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44)
250화. 청성제일검
부르르.
경합하는 검과 검이 잘게 떨렸다.
그 두 자루의 검 중 하나를 쥐고 있는 공능자의 얼굴에도 이내 딱딱한 기색이 어렸다.
“…그대는 누구인가?”
공능자가 말했다.
당가 여식의 손목을 베려던 순간, 불현듯 검 하나가 검로를 막아섰다. 그 속도는 자신에게조차 퍽 놀라운 수준이었다.
또한.
부르르르.
두 검 사이의 경합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즉, 내력조차 자신에게 밀리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냥 무명소졸이오.”
“…….”
검을 마주한 사내가 답했다.
그 목소리나 죽립 아래로 얼핏 드러나는 얼굴에서 공능자는 상대의 연배가 그리 높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허나.
그가 아는 한,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닌 ‘젊은 사내’가 의혈맹 측에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 의혈맹을 떠나.
이런 터무니없는 이가 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공능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그때였다.
“당 소저.”
죽립의 사내가 말했다.
흠칫, 사내의 등 뒤에 선 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당려옥의 어깨가 흔들렸다.
“지금 대체 뭘 하고 계신 거요?”
“…네?”
“남의 집 물길에 왜 독을 풀었소? 이전에도 비슷한 짓을 했다가 나와도 갈등을 빚은 적이 있지 않소?”
“……!”
당려옥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허나 그 동공은 이내 서서히 확대되었다. 목소리는… 줄곧 그녀의 기억 한켠에 남아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
죽립의 사내는.
물론 이벽이었다.
한편, 이벽은 난처함을 느꼈다.
당려옥과의 인연의 시작은 비록 악연이었으나, 이내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였다.
그녀는.
과거, 사파무림으로 이벽을 ‘방생’하려던 독왕 당평세를 설득해주었고 그 덕에 이벽은 독왕의 도움을 받아 창공비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당려옥은 약자일지언정 결코 정(正)도 의(義)도 아닌 또 한 명의 침입자에 불과했다.
“…당신께서는.”
당려옥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나는 무명소졸이오.”
허나 이벽이 재차 의사를 밝혔다.
“…….”
그 단호한 어투에서, 이내 당려옥은 사내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한때 전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나 단 한 순간 잘라낸 것처럼 종적을 감추었던 사내였다.
그리고.
여전히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꾸욱, 당려옥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위기의 순간 생각지도 못한 구원을 받았다. 허나.
어째서인지 마냥 기쁘지 않았다.
그것은…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들켜버렸기 때문이었다.
“…면목없네요. 일이라서요.”
이내 당려옥이 힘없이 웃었다.
이벽은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의혈맹주, 권왕 황보혁의 뜻에 의해 당려옥은 ‘비룡대주’인 자신을 추격해왔고, 협상을 빌미로 인근의 물길에 독을 풀어 제압을 시도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입장인 듯 했다.
“하, 과연.”
그때였다.
마침내 공능자가 말했다.
“내 자네가 누군지는 전혀 모르겠네만, 역시 만일을 대비한 진짜 우두머리는 따로 있었던 게로군.”
채애앵.
다음 순간, 이벽의 검을 떨쳐내며 공능자가 훌쩍 물러섰다. 다섯 보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다시 이벽을 마주했다.
“…가능하면 이대로 아미에서 물러나 줬으면 좋겠소만. 혹시 대화하실 생각이 있소?”
이벽이 물었다. 허나.
“엥? 그게 대관절 무슨 말인가?”
핫, 공능자가 코웃음을 쳤다.
“대화를 하자고? 자네는 내가 지금 그럴 기분으로 보이나? 썩 지루하던 찰나에 모처럼 적수를 만난 것 같아 기쁘기 한량없네만.”
말마따나.
중년 사내의 얼굴에는 가벼운 흥분이 어려있었다. 그것은 도인이기보다는 무인의 얼굴이었다.
“나는 청성의 공능자라고 하네.”
“…….”
“자네가 누구인지는 뭐, 더는 캐묻지 않겠네. 기실 자네가 무명소졸이건 뭐건 지금의 내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거든.”
우우웅.
이내 공능자의 주변에서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긴장감이 장내를 둘러쌌다.
“중요한 건… 그래, 자네가 방금 내 ‘속도’를 따라잡았다는 것이네. 물론, 자네 역시 쾌검을 익혔다는 뜻이겠지?”
“…뭐, 틀리지는 않소.”
“그래. 바로 그걸세! 내 자랑은 아니지만, 더는 사문 내에서도 내 속도를 따라와 주는 이가 아무도 없게 되었거든!”
청성은.
도가제일의 쾌검을 추구하는 문파였다. 그리고 그러한 청성에서 ‘가장 빠른 검’을 지녔다는 것은, 즉.
“…소협,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그 이상 무리는 하지 마세요. 그는… ‘청성제일검’이에요.”
그때, 당려옥이 말했다.
허나 이벽은 어찌 되었건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비단 당려옥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정연화와의 약속이었다.
또한.
딱히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아니었다.
“물러서시오, 소저. 대화는 나중에 마저 하도록 하지.”
“…네. 소협.”
당려옥이 잠자코 답했다.
이내 당청을 부축한 채 물러섰다. 그리고 양측의 무인들 모두가 쓰러진 각자의 동료들을 수습한 채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이벽과 공능자.
두 사람만의 공터가 형성되었다.
“선공을 양보하겠네. 어서 오게!”
공능자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달아오른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거 없소. 어차피 피할 거잖소? 그쪽과의 싸움은 선공이 딱히 유리할 것 같지도 않군.”
허나 이벽은 잠자코 답했다.
당려옥의 경고가 아니었더라도.
조금 전, 그녀에게로 쇄도하던 공능자의 일검은 이벽에게도 경각심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속도는 한순간이나마 이벽이 기억하는 취풍신개의 발재간에 필적하는 수준이었으며.
쾌보가 아니었다면, 결코 당려옥을 상처 하나 없이 구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하!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내 체면 불구하고 기꺼이 먼저 들어가겠네!”
다시 공능자가 답했다. 그리고.
훅.
다음 순간.
공능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적어도 장내에 자리한 양측의 모든 무인들에겐 그렇게 보였다. 허나 이벽에겐 달랐다.
‘좌측.’
이벽의 눈이 움직였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검과 검이 부딪혔다. 완숙마저 넘어선 두 강기의 충돌이 사방으로 파장을 퍼뜨렸다.
“좋네! 아주 좋아! 계속 가겠네!”
“…….”
이벽은 상대의 힘을 가늠했다.
전해지는 충격은 만만치 않았다.
허나 그 역시 단순한 내력의 힘이 아니라 ‘속도’에서 비롯된 충격이었다.
극한의 쾌는 곧 그 자체로 힘을 만들어낸다. 다만 그 충돌력이 오랜 시간 지속되지는 않았으나.
후욱.
힘이 채 사그라들기 전, 공능자의 몸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나버린 이후였다.
“…….”
이벽의 눈이 그 궤적을 훑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벽의 신형 역시 허공으로 녹아들듯 사라졌다.
“…허억!”
접전을 지켜보던 무인들 사이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다시금 검과 검이 부딪혔다.
허나 두 사람이 부딪힌 위치는 처음의 충돌에서 이장 이상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훅.
두 사람이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그리고 다시 어딘가에서 충돌음이 터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장내를 종횡무진하며 ‘사라지고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좋아! 바로 이걸세—!”
어딘가에서 공능자의 유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콰아아아앙!
허나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충돌은 다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터져 나왔다.
“…….”
눈으로 좇긴커녕.
잔상조차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당려옥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이들의 표정에서 넋이 빠져나갔다.
훅, 훅.
그저 전해지는 것이라고는.
바람을 가르는 희미한 소리와.
콰아아아앙!
몸까지 파고드는 충돌뿐이었다.
그렇게, 불과 몇 호흡 만에 두 사람 사이에서 몇 합이 오고 갔는지, 당려옥은 셀 수도 없게 되었다.
심지어 두 사람 간에 펼쳐지는 접전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는 듯했다.
콰아아아아앙!
급기야 움직임은 ‘소리’보다도 빨라져서, 충격파가 일었을 때 이미 그 자리에는 잔상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대체… 뭐가 되신 건가요?”
당려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 *
콰아아아앙!
“하핫! 이런 상쾌한 싸움을 해본 지가 대체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구만! 내 자네에게 고마움을 느낄 지경이네!”
공능자가 외쳤다.
이벽은 잠자코 그의 뒤를 쫓았다.
목천의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마치 경주를 벌이듯 서로 쫓고 쫓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서로의 입장이 뒤바뀌었다.
‘…뒤처지고 있군.’
허나 이벽은 직감했다.
창공비검을 일으켰으되, 이벽의 검과 몸과 발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쾌의 묘리였다.
처음에는 다른 종류의 묘리를 섞으려 했으나 이내 잠시라도 쾌를 놓는 순간,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그러고도 공능자의 움직임은 가속을 거듭했으며, 이내 이벽은 쾌보까지 꺼내 들어야 했다.
콰아아아앙!
그러고 나서야.
가까스로 평수를 이루었다. 허나.
극한까지 치달은 속도의 경쟁 속에서, 이벽은 자신의 움직임에 숨어있는 미묘한 ‘어긋남’을 느꼈다.
“…….”
잠깐의 고민에 잠겼고.
이내 그 정체를 이해했다.
‘쾌보’의 기예는.
과거, 이벽이 취풍신개에게서 착안하여 얻어낸 기예이며, 본래부터 선우세가의 무공에 뿌리를 둔 기예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경신법 안에 녹여내었음에도.
극한까지 속도를 이끌어 내자 창공비검의 무리와 서로 충돌하며 그 ‘이질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공능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걱.
이벽의 옷자락이 베였다.
“핫! 슬슬 힘에 부치나? 그래도 대단하네. 암, 대단하고말고! 분명히 말하네만, 이 정도까지 나를 따라온 상대는 그간 아무도 없었네!”
“…….”
이벽은 호승심을 느꼈다.
공능자에게 있어 이벽이 즐거운 상대이듯, 이벽에게도 공능자의 극쾌(極快)는 스스로를 가늠해보기에 아주 좋은 상대였다.
무인으로서는.
다소의 상처를 입더라도, 이대로 쾌의 묘리와 목천의 기예만으로 끝까지 승부를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치열한 싸움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화두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럴만한 상황은 아닌가.’
당가, 그리고 아미.
어쨌거나 마냥 비무에 심취하고 있을 만한 입장은 아니었다. 이내 이벽은 싸움을 끝낼 결심을 했다.
물론, 가진 힘을 전부 드러내지 않고서 제압할 수 있다면 좋았을 터이나 그 정도로 녹록한 상대는 아니었다.
허나 그때였다.
후욱, 탓.
마치 그 마음을 읽어냈다는 듯.
공능자가 훌쩍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저만치 이 장 바깥에 착지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좀 기묘하단 말이지?”
공능자가 말했다.
“뭐가 말이오?”
“빠르기는 둘째치고… 어째 자네의 움직임에서 묘하게 우리 청성의 흔적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일세.”
“…….”
검치 선우명은.
수많은 도가문파를 전전하고 기본 검공을 끌어모아 청강유엽검식을 창안했다. 따라서.
청강유엽검식의 쾌의 묘리가.
도가제일의 쾌검을 지향하는 청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허나 물론.
이벽이 할 말은 없었다.
“말했듯이 그저 무명소졸이오.”
“…뭐, 그야 그렇겠지. 슬슬 자네의 정체가 신경 쓰이네만 일단은 미뤄두겠네. 우선은 쓰러뜨린 다음에 저 당가의 여아를 조금 ‘훈계’하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일세!”
“…….”
철컥.
문득 공능자가 검을 거두었다.
허나 물론 싸움을 그만두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대로 칼자루를 쥔 채, 허리를 낮춘 공능자의 기세가 몸 안으로 한껏 응축되었다.
발검식을 준비하는 그 자세는.
이벽의 눈에도 퍽 낯이 익었다.
“자, 내 일검을 받아보게나. 자네라면 자격이 충분한 것 같으니. 보나 마나 자네도 아직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테지?”
“…….”
이벽은 조금 놀랐다.
아무래도 공능자는… 지금까지의 싸움보다도 ‘조금 더 빨라질 수’ 있는 듯했다.
목천의 끝이자 등천의 시작.
상대는 그 경계에 머무르고 있었으며, 과거의 맹적(猛敵)이었던 흑천방주 맹철극의 아래가 결코 아니었다.
적어도 ‘쾌’에 한해서만큼은 자신이 반수 정도 뒤처져 있음을 이벽은 이해했다.
허나 물론.
‘경지의 차이’란 그런 소소한 뒤처짐을 가볍게 메꾸고도 남는다. 고로 결과가 달라질 것은 없다.
이벽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사락사락.
이내 당연하다는 듯 몸 주위를 흩날리고 있는 무수한 나뭇잎의 존재를 느꼈다.
“…자네, 지금 뭘 하는 겐가?”
“걱정 말고 편하게 들어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