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81)
84화. 팽가의 습격 (2)
카앙!
퍽, 퍼억, 퍽!
“크—!”
철면개의 몽둥이가 기어코 팽무옥의 도를 걷어내었다.
그리고 불과 한 호흡에 몽둥이가 팽무옥의 몸을 세 번이나 두드리고 지나갔다.
팽무옥이 황급히 물러섰다.
그러나 이미 적지 않은 충격을 입은 듯,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진다.
“하하! 팽가 놈이라서 그런가 뚜드려 맞는 소리도 팽팽 시원하기 짝이 없구나!!”
“…크, 이 자가 정녕—!!”
팽무옥이 기함했다.
그러나 내심 등골이 서늘했다.
개방의 명성은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그래봤자 본가의 무공이 거지들에게 밀릴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부딪혀 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놈의 몽둥이는 집요하여 절기인 오호단문도를 제대로 펼칠 틈조차 주지 않는다.
물론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다음 순간, 팽무옥의 도가 잘게 떨었다. 도신 위로 희미한 강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래서 뭐?! 강기는 네놈만 쓸 줄 아느냐 이 새끼야?! 너만 절정고수야? 앙?!”
후욱, 타구봉에 강기가 일었다.
한발 늦게 강기를 꺼내 들었으나 먼저 완성된 것은 오히려 철면개 쪽이었다.
그대로 타구봉이 휘둘러졌다.
팽무옥이 부랴부랴 도를 뻗었다.
캉, 퍼어엉—!!
강기와 강기의 충돌.
그리고 다시 몇 합이 오고 갔다.
굉음과 충격파가 일었다. 그들이 딛고 선 배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철썩철썩 흔들렸다.
양상은 박빙에 가까웠으나, 이내 서서히 공세와 수세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큭, 크윽……!”
밀리는 것은 팽무옥 쪽이었다.
같은 절정고수라고 한들 숙련의 정도가 다르다.
실상 강기를 이끌어 내는 속도에서부터 이미 어느 정도 우열의 판가름이 난 것이다.
물론, 사용하는 무공의 수준이나 초식의 숙련도를 통해 승패가 뒤집힐 수는 있다.
허나 무공의 깨달음이란 오묘하여, 기의 운용에 대한 깨달음과 초식의 정교함은 결국 비례하게 된다.
캉, 카앙! 퍼엉!
“하핫, 애석하게도 도는 혓바닥만 못하구나! 쯔쯔, 그렇게 물렁해서야 여인네 속곳이나 뚫을 수 있겠나? 응?”
“그 입 닥쳐라, 이 더러운 비렁뱅이 놈아!! 내 오늘 네놈의 천박한 혓바닥을 잘라버리지 않으면 내 사람이 아니다!!”
반면 철면개 역시 마냥 여유롭지는 않았다.
놈이 강기를 꺼낸 이상 어쩔 수 없이 이쪽도 강기로 상대해야 한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강기를 휘두르는 것은 내력의 소모가 극심하다.
비룡대의 아이들이 버티고 있는 동안 자신이 먼저 이 자를 제압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슬슬 단전이 당겨오는 기분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룡대주 이벽의 실력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욱 대단했다는 점이다.
흘끗, 철면개가 시선을 움직였다.
팽무옥의 어깨너머로는 수십의 적 한가운데에 파고든 채 종횡무진하는 이벽의 모습이 보였다.
하물며 상대하는 것은 같은 후기지수도 아닌 팽가의 참마대에 속한 정예 무인들이다.
‘…허헛, 어처구니가 없군, 그래.’
헛웃음이 나왔다.
앞서 정사비무에서 보여준 것조차 전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체 누가 저런 아이를 키워냈을까?
과연, ‘그분’들이 저 아이를 그렇게까지 보고 싶어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허나… 제아무리 천고의 기재라 한들 한계가 없을 수는 없다. 저런 식으로 싸웠다간 내력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자연히 마음은 조급해진다.
철면개는 이를 악물고 공세에 박차를 가했다. 와중에 상대를 도발하는 것 역시 멈추지 않았다.
분노는 수비를 허술해지게 한다.
“하핫, 오호단문도라! 흐물거리는 것이 실로 거지 똥구멍에 박힌 콩나물 같은 도법이로구나!”
“크아악! 이, 쳐죽일 놈 같으니!”
후우욱.
다음 순간, 팽무옥이 방어를 도외시한 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철면개가 노리고 있던 기회였다. 놓쳐선 안 된다. 철면개는 힘껏 내력을 쥐어짰다.
비틀.
다음 순간, 철면개의 신형이 기이하게 흔들거렸다. 흡사 술에 취한 사람과 같다.
그러나 팽무옥의 도가 거짓말처럼 그 허술한 몸을 가르지 못하고 비껴갔다.
개방의 취팔선보(醉八仙步)였다.
“아, 아니?!”
“껄껄껄! 어딜 베고 자빠졌나?!”
타구봉이 크게 횡을 그었다.
퍼어엉!
“커… 윽!”
팽무옥이 가까스로 막아내었다.
그러나 무리하게 막아낸 충격은 적지 않았다. 굉음과 함께 팽무옥의 몸이 붕 위로 떠 올랐다.
한참을 날아간 몸이 가까스로 뱃머리에 착지했다.
“헉, 허억, 이런… 제기랄!”
팽무옥이 난간을 붙든 채 숨을 헐떡였다. 안색이 창백한 것으로 보아 내상을 입은 듯하다.
“헹, 이보시오, 팽 대협? 이제 이쯤에서 슬슬 물러서는 게 어떠시오?”
철면개가 몽둥이를 어깨에 얹었다.
승패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그의 어투가 사뭇 달라졌다. 흑빛으로 물들었던 안색 역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응? 대체 개방과 팽가가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렇게까지 싸운단 말이오? 우리가 서로 목숨까지 뺏을 이유는 없지 않소?”
“…….”
팽무옥의 날 선 시선이 철면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불현듯 팽무옥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했다.
큭큭큭,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큭, 크하하하! 어리석군, 어리석어! 정녕 이것이 팽가만의 뜻이라고 생각하시오?! 응?”
“…뭐라?”
후욱!
그때였다.
철면개와 팽무옥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뭍 쪽으로 향했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가늠할 수 없이 흉포한 살기가 기감을 사로잡은 것이다. 짜르르, 온몸의 털이 일어나는 것 같다.
철면개는 황급히 상황을 살폈다. 저만치에 비룡대원 한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타앗!
그때, 팽무옥이 한발 먼저 갑판을 박찼다. 황급히 뭍으로 날아든다.
* * *
“오, 오라버니이이—!!”
파진성이 쓰러졌다.
그 순간 공손수는 파진성을 안은 채 황급히 뒤로 몸을 빼냈다. 애타게 이벽을 찾았다.
그 목소리가 이벽에게 닿았다.
피투성이가 된 파진성의 등을 바라본 순간, 후욱, 이벽의 마음이 움직였다.
울컥.
선천의 힘이 적파심공을 그렸다.
살기가 핏빛 안개처럼 피어났다.
“허, 헉!”
“허억!”
주변을 둘러싼 팽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쉬었다.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다.
무인으로서의 직감이었다.
그 판단이 그들의 목숨을 살렸다. 느슨해진 틈새로 이벽의 신형이 파고들었다. 포위망을 벗어난다.
공손수와 파진성을 향한다.
“…고, 공자!!”
언미희가 그 뒤를 따랐다.
이벽의 신형이 순식간에 파진성에게로 당도했다. 파진성을 공격한 적들을 향한다.
그 즉시 검이 휘둘러졌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일 초식, 난(亂).
챙, 채앵!
그러나 가로막혔다. 어느새 뭍으로 올라선 팽무옥이 부하들 앞을 막아선 것이다.
찌릿.
“…큭.”
일 검에 두 번의 충격.
팽무옥이 신음을 흘렸다.
주륵, 입가에 피가 흘렀다.
그리고 팽무옥의 눈이 치켜 떠졌다. 철면개로부터 얻은 내상이 더욱 악화된 것 같다.
‘이게… 약관도 안된 애송이의 공력이라고?’
빠악!
“커헉!”
‘어떻게 죽여야 하는가?’
이벽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때, 팽무옥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철면개의 타구봉이 그 옆구리를 후려친 것이다.
팽무옥이 저만치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사이 정신을 차린 팽가의 무사들이 헐레벌떡 뒤로 물러섰다. 다시 본대와 합류한다.
“…….”
이벽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죽이는 것을 피하고자 했기에 파진성이 당했다. 이벽은 지금이라도 모두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덥석.
그러나 그때, 철면개의 손이 이벽의 어깨를 붙들었다.
“비룡대주, 정신 차리시오! 참으로 면목이 없소만, 치료가 우선이니 우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하오!”
“…….”
…틀리지 않은 말이다.
어지러운 머릿속에서 이벽은 판단했다. 허나 몸 안의 적파심공이 혈기와 함께 들끓어 오른다.
콰콰콰콰.
멈추고자 하는 이벽의 의사를 거부했다. 빠득,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나 자신과 씨름할 때가 아니다.
콰아앙!
“…쿨럭.”
거칠게 내력을 멈춰 세웠다.
주륵, 이벽의 입가로 핏줄기가 흘렀다. 이내 적파심공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 누가 보내준단 말이더냐?! 참마대, 팽가의 이름을 걸고 절대로 놓치지 마라! 곧 지원이 도착할 터이니, 목숨으로 붙들어라!!”
“이, 이런 육시럴 놈이!!”
그때, 다시 팽무옥이 외쳤다.
몰골은 퍽 엉망진창이었으나 끝끝내 물러설 생각은 없는 듯했다.
철면개가 이를 갈았다.
이상하리만치 집요하다.
‘도대체 왜? 뭔 원한이 있길래?’
어쨌거나 아직도 남은 적의 머릿수는 적지 않다. 심지어 단전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철면개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개방과 자신의 이름을 걸고서 데려온 아이들이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무사히 내보내야만 한다.
타다다닷.
“우와아아아아!!”
그때였다.
적들의 등 뒤에서 함성이 일었다.
새로운 무리가 이쪽을 향해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 철면개는 일순 침음성을 삼켰다.
‘이 판국에 적의 증원까지?’
그러나 곧 생각이 달라졌다.
달려오는 이들의 행색은 마치 거지 떼처럼 추레했다. 아니, 거지 떼가 맞다.
“늦어서 죄송합니다요, 어르신!!”
“집의당주 어르신을 지켜라!!”
“이… 이 개똥만도 못한 반 토막짜리 거지새끼들!! 왜 이렇게 늦게 오고 지랄이야!!”
그러나 하는 말과는 달리 철면개의 얼굴에는 활짝 웃음이 피었다. 되었다.
“퉤엣!”
철면개가 손에 침을 뱉었다.
타구봉을 다시 고쳐잡는다.
“비룡대주, 대원들을 이끌고 먼저 빠져나가시게! 내 이 빌어먹을 팽가 놈들을 모조리 두루치기로 만든 후에 따라갈 테니!!”
* * *
타닷, 탓.
“이쪽입니다요!!”
개방의 이결제자인 형삼이 비룡대를 앞장섰다.
철면개를 비롯해 나머지 개방도들이 팽가의 무인들과 충돌하는 동안, 비룡대 일행은 형삼을 따라 싸움터를 벗어나는 데에 성공했다.
허나 안심할 수는 없다.
이벽은 파진성을 들쳐 업은 채 신법에 박차를 가했다. 언미희와 공손수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약 일각 정도를 달리자 이내 선착장의 거리를 벗어나 숲으로 둘러쌓인 길이 나타났다.
다시 숲 안쪽으로 일각을 파고들자 다 쓰러져가는 사당 한 채가 나타났다.
개방도들의 은신처인 모양이었다.
“이리 눕혀요, 어서!!”
공손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벽이 파진성을 내려놓자 그녀가 냉큼 파진성의 상의를 비수로 잘라냈다.
상처를 살피고 침으로 혈을 점하여 출혈을 막는다. 그녀의 손은 퍽 능숙했다.
이벽은 금창약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화정촌을 나설 때 왕수련이 챙겨주었던 물건으로, 이진천이 만든 물건임에 틀림없다.
그 효과는 앞서 산적 우두머리에게서 입은 상처를 통해 이벽이 스스로 이미 체험해보기도 했다.
꽈악!
이후 응급처치가 이어졌다.
상처를 봉합하고 압박한다.
그리고 이각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파진성의 호흡이 서서히 눈에 띄게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일행은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당연히 안색은 어두웠다.
“…내 탓이에요.”
공손수가 이마를 감싸 쥐었다.
“내가 거기서 정신만 똑바로 차렸어도… 하아, 진짜 한심해서 콱 죽어버릴 것 같네요.”
“…아니에요, 소저. 그렇게 따지면 제가 멍청하게 진형을 깨고 뛰쳐나가지만 않았어도…….”
“…….”
언미희가 답했다.
그러나 이벽은 생각했다.
현 상황의 원인을 따지자면 그것은 물론 공손수도 언미희도 아닌 자신에게 있다.
애초에 철면개를 따라 정파의 영역에 들어선 것도 자신이고, 적들에게 손속의 사정을 둔 것도 자신이다.
하지만… 그런 건 나중 문제다.
이벽이 형삼을 향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좀 해줄 수 있겠소? 팽가가 대체 왜 우릴 노리는 거지?”
이벽이 물었다.
“그, 그게, 워낙에 급작스러웠던 터라 저희도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의혈맹 측에서 비룡대에 수배를 내렸나 봅니다요.”
“…….”
“대체 왜 느닷없이 적대적인 행보를 보이는지, 좌우간 저희로서도 부랴부랴 애들을 모아서 달려오긴 했는데…….”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팽가의 뜻이 아닌 의혈맹의 뜻.
자초지종을 떠나 일이 그렇다는 건… 위협은 팽가뿐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뭐, 일단은 쉬도록 해요, 우리. 파 소협도 일단은 괜찮아 보이고… 쉴 수 있을 때 쉬어두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쵸?”
그때, 언미희가 짐짓 밝은 목소리를 내었다.
말마따나 배를 타고 장강을 건너자마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습격에 휘말렸다.
어차피 철면개의 합류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그때까지는 체력을 최대한 회복시켜 두어야 한다.
“암, 그러믄요! 예! 맞는 말씀입죠! 혹 누가 오나 안 오나 제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키고 있을 터이니, 소협들께선 우선 쉬십시요. 예!”
형삼이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고 일행은 자리를 잡았다.
각자의 침묵 속에 잠겨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이벽은 졸음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긴장이 느슨해지자 피로가 깨어난 것이다.
그것은 비단 자신뿐만은 아닌 듯, 언미희와 공손수 역시 꾸벅꾸벅 무거운 머리를 가누고 있다.
의식이 서서히 흐려진다.
“…….”
그러나 문득,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이벽은 자그마한 위화감을 느꼈다.
무언가가 마음에 걸린다.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꺼림칙함.
‘독…은 아니다.’
남촌에서의 습격을 생각했다.
마비향이 공손가의 저택을 덮쳤을 때, 잠자리에 누워있던 이벽은 선천의 힘을 통해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잠잠하다.
‘기분 탓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이대로 잠들어서는 안 된다.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고, 마음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속삭이고 있다.
이벽은 생각을 붙들었다.
목소리의 정체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았다. 그것은… 낙검문의 사형제인 제갈소미의 목소리였다.
—제갈세가 잘 모르니, 꼬맹아?
—진짜 기초적인 양의진인데 더럽게 잘 걸리네. 에그, 그렇게 정신머리가 약해 가지고 어떡할래?
“……!”
번뜩.
이벽은 즉시 눈을 떴다.
감각이 미묘하게 어긋났다.
망을 보기로 한 형삼마저 어느새 꾸벅꾸벅 잠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상황을 인지한 순간, 타앗, 이벽은 자리를 박찼다. 그 즉시 사당 바깥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