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32)
238화. 검치의 유품
저벅저벅.
이벽은 걸음을 내디뎠다.
틈새의 안쪽으로 나아갔다.
물론 틈은 비좁았으므로 허리를 조금 숙여야 했다. 허나 몇 걸음 나아가자 곧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절벽의 틈새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졌으며, 이내 어엿한 동굴이라 부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 모습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인위적인 힘이 느껴졌다.
마침내 이벽은.
‘맞게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저벅.
이벽의 발소리가 메아리쳤다.
아직까지는 빛이 내부까지 들어오고 있었으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밝기는 점점 희미해졌다.
또옥, 또옥.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깊은 어둠 속으로 나아가며, 이벽은 긴장을 유지했다. 무언가… 형언하기 힘든 위화감이 내부에 감돌고 있었다.
허나 그러한 감각과는 달리.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눈에도 보이지 않는 미물들의 움직임이 간혹 감각을 스칠 뿐이었다.
멈칫.
허나 빛이 거의 사라졌을 즈음.
이벽은 불현듯 걸음을 멈추었다.
문득 이 동굴 내부의 정경이 ‘처음이 아닌 것’ 같다는 이상한 감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철컥.
그 순간 이벽은 검을 뽑았다.
우우웅.
그리고 강기를 일으켰다.
빛의 자취가 끊긴 어둠 속에서, 칼날에 맺힌 푸른 빛의 강기는 횃불이 되어주었다.
후욱.
이벽은 서둘러 주변을 비추었다.
그러자 희미한 빛 속에서 마침내 주변의 정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
그곳에는.
삭은 천조각이 있었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었다.
불을 피운 흔적이나, 구워 먹은 짐승의 뼈 따위가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수십 년이나 지난 흔적이 아니었으며, 명백히 최근까지 ‘누군가가’ 이곳에 머물렀던 흔적이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지?
-나는 너의 기연이다.
찌잉.
그 순간, 두통이 일었다.
이벽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와 동시에 오래전의 기억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부르르, 검을 쥔 손이 흔들렸다.
이 동굴은.
그리고 바로 이 자리는.
과거, 이진천에 의해 목숨을 구해진 선우벽이 만신창이가 되어 처음으로 눈을 떴던 바로 그 장소였다.
* * *
“…….”
이벽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충격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는 한편, 눈앞에 드러난 사실의 의미를 생각하려 했다.
이 동굴은.
검치 선우명의 유품을 간직하고 있으며, 동시에 오직 단 한 명, 선우세가주 선우각에게만 전해졌던 비밀스런 공간이었다.
허나 동시에 스승 이진천은.
이 장소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선우세가의 어느 누구도 다다르지 못했던 청강유엽공의 지고한 경지에 이른 존재이기도 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공교로웠다.
만일 누군가가 이진천에게 이 장소의 존재를 가르쳐주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가주 선우각이 아니라면.
남은 사람은.
물론 ‘검치 본인’뿐이다.
‘…허나 어째서? 그리고 언제?’
이벽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무언가를 추측하기에는, 알고 있는 사실들은 지나치게 부족하고 또한 단편적이었다.
이벽은 스승 이진천의 출신은 물론, 정확한 나이조차 알지 못하며 심지어는 그 이름이 본명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스승은 그저.
마지막 순간까지 낙검문주이자 약장수 이진천일 뿐이었으며.
그에 대한 단서를 얻고자 바로 이곳에 찾아온 것이다.
“…….”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온갖 억측들이 떠오를 뿐,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저벅.
이내 이벽은 생각을 멈추었다.
그리고 주변에 널브러진 스승의 흔적을 외면한 채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건 당장 결론이 나오지 않는 문제보다는 ‘유품’의 정체를 확인하는 게 먼저다.
저벅저벅.
빛은 점점 더 희미해졌다.
이내 검신에서 뿜어지는 강기의 빛 말고는 그 어떤 빛도 없는 완벽한 어둠이 이벽을 덮었다.
이 각 정도를 더 나아갔다.
턱.
그리고 이벽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거친 암벽의 표면이 만져졌다. 마침내 동굴의 막다른 끝에 다다른 것이다.
허나.
강기를 사방으로 비춰보아도 유품은커녕 그 무엇조차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공간은 그리 좁지 않았다. 허나.
이벽이 걸어들어온 방향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는, 그저 단단한 벽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
그제서야.
이벽은 다시 생각했다.
이곳에 들어오는 이는 자신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선우명의 유품은… 이미 ‘선객’이 챙긴 후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나.
무언가가 석연치 않았다.
동굴의 입구에서부터 느껴졌던 ‘기묘한 감각’은… 여전히 자신의 기감을 건드리고 있었다.
분명히 이 안은 텅 비어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다’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훅, 철컥.
이벽은 강기를 거두었다.
검을 거두자, 이내 완벽한 어둠에 휩싸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벽은 눈을 감았다.
어차피 빛이 없다면.
눈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우우웅.
그리고.
암흑 속에서, 눈을 대신한 나머지 감각들이 더욱 예민해지며 나무 뿌리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무언가.
기의 흐름이 ‘자연적이지’ 않다.
이윽고 이벽은 공간 안에 감돌고 있는 어떠한 ‘인위적인 힘’의 존재를 느꼈다.
또한 그리 낯설지 않았다.
이벽은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불현듯, 사저 제갈소미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진법!’
* * *
동굴의 가장 깊은 곳.
그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이벽은 진법의 존재를 깨달았다.
우우웅.
눈을 제외한 감각에 와닿는 기의 흐름은 마치 발아래의 땅속에서 흐르는 지하수처럼 희미했다.
허나 그 경로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으며, 특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곳곳에서 유도되고 있었다.
뚜렷한 ‘인위’의 흔적이었다.
“…….”
후욱.
이벽은 더욱 기감의 날을 세웠다.
딱히 진법에 대한 조예는 없으나.
얼추 경험이라면 있으며, 또한 이벽에게는 목천의 힘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서 보다 예민해진 감각이 있었다.
어쩌면 흐름의 맥락 정도는 파악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허나.
움찔.
그 순간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흐름의 세기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다만… 터무니없이 복잡한 ‘설계’가 느껴졌다.
그것은 목천의 시간 속에서조차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함이었다. 또한.
‘단순히 진법뿐만이 아니다.’
무언가… ‘기계적인 장치’가 진법과 함께 교묘하게 얽혀있음을 이벽은 눈치챘다.
“…….”
턱, 이벽은 문득 숨이 막혔다.
주변은 분명 빈 공간에 불과했다. 허나 이벽은 마치 거대한 괴물의 뱃속에 삼켜진 듯한 압박감에 휩싸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진법은 현재 ‘잠들어’ 있었다.
설치된 이래,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된 채 누군가가 잠을 깨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것이… 선우명의 유품.’
이벽은 불쾌함을 느꼈다.
헤아릴 수 없는 무언가를 맞닥뜨림으로써 비롯되는 답답함이었다. 당장이라도 이 동굴을 벗어나고 싶다.
허나 물론 그럴 수는 없었다.
검의 고수인 선우명이 대체 ‘어떻게’ 이러한 진법을 펼쳤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며,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다만.
보다 중요한 것은 ‘어째서’ 자신의 장자, 혹은 후계에게 이러한 것을 유품으로 남겨놓았느냐였다.
-거듭 말하지만… 내 아버지는 검과 무공에 미친 자였소.
-그렇기 때문에… 유품이랍시고 남겨둔 게 정말로 터무니없는 무언가일 수도 있소. 어쩌면… 소협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지.
이벽은 선우각의 말을 되새겼다.
자신의 ‘친조부’가 정말로 그런 미치광이였다면… 무엇을 남겨두려 했을지는 얼추 짐작이 갔다.
허나 동시에.
일단 이것이 발동되고 나면, 과거 자신이 진법을 파훼했던 것처럼 쉬이 벗어날 수는 없으리란 직감이 스쳤다.
이벽은 잠시 고민했다.
물론 그리 길지는 않았다.
‘부딪히는 수밖에 없겠지.’
허나 그렇다고 해도.
이벽은 설치된 진법을 발동시키는 방법 따위를 알지는 못했다.
다만 이것이 ‘검치’의 유품이라면, 그가 자신의 후계에게 진법에 대한 조예 따위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
이내 이벽은 사저 제갈소미나 제갈세가의 소가주 제갈성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려보았다.
그들은.
근처의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돌부리 따위를 걷어차는 것으로 설치된 진법을 발동시켰다.
그것은 말하자면.
사전작업을 통해 팽팽히 잡아 당겨진 활시위를 손에서 놓는 ‘마지막 행위’에 해당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동굴 안에도 어딘가에 진법의 기운을 묶어둔 ‘활시위’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우우우웅.
이벽은 다시 기감에 집중했다.
사방에서 왜곡된 기의 흐름이 밀려들자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허나 이벽은 굳이 그 흐름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그 흐름이 흐르고 흘러.
‘어디로 향하는가’에 집중했다.
“……!”
그리고 마침내.
이벽은 주변의 기운이 밀집되는 ‘점’의 존재를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인체의 단전과 같았다.
동시에 바로 그 점이 이 진법을 발동하기 위한 ‘활시위’에 해당하는 대상임을 이해했다. 허나.
동시에 조금 당황했다.
점은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였으며, 주변을 둘러싼 동굴의 벽 안 이곳저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총 여섯 개인가.’
이벽은 점의 개수를 헤아렸다.
우우우웅.
다시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점들은 심지어 한 곳에 멈춰있지조차 않았다. 말 그대로, 동굴의 벽 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계속해서 위치를 바꾸고 있다.
그 하나하나를 추격하여 부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허나 여섯 개를 동시에 파훼하지 않으면.
기의 흐름이 엉켜 들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으며, 최악의 경우 동굴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벽은 일순 갈피를 잃었다.
허나 기감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대신 관점을 바꾸어, 기의 흐름이 아닌 점들이 움직이는 궤도를 읽어내는 데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반 시진이 가량이 흘렀다.
“…핫.”
이벽이 작게 웃었다.
검치의 ‘의도’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앞서 절벽에 숨겨진 이 동굴의 위치를 찾는 데에는 ‘경신공으로써의 창공비검’을 필요로 했다.
허나.
창공비검을 익히지 않은 이가 우연찮게 이 동굴의 위치를 발견할 가능성 또한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고로.
선우명은 이곳에 선 자신에게, ‘후계 자격에 대한 증명’을 다시 한번 더 요구하고 있었다.
철컥.
이벽은 검을 잡았다.
창공비검은 경신공이자 검공이다.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여섯 개의 무리를 포함한 그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초식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그 초식은 여전히.
이벽이 지닌 최후의 절기였다.
둥실.
이벽의 발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사방팔방을 배회하던 여섯 개의 점이 이벽의 머리 위, 천장에서 정확히 한 자리에 겹쳐 들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창공비검(蒼空飛劍).
후욱.
이벽의 몸이 솟구쳤다. 그리고.
콰아아앙.
일점을 향해 검신이 꽂혀 들었다.
콰직, 콰지직!
단 일검이었다. 허나.
직, 쾌, 강, 곡, 변, 유.
그 안에 담긴 여섯 개의 묘리가 여섯 개의 점과 만났고, 이내 점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파훼 되었다.
파아아앙.
그리고.
점 안에 뭉쳐져 있던 기운들이 이내 동굴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잠들어있던 진법이 눈을 떴다.
훅, 탓.
검을 회수한 이벽이 착지했다.
쿠구구궁.
다음 순간, 동굴 전체가 작게 진동을 시작했고 이벽은 작은 현기증을 느꼈다.
화아아악.
그리고 빛이 일었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모든 것은 새하얀 빛으로 바뀌어버렸다.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이내 곧 빛은 잦아들었고, 이벽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때.
이벽의 눈앞에는 더 이상 어두컴컴한 동굴이 아닌, 거대한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