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98)
204화. 형제 싸움
퍼어억.
검집에 담긴 검과 봉이 부딪혔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이벽은 회전을 시작하는 혁대웅의 봉을 향해 연신 검격을 퍼부었다.
내력을 쓰지 않는다. 고로.
이벽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검의 종류는 다시 청강검식 하나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허나.
퍽, 퍼어억.
“하핫.”
이벽은 웃었다.
내력을 쓰지 않는다 해도.
심, 기, 체의 조화 속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단련되기를 거듭한 이벽의 신체는 이미 예전과는 비할 수 없었다.
훙훙훙.
“컥… 뭐야? 왜 이리 세?!”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과거, 강의 묘리를 담아야 간신히 동수를 이루었던 혁대웅의 완력을 상대로 이벽은 여유롭게 우위를 점했다.
훙훙훙, 퍼어억!
“벼, 벽아 이거… 진짜로 내력 안 쓰는 거 맞아?! 헉, 예전에는 적어도 힘은 나보다 약했잖아?!”
“…기연이 좀 있었다.”
“그, 그놈의 기연은 왜 맨날 너한테만 있대?!”
혁대웅이 우는소리를 했다.
허나 하는 말과는 달리 혁대웅의 회전 역시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패왕의 무공이며.
회전을 거듭할수록 그에 담긴 위력은 끝도 없이 축적될 것임을 이벽은 이미 알고 있었다.
퍽, 퍼억.
고로 이벽은 맥을 끊었다.
폭포수 같은 물레바퀴의 흐름에 지속적으로 구멍을 뚫었으며, 이내 회전은 점점 위태로워졌다.
“으악, 안 되겠다! 살려줘, 사저!”
“…하아. 십초 정도는 버티라고.”
혁대웅이 외치자 제갈소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툭, 어느새 저만치로 멀어져 있던 그녀의 발끝이 튀어나온 돌부리를 가볍게 걷어찼다.
욱씬.
그 순간 이벽은 현기증을 느꼈다.
마주한 혁대웅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제갈소미의 ‘진법’이 발동된 것이었다.
“으… 하앗!”
퍼어억.
그리고 그 순간.
봉끝이 힘껏 검을 밀쳐냈다.
저벅, 이벽은 한 걸음 밀려났다.
훙훙.
그리고 혁대웅의 봉이 부랴부랴 다시 회전했다. 힘을 끌어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
퍼어억.
이벽은 다시 전진했다.
그리고 재차 봉에 밀려났다.
진법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또한.
지난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진법에 대처하는 요령 역시 어느 정도 터득한 상태였다.
퍼어억.
어떻게든 공세를 버텨내며.
손과 눈과 귀로 전해지는 왜곡된 감각들을 유심히 헤아린 뒤,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몸으로 판단하면 그만인 것이다.
퍼억, 퍼어억.
이벽은 다가서고 밀려나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어긋난 감각의 정도를 가늠했다. 그리고.
퍽, 퍼억.
불과 십여 초도 지나지 않아.
이벽의 검은 서서히 날카로움을 되찾기 시작했다.
“…쳇, 여전히 괴물 같기는.”
제갈소미가 혀를 찼다.
후웅.
“차핫, 광참(廣斬)!”
허나 그때 혁대웅이 봉을 뻗었다.
그것은 더 이상 궁여지책 따위가 아닌,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이벽이 감을 찾는 사이 충분한 회전력을 모은 것이다.
“……!”
콰아앙.
이벽은 다시 밀려났다.
그것은 여전히 내력 없이 펼쳐진 초식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위력이었다.
타앗.
이벽은 다시 땅을 박찼다.
차차창.
마침내 진법의 영향에 완전히 적응한 뒤, 다시금 회전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퍼억, 퍼어어억.
허나 회전의 힘을 충분히 끌어모은 혁대웅의 봉 역시 더는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다.
잠시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퍼어억.
“어엇?!”
힘의 동수를 이뤘다면.
초식으로 다시 균형을 깬다.
이벽은 강의 묘리를 펼쳤다.
그 순간, 혁대웅의 방어에 빈틈이 생겼다. 후욱, 그리고 이벽의 검이 곡의 묘리로 휘어졌다.
혁대웅을 두드리려던 찰나.
쐐애액.
“……!”
채앵.
이벽은 황급히 검을 회수했다.
수비가 흔들린 혁대웅의 추격을 포기한 뒤, 측면으로 날아든 비도를 쳐내었다.
그리고 비도가 날아든 방향을 향했다. 허나 제갈소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모습을 감춘 것이다.
다만.
우우웅.
쳐내어진 비도가 물결처럼 허공을 유영하며 다시 이벽에게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소이비도.’
물론 그것은.
정확한 공격의 순간을 가늠하기 어렵게 하기 위한 환영일 뿐, 실제의 검로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후우욱.
“차합, 극척(極刺)!”
그때, 자세를 추스린 혁대웅이 다시 봉을 뻗었다. 회전의 힘이 봉끝의 일점에 담겨진 채 쏘아졌다.
“……!”
혁대웅과 제갈소미.
두 사람의 호흡은 퍽 완벽했다.
진법 속에서 교묘한 시간 차를 둔 채 뻗어지는 두 공격은, 어느 한쪽을 막아선 순간 다른 한쪽에 몸을 내어주게 될 것이다.
“하핫, 좋았어, 사저! 이걸로 어떻게든 한 대는… 어?”
따라서.
스윽.
이벽은 어느 쪽도 쳐내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발을 놀렸고, 이벽의 몸이 ‘휘어졌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비도와 봉 모두 이벽에게 닿지 못했다.
“…뭐야, 이건 또?”
혁대웅이 중얼거렸다.
“…기연이 또 있었다.”
그리고 이벽이 답했다.
“…….”
그것은.
청강유엽신법, 곡의 묘리였다.
당연하게도, 내력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이미 얻은 깨달음이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스윽.
보법과 경신법을 하나로 엮어낸 이벽의 진퇴는 자유로웠으며.
또한 그 발걸음은 검과 마찬가지로 여섯 개의 묘리를 품고 있었다.
“역시… 사저와 사형을 내력 없이 상대하는 건 내게도 쉽지는 않군. 그러니 이만 가보겠다.”
저벅저벅.
그리고 다음 순간, 이벽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면을 향해 망설임 없이 발을 뻗는다.
슥, 혁대웅의 옆을 지나쳤다.
“…헛?!”
그 순간, 잠시 넋이 나가 있던 혁대웅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타앙.
“그냥 가겠다고? 지금 장난쳐?!”
다시 혁대웅이 달려들었다.
주저 없이 봉끝을 내뻗었다.
저벅.
허나 그 순간 이벽의 몸이 다시 옆으로 휘어졌고, 봉끝은 애꿎은 허공을 그었다.
훅.
정확히 같은 순간 소리 없이 날아든 비도 역시 이벽의 잔상을 스치는 것에 그쳤다.
“비, 빌어먹을 기연 같으니……!”
혁대웅이 침음했다.
저벅저벅, 이벽은 계속 나아갔다.
“…하. 어이가 없네, 정말.”
반면, 외곽의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긴 제갈소미는 헛웃음을 흘렸다.
분명히 진법을 쓰고 있는 것은 이쪽인데, 이벽의 걸음걸이는 오히려 이쪽의 눈을 혼동하게 만든다.
저벅저벅.
그저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헌데… 그걸 막을 수가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제갈소미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어떻게든 한 대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나.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어느덧 막내 사제는… 너무 멀리 떨어져 등조차 보이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무림에 나가 ‘그만한 경험’을 했을 것이고, 그것은 지금 이렇듯 다시 마을을 떠나려 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제갈소미는 이벽의 짐짓 무심한 ‘듯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본인 스스로는 다 컸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어린애다.
으득,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못 보내지.’
제갈소미는 혁대웅을 향했다.
시선을 맞추자 혁대웅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제갈소미는 ‘비장의 수’를 결심했다.
빠직.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멈칫.
그리고 이벽의 걸음이 멈추었다.
진법이 변화하며 애써 적응한 감각들이 다시 제멋대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허나.
‘…다시 적응하면 그만이다.’
몇 번이고 변화를 거듭한들.
더 이상 위협적일 이유는 없—
“자, 이건 어떠니 벽아? 이래도 우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겠어? 응?”
“……!”
허나 그때, 혁대웅‘들’이 말했다.
이벽은 얼른 주변을 돌아보았다.
훙훙훙.
그리고.
어느덧 열 명으로 늘어난 혁대웅들이 이벽을 둘러싼 채 일제히 봉을 회전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환영인가.”
“핫, 그야 물론이지. 하지만 누가 진짜인지 알아채는 건 그리 쉽지 않을걸?”
처억.
열 자루의 봉끝이 이벽을 향했다.
“네가 무림에 나가 있는 동안… 나나 사저도 반년간 그냥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라구.”
“…….”
말마따나.
혁대웅의 목소리는 마치 정말로 열 명이 얘기하듯 하나로 겹쳐서 들리고 있었다.
후우욱.
그 순간 다시 비도가 날아들었다.
타닷.
이벽은 자리를 박찼다. 허나.
날아드는 비도 또한 어느새 열 자루로 불어나 있었으며 그 전부를 피하는 것은 경신법으로도 쉽지 않았다.
훙훙훙.
“하앗!”
그리고 기회를 놓칠세라 혁대웅들이 일제히 파고들었다. 사방에서 열 자루의 봉들이 쏘아졌다.
* * *
후웅, 퍼어억.
이벽은 공격을 피하고 쳐냈다.
물론 열에 아홉은 환영이었으며, 이벽의 검과 부딪히는 순간, 허무하게 잔상이 되어 흩어졌다.
허나 흩어진 만큼 잔상은 다시 늘어났으며, 그 사이로 ‘진짜’는 계속해서 위치를 바꾸며 공격을 감행했다.
어찌 되었건.
‘한대’조차 허용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상 뻗어지는 공격들을 섣불리 방치해선 안 된다.
허나.
내력을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 이 모든 공격을 감당하는 것은 이벽으로서도 쉽지 않았다.
서서히 체력이 고갈된다.
전투가 시작된 이래, 이벽은 처음으로 난처함을 느꼈다.
퍼어억.
“하핫! 약 오르니, 벽아?! 나 같으면 시워언~ 하게 내력 쓰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겠다!”
“…….”
혁대웅들이 말했다.
허나 물론 그럴 수는 없었다.
떠나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이렇게까지’ 자신을 붙들고자 하는 사형제들의 뜻을 존중하고 싶었다.
내력은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퍼버버벅!
교차하는 환영과 진짜 공격들을 상대하는 한편,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는지 이벽은 고민했다.
지난 반년간.
자신에게 주어졌던 가르침과 깨달음들을 하나하나 되새기고 검토했다. 그리고.
휘이이이.
불현듯 피리 소리를 떠올렸다.
허나 그것은 물론 실제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아니었으며, 그저 이벽의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에 불과했다. 허나.
“…핫.”
그것으로 충분하다.
화영지정의 곡조 속에서 진법으로 헝클어진 이벽의 감각이 조금씩 또렷해졌다.
그리고.
환영들을 주시했다.
실체가 없는 본질을 꿰뚫어 본다.
멈칫.
다음 순간 이벽이 멈춰 섰다.
후우웅.
“하핫, 뭐 하는 거야, 벽아?! 멍 때리면 당한다고! 자, 이 중 누가 진짜일까?!”
당연하게도 혁대웅들의 맹렬한 공격이 퍼부어졌다. 허나 이벽은 막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마침내 그 모든 공격들이 가짜임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슥, 이내 공격들이 이벽에게 닿자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또한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윽.
이벽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리고.
후우욱.
다음 순간 이벽의 검이 쏘아졌다.
그 끝은 주변을 둘러싼 혁대웅들 중 어느 누구도 아닌, 빈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허나.
퍼어억.
“…컥!”
명확한 감각이 스쳤다.
“그렇군. 이중에 ‘진짜’는 없었군.”
“…….”
마침내 이벽은 이해했다.
눈에 보이는 열 자루의 비도와 열 명의 혁대웅 모두가 허상이며, 진짜는 오히려 ‘보이지 않게’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알았어……?”
스륵.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열한 번째 혁대웅의 모습이 나타났다. 가슴을 부여잡은 채 비척비척 물러섰다.
“또한 기연이 있었다.”
“…에이, 진짜. 욕 나올라 하네.”
풀썩, 혁대웅이 주저앉았다.
훅.
다음 순간, 이벽의 검이 다시 휘둘러졌다. 그리고 또다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비도가 나타났다.
탱그랑, 땅에 떨어졌다.
연결된 실이 끊어진 것이다.
저벅.
그리고 이벽은 다시 나아갔다.
훙훙훙훙.
사라지지 않은 혁대웅의 환영들이 맹렬히 공격을 퍼부었으나, 물론 진짜는 저만치에 있으므로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저벅, 탓.
이벽은 어느덧 진법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의 끄트머리에 다다랐음을 직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사형제들은 더는 자신을 붙잡을 수 없으며, 마침내 마을을 떠나게 된다.
이벽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섰다.
“…그간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
후우욱.
“크… 흐아아앗!”
허나 그때였다.
퍼어억.
쏟아지는 가짜 혁대웅들의 공격 사이로 ‘실체’를 느낀 이벽은 황급히 막아섰다.
찌이잉.
어깨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퍽, 퍼억, 퍼억.
“으랴으랴으랴아압—!!!”
“……?!”
공격이 계속해서 퍼부어졌다.
허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혁대웅은 이미 저만치에 주저앉아있으며, 제갈소미는 진법을 유지하기 위해 근접전을 펼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
후욱.
그 순간, 진법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이벽을 막아선 혁대웅의 환영이 흩어지며, 그 뒤에 가려져 있던 이의 얼굴을 드러냈다.
“…장석두?”
“이… 이대로 못 보냅니다, 형님!”
후우욱. 퍼억, 퍼억.
목검이 연신 휘둘러졌다.
청강수련검식의 경로였다.
이벽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장석두를 향해 반격을 펼쳐야 할지 일순 판단을 내리지 못했고.
“흐아아아압!!”
퍼억, 타아앙.
그 순간.
전력을 다해 쥐어짠 장석두의 검에 희미한 내력이 어리며 이벽의 검을 밀쳐냈다.
“하! 아까 말했잖냐, 꼬맹아—!!”
그리고 다시 그때였다.
휘이익.
“수단과 방법은 안 가린다고!!”
좌측에서 제갈소미의 목검이 뻗어졌으며.
“으아아! 제발 기연 그만—!!”
우측에서는 땅을 박찬 혁대웅의 봉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