 것도 없이 혈로는 엉망진창이며, 어디가 어떻게 내상을 입었는지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공격이었으며, 낙검진천신공이 아니었다면 단전이 터져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벽의 단전은 이미 오래전 깨진 그릇이었기에 더는 새어나갈 내력이 없었으며.
우우우웅.
그 위로 청강유엽공이 흘렀다.
저벅.
이벽이 다시 한 걸음 나아갔다.
또한 이만한 절기를 쏟아낸 이상, 맹철극의 내력 역시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머리 위를 덮고 있는 먹구름은 조금 옅어져 있었으며, 맹철극이 굳이 허공을 포기하고 땅으로 내려온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저벅.
이벽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때까지도 맹철극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벅, 타아앙.
그리고 네 걸음째에서 마침내 이벽은 강기를 일으켰다. 그 즉시 몸을 날렸다.
후우욱.
그 순간, 다시 먹구름이 산산이 흩어지며 하강했다. 맹철극의 주변을 감싸며 호신강기가 되었다.
타앗. 콰아아아앙!
다시, 검과 도가 부딪혔다.
탕, 타앙, 콰아아앙!
‘…벼락을 방치해선 안 된다.’
이벽은 ‘교훈’을 되새겼다.
접전을 재개하는 한편, 맹철극의 온몸을 두른 호신강기를 바라보았다.
붙으면 호신강기가 되고.
거리를 두면 먹구름이 된다.
그야말로 공방일체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먹구름이 쏟아내는 벼락은 설령 피한다고 해도 대기에 축적되는 순간, 무시무시한 절초로 이어졌다.
두 번은 버텨낼 자신이 없다.
즉, 호신강기가 호신강기인 상태로 묶어둬야 하며, 섣불리 거리를 벌려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콰아앙, 콰아아아앙!
“…….”
허나 그것은.
다소 열세였던 접전을 다시 반복하는 꼴이기도 했다.
유검은 위력이 모자라 호신강기 너머의 몸을 상처 입히지 못하며, 강검은 속도가 모자라 도의 방어를 넘어서지 못한다.
‘…시간을 끌 수밖에 없는가.’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남은 방법은 어떻게든 근접전을 오래도록 끌어 상대의 내력이 바닥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허나.
낙검진천신공의 내력은 무한할지언정, 내상을 입은 상태에선 외려 자신이 먼저 무너질 수도 있다.
쾅, 콰아아아앙!
하물며 접전 때마다 다시 자잘한 뇌기가 혈로를 파고들려 했다. 퍽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이내 초식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벽은 상대를 꼼꼼히 살폈다.
허나 시커멓게 전신을 두른 호신강기에는 여전히 빈틈 따윈 없었다. 그것은 다소 과해 보일 정도였다.
“……!”
그 순간, 생각 하나가 번뜩였다.
말마따나 맹철극의 호신강기는 ‘지나칠 만큼’ 빈틈없이 온몸을 두르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이벽은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허나.
내력이 무한한 것이 아닌 이상.
전투를 치르는 내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강기로 두르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왜지?’
콰아아앙!
이벽은 자문했다. 수세에 몰리는 한편, 어떻게든 단서를 붙들고 생각을 이었다.
어쩌면 그 단서 속에는.
승패를 가를 수도 있는 결정적인 무언가가 숨어있으리라는 직감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면.
호신강기보다는… 차라리 그만한 힘을 공격에 집중하여 빠르게 적을 처리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예컨대 먹구름.’
지금과 같이.
도로써 상대를 견제하는 한편, 호신강기가 아닌 먹구름을 일으켜 머리 위로 벼락을 쏟아낸다면.
“…….”
그것은… 자신에게는 정말로 버텨내기 힘든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허나.
맹철극은 그리하지 않는다.
호신강기를 고집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콰아아앙!!
그때, 이벽의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재차 누적된 뇌기로 인해 초식이 늦은 것이다.
울컥, 목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훅.
이벽은 유의 묘리로 물러났다.
허나 이대로 거리를 벌린다면 맹철극은 다시 먹구름을 띄울 것이다. 고로 물러서선 안 된다.
“…….”
그러나.
다음 순간.
이벽은 마음을 바꾸었다.
탓, 표홀한 걸음으로 몸을 뒤로 빼내었고 이내 둘 사이에는 다시 이 장 가까이 거리가 벌어졌다.
그러자.
스으으으.
기다렸다는 듯, 맹철극의 호신강기는 다시 연기가 되어 날아올랐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
이벽은 생각했다.
맹철극이 필요 이상으로 호신강기에 집착하며, 또한 적과 충분히 거리가 벌렸을 때에만 구름을 피우는 것은.
어쩌면… 적의 공격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뇌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뇌기란.
직접 몸으로 겪어본바, 본질적으로 패도적이며 가능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성질을 지닌 기운이었다.
그렇기에 흑천방의 무공은 그저 병장기의 접촉만으로도 적의 혈로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다.
허나 그것은 또한.
뇌기를 익히고 다루는 본인에게도 결코 호락호락하게 다스려지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성은 있을 테다.
허나 돌이켜보면, 이벽이 지닌 선천의 힘은 무려 독왕 당평세의 내독마저 어느 정도 해독해내는 신위를 보였다.
그런 선천의 힘마저 맹철극의 뇌기를 상대하여 몸 밖으로 빼내는 것은 퍽 힘에 부치는 듯했다.
그 정도의 기운이라면.
일신의 무공이 ‘하늘’에 이르지 못한 이상, 자칫 본인을 위협하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물론, 그것은 추측에 불과했다.
허나 이벽은 심증을 사실로 받아들였으며, 이내 그 사실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어갈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물론 공자의 스승에 비하면야 말 그대로 잔재주지만요. 그래도 어쩌면… 흑천방의 무공을 상대할 때에는 퍽 유용할지도 몰라요.
불현듯 초연서를 떠올렸다.
칠독문을 멸문시킨 다음 날, 산장에서 그가 건네주었던 팔절구궁필법의 ‘기예’가 떠올랐으며.
또한 어젯밤 언미희와의 비무를 마치고 처소로 돌아가던 길에 스쳤던 깨달음이 함께 스쳤다.
쿠르릉, 쿠릉.
이내 먹구름이 다시 굉음을 토해내었다.
허나 이벽의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마침내… 이 지긋지긋한 싸움의 끝이 눈앞에 그려졌다.
콰앙, 콰아아앙!
그리고.
다시 벼락이 내려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