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94)
200화. 의무 이행
“…….”
언미희의 눈이 흔들렸다.
무너진 땅의 구멍 위로 솟구친 사내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안면을 포함해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나.
알아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연마된 강철처럼 빈틈없는 신체.
그리고 맹종수를 날려버린 일련의 동작과 착지 후, 제자리에 서 있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선명했다.
사내는 그녀가 가장 보고 싶던 사람임과 동시에… 가장 외면하고 싶던 악몽이기도 했다.
“…아버지.”
언미희가 말했다.
그리고 강시들의 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장내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순간, 언미희의 눈과 귀에는 오직 아버지의 모습과 기척만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아니, 그러나.
언미희는 고개를 저었다.
‘저것’은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며, 아버지가 남기고 간 유해에 불과하다. 그리고.
바라던 바였다.
저것의 안에는 더 이상 아버지가 없지만, 어찌 되었건 저 몸이 더는 누구에게도 이용당하지 않도록 돕는 것은 자신의 의무였으므로.
찾아다닐 수고를 덜었다.
그뿐이었다.
“…편하게 해드릴게요.”
저벅.
마침내 언미희가 발을 뗐다.
‘그것’은 마치 누구도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듯, 가만히 구멍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허나.
언미희는 그 안에 용건이 있었다.
이벽을 도우러 가야만 하는 것이다. 즉, 그녀의 두 가지 의무는 이 순간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타앗.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내 언미희가 땅을 박찼다.
우우웅.
표홀하게 거리를 좁히는 언미희의 권갑이 잘게 떨었다. 희미한 빛을 머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신형이 일정 거리까지 다가선 순간, 마침내 그것이 반응했다.
콰아아앙—!!
권갑과 맨주먹이 부딪혔다.
“……!”
언미희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단 일 합만으로 열세를 직감했다.
강기조차도 맨몸으로 버텨내는 육체의 견고함은 물론, 지닌바 내력에서마저 밀리고 있다.
탓.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의 하체가 슬쩍 무릎을 굽혔다. 쉬이 알아챌 수 없는 동작이었다.
허나 언미희는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의 동작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그녀에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욱.
그것의 무릎이 차올려졌다.
허공을 두드리는 데 그쳤다.
그 순간, 공격을 예측한 언미희의 몸은 이미 지면을 박차 오른 후였다. 그리고.
쾅, 콰앙! 쾅—!!
날아오른 언미희의 권각이 그것의 몸을 마구잡이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력도, 신체도 열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콰아앙, 콰앙!!
언미희는 동요하지 않았다.
움직임은 같은 언가권이었으나.
언미희는 그것의 움직임을 전부 읽을 수 있는 반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므로 그렇지 못할 것이었다.
콰앙, 쾅, 콰앙!!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퍽 일방적인 난타가 이어졌다.
강기가 서린 공격에 계속해서 노출되자 그곳의 몸 곳곳이 움푹 패여 들었고 손발이 엉켜 들었다.
후우욱.
간간이 반격이 날아들기도 했다.
붉은 강기가 맴도는 주먹은 무거웠으며, 일권 일권이 모두 치명타가 될만한 것이었다.
허나 언미희는 모두 피했다.
뻣뻣하기 짝이 없는 데다 경로를 모두 아는 공격을 피하지 못할 이유 따윈 없다.
그리고.
‘머리를… 쳐야 한다.’
언미희는 살아있는 시신을 다시 눕히는 방법을 떠올렸다.
이내 그것의 손발이 엉켜든 순간.
콰아앙—!!
마침내 언미희의 권갑이 그것의 안면을 두드렸다. 허나 위력은 모자랐고, 머리는 파괴되지 않았다.
비틀.
다만 충격이 없지는 않은 듯 그것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한 번으로 안 된다면.
몇 번이고 때려 박으면 된다.
타앗.
빈틈을 타 언미희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한 바퀴 돈 뒤, 회전과 무게를 다리에 실었다.
언가권(彦家拳), 유성추(流星錘).
쐐애액.
언미희의 발꿈치가 내려찍어졌다.
허나 그 순간, 언미희의 눈이 그것의 눈과 마주쳤다. 좀 전의 타격으로 찢어진 붕대 사이 드러난 그것의 눈은 붉었으나.
—다녀오마.
눈매는 부드러웠다.
“……!”
한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초식이 반 박자 늦어졌다.
퍼어어억!!
그 순간, 그것이 두 팔을 교차하며 머리를 가렸다. 유성추의 초식을 막아내었다.
스윽.
그리고.
그대로 그 힘을 빌려 상체가 뒤로 기울어졌다. 동시에 하체의 무릎이 위로 차올려졌다.
퍼어억.
“…컥!”
등을 적중당했다.
언미희의 몸이 활처럼 휘어지며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허나 이를 악물며 얼른 몸을 가누었다.
넋을 놓으면.
당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황급히 아래를 확인했다.
후우욱.
그리고 어느새 그것의 두 팔이 뱀처럼 서로 엉켜들며 자신에게로 쇄도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쌍룡철편!’
언미희의 눈이 커졌다.
저 초식에 적중당하면 끝이다.
허나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언가권(彦家拳), 개갑(鎧甲).
언미희는 두 팔로 가슴을 감쌌다. 그리고 그 위로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퍼어어억.
“커헉……!”
이내 초식이 적중했다.
개갑의 강기가 물고기의 비늘처럼 산산이 흩어졌고, 언미희의 몸이 훅 밀려났다.
울컥, 핏물이 솟구쳤다.
온몸의 내장이 진탕되는 듯했다.
치이익.
허나 언미희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허공을 한 바퀴 돈 뒤, 그대로 땅을 끌며 멈춰 섰다.
‘…공세를 빼앗겨선 안 돼!’
타앙.
핏물을 도로 삼키며 다시 땅을 박찼다. 정권과 함께 우측 반신이 정면으로 뻗어졌다.
언가권(彦家拳), 골타(骨朶).
허나.
“……!”
충돌 직전, 그것이 움직였다.
타앙, 일 보 앞으로 나서며 우측 반신을 뻗는다. 그것은 언미희와 완벽히 똑같은 초식이었다.
콰아아아앙.
다시, 권갑과 맨주먹이 부딪혔다.
콰장창.
언미희가 다시 밀려났다. 이번에는 두 발로 착지하지 못한 채 하릴없이 땅을 뒹굴었다. 그리고.
“크윽……!”
아찔한 고통이 엄습했다.
언미희는 오른팔을 확인했다.
뼈가 으스러진 팔은 넝마가 되었으며… 산산조각 난 권갑의 파편이 곳곳에 틀어박혀 있었다.
* * *
카앙, 카아앙!
“크… 으아아악! 사, 살려……!”
“이익! 정신 차리지 않고 뭘 하느냐! 내 눈을 노리라 하지 않았느냐!”
강시와 사파 무인들의 접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낯설고 섬뜩한 적들의 모습에 한껏 위축됐던 처음과는 달리, 약점을 알아내자 싸움은 그럭저럭 팽팽해졌다.
허나 강기가 아니고서는 그 몸을 베어낼 수 없으므로, 일류 이하의 제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몇몇의 절정고수들은 자파의 제자들을 지키고자 동분서주했다.
즉.
어느 누구도 언미희를 도와줄 여력은 없었으며, 언미희 역시 할 일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스윽.
언미희는 다시 일어섰다.
‘그것’은 거리가 멀어지자 굳이 언미희를 추격해오지 않았다. 여전히 구멍을 지키는 모양새였다.
“…….”
분명 강하다.
언미희는 생각했다.
허나… 그 강함은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강함과는 전혀 달랐다. 아버지의 강함은 ‘고작해야’ 이런 게 아니었다.
언가의 무공은 스스로의 신체를 단련하여 하나의 병장기로 거듭나는 데에 그 묘리를 둔다. 허나.
그렇게 단련한 병장기를.
아버지는 빼앗기고 말았으며, 다른 누군가의 손에 휘둘러지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허나 그러므로.
그저 단단할 뿐 부드러움을 모르며, 부드러움을 모르는 것은 결국 부러지게 되어있다.
저벅.
언미희는 다시 나아갔다.
한순간의 나약한 마음으로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결과적으로 오른팔을 못 쓰게 되고 말았다.
허나 팔 하나쯤은 문제없다.
아직 왼팔이 남아있으며, 심지어는 왼팔마저 당한다고 해도 공격수단은 수없이 많다.
실수에도 불구하고.
언미희는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았다. 새삼 나약한 자기 자신을 받아들였다.
부드러움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우우웅.
문득 언미희는 기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상처는 고통스러웠고,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허나 어째서인지.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동시에 그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짐작했다.
그것은 어쩌면.
일찍이 마교와의 전쟁에서 불타버린 본가와 함께 소실된 언가권의 정수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
하지만 어째서.
오십 년도 더 전에 소실된 구결이 이제 와서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지 의문이 들었다.
허나 이내 그 의문도 곧 해결되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주화입마의 상태로 남궁세가에서 구해지고, 소환단을 복용하고서 이벽으로부터 추궁과혈을 받았다.
그때.
이벽의 기운은 자신의 몸 안을 거침없이 나아갔고, 무의식 속에서 자신조차 모르던 언가심법과 언가권의 경로를 비추어주었다.
그것은 물론, 놀라운 일이었다.
“…….”
허나 언미희는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타앙.
그리고 땅을 박찼다.
상대는 강하다. 허나.
두려운 마음은 사라졌다.
꼿꼿이 서 있는 상대의 모습은 마치 겉으로 단단해지는 것에만 집착하다 부러져버린 얼마 전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
허나 이제는 다르다.
꺾일지라도 부러지지는 않는다.
‘외강내유(外强內柔).’
근래의 화두를 다시금 되새겼다.
우우웅.
그리고 그 순간.
언미희는 현기증을 느꼈다. 마치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언가권(彦家拳), 골타(骨朶).
느려진 시간 속에서.
언미희는 남은 왼팔로 다시 한번 같은 초식을 펼쳤고.
후욱.
이내 그것도 같은 초식을 펼쳤다.
콰아아아앙.
“…….”
역시나 힘은 모자랐다.
오른팔과 마찬가지로 언미희의 왼쪽 권갑마저 산산이 부서졌으며, 그 안에 감싸여있던 왼팔 역시 으스러졌다. 허나.
우드득.
혼자만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 순간, 그것의 팔 안쪽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콰득, 콰드득, 그리고 이상한 각도로 마구 꺾여 들기 시작했다.
발경(發勁)의 묘리.
부드러움은 일 점으로 힘을 모으며, 단단한 껍질을 넘어 적의 몸 안으로 침투시킨다.
훅.
언미희가 더욱 파고들었다.
두 팔이 모두 부러졌으므로 무릎 차기가 들어갔다. 그것이 황급히 남은 팔로 공격을 막으려 했다.
터억.
그리고 허무하게 막혔다.
허나 언미희는 개의치 않았다.
본래부터 허초였기 때문이었다.
타앗.
오히려 언미희는 그 상태로 그것의 팔을 짓밟고 다시 솟구쳤다. 그리고 마침내 같은 눈높이에서 그것의 눈을 다시 마주했다.
“…….”
인사라면 이미 나누었으므로 반복할 필요는 없다. 훅, 언미희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리고.
뻐어어어억.
이마와 이마가 부딪혔다.
그리고 동시에, 충격을 타고 발경의 기운이 언미희에게서 그것에게로 재차 흘러 들어갔다.
울컥.
이마를 넘어 안쪽에 닿았다.
그것의 붉은 눈이 흐릿해졌다.
타앗, 휘청.
착지한 언미희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허나 바로 다음 순간, 그것의 몸이 옆으로 스르륵 무너졌다.
털썩.
그리고 마침내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