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84)
392화. 다섯 명의 천마 (4)
콰아아아아아아앙.
“헉… 허억!”
태극검존 태허는 이를 악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진기를 긁어모아 다시금 태극혜검의 영역을 일으켰고, ‘되살아난 시신’의 발을 묶어두었다.
허나.
사라락, 사락.
다음 순간, 시신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스스로가 아직 ‘매화검 청천’임을 주장하듯 검끝으로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새하얗게 빛이 바랜 매화가.
연신 태극의 벽을 두드렸다.
콰아아아아앙, 쩌저저적.
그리고 매 충돌마다.
태극에 금이 하나씩 그어졌다.
후우욱.
물론 꽃잎 또한 태극의 묘리를 넘어서지는 못했으며 다시금 매화검을 향해 되쏘아졌다.
사라락.
허나 흩날리는 꽃바람 속에서 꽃잎들은 서로 상쇄될 뿐, 매화검의 시신에는 닿지조차 못했다.
“허억, 흐흐! 이거 참 오늘따라 이 태허가… 쿨럭, 후학들 앞에서 참으로 못 볼 꼴을 많이 보이는구만 그래.”
검존이 창백한 웃음을 흘렸다.
기실 무당의 태극과 화산의 매화는 기예의 상성에 있어 어느 쪽도 ‘우위’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결국.
동등한 수준의 깨달음을 지닌 상대라면, 내력 혹은 지구력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쩌저적, 쩌저저적.
그리고 다시 그렇기에.
기혈이 찢어지고 내력마저 바닥을 드러낸 지금의 자신으로선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검존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우우우웅.
허나 물러설 곳은 없다.
무당의 장문인이건 정도맹주건 뭐건, 모든 지위를 떠나 이 자리를 버티는 것은 노인이 제자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우우우웅. 쩌저저저적.
“그래, 알겠네, 알겠어. 같이 가세. 자네가 홀로 그렇게 된 것은… 결국 내 맹주로서 불찰이 적지 않았음이야.”
이내 검존은.
진원진기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우우웅, 태극이 거칠게 울었다.
저벅.
허나 그때였다.
“그만 물러서세요, 맹주님.”
검존의 곁으로 인영 하나가 다가섰다. 제갈소미였다.
“뒤는 제가 맡을게요. 소림의 소저가 가세한 덕분에… 상황이 달라졌네요. 그러니 맹주님께서 목숨까지 거실 필요는 없어요.”
“허헛, 아닐세. 아니야. 자네마저 무슨 일이 생기면 내 검선 선배를 무슨 낯으로 보겠나? 자네는 가서 낙검신룡을―”
“맹주님, 이건 화산의 일이에요.”
흠칫.
검존의 미간이 흔들렸다.
우우웅.
제갈소미의 매화검이 울었다. 자색의 기운이 검신을 감싸며 은은한 매화향이 감돌았다.
“걱정 마세요. 저 역시 사제지간의 도리를 다하고자 할 뿐, 이제 와서 죽은 이가 펼치는 매화 따위에 당하지는 않으니까요.”
“…허헛!”
검존이 작게 웃었다. 찰나의 갈등이 스쳤으나, 노인은 결국 제갈소미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래, 그랬던 겐가. 매화검, 참으로 제자 농사가 풍년이로구먼. 배가 아플 지경이네.”
파직, 파지지직, 콰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태극혜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터어엉.
“커허억―!”
검존의 신형이 일 장을 밀려난 뒤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 즉시 진원진기를 붙들기 위한 운기에 들어섰다.
후우우욱, 사라락.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침내 태극의 벽으로부터 벗어난 흰 꽃잎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허나 물론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사라라락.
제갈소미의 검이 횡을 그었다.
그와 동시에 탐스런 매화가 흩날렸다. 홍백(紅白)의 꽃잎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꽃의 지대를 형성했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퍽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허나.
서걱, 서걱. 파아아아아앙.
기실 두 종류의 꽃들은.
어지러이 흩날리는 가운데 서로의 빈틈을 파고들고 날을 세우며 으스러뜨리고 으스러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또한.
차이는 그리 크지는 않으나, 백색의 꽃에 비해 붉은 꽃의 기세가 한 수 뒤처지고 있음은 서서히 명백해졌다.
훅.
다음 순간, 백색의 꽃잎 한 장이 제갈소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륵, 핏방울이 뺨을 흘렀다.
“…….”
허나 제갈소미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외려 그 눈빛은 강바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과연 강맹하고 현란하다.
그것은 분명 재능의 차이였다.
그러나 그뿐, 엄밀히 말하자면 저 새하얀 꽃을 ‘매화’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향과 색을 잃은 것은.
결코 화산의 무공이 아니다.
사라라락. 후우욱.
바로 그 순간.
백색의 꽃들이 급격히 움츠러들었다. 기세에서 밀리는 듯하던 제갈소미의 꽃은 기실 나름의 진형을 빚어내고 있었으며.
일단 형이 완성되고 나자, 그저 강맹하기만 할 뿐 묘리를 갖추지 못한 백색의 꽃들은 제힘을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결국.
‘미완성’인 기예의 한계였다.
“…….”
스승 이진천은.
제갈소미가 제자로서 거두어진 이래, 단 한 번도 화산의 무공을 펼쳐 보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스승의 출신을 알 길이 없었다.
허나 화정촌에 정착한 이래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밤, 제갈소미는 술에 취해 매화나무 아래에서 검무를 추는 스승의 모습을 목도한 적이 있었다.
때는 봄이 아니었기에.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았고, 물론 스승의 검에도 매화 따위는 서리지 않았다. 허나.
꿈결과 같은 기억 속에서 제갈소미는 어쩐지 ‘하얀 꽃’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화정촌을 나선 그녀가 화정봉에 머무르고 있던 스승의 스승에게 닿기까지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주었다.
으득.
제갈소미는 이를 악물었다.
눈앞의 상대는 스승이 아니라 그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스승은 매화검선의 제자였다.
누구보다 화산을 사랑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뿌리에 마(魔)가 심어져 있음을 미처 알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매화검의 묘리를 전부 깨우치기도 전에 절대지경의 깨달음에 먼저 도달해버린 매화검 청천은 돌연 마기에 의식을 빼앗기고 말았고, 육신의 통제를 잃어버렸다.
눈 깜짝할 새에.
매화검에 동문제자들의 피를 묻히고 말았다. 그렇게 매화검 청천은 스승인 매화검선 소청에 의해 단전이 폐해지고 근맥이 잘린 채 화산 바깥으로 내쫓겨졌다.
사실상 ‘죽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도호와 도관을 버린 사내 이진천은 이내 하오문 수호대의 약장수이자 낙검문주로 거듭났다.
참으로 생각할수록.
모순덩어리의 사내였다.
화산과 스승을 잊지 못해 화정촌이란 이름의 마을에 뿌리를 내렸음에도 정작 매화가 필 때쯤이면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곤 했고.
천하의 안위를 걱정하여 제자를 키워냈으면서도 결국은 제자들이 무림으로 향하지 않고 ‘평범하게 숨어 살아가기’를 바랐다.
‘…멍청한 사내 같으니.’
마지막 순간까지.
행동 하나하나가 어리석었다.
한낱 철부지 계집이었던 자신의 목숨을 구한 뒤 절세신공까지 가르쳐놓고선, 아무런 대가도 받아 가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제갈소미를 화나게 했다.
화아아아악.
마침내 매화가 만개했다.
서걱, 서걱.
하얀 꽃들이 일제히 땅에 떨어졌고 거칠 것이 없어진 매화는 시신을 향해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후욱, 사라락.
허나 그 순간.
시신의 검을 감싼 하얀 꽃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그리고 꽃을 대신하여 ‘푸른 나뭇잎’들이 시신을 둘렀다.
탕, 쐐애액.
그리고 시신이 땅을 박찼다. 제갈소미의 매화를 나뭇잎으로 상쇄하며 신형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
제갈소미의 눈이 흔들렸다.
물론, 스승이 사제 이벽과 ‘같은 무공’을 사용한다는 것은 제갈소미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며.
또한 자신으로서는 그러한 ‘극쾌의 속도’에 대처할 방도가 마땅치 않음을 알고 있었다.
후우욱.
제갈소미는 다급히 검을 내리그었다. 곡선의 궤적을 따라 거대한 ‘꽃봉오리’가 일어났다.
수비초식, 매뢰(梅蕾)의 기예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즉시.
검과 검이 부딪혔다.
나뭇잎이 꽃봉오리를 파고들었다.
사라라락.
공기를 터뜨리는 충격파에 의해 꽃봉오리는 강제로 열려버렸고 여물지 못한 꽃잎이 산산이 흩어졌다.
후욱.
“…큭!”
제갈소미의 몸이 밀려났다.
적지 않은 충격을 입고 말았다.
카가가가각.
허나 동시에 그것은.
제갈소미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일 장 가까이 밀려나는 한편, 제갈소미의 검끝이 비무대를 파고들었다. 자하신공의 기운이 지면으로 파고들었다.
우우우웅.
선홍빛의 곡선이 뻗어지며 비무대 위로 흩어진 매뢰의 꽃잎들을 하나의 진형으로 이어 붙었다.
움찔.
시신의 몸이 잠시 흔들렸다.
파스스스.
일순 나뭇잎들이 와해되었다.
찰나의 순간이나마 진법을 통해 시신을 조종하는 진법에 맞선다. 조금 전, 권왕 황보혁의 발을 묶었던 바로 그 기예였다.
훅, 타앙.
다시, 제갈소미가 땅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시신의 어깨너머에 자리한 월향을 일견했다.
허나 자신이 그녀를 따라잡는 것보다 시신이 다시금 자신을 따라붙는 속도가 더욱 빠를 터였다.
후욱.
고로 판단은 즉각적이었다. 이내 제갈소미의 매화검이 이진천의 목을 향해 쏘아졌다.
허나 그 순간.
눈과 눈이 마주했다.
―소미야.
움찔.
제갈소미의 검끝이 흔들렸다.
카아아아아앙.
그리고 시신의 검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매화검은 채 기예를 일으키지도 못한 검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아, 이런 등신 같으니.”
자책이 입 밖으로 새어나갔다.
시신은 시신일 뿐이며 마음을 지니지 못한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조금 전, 자신은 사제들을 향해 잘난 듯이 그렇게 말을 했다.
허나 멍청하게도.
막상 눈을 마주하자 이벽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허나 공세는 이미 넘어가고 말았다.
스윽.
제갈소미는 내상을 각오했다.
다시 꽃봉오리를 피우려 했다.
후우욱, 콰아아아아아앙.
허나 그 순간.
시신의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하늘 저편에서 충격파가 쏘아진 것이다.
“……!”
물론, 제갈소미는 그것이 혁대웅이 쏘아 보낸 전륜패왕창의 기예임을 모르지 않았다.
* * *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하아아아아압―!”
혁대웅의 창이 뻗어졌다.
저만치 발아래의 허공에 못 박힌 혈마의 신형이 극척의 충격파에 휩쓸리며 거칠게 흔들렸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기실 혁대웅은 자신이 혈마를 향해 벌써 몇 번의 충격파를 날렸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호흡을 반복하듯.
창을 뻗고 또 내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연신 혈마의 몸이 흔들렸다.
파도와 같은 충격파에 노출된 도마뱀의 비늘이 하나둘 벗겨지며 서서히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었다.
허나 물론.
안쪽의 육신은 더 이상 산 이의 몸이 아니라 강철과 같은 강도의 시신이었다.
때문에 이와 같은 공격으로는 제대로 된 충격을 줄 수 없음을 혁대웅 또한 알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하아아아아압―!!”
다만.
혈마가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혁대웅은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때문에 결국.
이벽이 송영영을 구해오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이 놈의 움직임을 묶어두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허나 한편으로는.
서늘한 불안감이 등줄기를 스쳤다. 현재, 혁대웅의 등 뒤로는 흡사 검은 태양을 연상시키는 불덩어리가 맺혀있었다.
송영영은 스스로를 태극에 가둔 채 검은 불꽃에 휩싸였고, 이내 이벽은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마침내 태극의 영역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두 사람을 집어삼킨 불꽃은 외려 잠잠해졌다.
또한.
불꽃 안쪽으로 간간이 비치는 이벽의 모습은 그저 가만히 선 채 송영영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러한 침묵 속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예가 오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혁대웅 또한 눈치챌 수 있었다. 허나.
‘…벽아, 진짜 괜찮은 거지?’
콰아아아아아앙.
등뒤의 사제를 걱정하는 한편.
혁대웅은 재차 창을 내뻗었다. 어쨌거나 이제는 믿고서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
움찔.
허나 그때였다.
“…아, 안 돼―!”
돌연 혁대웅은 저 아래에서 스승의 시신을 상대하던 제갈소미가 위기에 처한 것을 발견했다.
후우욱, 콰아아아아앙.
생각보다 먼저 창이 틀어졌다. 그 끝에서 뻗어 나온 충격파가 이진천의 몸을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제갈소미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허나 그 말인즉슨, 물 샐 틈 없는 혁대웅의 공격에 발이 묶여있던 혈마에게 찰나의 여유가 찾아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후욱.
그리고 혈마에게 있어 그 여유는 현재의 교착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시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후욱, 콰아아아아아앙.
다시 혁대웅의 창끝이 황급히 혈마를 향해 쏘아졌다. 부르르, 혈마의 몸이 경련했다.
허나 그 몸짓은 더 이상.
‘충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스스.
다음 순간, 혈마를 감싼 붉은 비늘이 ‘거대한 뱀’으로 크기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으아악! 제기랄! 또냐!”
혁대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대한 뱀이 되고 나면 움직임이 둔해지지만, 그 대신 비늘의 강도는 아예 창이 박히지 않을 정도가 된다.
아니,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놈이 덩치를 키우며 제자리에 가만히 멈춰있는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뿌드득, 뿌드드드득.
다음 순간, 판단을 마친 혁대웅이 오른손으로 창대를 움켜쥐었다. 어깨와 허리를 한껏 뒤로 젖혔다.
온몸이 활처럼 팽팽해졌다.
창끝에 실린 충격파만으로는 제대로 된 충격을 줄 수 없다면, 창을 직접 먹여주는 수밖에 없다.
우우우우웅.
무쇠의 창 전체가.
새하얗게 빛을 내었다.
“이거나 처먹고… 좀 뒈져라―!!”
타아아앙, 후우우우우욱.
다음 순간.
‘구척장신의 활’이 쏘아졌다.
투창이 벼락처럼 뻗어나갔다.
퍼어어어어어억, 콰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