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99)
306화. 최후의 실마리 (1)
“놈의 시신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제 두 눈으로 직접요. 어려울 것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참마일도 팽무옥이 말했다.
“…….”
충혈된 두 눈이 일순 붉은빛을 번쩍였으며, 한 자 한 자 씹어뱉듯 던져진 목소리는 살기를 감추지 못했다.
때문에.
당가주, 당명오는 다시금 말문이 막혔다. 불현듯 지난 기억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 년 전, 의혈맹주 황보혁의 이름으로 정파무림에 발을 들인 사파의 수괴 비룡대주를 향한 추포령이 붙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당명오는 그러한 일에 굳이 나설 생각이 없었다. 허나 주변의 무가들이 나서는 것까지 말릴 수는 없었다.
팽가 또한 그중 하나였다. 허나.
그 과정에서 팽가의 무인 몇몇이 비룡대주 이벽에게 목숨을 잃게 되었고, 이후 팽무옥은 당가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해왔다.
당명오는 내키지 않았으나.
줄곧 이웃으로서 가까이 지내던 팽가의 요청을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당명오는 당려옥, 당청을 비롯한 몇몇 혈족들을 팽무옥과 함께 보내어 이벽의 나포를 지시했다.
허나 결과적으로.
비룡대주의 포획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고, 당청과 당려옥은 도리어 그에게 목숨을 구명 받은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악연이 될 뻔했던 이벽과 당가의 관계는 무마되었고, 이후 선대 가주 당평세에 의해 그가 선우세가의 혈통임을 알게 된 이후의 관계는 더욱 애매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혈족들 몇몇을 잃어버린 팽가의 입장에서는 전혀 ‘무마’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물며 복수를 도와줄 것이라 기대했던 당가가 오히려 비룡대주를 ‘용납’해버렸다.
일가를 대표하는 입장으로서.
팽무옥이 당가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허나.
“…그것은 불가하오.”
당명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룡대주의 신변에 관해서는 본가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 어찌 되었건 당장 그자의 목을 벨 생각은 없소이다.”
“……!”
번뜩.
그 순간, 팽무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흉악한 살기가 어깨 위로 피어올랐다.
움찔.
그 순간, 당명오는 호흡을 삼켰다. 자신도 모르게 소매 안쪽의 암기를 어루만졌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허나.
언제 그랬냐는 듯 팽무옥은 이내 본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다시금 당명오에게 포권한 뒤 그대로 돌아섰다.
저벅.
이내 멀어지기 시작했다.
‘…뭔가 이 불온한 기세는?’
당명오는 손바닥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 팽무옥에게서 맡아진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피 냄새’였다.
물론, 실제하는 냄새가 아니라 그에게서 뿜어진 기운이 그만큼 흉포했기 때문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허나 그것은.
용맹하되 또한 정순했던 본래의 팽가의 무인에게서 느껴지던 기운과는 퍽 동떨어져 있었다.
‘역시… 무언가가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당명오가 기억하고 있던 팽무옥의 무공 수위는 절정에 불과했으나… 그 정도라면 자신이 이와 같은 위협을 느낄 리 없다.
알 수 없는 찜찜함 속에서.
당명오는 짧은 생각에 잠겼다.
중얼중얼.
“죽지 않은 게로군… 살아있어… 독왕과 싸우고도 아직도 살아 있어. 놈이 살아있다고… 시퍼렇게 말야. 크흐흐.”
허나 그때, 저만치로 멀어지던 팽무옥이 광인과 같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팽 대협.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다면 내 본가의 객당으로 모실 터이니 며칠의 말미를-”
당명오가 다시 팽무옥을 향했다.
“……?”
허나.
팽무옥의 뒷모습을 바라본 순간.
당명오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도는 어디?’
그리고 이내 그 정체를 이해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그 등에 비껴 매어져 있던 거대한 도가… 거짓말처럼 모습을 감춘 것이다.
훙훙훙.
그리고 바로 그때, 당명오는 섬찟한 소리를 감지했다.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자신의 측면을 파고들고 있다.
타앙.
그 정체를 확인할 새도 없이 당명오는 황급히 자리를 박찼다.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무언가가 땅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물론, 그것은 팽무옥의 도였다.
소리도 없이 집어 던져진 도가 회전의 힘을 실은 채 곡선을 그리며 측면으로 날아든 것이다.
“패, 팽 대협! 이게 무슨 짓―!”
당명오가 일갈하려 했다. 허나.
타아아앙.
“어찌… 어찌! 어찌해서…! 대체 왜! 그 찢어 죽일 놈을… 살리고 살리고 또 살려둔단 말이더냐―!!”
다음 순간, 팽무옥이 도리어 고함을 내지르며 땅을 박찼다. 그 즉시 땅에 박힌 도를 회수한 뒤 당명오에게로 쇄도했다.
후우욱.
‘…빠르다!’
당명오가 상황을 인지한 순간, 팽무옥의 도는 이미 그를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후우우웅.
“으아아아아―!!”
“…큭!”
당명오가 서둘러 팔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앙―!!
이에 도와 맨주먹이 부딪혔다.
허나 물론 당명오의 주먹에는 이미 녹색빛의 강기가 서려 있었으며, 충돌의 순간 뱀처럼 휘어진 주먹은 도의 날 부분이 아닌 측면을 두드렸다.
타아앙.
그대로 도신이 튕겨 나갔다.
“팽무옥! 내 경고하겠다! 이 이상 후회할 짓 하지 말고 당장 도를 거둬라! 그렇지 않으면―”
“입 닥쳐라, 이 더러운 배신자야!”
후우우우욱.
허나 팽무옥은 도를 멈추지 않았다. 튕겨 나온 도가 빠르게 추슬러지며 다시금 당명오의 허리를 향해 뻗어졌다.
“당명오, 후회할 짓은 네놈들이 먼저 했다! 우리 의혈맹을 배신하고 비룡대주를 싸고돈 것은 당가와 빌어먹을 독왕이 아니더냐―!!”
“이자가 뚫린 입이라고―!!”
콰아아아아앙―!!
다시금 도와 주먹이 부딪혔다.
서걱, 찌이이익.
“……!”
그리고 당명오의 눈이 흔들렸다.
측면을 두드려 쳐내었으나, 그 순간 옷자락 위로 다섯 갈래의 찢겨짐이 새겨졌기 때문이었다.
범의 발톱을 연상시키는 그 흔적은 팽가의 비전절기, 오호단문도의 특징이었다.
허나 ‘닿지도 않고 상대를 해하는’ 경지는 단순히 도의 움직임이나 강기를 다루는 솜씨로는 설명될 수준이 아니다.
‘역시… 절정을 넘어섰나.’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다시금 주먹과 도가 부딪혔다.
삽시간에 십여 초가 오고 갔다.
이내 당명오는 난처함을 느꼈다.
어떻게든 권각으로 상대하고 있으나, 그의 독문병기인 암기는 이와 같은 근접전에서는 빛을 발하기 쉽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아―!!”
하물며 광인처럼 마구잡이로 도를 뻗는 팽무옥에게는 공기 중에 흩어진 내독마저 큰 영향을 못 미치는 모양이었다.
기습을 예상치 못했고.
너무 쉽게 지근거리를 내주었다.
훅, 후욱, 콰아아아앙.
또한 파고드는 도를 모조리 튕겨내고 있음에도 발톱과 같은 생채기가 계속해서 당명오의 몸 위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참으로 별거 없구나, 당명오! 천하의 당가주란 게 고작해야 이 정도였단 말이더냐―!”
“…….”
다음 순간.
당명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후우욱, 콰아아아앙―!!
다시금 도와 주먹이 부딪혔다.
허나 지금까지와는 달리, 당명오의 주먹은 옆면이 아닌 도의 날을 정면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파앗.
“…크으.”
당명오의 미간이 흔들렸다.
주먹이 찢어지며 긴 자상이 그어졌고, 이내 팔과 어깨까지 흉터가 이어지며 적지 않은 피가 튀었다.
“크하하하하! 나약하구나, 당명오! 천하 오대세가 따윈 모두 옛말이 되었군 그래! 그럼 슬슬―”
허나 다음 순간, 기고만장하게 웃던 팽무옥이 황급히 말을 멈추고서 몸을 뒤로 빼내었다.
도신의 날을 정면으로 막아선 주먹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암기가 끼어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후두둑, 핏.
“…커억!”
허나 이미 늦고 말았다.
거의 동시에 암기가 일제히 쏘아졌고, 걔 중 한 자루가 팽무옥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핫, 뭔 말이 그렇게 많나?”
당명오가 웃었다.
어쨌거나 비독을 듬뿍 머금은 암기가 얼굴을 스쳤으므로, 전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비틀.
“…크, 크으으!”
다음 순간, 팽무옥의 다리가 흔들렸다. 그대로 돌아서서 달아나려 했다.
타앗.
“이미 늦었다 팽무옥!”
물론, 당명오는 뒤를 쫓으려 했다. 허나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앙!
퍼어어억, 서걱.
“커… 커어억―!”
“조… 종리 대협! 어, 어째서―?!”
“……!”
멈칫.
당명오의 발이 멈추었다.
장내에 모여있던 뭇 무인들 사이에서 돌연 충돌음과 고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후우욱, 콰아아아앙!
허나, 뿐만이 아니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여기저기서 팽무옥의 그것과 흡사한 핏빛 기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당가가 의혈맹을 배신했다―!!”
“당가는 더 이상 우리의 일원이 아니다―!! 고로 누구든 놈들을 따르는 자는 의혈맹의 적이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인파 속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채애앵, 콰아아앙!
“커… 커어어억―!!”
“이, 이 비겁한 놈―!!”
이어 삽시간에 고성과 혈향이 번져나갔다. 찰나의 순간, 당가의 문 바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 * *
우우우웅.
이벽은 침잠했다.
몸 안을 활개 치는 무형지독은 불처럼 뜨겁고 얼음처럼 차가웠으며, 때로는 쥐떼에 뼈를 갉아 먹히는 듯한 고통을 일으키기도 했다.
허나.
버티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기실 육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이미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으며, 더욱이 심안을 뜬 이후 감각에 압도당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 어떤 극한의 고통이건.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툭, 투둑.
다만 그보다 위협적인 것은.
머릿속의 상단전을 직접 파고든 당평세의 ‘심독’이었다. 귀 안쪽에서 툭, 툭 하는 소음이 반복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렇군.’
그것은.
‘생각을 끊어내는 소리’였다.
상단전에 스며든 날카로운 바늘이 머릿속을 툭툭 찔러대며 생각이 흐름을 타고 이어지는 것을 번번이 끊어놓기 시작했다.
깨달음은 마음에 새겨지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생각이다.
고로 생각을 강제로 끊어버린다면, 마음은 갈피를 잃고 심안 또한 눈을 감아버리며, 선천의 힘을 다스릴 수 없게 된다.
툭, 투둑.
그 감각은 마치.
백치가 되어가는 듯했다.
또한 잠에 빠져들듯 의식이 멀어져갔다. 이내 이벽은 당평세가 자신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툭, 투둑.
허나.
이벽은 의식을 잃지 않았다.
혜공이 보여주었던 부처의 눈 속에서 이벽은 세 조각으로 나뉜 자신의 ‘분신’들을 보았고.
이어지는 참선 속에서.
세 마음을 이어붙여 놓았다.
툭, 투둑.
고로 생각이 끊어지더라도, 다시 하나로 이어놓는 방법을 이벽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끊어진다 해도.
다시 엮어놓으면 그만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군.’
이벽은 마음으로 웃었다.
독왕의 심독과 혜공의 가르침이 부딪힌 결과는 그와 같았다.
동시에 그러한 가르침을 거쳐오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의식을 잃고 말았을 것임을 직감했다.
허나 어찌 되었건.
이벽은 의식을 붙들었으므로, 남은 것은 육신의 통제를 되찾고 심신의 독을 몰아낼 방법을 고민하는 것뿐이었다.
우우우웅.
허나 그때였다.
그저 생각을 방해하는 것만으로는 이벽을 제압할 수 없음을 알아챈 듯, 심독의 암기가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이내 온갖 환영들이 일어났다.
이벽의 눈앞을 비추기 시작했다.
“…….”
자신의 등을 찌른 선우협.
그리고 자신에게 죽어간 이들.
곧이어 처참하게 죽어 나뒹구는 비룡대원들의 시신이나 사형제들, 화정촌민들의 모습 따위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들과 혹은 과거의 이벽을 사로잡았던 악몽들을 교묘하게 뒤섞어놓은 모양새였다.
허나 그 또한.
이제 와 흔들릴 이유는 없었다.
그 모든 과오와 악몽들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 이벽은 심안으로써 그 모든 것들을 내려다보았다.
우우우웅.
다시 풍경이 바뀌었다.
“……!”
이벽의 마음이 흔들렸다.
눈앞에 나타난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무수한 혈관으로 일그러진 그것의 얼굴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스스스.
그리고 압도적인 존재감이 거대한 뱀처럼 이벽의 몸을 칭칭 휘감아왔다.
‘…혈마!’
이벽은 침음했다.
당평세의 심독은 마침내, 이벽의 마음속에서 ‘지금의 이벽마저’ 동요시킬 수 있는 악몽을 발견해내고 만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이벽은 스스로가 그날 그때, 어둠이 내려앉은 산속에 서 있음을 확인했다.
스윽.
혈마의 손이 뻗어졌다.
쩌어억.
그리고 이벽을 둘러싼 뱀이 그 흉측한 아가리를 벌렸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키려 하는 그 주둥이의 모양새는.
마치 불온함 그 자체와 같았다.
또한 혜공의 말대로라면, 저자의 정체는… 육신을 갈아타며 무수한 악업을 쌓아온 존재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천마’일 수도 있다.
그 앞에서 여전히 자신은.
한낱 먹잇감에 불과한 듯했다.
부르르.
이벽의 어깨가 흔들렸다.
서서히 두려움이 차올랐다.
허나 지금의 이벽이 정말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러한 혈마의 존재가 아니었다.
휘오오.
불현듯 바람이 몸을 스쳤다. 땅에서 하늘로, 공기가 위를 향해 빨려들듯 솟구치고 있었다.
이벽은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비치고 있는 것은, ‘최후의 일검’을 쥐어 짜내는 스승의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