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85)
393화. 다섯 명의 천마 (5)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큭!”
굉음과 함께 언미희의 몸이 유성처럼 추락했다.
갑주의 모양새를 본뜬 언가권, 개갑의 초식으로 말미암아 가까스로 권왕의 일권을 버텨내었다. 허나.
천하제일의 주먹을 상대로 호신의 기예 같은 것은 결국 큰 의미가 없음을 새삼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빠득.
‘정신 차려!’
언미희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우우우웅.
이내 외강내유(外强內柔)의 묘리를 되새겼다. 몸 안의 근골들이 물처럼 진동하며 충격을 바깥으로 흘려보냈다.
또한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후우우욱.
“하아앗―!!”
그 즉시 권왕을 향해.
황금빛의 왼팔을 내뻗었다.
퍼어어어어엉.
소림의 절기 백보신권이 뻗어나가며 권왕을 가격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권왕이 쓰러질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잠시라도 권왕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순간, 이벽이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타아앙, 쐐애애액.
다시 언미희는 허공을 박찼다.
추락하던 몸이 한순간 방향을 달리했고, 다시금 이 장 위의 권왕을 향해 쏘아졌다.
후우우우욱.
그러자 그 순간.
언미희를 일견한 권왕의 오른팔이 다시 어깨 뒤로 뻗어졌고 극한의 용권풍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흠칫.
언미희의 눈이 흔들렸다.
허나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정면으로 파고드는 한편, 마찬가지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권왕 황보혁.’
과연 그 일권의 위력은.
상상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허나 그 주먹을 감싼 광풍의 기예는 본래부터 황보가가 지니고 있던 힘이 아니라, 외려 마교로부터 비롯된 힘일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퍽 얄궂은 일이었다.
과거, 천하제일권가로 일컬어지던 진주언가는 마교와의 전쟁에서 혈족의 대다수를 잃고 몰락했다.
보다 엄밀히는.
당대의 언가주이자 그녀의 조부이기도 한 언상명은 마교의 우호법, 풍마의 동진을 막으려다 장렬히 최후를 맞이했다.
말인즉슨 황보혁의 존재는.
선대의 원수 다름 아니었다.
후우우우욱.
그리고 거리가 좁혀든 순간.
“하아아압―!”
마침내 황보혁과 언미희의 주먹이 서로를 향해 뻗어졌다. 그리고 정중앙에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주먹과 주먹 사이에서 흡사 산맥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후욱, 그리고 권왕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휘청.
“크윽……!”
물론 언미희 또한 무사하지 않았다. 다시금 외강내유의 묘리로 충격을 흘려보냈다.
허나 그 말인즉슨, 아직도 ‘자기 자신의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누굴 탓하겠느냐?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도 결국 내 근육과 불심이 충분히 단단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크크크!
소림 방장, 북두천존 혜능선사는.
무예를 찾아 방랑하던 언미희를 거두어주었고, 그녀의 심신을 숭산의 암벽처럼 단련시켜주었다.
허나 그런 혜능조차도.
눈앞의 권왕에게 패배하여 평생을 쌓아왔던 무예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걱정할 것 없다. 네 심신의 근육은 나보다도 몇 배는 더 단단하니. 내 너와 같은 근성 있는 사내를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아느냐? 크크!
―…선사님, 전 사내가 아닌데요.
―크으크하하하하! 자고로 진정한 사내다움이란 사내고 계집이고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
―알겠느냐? 두려움의 안쪽을 들여다보거라. 마음의 근육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미친개 따윈 결코 네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니. 크크크!
콰아아아아아아앙.
다시금 주먹이 맞부딪혔다.
부르르르.
그리고 그 순간마다 온몸의 뼈가 마찰하며 서로를 긁어내는 듯했다.
허나 언미희는 물러서지 않았다.
두려움에 젖어 어설프게 수세를 취하는 순간, 외려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임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웅.
다만 혜능의 말마따나.
‘두려움’을 들여다보았다.
권왕의 주먹이 지닌 힘은 다름 아닌 극한까지 응축된 용권풍의 폭발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반면 언가의 무공은 맨몸을 두드리고 단련하여 병장기로 거듭나는 데에 그 묘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언미희는.
성장이 끝난 육신과 절대지경의 영역으로 말미암아 원하는 그 어떤 병장기라도 기예를 통해 능히 만들어낼 수 있었다.
허나 방패나 갑주 따위로는.
바람을 막아낼 수 없는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렇기에.
언미희는 그 무엇도 되지 않았다.
두려움을 넘어 권왕의 용권풍을 끝까지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를 향해 주먹을 마주 뻗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중앙을 찔린 용권풍은.
찰나의 순간 구속력을 잃은 바람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고 주먹의 위력은 경감되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언미희가 천하제일의 주먹을 상대로 얼추 맞수를 이루고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콰아아아아아앙.
다시 충돌이 이어졌다.
물론, 언미희의 몸 안에는 적지 않은 충격이 쌓였다. 허나 그에 비례하여 그녀는 권왕의 주먹에 익숙해졌고, 이내 자신이 생겼다.
능히 ‘제 몫’을 해낼 수 있다.
콰아아아아아앙.
“…쿨럭!”
피를 토하는 동시에.
언미희의 입가가 웃음을 띄었다.
이벽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었고, 동료인 송영영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검은 불꽃으로 뛰어들었다.
허나 자신은.
예전과는 다르다.
더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발목을 잡아끌던 시절을 지나, 기꺼이 동료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자.’
우우우웅.
다시 돌아오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렇기에 더는 멍청했던 과거와 같이 병상에 누워 쓰러진 모습으로 마주할 수는 없었다. 언미희의 두 손이 각각 금빛과 흰빛을 품었다.
소림의 나한권과.
언가권의 기운이었다.
“하아앗―!”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
“…굉장하구나, 미희야.”
하오문주 월향의 시선이 하늘 저편을 향했다. 여인의 눈빛에 일순 아련함이 스쳤다.
물론, 지금의 권왕은.
한낱 진법에 의해 움직이는 시신일 뿐, 생전의 그 고강함에는 견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권왕은 권왕이다.
그리고 그런 권왕을 상대로 언미희는 당당히 ‘정면승부’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창백하고 뿌듯한 미소가 스쳤다.
그녀, 월향은 하오문주가 되기도 전부터 뒷골목의 어둠에 삼켜진 수많은 아이들을 구해내었다.
물론, 모두를 구해낼 수는 없었으며 그저 우연히 손에 닿은 아이들을 수렁에서 건져 올릴 뿐이었다.
하오문주라고 해봐야.
제대로 된 무력조차 갖추지 못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만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언미희는 분명 월향이 자신의 손으로 구해낸 목숨이었다.
또한 그와 동시에.
자신이 찾아낸 최고의 재능이기도 했다. 마침내 그 재능은 하오문을 떠나 제자리를 찾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웠다.
어찌 되었건.
저 아이라면 과거 자신과 함께했던 뭇 하오문도들을 결코 외면하지는 않을 터였다.
고로 월향에게는.
그 이상의 미련이 없었다.
주륵.
입가로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월향은 마침내 자신의 목숨이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훗.”
물론, 계획대로였다.
역천의 진법과 절대자의 시신을 매개하는 일은 애당초 자신의 보잘것없는 능력으로는 감히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환야의 가르침을 얻고도.
결국은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허나 월향은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제 곧, 조금만 더 버티면 마침내 ‘천마’가 재림할 터였다.
그리고 그 천마는.
천마의 힘을 지닌 ‘부처’가 되어 천하만민을 구원으로 이끌 것이며 더는 죄 없는 이들이 어둠에 삼켜지는 일은 없을 터였다.
다만.
사라라락.
“…….”
월향의 고개가 아래를 향했다.
이내 저만치에서 자신의 손으로 키워낸 제자와 접전을 펼치고 있는 사내의 등을 향했다.
월향은 많은 아이들을 구해냈다.
허나 그 이면에는 자신 또한 저 사내에게 구원받았던 기억이 자리하고 있음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러한 사내를.
월향은 저버렸다.
사내가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는 순간, 월향은 더 이상 사내를 따를 수 없게 되었다.
사내는 결국 무림인이었으며.
얼마나 많은 ‘평범한 이’들이 원치 않은 무림의 일에 휘말려 죽어가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 한들.
사내는 그녀의 은인이었으며, 한때는 모든 것을 다 바치려 했던 정인이기도 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결국은 그마저도 저물고 말겠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길을 갈고닦는 것이 태어난 이로서의 본분이 아니겠소?
“…은공.”
사내의 등은.
흩날리는 매화 속에 서 있었다.
물론, 그 매화는 진짜 꽃이 아니라 제갈소미의 검에서 피어난 기예였으며, 사내 또한 권왕과 마찬가지로 이미 죽은 시신이었다.
허나 그 뒷모습은 마치.
그날의 사내를 보는 듯했다.
월향의 눈이 아련하게 흔들렸다.
이내 그녀는 다시 죽적을 입에 대었다. 물론, 이제 와 사내의 제자들과 ‘자신의 제자’를 해칠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다만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자신의 길을 다하고자 함이었다.
* * *
“흘흘!”
혜공의 웃음은 태연했다.
이벽은 말의 의미를 헤아렸다.
검치 선우명에게서 가능성을 느낀 천마는 일부러 그를 살려보냈고, 십수 년이 지나 선우명은 다시 천마를 찾아 선우세가를 떠났다.
또한.
천마는 본래 여인의 몸을 하고 있었으며, 고로 ‘누군가의 아이’를 낳고자 한다면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어느날.
‘검치의 후예’가 나타났다.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는 천마 자기 자신의 핏줄, 그리고 자신이 인정한 사내의 핏줄.”
다시 혜공이 말했다.
“그 두 가지 핏줄을 모두 이어받은 이가 있다면… 천마의 힘과 기억을 물려받기에 그만큼 ‘적절한 육신’은 없겠지. 그렇지 않겠소?”
말인즉슨 스승 이진천은.
‘검치의 후예’임과 동시에 ‘천마의 후예’이기도 하다는 말이었다. 허나 역시, 이벽은 마땅히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퍽 충격적인 비사였다. 허나.
사실이건 아니건, 그것이 지금의 맥락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이벽은 헤아릴 수 없었다.
과거는 과거에 불과하며.
스승은 그저 스승일 뿐이다.
“좌우간 화산에서 이 사내를 찾은 이후… 마침내 나는 ‘부처님의 뜻’을 이해했소.”
허나.
그 당시의 혜공에게 있어 그러한 사실은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검치 선우명은 천마를 찾아가기에 앞서 ‘환야’인 자신을 먼저 찾아왔다. 그 덕에 자신은 검치의 존재를 알 수 있었으며.
나아가서는 아직 천마의 씨앗이 눈을 뜨지 않은 화산의 어린 제자 청천의 정체를 미리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부처님의 뜻이었다.
“천마의 악업을 막아설 이는 결코 태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실 처음부터 ‘나 자신의 마음 속’에 있었던 거요.”
마교의 핏줄은.
이미 중원 각지에 널리 퍼졌으며, 설령 천마의 씨앗을 모두 없앤다고 한들 끝끝내 마의 부활을 막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미 천마의 씨앗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것을 굴복시킨 경험이 있는 이 늙은이가… 직접 나서서 ‘천마의 힘을 빼앗아버리면’ 그만이 아니겠소?”
혜공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뭐라고?”
“흘흘, 잘 생각해보시오 시주. 애당초 천마와 부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소? 힘으로써 중생을 핍박한다면 그것이 천마인 게고, 자비를 베풀면 그것이 곧 부처인 게지. 그렇지 않소?”
“…….”
그리고 마침내.
이벽은 위화감을 느꼈다.
허나 그것은 혜공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마음이 투영되는 공간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거짓으로 속일 수는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무언가.
‘말하지 않은 것’이 숨겨져 있다.
“…내 스승이 천마의 핏줄이건 검치의 핏줄이건 뭐건 간에, 그게 그러한 결론과 무슨 상관이 있소?”
“흘흘, 그야 물론 상관이 있소.”
이벽이 추궁했다. 허나.
혜공의 미소는 외려 짙어졌다.
“내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소만, 천마의 계획은 스스로를 다섯 조각으로 나눠 심은 뒤 그 다섯을 서로 싸우게 하여 마지막 하나를 남기게 하는 것이었소.”
그리고.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취하는 순간, 패자의 몸에 숨어있던 천마의 씨앗은 승자에게로 향한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천마는 다섯 중에서도 가장 우월한 재능과 성취를 지닌 ‘정파지존’의 몸에서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허나.
혜공은 천마를 이겨내기 위해 단전과 팔을 잘라냈으며, 고로 다른 천마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더구려.”
노인이 턱을 쓸었다.
“만일 이 늙은이가 천마의 씨앗을 온전히 내 것으로 흡수한다면… 어쩌면 이 늙은 몸이 죽는다 해도 그 씨앗과 함께 의식이 남아 다른 이의 몸으로 옮겨갈 수도 있지 않을까?”
“……!”
분명 혜공은 죽었다. 허나.
그 의식은 마기에 녹아든 채 송영영의 몸 안에 스며들었고 이렇듯 이벽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끼이익, 덜컹.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지막 관이 열렸다.
“천마, 태극무봉 송영영.”
“…….”
“뭐, 그 당시에야 설마 매화검이 아닌 ‘마지막 천마’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줄은 이 늙은이로서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소만. 흘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