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93)
199화. 혈마
후두둑, 콰앙!
이벽과 맹철극이 함께 추락했다.
무너진 땅 아래로 나타난 어둠은 깊었으며, 한참을 떨어져도 좀처럼 바닥이 나타나지 않았다.
퍼억, 퍽.
“크……!”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추락하는 내내 벽면의 돌출부 따위에 마구잡이로 몸이 부딪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좋지 않다.’
아래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건.
적의 의도에 놀아나서 좋을 리 없다. 고로 맹철극을 떨쳐내고 다시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꽈아악.
허나 맹철극의 시신은 애병인 도까지 어딘가로 내팽개친 채 두 팔로 이벽을 붙들고서 놔주려 하지 않았다.
파지직.
또한 그러한 맹철극의 두 손에서는 지속적으로 뇌기가 분출되어 이벽에게 스며들었다.
그리 강한 힘은 아니었다.
남은 힘을 쥐어짜는 듯했다.
강시이건 뭐건, 내력을 지닌 존재인 이상 하단전과 상단전의 통로에 해당하는 심장을 꿰뚫리고도 기력이 멀쩡할 리는 없다.
“크……!”
허나 심신이 엉망진창인 것은 이벽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미약한 뇌기만으로도 내력의 흐름이 툭툭 끊어졌다.
후우욱.
이벽은 애써 집중을 그러모았다.
적파심공을 일으켰고, 이내 혈기가 일어나며 혈로를 돌기 시작했다.
파직, 우우웅.
뇌기를 밀쳐낸 혈기가 검으로 향했고, 이내 붉은 강기를 형성했다.
퍼어엉.
적파심공의 강기가 폭발했다.
퍼퍼퍽!
강기의 파편들이 맹철극의 등을 마구잡이로 두드렸다. 허나 살갗을 파고들지는 못했다.
호신강기 따위가 없어도.
강시의 몸은 금강불괴와 같다.
그것은 일찍이 진량현 개방 분타에서 상대했던 ‘언미희의 아버지’와 같은 감각이었다.
타악.
허나 상처가 없어도 충격은 있었고, 일순 맹철극의 손아귀가 느슨해졌다.
그 순간 이벽은 온 힘을 다해 뿌리쳤다. 맹철극을 떨쳐내는 데 성공했다.
후우우욱.
그리고 즉시 벽면에 칼을 꽂아 추락을 멈추려 했다. 허나.
버둥버둥.
그때, 맹철극의 손이 뻗어졌다. 어떻게든 이벽을 다시 붙들려는 듯 허공을 마구 허우적댔다.
“…질리는군.”
그 볼품없는 동작은 맹철극의 일신이 지니고 있던 무위를 생각하면 퍽 안타까울 정도였다.
마치 마지막 몸부림과 같다.
캉, 카앙, 카앙!
허나 어찌 되었건 순순히 붙들릴 순 없으므로 이벽은 검을 뻗어 상대했다.
고로 추락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한 명의 사람과 한 구의 시체는 충돌을 거듭하는 한편 계속해서 아래를 향해 떨어졌으며.
“……!”
마침내 저만치 아래에 희미한 불빛이 보인 순간,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후우욱.
착지 직전, 내력을 휘었다.
다시 청강유엽공을 일으켰다.
타아앙.
그리고 이벽의 몸이 착지했다.
휘청, 경신법 유의 묘리로 충격을 줄였음에도 한순간 몸은 휘청였다.
혹사된 몸이 으스러지는 듯했다. 물론, 떨어진 높이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반면, 맹철극의 몸은 어떠한 경신법도 묘리도 없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그리고.
움찔움찔.
굉음과 함께 널브러진 몸이 작게 경련했다. 손끝이 이벽을 향했으나 결국 그마저도 축 늘어졌다.
“…….”
이벽은 맹철극을 일견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간은 퍽 넓었다. 당연하게도 인위적인 땅굴이었으며, 곳곳에 걸린 횃불이 시야를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냄새.’
죽음을 닮은 악취는… 역시 참사가 있었던 그때의 개방 분타에서 맡았던 것과 같았다.
덜컹.
그때였다.
“비, 비룡대주……?”
인기척과 함께 누군가가 쉬어빠진 목소리를 내었고, 이벽은 그 즉시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에는 뇌옥(牢獄)이 있었다.
그리고 창살 안에는 넝마가 된 인영 서넛이 널브러져 있었다. 걔 중 하나가 창살을 붙든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덜컹, 덜컹.
“어, 어찌… 당신이 여기에……?!”
“…나를 아시오?”
“아… 알다마다! 나… 나는 사패련주님의 호위요! 일전에 뵈었지 않소!”
“……!”
‘사패련주’란.
물론 맹철극이 아닌 혁군악을 가리키는 말일 테다. 이벽은 사내에게로 다가서려 했다.
허나.
후욱, 퍽.
“커… 커헉!”
어둠 속에서 암기가 날아들었고.
창살 사이로 매달린 사내의 목울대를 파고들었다. 풀썩, 사내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
저벅, 이벽은 물러섰다.
암기가 날아든 방향을 주시했다.
“쯧, 별것도 아닌 녀석이 쓸데없이 명줄은 길어 가지고 시끄럽게 하는구먼.”
저벅.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목소리와 함께 인영 하나가 걸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이내 그 모습이 발끝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드러났다.
“훌륭하네 비룡대주, 헐헐!”
마침내 ‘인영’이 말했다.
* * *
“마음 같아선 내 손뼉이라도 쳐주고 싶지만… ‘새로 붙인 팔’이 아직은 영 어색해서 말이네.”
“……!”
사내의 얼굴이 횃불에 비쳤다.
당연하다는 듯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벽은 중년 사내의 이름을 떠올렸다.
‘맹상태.’
그는 사흘 전 사패련의 문 앞에서 이벽을 맞이했으나 이벽에 의해 오른팔을 잘린 사내였다.
허나.
오른팔은 거짓말처럼 붙어 있었다.
또한 퍽 냉막하던 인상에는 미소가 감돌고 있었으나, 오히려 기괴하게 느껴졌다.
“…….”
이벽은 침묵에 잠겼다.
그 사이 맹상태의 시선이 움직였다. 흘끗, 땅에 널브러진 맹철극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쯧.”
맹상태가 혀를 찼다.
“정말 공들여서 만든 녀석인데… 너무 심하게 망가졌구만. 고치는 데 상당히 힘이 들겠어. 아니면 영영 못 고칠지도.”
“…….”
그것은 물론.
흑천방의 당주라던 자가 흑천방주를 상대로 입에 담을만한 말은 아니었다.
“당신… 누구지?”
이벽이 물었다.
물론 사내는 맹상태였으나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맹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냐라… 글쎄, 그건 섣불리 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구먼. 허허!”
사내가 다시 웃었다.
“나는 이름이 좀 많다네. 물론 맹상태이기도 하고, 혹은 녹림왕이기도 하지. 물론, 원래부터가 내 것은 아니고 대부분은 원주인을 죽이고 빼앗은 이름이네만.”
“…….”
“뭐, 한 삼 년 전부터는 주로 흑천방주 맹철극의 이름과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었지. 그러다 보니 늙은이 말투가 입에 배어버렸지 뭔가? 허헛!”
‘…삼 년.’
이벽은 쓰러진 맹철극을 바라보았다. 광서무림의 패자가 죽고 ‘육신’과 ‘이름’을 모두 빼앗긴 것은 이미 퍽 오래전 일이었던 모양이다. 또한.
삼 년이란 시간은.
일찍이 패왕가가 갑작스레 봉문을 선언하고 외부활동을 중단했던 기간과 일치하기도 했다.
“당신은… 혈마로군.”
이벽이 말했다.
일찍이 초연서와의 대화를 통해 녹림의 배후에 흑천방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흑천방주 맹철극이 곧 ‘혈마’이리라는 심증을 굳혔으나.
그것은 섣부른 확신이었으며, 그 역시 피해자이자 죽어서도 이용당하는 장기 말에 불과했던 듯했다.
“허헛.”
맹상태가 다시 웃었다.
“혈마라…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만. 개인적으로는 ‘명왕’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군.”
“…핫.”
잠깐의 침묵.
그리고 이벽은 웃었다.
“일개 마두 주제에 거창하기도 하군. 설마 진짜로 스스로가 명계의 왕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허어?”
철컥, 이벽은 검을 쥐었다.
“정히 그렇다면… 속히 저세상으로 보내드리는 게 오히려 당신을 위한 일이 되겠군.”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심신은 넝마가 되었고, 이제 와 다시 싸운다고 해도 내력을 얼마나 긁어낼 수 있을지는 퍽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달라질 것은 없다.
흑천방과 녹림, 혈교.
신 사패련을 홀로 상대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 어떤 변수가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패왕의 길이란.
변수에 꺾이지 않는다.
이벽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우웅.
선천의 힘이 잘게 울었다.
“…아, 미안하네만.”
허나 맹상태가 손을 내저었다.
“난 일방적으로 죽이는 건 좋아해도… 성가신 난적과 손을 섞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이네.”
“…뭐 어쩌잔 거지?”
“어쩌긴 뭘 어쩌겠나? 그러니 나 대신 싸워줄 이를 내세우겠단 뜻이네.”
흘끗, 맹상태가 맹철극을 곁눈질했다.
“자네 탓에 가장 아끼던 칼 중 하나가 저 꼴이 되긴 했네만, 다행히도 지금 막 ‘새로운 칼’이 완성된 찰나라서 말일세.”
“……!”
쿠웅.
그리고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다시 새로운 인영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체구는 산과 같았으며.
발소리는 짐승처럼 무거웠다.
“내 일생일대의 걸작이라네.”
쿠웅. 쿠웅.
그 순간.
이벽의 마음속에 먹물 같은 불안함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서서히 번져가며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
안색이 창백했으며, 눈은 붉었다.
허나 그럼에도 알아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낙검문에서 함께 지냈던 자신의 사형을 너무도 빼닮아있었다.
“…련주님.”
맹철극에게 목이 잘렸다던 패왕 혁군악이었다.
* * *
웅성웅성.
장내에는 소란이 일었다.
아니, 그것은 소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에 가까웠다. 그리고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리는 아니었다.
심장을 꿰뚫리고 죽은 맹철극이 다시 일어나 비룡대주를 끌고 땅속의 구멍으로 떨어졌다.
쉬이 받아들여질 리 없다.
벌떡.
이내 참다못한 언미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즉시 뛰쳐나가려 했다. 허나.
“멈추시오, 소저.”
팔 하나가 가로막았다.
암영각의 동촌장 목일령이었다.
“심정은 알겠소만… 신 사패련주가 다시 일어선 이상 비룡대주의 승부는 아직 끝난 게 아니오.”
“승부라고요?! 아뇨, 맹철극은 이미 죽었어요! 조금 전 그건 분명 강시였다구요!”
“…‘증명’할 수 있소?”
“……!”
“사파 전역에서 몰려든 군웅들 앞에서 흑천방의 배후에 사교집단이 있고, 죽은 맹철극은 그저 조종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소?”
언미희의 말문이 막혔다.
이미 이와 같은 형국에서 말뿐인 증명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힘의 논리이며.
증명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때문에 결국, 그 모든 것을 아우를 패왕의 힘을 증명해야만 하는 이벽의 승부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공자.’
언미희는 이를 갈았다.
저 깊은 어둠 속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 이건 대체…….”
그때, 나란히 앉아있던 묵룡당주 맹종수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언미희는 그 즉시 달려들었다.
덥석, 맹종수의 멱살을 잡았다.
“말해요!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당신 흑천방이잖아! 다 한 패거리잖아!”
“그… 그럴 리 없어…. 말도 안 돼… 바, 방주께서…. 대체 언제부터… 어째서……?”
허나.
맹종수는 이미 어느 누구보다도 넋이 나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미희가 멱살을 쥐고 흔들자 그대로 저항조차 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콰아앙, 콰아아앙!
“……?!”
그리고 그때였다.
마치 혼란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폭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무, 물러서라! 발밑을 주의해라!”
언미희는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군중들이 자리하고 있던 사이사이로 새로운 ‘구멍’들이 뚫렸음을 확인했다.
물론, 군중들은 모두 각지에서 파견된 사파의 고수들이었으므로 누구도 발을 헛디뎌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허나 그 구멍들은.
‘떨어뜨리기 위한’ 구멍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내보내기 위한’ 구멍임이 곧 밝혀졌다.
타악, 끼기긱.
각각의 구멍 바깥으로.
몇 개의 인영들이 기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허나 그 인영들의 몰골은 척 보기에도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끼기긱. 카앙!
이내 지상 위로 올라온 강시들이 움직였다. 주변의 군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앙, 카앙!
“으, 으아악! 뭐야 이것들은?!”
“크… 크윽! 적습이다—!!”
혼란이 감돌던 장내는.
마침내 아수라장이 되었다.
타앗.
“비… 비켜어!!”
그때였다.
여전히 언미희에게 멱살을 붙들린 채 망연자실해 있던 맹종수가 돌연 땅을 박찼다.
후욱.
그리고 허공을 가른 신형이 그대로 이벽과 맹철극이 사라진 구멍을 향했다.
타앗.
“…이익!”
언미희가 한발 늦게 뒤따랐다.
먼저 움직인 것은 맹종수이므로 그가 만일 승부에 개입한다면 자신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퍼어억.
“커… 커억!”
허나 그때였다.
맹종수가 구멍 안으로 뛰어들려던 순간, 그 아래에서 인영 하나가 솟구쳤으며, 일격을 허용한 맹종수의 몸이 도로 날아올랐다.
“윽… 우웨엑!”
그리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일찍이 그는 흑천방의 이인자라고 알려졌던 사내였으나, 단 일수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
언미희는 구멍 위로 올라선 인영을 확인했다. 그는 이벽도, 맹철극도 아니었다.
그것은.
붕대로 온몸을 감은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