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55)
261화. 협행 (1)
모처럼의 식사에 독이 섞여 있음을 알아챈 뒤, 일행은 그대로 객잔을 나섰다.
그리고 뒷골목을 벗어났다.
그때 이미 시간은 저녁을 지나 늦은 밤을 향하고 있었으나 이내 그대로 도시의 성벽마저 벗어났다.
“배합 솜씨가 제법이던걸요.”
당려옥이 말했다.
“무작정 독을 탄 게 아니라… 갖가지 음식에 서로 다른 독재를 써서 몸 안에서 섞여들어야 비로소 독성이 일어나도록 잘 조절되어 있더군요.”
“…….”
“마취제에… 산공독을 조금 섞은 것 같아요. 아마 한 시진쯤 지나면 몸 안에서 본격적으로 독이 돌겠죠.”
목소리는 퍽 태연했다.
허나 이벽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했다.
산공독을 섞었다는 것은 즉, 이벽 일행이 무림인임을 알고서도 습격을 시도했다는 것이며.
일행이 중독되었음을 눈치채기도 전 마취제에 취해 잠에 빠져들면 비로소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었을 터였다.
“…….”
심지어.
‘적’들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이벽은 예의 골목에서부터 따라붙은 미행이 도시를 벗어난 지금에 이르러서까지 뒤를 따라붙고 있음을 느꼈다.
“뭐, 저들의 마음도 이해는 가요. 제 꽃 같은 미모를 본 이상 그냥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겠단 생각이 들었겠지요. 아, 물론 정 소저도요~”
“…….”
허나 당려옥의 말에도 정연화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거듭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애써 평정을 유지하듯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쩝, 당려옥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다시 이벽을 향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협?”
이벽은 잠시 할 말을 고민했다.
하남에 접어든 뒤 지나온 모든 마을이나 도시의 양민들은 일행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일행은 ‘습격’을 당했다.
또한 독을 다루는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상대 역시 단순한 뒷골목 왈패는 아닐 공산이 컸다.
“…도적들이 세력을 이뤘군.”
“네. 아마도 납치와 인신매매 따윌 일삼는 것들이 이 근방에 대대적으로 자리를 잡은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정파무림 한복판에서 일어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허나.
다양한 세력들이 섞여 있는 여타의 지역들과 달리, 하남은 오랜 시간 동안 전적으로 소림에 의해 다스려지던 영역이었다.
무림에서의 ‘영역’이란.
본파에서 뻗어 나온 속가제자들이 자신의 문파 혹은 사업체를 차림으로써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것이다.
허나.
근래의 구 무림맹은 위축되었고.
하남 외곽의 소림 세력들은 정도맹과 의혈맹의 갈등을 피해 서둘러 발을 뺐다. 그렇게, 치안의 공백 상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금의 상황에는 무언가 납득되지 않는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다.
허나 이내 이벽은 고개를 저었다. 자초지종이야 어찌 되었건, 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할 일’이었다.
“슬슬 설명해주시겠소?”
다시 이벽이 말했다.
음식의 독을 확인한 순간.
이벽은 그대로 객잔을 뒤엎으려 했다. 허나 당려옥이 이를 말렸고, 눈짓을 통해 조용히 자리를 떠날 것을 권유했다.
그녀에게 달리 생각이 있음을 이해한 이벽은 이내 당려옥의 뜻에 따랐고, 그렇게 일행은 현재에 이르렀다.
“소협, ‘협행’ 할 거죠?”
마침내 당려옥이 말했다.
“악적들이 있고, 분명 납치된 양민들이 있을 테니… 갈 길이 바쁘지만, 소협은 협객이니까 당연히 구하러 갈 거잖아요?”
“…….”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소협이 아니라 제가 전면에 나서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서요.”
“…어째서 그렇소?”
“왜냐면요. 소협은 너무 강해요.”
당려옥이 설명을 이었다.
“제가 보기에 꽤 체계적인 녀석들인 것 같은데… 무턱대고 쳐죽여봤자 본거지도 알아내지 못하고 그냥 꼬리가 잘려 나갈 뿐이거든요.”
흘끗.
당려옥이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로서는 미행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는 못했으나, 이벽이 그렇다고 한다면 물론 틀림없을 터였다.
“훈련 정도에 따라서는… 어설프게 고문을 한다고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끊었지, 쉽게 불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
“특히 이 정도로 독을 다룰 줄 아는 이들이라면… 입안이나 몸 안 어딘가에 ‘최후의 수단’ 하나쯤은 숨기고 다니는 게 보통이거든요.”
문득 기억 하나가 이벽을 스쳤다.
과거, 마을 사람들을 이용해 이벽을 습격했던 칠독문의 무인들은 패색이 짙어지자 망설임 없이 독단을 씹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었다.
“…소저도 독단을 감추고 있소?”
“그럼요~ 재수 없게 붙잡혀서 온갖 고문과 능욕을 당하고 동료한테 민폐가 되느니 눈 딱 감고 죽는 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지 않겠어요?”
“…….”
그것은 태연한 목소리로 털어놓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허나 무림인이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지체 높은 집안의 금지옥엽처럼 보이는 그녀였으나 실상은 늘 입안에 죽음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왜요? 갑자기 불쌍해 보이나요?”
“…딱히 그런 건 아니오.”
“곁에서 책임져줄 거 아니면 남 인생에 함부로 감정 이입하는 거 아니에요~”
“…….”
훗, 당려옥이 코웃음을 쳤다.
“좌우간 그러니 이렇게 하죠.”
당려옥이 품에서 어린아이 주먹만 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마개를 묶은 매듭을 풀자 은은한 꽃향기가 새어 나왔다.
퍽 익숙한 향이었다.
“본가의 천리향이에요.”
그것은.
서천무존 정룡과 대치하고 있던 와중에 이벽이 그녀에게서 맡았던 바로 그 향이었다.
독왕 당평세는 일대에 퍼져나가는 이 향을 통해 일행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협, 혹시 말인데요. 이 냄새를 기억하고 따라올 수 있겠어요?”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소.”
물론, 천리향이라고 해도 실제로 그 향을 통해 추적을 진행하려면 그만한 훈련을 거쳐야 할 것이었다.
허나 상단전의 활성화를 통해 감각을 극대화한 이벽은 비록 천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뒤를 쫓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호홋! 다행이네요. 그럼.”
당려옥이 배시시 웃었다. 이내 능숙한 동작으로 주머니 안의 분말을 자신의 몸 곳곳에 찍어 발랐다.
“제가 기꺼이 놈들에게 ‘납치당해줄’ 테니… 소협은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정 소저와 함께 멀찍이 거리를 두고서 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
“그리고 놈들의 본거지에 이르러서 납치된 양민들을 발견하면… 그때 제가 소란을 일으킬 테니 와서 절 구해주시면 돼요. 아셨죠?”
‘스스로 납치’된다.
그것은 물론, 앞서 납치된 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기에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일 터였다. 허나.
“그건 너무 위험하오.”
이벽은 고개를 저었다.
만일 자신이 개입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거나 무언가 변수가 생긴다면 자칫 당려옥이 지나치게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저기 소협? 그야 소협의 눈에는 알량해 보이겠지만요. 저 당가의 잠영난봉 당려옥이에요.”
허나 다시 당려옥이 말했다.
“하물며 상대는 독을 쓰는 녀석들인데… 소협이 올 때까지 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하는 얼간이는 아니거든요?”
“…….”
“사실 원래 이런 아무런 이득도 없는 위험한 짓 따위 절대 안 하지만… 기왕에 소협과 함께하는 거, 소녀도 협행에 숟가락 한 번 얹어보려고요~”
훗, 당려옥이 머리를 쓸었다.
일순 이벽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협행?”
“…….”
물론, 위험한 일이었다.
허나 그녀는 무림인이었으며, 위험이 따른다는 것만으론 뜻을 꺾을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함을 이벽은 이해했다.
“흥! 웃기지 마요!”
허나 그때였다. 여태껏 잠자코 있던 정연화가 돌연 코웃음을 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침입자 주제에 정의로운 척을 하고 있네! 당신, 납치고 뭐고 기회를 봐서 우리에게서 도망치려는 거죠?! 내가 그런 말을 믿을 것 같아?!”
“…소저, 제가 천하십대고수랑 맞서 싸우는 소협을 상대로 대체 어떻게 도망 따윌 치겠어요?”
“흥! 그야 뭔가 더러운 꿍꿍이가 있겠지! 허나 소용없어요! 우리 아미를 위해 당신은 잠자코 붙잡혀 있어야 해!”
탕, 정연화가 가슴을 두드렸다.
휙, 고개를 돌려 이벽을 향했다.
“은공! 걱정 마세요! 이 여자가 행여 딴생각 못 하도록 제가 이 여자 옆에 콕 달라붙어 있을게요!”
“…….”
“…….”
나머지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이내 정연화의 말이 ‘자신 또한 당려옥과 같이 미끼가 되겠다’는 뜻임을 이해했다.
“…솔직하지 못하네요, 정 소저. 제가 걱정되어서 그런 거죠?”
“칵! 웃기지 마! 누가 당신 따윌—!”
“고마워요, 소저.”
덥석, 당려옥이 정연화의 손을 붙들었다. 흠칫, 정연화의 몸이 떨렸으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려옥이 다시 손을 거두었을 때, 정연화의 손바닥 위에는 구슬 같은 단약 하나가 놓여있었다.
“소저, 이걸 혀 밑에 숨겨놔요. 가급적 삼키지는 말구요.”
“…이게 뭔데요?”
“만해환(萬解丸)이란 건데… 뭐, 쉽게 말해 본가의 비전 해독약이에요. 이걸 입에 머금고만 있으면 독이 몸 안에 퍼지더라도 의식을 잃지는 않을 거예요.”
“…….”
“힘들겠지만… 일단은 저들의 눈을 속이려면 독에 당해줘야 하니까요.”
당려옥이 눈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 일행은 객잔에서 독이 주입된 음식을 먹었고 그 결과, 몸 안에는 서서히 독 기운이 눈을 뜨고 있었다.
물론, 아직 혈로까지 퍼지지 않은 지금의 단계라면 운기를 통해 충분히 해독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중독을 눈치채지 못한 척.
해독을 ‘일부러’ 포기한다.
“…왜 나한테만 주는 건데요? 당신은요?”
정연화가 물었다.
“왜냐면 귀한 거라 저도 하나밖에 없거든요~ 아, 제 걱정은 말아요. 고작 이 정도 수준의 독을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당가 무인으로서 부끄러운 노릇이 아니겠어요?”
“…누가 당신 따윌 걱정하냐고?”
당려옥을 일견한 정연화가 이내 만해환을 입에 털어 넣었다. 허나 다음 순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훗.”
당려옥이 작게 웃었다.
만일 정연화가 당려옥을 진심으로 믿지 못했다면, 애초에 그녀가 주는 단환을 냉큼 입에 넣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당려옥은 그러한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내지는 않았다. 다만 이벽과 정연화를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일단은… 소협과는 거리를 둬야겠네요. 소협이 저잣거리에서 보여준 일검으로 인해 저들의 경계심이 상당할 테니 말이에요.”
“그렇군.”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뒤를 따라붙은 추적자들이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이벽의 존재 때문일 터였다.
고로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도록, 이벽은 두 사람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사라져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벽은 당려옥의 천리향을 기억했으므로 행적을 놓친다고 해도 냄새를 통해 얼마든지 행방을 되짚을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오밤중에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갈라서는 것도 오히려 경계심을 키울 수 있으니… 대판 싸워서 찢어지도록 할까요?”
“…싸운다고요? 갑자기?”
정연화가 되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은요, 이런 거죠.”
저벅.
다음 순간, 당려옥이 이벽에게로 다가섰다. 코앞에서 눈을 마주한 당려옥이 생긋, 미소를 보였다.
짜악.
다음 순간, 이벽의 얼굴이 한쪽으로 훽 돌아갔다. 당려옥이 이벽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어쩜… 당신 정말 최악이군요!”
그리고 당려옥이 외쳤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셋이 같이 뒹굴자구요?! 세상에, 멀쩡한 얼굴을 하고선 이렇게 천하에 둘도 없는 지저분한 쓰레기였다니!”
“아니, 내가 언제…….”
“입 닥쳐요, 이 색마!”
빠악.
당려옥의 발길질이 이벽의 정강이를 두드렸다. 딱히 아플 것은 없었다. 허나.
연기임을 알면서도.
이벽은 억울함이 치솟았다.
덥석.
“가요, 소저! 이따위 얼굴밖에 없는 사내에게 놀아났다간 몸도 마음도 더럽혀지고 평생을 후회와 눈물 속에 살게 될 거예요!”
다음 순간, 당려옥이 정연화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리고 분에 찬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길을 따라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
정연화가 상황을 채 따라가지 못한 얼굴로 질질 끌려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어둠 속에 홀로 남게 된 이벽은 우두커니 섰다.
“…….”
말없이 뺨을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