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99)
205화. 유효타
후우욱.
“으랴으랴아아압—!!”
장석두가 재차 목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좌측에서는 제갈소미의 목검이 뻗어졌으며, 우측에서는 혁대웅의 봉이 파고들었다.
우우웅.
“……!”
그 순간 위협을 느낀 이벽의 몸 안에서 저절로 청강유엽공의 내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선천의 힘이 움직인 것이다.
허나 그래선 곤란하다. 훅, 이벽은 내력의 흐름을 몸 밖으로 다시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빈틈을 내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후우욱.
삼면을 감싸며 지척까지 파고든 공격들은 쉬이 피할 수 없을 만큼 다가왔으며, 섣불리 쳐낼 수도 없다.
피하건 쳐내건, 결국 셋 중 하나 이상은 몸을 ‘스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 스쳤다.
우우웅.
그 순간, 이번에는 선천의 힘이 머리로 치솟았으며 저절로 시간이 느려졌다. 그리고.
타아앙.
느려진 시간 속에서.
이벽은 가까스로 판단을 마친 뒤 그대로 자리를 박찼다. 훅, 위를 향해 솟구쳤다.
“…어, 어엇?!”
장석두가 당황한 소리를 냈다.
어쨌건 팔 척 가까이 뛰어오른 이벽의 몸은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세 자루의 무기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포위를 벗어나 저만치에 착지했다.
타아앙, 비틀.
내력을 쓰지 않았으므로 이벽의 자세가 일순 흔들렸다. 허나 곧 균형을 되찾았다.
“…….”
그리고.
회심의 공격마저 실패한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이벽을 향했다.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벽아… 지금 내력 쓴 거지?”
이내 혁대웅이 말했다.
“…아니, 안 썼다.”
그리고 이벽이 답했다.
목천의 영역 속에서 시간이 느려졌고 그 덕에 빈틈을 얻어 뛰어오를 수 있었다. 허나.
선천의 힘은 엄밀히 말해 내력과는 다른 개념이므로, 내력을 썼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에이씨, 이게 진짜. 구라치지 마. 내력도 안 쓰고 그만큼을 뛰어오른다고? 네가 무슨 벼룩이냐?”
제갈소미가 쏘아붙였다. 허나.
“안 쓴 건 안 쓴 거다.”
이벽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딘가 가슴 한켠이 찔리는 듯한 기분을 애써 무시했다.
“…….”
이내 혁대웅과 제갈소미, 그리고 장석두의 얼굴에 허탈함이 감돌았다.
진법은 깨졌고, 공격은 파훼되었으며 무리해서 내력을 쥐어짠 장석두의 안색은 퍽 창백하기까지 했다.
“에효효.”
제갈소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너 잘났다, 이 망할 자식아. 기분 째지네, 아주. 달밤에 건방진 사제 놈한테 실컷 농락이나 당하고.”
“…….”
“형님, 정말로… 가셔야 해요?”
장석두가 말했다.
“저 진짜 열심히 하면서 형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안 돌아올 거라면서요?”
“…….”
이벽의 시선이 장석두를 마주 향했다.
고작 기초 토납법을 가지고서 불과 반년 만에 내력을 느낀 것도 모자라 초식에 싣기 시작했다.
재능은 재능이되, 열심히 하지 않았을 리 없다. 허나.
오히려.
그 이상 무공을 익히고 강해지는 것은… ‘평범한 촌민’인 장석두에게 오히려 좋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
이벽은 장석두를 외면했다.
“그래, 벽아. 알았어. 가려면 가.”
그러자 다시 혁대웅이 말했다.
“사실… 가려면 그냥 가면 되잖아? 가진 모든 걸 다 쏟아부어도 내력도 안 쓴 너를 스치지도 못하는데… 우리가 뭘 어쩌겠어?”
혁대웅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우릴 납득시켰다고 생각하지는 마.”
“…….”
어둠 속에서 혁대웅의 가라앉은 눈빛이 조용히 빛났다. 그 눈빛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저벅, 이벽은 돌아섰다.
그리고 몇 걸음 나아갔다. 허나 걸음걸음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마음은 무거웠다.
역시… 얼굴을 보지 않고 떠나는 편이 좋았을 테지만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
“야아아아아아 이벼어어억—!!”
허나 그때였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산속을 쩌렁하게 울렸고 이벽을 포함한 네 사람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타다다닷.
그리고 마을 쪽에서 작은 인영 하나가 어둠을 가르며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이 나쁜 새끼야아아악!!”
타다닷, 터억.
다음 순간, 인영이 넘어졌다.
데굴데굴데굴.
비탈길을 구르기 시작했다.
“으악! 수련아!”
제갈소미가 질겁했다.
그 즉시 달려가려 했다. 허나.
훅, 타앙!
“뭐… 뭐야?”
허나 그 순간.
한 줄기 바람이 제갈소미의 옷깃을 마구 펄럭였다. 이벽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진 것이다.
쐐애액.
그것은 ‘쾌보’였다.
그리고 제갈소미가 잠시 주춤한 사이, 이벽의 몸은 이미 왕수련의 지척까지 다가서 있었다.
덥석.
이벽의 손이 구르는 왕수련을 붙들었다. 그리고 냉큼 안아서 일으켜 세웠다.
“…괜찮나? 다친 곳은?”
“그……!”
그리고.
이벽과 왕수련이 서로를 마주했다. 반년간 왕수련은 젖살이 조금 빠졌고, 그만큼 앳된 티가 사라졌다.
달빛이 내리쬐었다.
얼굴과 얼굴이 가까워지자 왕수련의 얼굴이 훅 붉어졌다. 그리고.
짜악.
“…안 괜찮아, 이 새끼야!”
다음 순간.
이벽의 얼굴이 훽 돌아갔다.
왕수련에게 뺨을 후려 맞았다.
“금방 다녀온다고 해놓고! 편지 한 장 달랑 보내놓고는 반년 동안이나 어디서 뭘 한 거야, 이 나쁜 놈아!”
“…어.”
덥석, 이벽은 멱살을 붙잡혔다.
“사람 걱정하는 거 생각도 안 하고! 그래놓고는… 다시 나가겠다고?! 돌아와서는 나한테 얼굴도 안 비추고?!”
탈탈탈.
이벽의 몸이 마구 흔들렸다.
“으아아!! 이 쓰레기!! 장구벌레, 소똥 같은 자식!!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매몰찰 수가 있어—!!”
이벽을 쥐고 마구 흔들던 왕수련의 손길이 서서히 약해졌다. 그리고 툭, 이마가 이벽의 가슴에 닿았다.
“…그 와중에 키 컸네. 나쁜놈.”
“…….”
이벽은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저벅저벅, 턱.
그때였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혁대웅이 이벽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벽이 돌아보자 혁대웅이 웃었다.
“벽아, 지금 수련이한테 싸대기 맞은 거… ‘유효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뭐라고?”
“아까 얘기했잖아? 분명 한 대라도 너에게 유효한 공격을 맞춘다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말야.”
“…….”
이벽의 인상이 꾸겨졌다.
“…그건 사저와 사형, 두 사람과의 이야기였지 않나?”
턱, 이벽의 반대쪽 어깨에 다시 손이 얹어졌다. 이번에는 제갈소미였다.
“에엥~? 무슨 소리야 꼬맹아? 아까는 분명 ‘우리들’이라고 했지 ‘우리 둘’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
“석두도 수련이도, 다 우리 낙검문의 같은 사형제들 아니니? 설마 속가제자 차별하는 거니, 지금?”
이벽의 인상이 더욱 꾸겨졌다.
허나 반박할 말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제갈소미가 손을 뻗었다. 왕수련의 뺨을 쭈욱 꼬집었다.
“…아야, 소미 언니.”
“이야. 수련이가 이걸 해내네. 잘했어, 수련아. 속이 다 시원하다. 괜찮으면 몇 대만 더 때려줄래?”
* * *
이벽은 차마 떠나지 못했다.
속절없이 낙검문으로 돌아왔고, 몸을 씻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뜬눈으로 남은 새벽을 지새웠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왕수련에게 뺨을 얻어맞은 순간, 무언가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직감이 스쳤다. 허나.
그 ‘잘못된 생각’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달그락달그락.
“야, 이벽.”
“…….”
“오늘까진 그냥 맥여주지만… 내일부턴 어림도 없어. 알지? 삶의 무게에 쪼들리는 이 동네 문파에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않는 거야.”
제갈소미가 말했다.
말마따나 세 사형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침 밥상에 둘러앉아 있었다.
툭, 데구르르.
그때 혁대웅의 젓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무절임 조각이 식탁 위를 굴렀다.
“아하하, 간밤에 오랜만에 날뛴 덕분에 삭신은 물론이고 손가락까지 다 후들거리네.”
“곰탱이 너, 요새 수련 부족이야. 하다 하다 안 되겠으니 이젠 아예 외공까지 포기해버렸니? 하여튼 빠져 가지고.”
“…아하하. 뼈아픈걸.”
그리고.
짐짓 평온한 식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벽은 어제와는 달리 아주 조금, 이 자리의 공기에 적응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허나.
그래선 안 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은근슬쩍 스며들어서 괜찮을 리 없다. 탁, 이벽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혁대웅, 그리고 사저. 미안하지만 나는… 역시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타앙.
“아이씨, 진짜.”
그 즉시 제갈소미의 숟가락이 내팽개쳐졌다.
“야, 이벽. 뭐가 그렇게 무서워?”
“…….”
“딱 말해. 누구랑 은원이라도 쌓았어? 누가 쫓아와서 널 죽인대? 삼족을 멸해버리겠대?”
이벽은 침묵했다.
은원이라면… 물론 헤아리기 어려웠다. 허나 마을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휙휙.
“에이 됐다, 지겨워. 정떨어지고 꼴 보기도 싫다. 우린 할 만큼 했으니까 꺼질 거면 알아서 꺼지던가.”
제갈소미가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네가 양심이 있으면 적어도 수련이한테는 제대로 사과라도 하고 가. 너 그러는 거 아냐, 진짜로.”
“…….”
“뭣보다 네 ‘생명의 은인’이잖아?”
문득, 지난 겨울 자신을 구하기 위해 계곡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던 왕수련을 생각했다.
움찔.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또다시 무언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다는 감각이 약올리 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이벽은 낙검문을 나섰다. 약초꾼 왕씨의 집으로 향했다.
“어…? 벼, 벽이 형님?”
“누… 누나 집에 없는데요?”
허나 그곳에는 왕수련의 동생들인 왕일상과 왕이강뿐이었으며, 어쩐지 이벽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이벽은 돌아섰다.
어쩌면 왕수련은 자신을 피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게 아니라면… ‘찾아주길’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벅.
이벽은 길을 나섰다.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면.
위치는 바로 알 것 같았다.
쏴아아아.
그리고 잠시 후, 이벽은 낙룡폭포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벽이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무렵 왕수련이 이벽의 손을 끌고서 안내해준 장소였으며.
또한 악몽에 짓눌려 죽어가던 이벽을 구하고자 왕수련이 뛰어든 바로 그 계곡이기도 했다.
그리고.
“…….”
당연하다는 듯 물가에 발을 담그고 앉아있는 왕수련의 뒷모습이 있었다.
저벅.
이벽은 말없이 다가갔다.
왕수련의 곁에 나란히 앉았다.
“…왜 아직도 여기 있어요?”
왕수련이 책을 덮으며 말했다.
“떠나야 한다면서요?”
“…….”
“어제 일은 미안해요. 오빠한테도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 오빠는 무림인이고, 저도 이제 어린애는 아니에요.”
이벽은 조금 당황했다.
어떻게든 사과를 하고자 찾아온 것인데,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듣고 말았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미안한지 명확히 설명조차 할 수 없으면서 무턱대고 마주 사과를 하는 것도 썩 내키지는 않았다.
“수련아.”
이내 이벽이 말했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
불현듯 말을 꺼내버렸다.
왕수련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말을 꺼낸 직후, 이벽은 바로 후회했다. 허나 꺼내버린 이야기를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물소리 속에서.
퍽 요란한 침묵이 흘렀다.
“…책을 보면요.”
다시 왕수련이 말했다.
“사람이 정말 많이 죽어요. 전쟁 때문에 죽고 환난 때문에 죽고 기근 때문에 죽고…….”
“…….”
“헌데 문제는… 그게 다 실제로 일어난 역사 속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거예요.”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오빠가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 마을도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석두나 촌장님은 범한테 당해 이미 죽고 없을 수도 있고요.”
“…….”
“오빠, 다시 바깥으로 나가서 뭘 어쩔 생각인데요? 이미 사람을 죽였으니… 더 많은 사람을 죽이러 가는 건가요?”
움찔.
이벽은 왕수련을 돌아보았다.
허나 눈빛은 여전히 담담했다.
아이들은 빠르게 어른이 된다.
아니, 어쩌면 왕수련을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 자체가 자신의 오만함일지도 모른다.
왕수련은.
자신과는 고작해야 한 살 차이에 불과하며 비룡대원인 공손수와 같은 나이이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될까?”
이내 이벽이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오빠 생각이 중요하죠. 오빠는 어때요? 여기에 있고 싶어요?”
“…….”
“위험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요. 설령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오빠는 강하니까 오빠가 지켜주면 되잖아요? 심지어 문주님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허나 이벽은 반박하지 못했다.
“뭐,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애 말을 너무 깊게 듣진 말구요. 오빠가 더 잘 알겠죠. 그래도.”
슥.
그때 왕수련의 손이 소리 없이 이벽의 손 위로 겹쳐졌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었건… 난 오빠가 계속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