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33)
239화. 누군가의 기억 (1)
콰콰콰콰콰콰.
이벽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황야 저만치에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용권풍(龍卷風)이었다.
펄럭펄럭펄럭.
옷자락이 마구 휘날렸다.
동시에 풍압이 온몸을 두드렸다.
소용돌이는 마치 땅과 하늘을 잇는 기둥과 같았으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경외감을 일으키게 했다.
저릿저릿.
허나.
피부에 와닿는 기감을 통해 이벽은 직감했다. 저 바람은 단순한 자연현상 따위가 아니며.
‘무학’의 일종이었다.
동시에 단순히 일신상의 내력으로 일으킬 수 있는 ‘기예’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는 힘이기도 했다.
‘등천의… 영역.’
목천의 시간조차 넘어.
주변의 공간을 자신의 의지 안에 두고, 그 안의 기운을 자신이 지닌 무학의 이치로 다스린다.
부르르.
이벽의 몸이 작게 경련했다.
이것은… 물론 실제가 아니며, 그저 진법이 보여주는 환영에 불과했다.
허나 동시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상일 수는 없었다. 비슷한 광경을 꾸며낼 수는 있다 한들 절대고수의 존재감을 꾸며낼 수는 없다.
‘이건… 누군가의 기억인가.’
문득 이벽은 깨달았다.
지금의 이 광경이 대체 언제 어디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진법이 보여주는 것은, 실제로 이 장소에 자리하고 있던 누군가의 기억이었으며.
따라서 실제로 이 자리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이벽은 그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혼백(魂魄)일 뿐.
땅 위로 내려앉을 수도,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콰콰콰콰콰콰.
“크… 으윽…….”
“허억… 헉… 컥!”
그때, 천지를 휘감는 듯한 바람 소리 사이로 고통에 찬 신음 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새어들었다.
그제서야 이벽은 깨달았다.
용권풍의 주변으로는 수많은 무인들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이미 죽었거나 혹은 죽어가는 중인 듯했다.
콰아아아아앙-!!
“크허억……!”
“커헉!”
다시 그때였다.
대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몇 개인가의 인영이 용권풍의 안쪽에서 바깥으로 튕겨나왔다.
털썩, 털썩.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핫, 기가 차는군!”
곧이어 용권풍의 한가운데에서 누군가가 코웃음을 쳤다. 그것은 그리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허나.
바람 소리를 뚫고서.
광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실망스럽구나. 실망스럽다 못해 따분할 지경이다. 중원의 무학이란 게 고작 이 정도더냐?”
다시 이벽이 용권풍을 향했다.
휘몰아치는 바람의 한가운데 두 발로 선 인영이 하나 있었다. 물론, 그야말로 ‘바람의 주인’일 것이었다.
훅, 파아아앙.
다음 순간, 인영이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 손짓 한 번에 용권풍이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살랑.
산들바람이 이벽을 스쳤다.
저벅.
그리고 바람이 사라진 그 자리에서, 여유로운 표정의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저벅저벅.
사내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으윽, 끄으으으……!”
그때,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주변의 누군가가 사내를 향해 힘겹게 손을 뻗었다.
“…뭘 하는 거냐? 더 해보고 싶으면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 덤비던가 해라.”
“크으… 이, 이놈……!”
“조금 전까지 이 몸을 막아서겠노라 큰소리를 치지 않았더냐? 그렇게 자빠져 있어서야 뭘 어쩌겠단 말이더냐?”
“하… 하핫! 이,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네놈들… 더러운 마교놈들은 절대로… 이 중원 땅을……!”
“…흥.”
다음 순간.
사내가 아래로 손을 뻗었다.
퍼어어엉.
그리고 끝이었다.
손이 닿지도 않았으나, 간신히 말을 잇던 이의 온몸이 산산조각으로 터져버렸다.
후두둑.
신체의 조각들이 흐트러졌다.
“기가 차는군. 하기야 주둥아리가 달렸으니 말로는 막아서지 못할 게 뭐가 있겠나?”
“으아아악…! 아아아악! 사형!”
그와 동시에 주변의 누군가가 비통에 찬 절규를 내질렀다. 허나.
퍼어엉, 후두둑.
그 역시 곧 조용해졌다.
저벅저벅.
사내는 계속해서 나아갔고.
퍼어엉, 퍼어엉.
‘아직 살아있는’ 누군가를 발견할 때마다 손을 뻗었다. 그때마다 무인들의 몸은 마치 부푼 공처럼 터져버렸다.
“…….”
이벽은 분노를 느꼈다.
허나 이것은 이미 ‘일어난 과거’를 비추는 거울일 뿐, 그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타아앙.
“으… 크아아아아아!”
그때였다.
“풍마(風魔) 네 이노오오옴-!!”
누군가가 노호성을 내질렀다.
훅, 이벽의 시선이 움직였다.
저만치에 선 또 한 명의 사내는 조금 전 용권풍의 바깥으로 튕겨 나간 이들 중 한 명인 듯했다.
무복은 온통 피투성이였으나.
움켜쥔 두 주먹에는 두터운 권갑을 연상케 하는 웅혼한 강기가 서려 있었다.
타앙.
“용서 못 해… 절대로 용서 못 한다 이노옴! 내 이 자리에서 머리가 터져 죽더라도 네놈만큼은 반드시-!”
사내가 땅을 박찼다.
날아오른 신형이 두 팔을 덮은 강기와 함께 풍마라 불린 사내를 향해 일직선으로 꽂혀 들었다.
“…호오.”
풍마가 작게 웃었다.
“그걸 맞고도 다시 일어서는가? 그래도 뼈대가 있는 놈이 아주 없지는 않군.”
후우우웅.
다음 순간.
풍마의 주먹에도 강기가 서렸다.
아니, 그것은 강기가 아닌 바람이었다. 작은 크기의 소용돌이가 그의 오른팔을 뒤덮은 것이다.
그리고.
“크아아아아-!!”
쇄도한 사내가 일권을 내질렀다.
그리고 이벽은 놀랐다. 혼신의 힘과 함께 주먹을 내뻗는 사내의 동작이 퍽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퍼어어어엉.
권과 권이 부딪혔다.
“그래, 주먹도 썩 나쁘지는 않구나. 네놈들 언가가 이 중원 땅의 ‘천하제일권가’라지?”
“…크으윽, 크윽!”
“허나 우물 안에 갇혀있는 주제에 천하제일을 논하다니… 역시 네놈들에겐 과분한 이름이다.”
퍼어어엉.
다음 순간.
풍마의 팔을 휘감은 바람이 부풀어올랐다. 그대로 주먹과 주먹을 맞부딪힌 사내에게로 옮겨갔다.
우드드득.
“크… 으아아아악!!”
바람 속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바람이 흩어졌을 때, 사지와 온몸이 기이하게 뒤틀려버린 사내는 이미 목숨이 끊어진 후였다.
“쯧.”
풍마가 혀를 찼다.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더는 누구도 일어서는 이가 없었다.
“고작 이 정도의 힘으로 본교의 행보를 막아서려 하다니… 눈물이 나올 지경이구나.”
휙.
그때, 풍마의 왼팔이 휘저어졌다.
왼편에 바람의 장벽이 일어났고.
탕, 타앙.
소리 없이 날아들던 암기가 그에 가로막혀 힘없이 튕겨 나갔다.
“…하찮은 짓을.”
풍마의 시선이 암기가 날아든 방향을 향했다. 동시에 이벽의 시선 역시 그쪽을 향했다.
“……!”
그리고.
시선이 향한 자리에 서 있는 이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이벽은 ‘아는 사람’임을 확신했다.
새파랗게 젊은 모습이었으며, 또한 그 역시 피투성이로 엉망이 된 몰골을 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분명 독왕 당평세였다.
* * *
“…우리가 졌소.”
독왕 당평세가 말했다.
아니, 진법이 비추는 까마득한 과거의 환영 속에서 그는 아직 독왕도, 천하십대고수도 아니었으며.
다만 적의 신위(神威)와 동료들의 시신 앞에 무력하게 짓눌려버린 일개 후기지수에 불과했다.
“보시다시피… 더는 당신과 맞설 사람이 누구도 남아 있지 않소. 그러니 여쭙겠소만… 남아있는 목숨만이라도 살려주실 수는 없겠지?”
“물론이다.”
풍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구걸하고 싶나? 할 테면 해보거라. 허나 자비 따위는 본교의 법도에는 없는 이야기다.”
“…그렇겠지.”
당평세가 쓴웃음을 지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기에, 목소리는 오히려 담담했다. 허나 이내 표정은 서서히 비장함으로 번져갔다.
훅, 퍼어엉.
다음 순간, 풍마의 손이 뻗어졌다. 주먹을 감싼 소용돌이가 당평세를 향해 날아들었다.
“…호오?”
허나 다음 순간, 풍마가 작게 감탄했다. 소용돌이가 당평세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당평세는 이미 허공으로 뛰어올라 있었다.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일단 허공으로 뛰어오르고 나면 더는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다. 즉, 두 번의 기회는 없다.
“크아아아아-!!”
당평세가 기함을 내질렀다.
‘확실한 죽음’을 담보로 얻어낸 마지막 기회를 살리기 위해, 두 팔을 아래로 내뻗었다.
훅, 슈슈슈슈슉.
이내 그의 소매와 옷깃 속에서 무수한 암기가 흘러나왔다. 소나기처럼 풍마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만천화우!’
그 순간, 이벽은 생각했다. 아니, 그러나 이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수많은 암기가 던져졌으되.
그것은 그저 ‘많은 수의 암기’를 발사한 것일 뿐, 이벽이 기억하는 만천화우라 할 수는 없었다.
“…흥.”
풍마가 코웃음을 쳤다.
“애송이 주제에 내 일수를 피하다니, 재능은 제법 있구나. 허나 운이 따르질 않아 피우지 못하면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훅.
그리고 풍마가 손을 털어냈다.
그 순간 바람의 장벽이 그의 머리 위를 덮었고, 암기는 단 한 자루도 그 벽을 뚫지 못했다.
태앵, 차르르르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다음번에는 운이 좋길 바란다 애송이. 물론, 내세란 게 있다면 말이다.”
후우욱.
그리고 풍마의 주먹이 다시 당평세를 향해 뻗어졌다. 주먹의 형상을 한 소용돌이가 쏘아졌다.
“…….”
당평세는 쓴웃음을 지었다. 더는 피할 수도 없으며, 물론 막을 수도 없다.
후욱, 서걱.
허나 그때였다.
난데없는 일검이 당평세의 앞을 가로막았고, 소용돌이가 허공에서 ‘베어졌다.’
파아앙.
바람이 흩어졌다.
“……!”
움찔, 풍마의 눈썹이 흔들렸다.
돌연 날아든 인영 하나가 당평세의 앞을 가로막고서 검을 휘둘렀고, 자신의 공격을 무마시켰다.
탓.
그리고 다음 순간.
당평세를 붙든 정체불명의 인영이 저만치에 내려앉았다. 멍한 얼굴로 주저앉은 당평세가 인영을 올려다보았다.
“대, 대협께서는……?”
“…위험하니 물러서 계시오.”
허나 사내는 당평세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풍마를 마주했다.
“……!”
그리고.
이벽은 사내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도 분명 자신을 지나치게 닮은 사내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오히려 ‘자신이 저 사내를 닮았다’고 하는 게 옳은 말일 터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사내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서려 있었으며, 찌푸려진 미간에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그리고 풍마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긴장감과 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딱히 밝힐만한 이름은 없다. 그냥 무림맹 소속의 무명소졸이면 되겠지.”
검치 선우명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