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45)
251화. 엎드린 아미 (1)
“걱정 말고 편하게 들어오시오.”
이벽이 말했다.
“…….”
일순 공능자의 얼굴에 황망함이 서렸다. 허나 이내 표정은 서서히 불쾌감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최후의 일검을 남겨두고 별안간 눈을 감아버린 이벽의 모양새는 마치 ‘자신을 경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단 한 순간.”
이내 공능자가 답했다.
“단 한 순간이 늦어진다면 자네의 목이 어깨 위에서 달아날 수도 있다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가서 후회한들 소용없지 않겠나?”
“…….”
물론, 이벽은 방심하지 않았다.
육신의 눈을 감았으되 그 덕에 심안은 또렷해졌으며, 마주하고 있는 공능자의 기세 역시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사락, 사락.
이벽은 주변의 기운을 느꼈다.
한 장 한 장, 주변을 에워싼 기는 나뭇잎의 형상으로 이벽에게 다가왔으며.
동시에 그 한 장 한 장이 모두가 검이었다. 이만큼이나 많은 ‘검’이 있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노파심이라면 접어두시오.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대는 그저 ‘적’을 베었을 뿐이지 않소?”
“…핫! 그래. 틀린 말은 아니로군. 어디 그럼, 부디 자네의 꿍꿍이가 내 검보다 빠르길 비네!”
그렇게.
짧은 대화가 멎었다.
허나 그 이후로도 한동안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스스슥.
차가운 대치상태가 이어졌다.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긴장감 속에서 이를 지켜보는 당가와 청성의 무인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소협.’
당려옥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어느덧 그녀는 움켜쥔 주먹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딱히 ‘아군’은 아니었다. 허나.
그의 죽음은… 보고 싶지 않았다.
허나 모든 이들이 긴장에 빠진 상황 속에서, 단 한 명 긴장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물론, 이벽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감각이 닿는 나뭇잎의 영역은 넓어졌고,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주륵.
반면 공능자의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뭐냐 이건?’
절대로 질 리 없다.
천하십대고수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으되, 이 일검만큼은 설령 그들이라 해도 ‘반드시’ 통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헌데.
대치 상태가 길어질수록, 공능자는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다. 장내를 둘러싼 기운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것은.
얼핏 자연스러운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자신을 압박하는 듯했다.
‘이 애송이… 설마?’
그 순간, 우수수 소름이 일었다.
허나 공능자는 이를 악물었다. 그럴 리 없다. 그런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추욱.
그때, 이벽의 검끝이 떨어지며 별안간 땅끝을 향했다. 움찔, 공능자의 몸이 흔들렸다.
허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실 이벽의 긴장이 풀리며 무심코 팔이 내려가 버린 것에 불과했다.
큭, 공능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탓, 훅.
다음 순간, 공능자가 사라졌다.
천풍(天風).
하늘에 부는 바람은.
한달음에 구만리를 간다.
그것은 청성제일검으로 알려진 공능자의 별호이자 그가 익힌 절기의 이름이기도 했다.
채앵.
몸은 바람이 되었고.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초식은 지극히 단순했으되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극쾌의 발검술이었다.
번뜩.
마침내 이벽의 눈이 뜨였다.
“…….”
과연 공능자의 검은 이벽의 눈에조차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으며, 이벽은 따라잡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물론,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였으며 무리해서 따라잡을 이유 또한 없었다.
고로 이벽은.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훅, 서걱.
이내 공능자의 검이 다가왔다.
이벽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
허나 공능자의 눈이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 이유도 없이 검의 진로가 급격하게 흔들린 것이었다.
후욱.
그 잠깐의 빈틈 속에서.
이벽의 검이 뻗어졌다. 그리고.
서걱.
파육음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탓.
“…….”
그리고.
이내 공능자가 멈춰 섰다. 이벽이 선 자리를 지나 그 등 뒤의 세 걸음 바깥에 착지했다.
허나 물론, 그 모습은 주변의 무인들에게는 역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것’으로 보일 뿐이었으며.
찰나의 접전이 누구의 승리로 돌아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대단한 극쾌였소.”
그때 이벽이 말했다.
사락, 이벽의 옷자락 일부가 조각이 되어 떨어졌다. 허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일지 않았다.
“…태극인가?”
문득 공능자가 말했다.
“…그 또한 틀리지는 않소.”
공능자의 검이 닥쳐오는 순간.
이벽은 유의 묘리로 나뭇잎을 몸에 둘렀고, 이에 공능자의 검에 담긴 속도와 힘은 방향을 잃고 말았다.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면.
그저 빗나가게 만들면 그만이다.
“하…하핫.”
공능자가 웃었다.
찰나의 순간, 무뎌지는 자신의 검로에서 그가 느낀 감각은… 무려 정도맹주 태극검존의 그림자였다.
“주야장천 쾌검만 파는 동지인 줄 알았더니… 괜히 섭섭하고 사기당한 기분이군 그래.”
쩌어억.
다음 순간, 공능자의 옆구리가 쩍 갈라졌다. 유수와 같은 피를 뿜어내며 신형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털썩.
그리고.
청성제일검이 쓰러졌다.
“…….”
허나 이후로도 한동안 좌중의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물론, 공능자가 쓰러진 마당에 청성의 무인들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없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 즈음에는 당가의 무인들 역시 저 ‘죽립의 사내’가 딱히 자신의 편 또한 아님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소협—!”
그때, 당려옥이 외쳤다.
“괜찮으세요?! 상처는—”
타닷, 이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공능자가 쓰러진 순간, 긴장이 탁 풀리며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 것이었다. 허나 고개를 돌린 이벽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당 소저.”
흠칫.
당려옥의 눈이 흔들렸다.
무심코 뻗어지던 손이 멈추었다.
죽립 사이로 비치는 이벽의 눈빛은 건조했다. 당려옥은 ‘아군’이 아니라는 입장을 다시금 되새겼다.
“…소협.”
“잘 되었군. 혹시 산공독이 있소?”
철컥, 이벽이 검을 거두었다.
“아미파의 무인들을 중독시켰다면… 저자 역시 당분간 내력을 묶어둘 수 있겠소?”
이벽의 시선이 공능자를 스쳤다.
“…네. 아마도요.”
“부탁하겠소. 그리고.”
이벽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만 더 부탁하자면, 내가 굳이 소저에게까지 손을 써야 할 일은 생기지 않도록 해주시오.”
“…그럼요.”
당려옥이 생긋 웃었다.
꾸욱, 뻗어지다 만 당려옥의 두 손이 등 뒤로 숨겨진 채 서로를 붙들었다.
* * *
후욱.
당가의 무인들이 제독제를 뿌렸다. 이내 전투 중에 살포되었던 공기 중의 독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이후 이벽은 비교적 부상이 가벼운 당가와 청성의 무인들로 하여금 서로를 포박하도록 지시했다.
반면 그 상세가 위중한 이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목숨을 잃지 않게끔 처치하는 것을 허락했다.
일련의 과정들은.
당려옥에게 감독을 맡겼다.
타닷, 훅.
이후 이벽은 산문을 나섰다.
경신법을 펼쳐 지나왔던 거리를 되짚은 뒤, 마침내 정연화를 두고 왔던 장소에 도달했다.
“…헛, 으, 은공?!”
나뭇가지 위에 잠자코 앉아 숨을 죽이고 있던 정연화가 이벽을 발견하고선 일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이벽이 본단으로 향한 지 고작해야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사, 상황은 어떻게……?”
초췌한 안색의 정연화가 말했다. 퍽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여, 역시 혈혈단신으로는 무리가—”
“다 끝났소. 내려오시오.”
“…어, 네?”
이벽은 정연화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다시 아미를 향했다.
타닷.
“……!”
그때까지도 불안을 감추지 못하던 정연화는 이내 복호사의 마당에 포박당한 채 잠자코 무너져 있는 두 무리의 무인들을 발견했다.
“청성과 당가요.”
“…다, 당가요?”
“그렇소. 보아하니 독을 푼 것은 당가 쪽의 소행이었던 것 같소. 뭐,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도 당신들의 편은 아니지만 말이오.”
“…….”
정연화가 침묵했다.
거칠게 흔들리는 눈빛이 이벽을 향했다. 풀썩,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무너졌다.
“감사합니다, 은공! 은공께는… 삼생(三生)을 거듭해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일부라도 갚을 수 있다면 이 몸이 부서진다 해도 반드시……!”
쿵쿵, 이마를 찧기 시작했다.
“…일어나시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과례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이후.
정연화는 경내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내력을 금제 당한 채 각자의 처소에 감금되어 있던 아미의 사숙과 사형제들을 풀어주었다.
또한.
제압된 당가와 청성의 무인들을 객당으로 몰아넣어 두었다. 그렇게 폭풍 같던 밤이 흐르고 어느덧 아침이 찾아왔다.
“이쪽입니다, 은공!”
이내 이벽은 정연화에 의해 엉망이 된 아미의 경내를 안내받았다.
드륵.
앞장선 그녀가 가장 안쪽에 자리한 승방의 장지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너머로 자리에 앉은 중년의 비구니가 나타났다. 눈이 마주친 순간, 여인과 이벽은 서로를 살폈다.
“…….”
이벽은 여인의 강함을 직감했다.
강직한 인상과 꼿꼿한 모양새에선 살아온 세월과 갈고닦은 무가 느껴졌다.
허나.
‘…마모되었군.’
초췌한 안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어쩌면 당가의 독에 당하기 이전부터 이 여인에게는 무언가 ‘다른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꿔 말하자면.
이미 더 큰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독 따위에 허무하게 당했다고도 할 수 있을 테다.
슥, 이내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은인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오. 빈도는 미욱하나마 아미의 장문인을 맡고 있는 정진사태라 하외다.”
“하오문의 이벽이오.”
“과연 신룡이시구려. 과거 신개와 천존께서 그렇게나 탐을 내던 소협이 대체 누군지 퍽 궁금했는데 드디어 존안을 뵙게 되는군.”
“…과찬이시오.”
“과찬이라니 그럴 리가 있겠소? 겸손도 지나치면 오히려 비례가 된다오. 그래,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려. 나 역시 여인이 아닌데도 탐이 나는 건 소협이 처음인 것 같소.”
“…….”
정진사태의 입가에 설핏 작은 웃음기가 감돌았다. 허나 금세 초췌함으로 다시 덮여버렸다.
“소협께는 하해와 은을 입었으니 마땅히 이를 갚아야 할 것인데… 당금의 누추한 저희로서는 뭘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소.”
“…그거라면 달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소. 이쪽의 정 소저와 이야기했던 대로 거래를 했을 뿐이니.”
“거래? 그게 무슨 말이더냐?”
정진사태의 눈이 정연화를 향했다. 정연화가 허둥지둥 설명을 이었다.
“…개방과의 중재라.”
훗, 정진사태가 가볍게 웃었다.
“고작 그러한 일로 입은 은혜의 만분지 일이나마 갚았노라 말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구려. 애당초 개방이 소협을 그리 문전박대할 것 같지도 않고 말이오.”
“…….”
“신개께서 권왕에 의해 쓰러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안타까운 일이었소. 허나 그 당시 소협이 ‘함께 죽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뭐가 있었겠소?”
이벽은 답하지 못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허나.
“연화야.”
정진사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네가 은공과 연이 닿은 모양이니… 이 일은 네가 맡아줘야겠구나. 불편함 없이 모실 수 있겠느냐?”
“…네?”
흠칫, 정연화의 눈이 흔들렸다. 잠시 멍한 얼굴을 짓다가 이내 꾸욱, 주먹을 말아쥐었다.
“네, 장문인! 맡겨만 주세요!”
“…그래.”
훗, 정진사태의 눈가에 주름이 스쳤다. 문득 목에 걸고 있던 염주를 벗어 정연화에게 내밀었다.
“이걸 네게 맡기마.”
“……!”
그것은.
아미파의 장문령인 백팔염주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쿵, 정연화가 머리를 찧었다.
“소협, 저 아이가 소림까지 소협을 모시고 갈 것이오. ‘보기보다는’ 영특한 아이이니 불편함은 없을 것이외다.”
“…….”
딱히 잘못된 것은 없었다.
이벽은 왠지 부담을 느꼈다.
허나 다음 순간, 정진사태의 말에서 이벽은 위화감을 눈치챘다.
“…소림?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말했듯이.
이벽의 목적지는 개방이며, 개방의 본단은 하북의 천진에 자리하고 있다.
하남의 소림과는 딱히 가까운 거리조차 아니었다. 허나.
“그렇군. 소협께서는 애당초 정도의 무인도 아닐뿐더러 무림을 떠나계셨으니… 근래의 동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계시는구려.”
정진사태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이벽이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에 대해 설명을 이었다.
이벽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개방이… 본단을 버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