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35)
343화. 대치 (1)
“어서 오십시오 동도 여러분!”
이벽을 따르는 사패련과 구 무림맹, 하오문과 당가의 무인들은 마침내 제남의 성벽 앞에 당도했고.
또한 그 직전의 길목에서 검존을 위시한 정도맹의 무인들과 합류했다.
이윽고 두 세력은.
함께 제남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문 앞을 지키고 선 구척 장신의 인영을 발견했다.
인영이 포권과 함께 소리쳤다.
“천하무림 각지에서… 본가의 초대에 응해주신 동도 여러분께 본가를 대표하여 감사드리겠습니다!”
우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성문과 일 장 가량의 거리를 두고서 일행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다.
“저는! 미욱하나마 본가의 소가주를 맡고 있는 황보준이라 합니다!”
“…허헛, ‘동도’라?”
저벅.
검존이 한 걸음 나아갔다.
“황보 소협. 오랜만일세. 허헛!”
“검존 선배를 뵙습니다!”
사내, 황보준이 다시금 포권했다.
그는 권왕 황보혁의 장남으로, 황보세가의 소가주이자 과거 오룡삼봉의 일인으로서 질풍권룡(疾風拳龍)이란 별호로 불리던 사내이기도 했다.
“이거 몰라보게 컸구만 그래?”
“하핫, 소림에서 뵈었던 것이 십오 년쯤 전이니… 핏덩이가 조금은 제 몫을 할 수 있게 된 셈이지요!”
황보준이 능청스레 웃었다.
검존의 눈이 가볍게 흔들렸다.
“헌데 말일세.”
우우웅.
그리고 다음 순간.
검존 주변의 공기가 요동쳤다.
등천의 영역이 일어나며, 물과 같은 기세가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 강호무림이 도를 저버린 마교의 악적들 따위와 ‘동도’가 되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군 그래.”
“……!”
이벽의 눈이 가볍게 흔들렸다.
검존의 영역이 풍기는 기세는 이벽 또한 겪어본 바가 있으며, 그 위압감은 물론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에 맞서고 있는 이는.
권왕이 아니라 권왕의 아들이다.
허나.
“…하핫!”
흡사 강물에 잠겨 드는 듯한 검존의 기세에 에워싸였음에도, 황보준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안색은 조금 창백해졌으나.
압도당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후욱.
다음 순간.
검존의 기세가 거두어졌다.
“…허헛, 그래. 보아하니 혼자서 문을 지키고 있을 깜냥 정도는 있다 이거구먼?”
“말도 마십시오. 어깨가 무거워 죽을 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연 ‘교의 부활’을 선포하신 탓에… 졸지에 소가주 겸 소교주 비스무리한 게 되어버렸지 뭡니까?”
황보준이 재차 어깨를 으쓱했다.
“…….”
이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천하의 기둥 하나를 떠받드는 절대고수의 기세를 정면에서 받고도 그다지 위축되지 않는다.
그 의미는 퍽 명백했다.
“…과연 그렇단 말이지. 허헛!”
검존이 재차 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비무회를 통해 시간을 끈다’는 계획에 다소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쳤다.
설마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후기지수’가 적진에 존재하고 있으리라고는 물론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허나.
흘끗.
검존은 자신의 제자인 송영영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의 변수로는 결과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
“아, 그래! 보아하니 자네가 바로 그 비룡대주 이벽이란 친구로군 그래?”
그때였다.
돌연 황보준이 시선을 돌렸다.
한 걸음 뒤에 선 이벽을 향했다.
“…내게도 무슨 할 말이 있소?”
“그야… 자네는 오래전부터 내 아버님께서 꽤 관심을 보이던 이가 아닌가? ‘천하제일 후기지수’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로구만!”
황보준이 턱을 쓸었다.
“그래, 오 년 전… 자네가 선택을 달리했더라면 내 소중한 ‘아우’가 될 수도 있었을 터인데. 퍽 안타까운 일일세!”
“…….”
과거, 권왕 황보혁은.
취풍신개와 함께 찾아온 이벽을 향해, ‘자신의 딸과 혼인하거나 죽어라’라는 말을 남겼다.
보다 정확히는.
‘검치의 핏줄’을 탐냈던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이오?”
“딱히 어쩌란 말은 아니네. 하핫! 다만 그와 같은 재능이 아까워서 하는 말이네. 뜻이 있다면 아직도 기회는 남아있으니―”
“아… 거 진짜.”
그때였다.
저벅, 쿠웅.
돌연 이벽의 등 뒤에서 거구의 인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이벽과 황보준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우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길 안내하러 나왔으면 빨리 안내나 할 것이지… 뭔 놈의 문지기 주제에 혓바닥이 이렇게 길대?”
물론 혁대웅이었다.
“…자네는 누군가?”
“비룡대주.”
혁대웅이 답했다.
“…하핫!”
다시 황보준이 웃었다.
“비룡대주가 두 명이라. 재미있긴 한데… 부탁이니 지금은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고 비켜주지 않겠나?”
후우욱.
그리고 다음 순간.
이번에는 황보준에게서 사나운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훅, 찰나의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
허나 동시에.
이벽은 바람 속에 스며든 광기의 냄새를 맡았다. 진법 속에서 마주했던 마교의 우호법 풍마를 다시금 떠올렸다.
‘…역시 그런가.’
어쨌거나 결코.
가벼운 기운은 아니었다.
“웬 산들바람이래?”
허나 그 기운을 정면에서 마주한 혁대웅은 정작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은 채 귀를 후볐다.
“……!”
황보준의 표정이 작게 흔들렸다.
“…그래, 이름 정도는 물어봐도 괜찮겠군. 그럴 만한 자격은 있는듯하니… 자네는 누군가?”
“아, 미안한데요. 그 이전에… 그쪽이 내 이름을 들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선 생각 안 해봤어요?”
“…뭐라?”
핫, 혁대웅이 웃었다.
“농담이에요. 혁대웅이라고 해요.”
“…….”
황보준의 미간이 딱딱히 굳었다.
“하핫! 그 이름이라면 나도 알고 있지! 그렇다면… 자네가 바로 그 패왕가의 소가주로구만?”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처음의 미소를 되찾았다.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 기둥뿌리가 뽑히고 퇴물이 된 가주와 반병신이 된 소가주만 간신히 살아남은 집구석도 무가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일세!”
“하핫. 반병신이라.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한데… 그러다가 반병신한테 뚜들겨 맞으면 많이 부끄럽지 않을까요?”
다시 시선이 부딪혔다.
패왕의 후예와 권왕의 후예.
엇비슷한 크기의 두 거한의 기세가 부딪히며 일대 전체에 공기를 짓누르는 듯한 압력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만. 거기까지 하지.”
사라락.
허나 다음 순간.
이벽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혁대웅과 황보준의 사이에 끼어듦과 동시에 주변의 압력이 훅 누그러들었다.
흠칫.
다시, 황보준의 표정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 즉시 고개를 돌려 이벽을 향했다.
“뭐… 싸운다고 해도 지금 이곳은 아니지 않소? 무엇보다 당신, 죽지 않을 자신이 있소?”
“…….”
파르르.
황보준의 눈이 떨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한순간 기세에서 완벽하게 밀리고 말았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검존도 무존도 아닌 애송이 따위에게 이러한 위압감을 겪을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천하제일 후기지수.’
황보준은 내심 이를 갈았다.
허나 이내 다시 웃음을 회복했다.
“…하핫, 다행이군! 자네들을 보니… 비무회가 생각처럼 마냥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구만!”
다만 이벽과 혁대웅을 번갈아 바라보는 황보준의 눈빛으로 찰나의 스산한 기운이 스쳤다.
“그래, ‘지금은’ 내가 졌네! 어쨌거나 ‘유치한 짓’은 여기까지 하고 슬슬 출발하지. 아버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말일세!”
“핫, 꼴에 자존심하고는.”
혁대웅이 코웃음을 쳤다.
* * *
끼이익, 타앙.
이내 제남의 성문이 열렸다.
그리고 땅을 박차는 황보준을 따라 이벽과 검존, 혁대웅이 뒤를 따랐고, 후미의 무존을 끝으로 모든 이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타아앙.
일행은 다시금 경신공을 펼쳤다. 말 그대로 ‘적진 한복판’을 향해 나아갔다.
“…….”
이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남은 대도시이자, 산동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에 걸맞게도 거리의 모습은 퍽 번화해 있었다.
허나 그렇기에.
인적이 ‘사라진’ 그 모습은 외려 을씨년스러웠다. 이벽은 앞서 악적들에게 쫓기고 있던 양민들을 생각했다.
타앙.
“이쪽입니다. 하핫!”
황보준이 걸음을 꺾었다.
일행은 잠자코 뒤를 따랐다. 적진이라 한들 매복 따위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절대고수가 몇 명씩이나 끼어있는 일행을 상대로 그런 무의미한 짓을 하지는 않을 터였다.
타앗.
이내 반 시진 정도를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비무대’가 일행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그것은.
양호명에 의해 전해들었던 환야의 이야기처럼, 도시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단 두 사람의 비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넓고 거대했다.
십여 장가량의 일대 전체가.
하나의 비무대로 채워져 있었다.
아니, 그러나.
어찌 되었건 비무대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내 이벽은 비무대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비무대 건너의 맞은편에는.
백여 명가량의 인파가 질서정연하게 시립한 채 서 있었으며, 그만한 머릿수임에도 잡음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한 기세로부터.
이벽은 상대가 의혈맹의 무인들임과 동시에, 이쪽과 마찬가지로 한 명 한 명이 모두 최정예 전력임을 직감했다.
“…이런, 역시 그렇게 되나.”
그때 검존이 목소리를 냈다.
노인의 시선은 ‘적’들 사이에서도 맨 앞의 정중앙에 위치한 두 인영을 향해있었다.
모든 이들이 서 있는 와중에도.
단 두 명만큼은 보란 듯이 마련된 자리에 앉아있었다. 또한 턱을 괸 채 앉아있는 좌측 사내의 얼굴은 역시 낯이 익었다.
‘권왕 황보혁.’
권태가 감도는 그 얼굴은.
오 년 전 그때와 다를 바가 없다.
이벽은 다시금 취풍신개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꾸욱,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낙검신룡, 보이나?”
다시, 검존이 말했다.
“황보혁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저 늙은이… 남궁세가의 검왕 남궁한일일세.”
“……!”
이벽은 권왕과 나란히 앉아있는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희끗희끗한 노인의 눈빛은 냉막했다.
허나 그 인상에서.
이벽은 소림에서 유명을 달리한 남궁세가주, 천중일검 남궁천승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클클클! 검에 미쳐 제 집안도 내팽개치고 십 년씩이나 종적을 감췄던 주제에… 제 아들이 죽으니 이제서야 무거운 엉덩일 들고 나타났단 말이지?”
무존이 특유의 웃음을 흘렸다.
말인즉슨, 지금 이 순간 상대측에 또 한 명의 천하십대고수가 나타난 것이다.
허나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바는 아니었다.
다시, 이벽은 적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허나 혈마로 추정되는 기세는 좀처럼 감지되지 않았다.
“검존과 무존 선배들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요. 하핫!”
그때, 황보준이 말했다.
마치 이벽이나 혁대웅 따윈 더 이상 안중에도 없다는 듯 두 사람을 돌아보지는 않았다.
“맘대로 하시게나. 누가 잡아먹는 댔나?”
검존이 답했다.
훅, 그러자 다음 순간.
황보준의 몸이 바람처럼 쏘아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비무대 위를 쾌속하게 가로질렀다.
타앙.
이내 의혈맹 무인들의 지척에 착지했다. 꾸벅, 황보준이 황보혁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명하신 대로… 검존과 그 일행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버님!”
휙.
권왕은 대답조차 없이 그저 손을 한 번 내저었다. 고개를 든 황보준이 이내 권왕의 좌측으로 물러섰다.
“다녀왔소, 소저.”
“…아, 네. 수고하셨어요.”
“별일은 없었소?”
“그럴 리가요.”
그리고 지척에 서 있던 여인과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었다. 일순 여인을 향한 황보준의 시선이 짐짓 살가워졌다.
“……!”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심코 황보준의 뒤를 쫒던 이벽과 혁대웅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물론, 오고 간 대화 내용을 알아들을 만큼 황보혁과 여인의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허나.
얼굴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황보준의 지척에 선 여인의 모습은… 두 사람에게 있어 결코 헷갈릴 수조차 없는 얼굴이었다.
부르르.
혁대웅의 눈이 찢어질 듯 치켜 떠졌다. 충격을 먹은 듯 입술마저 잘게 흔들렸다.
“…사, 사저?”
이내 간신히 목소리를 내었다.
말마따나 황보준과 나란히 서 있는 여인의 정체는 낙검문의 대제자, 제갈소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