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80)
83화. 팽가의 습격 (1)
빠직.
철면개의 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도드라졌다.
애써 웃는 낯을 유지하고 있으나 미간이 잘게 꿈틀거리는 것까지 숨길 순 없다.
험험, 헛기침을 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보게들, 이게 무슨 짓인가?”
“흥!! 관계없는 늙은이는 빠지시지! 이것은 우리 팽가의 행사이니 방해할 생각이라면 누구라도—”
“늙은이라, 허헛! 아직 사십도 안 먹었는데 그런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니네만. 좌우간 나는 개방의 오결제자인 철면개라고 하네.”
“개, 개방?!”
일순 팽가 무사들의 표정에 당혹이 어렸다. 황급히 추레한 행색의 위아래를 살펴본다.
과연 거지 같다.
특히나 방주의 직전제자인 철면개라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름이다.
“말마따나 내 본 방의 손님들을 모시고 있는 와중인데, 이게 대체 무슨 행패인가? 응? 혹시 무슨 오해가 있는 건 아닌가?”
철면개의 말투는 퍽 온화했다.
그러나 미간과 마찬가지로 목소리의 끝이 작게 흔들리고 있다. 애써 분을 삭이고 있음이 느껴진다.
스멀스멀 기세가 올라온다.
기세에 눌린 팽가의 무사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타앗, 쿠웅!
“하! 오해라!”
그러나 그때였다.
저만치 뭍으로부터 또 하나의 인영이 뛰어올랐다. 배 위로 착지한 순간, 선체가 묵직하게 흔들렸다.
이벽과 철면개를 마주한다.
커다란 체구의 중년인이었다.
“나 역시 이게 오해였으면 좋겠소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군.”
“…….”
중년인이 이벽과 철면개를 내려다보았다. 눈빛에는 상대를 아래로 보는 거만함이 감돌고 있다.
“나 참마일도(斬魔一刀) 팽무옥이오.”
중년인이 말했다.
그 역시 가볍지 않은 이름이었다.
팽가를 대표하는 절정고수이자 팽가의 정예 무력대인 참마대를 이끄는 실세 중의 실세.
당대의 팽가가 비록 천하 오대세가에는 들지 못하지만, 그다음으로 손꼽히는 무가 중 한 곳이다.
그리고 팽무옥이 이렇게 나섰다는 것은, 이것이 팽가의 뜻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 참마일도. 나 역시 그 이름을 알고 있지. 허허, 그럼 팽 대협께서 내게 이 상황을 설명해주실 텐가?”
“설명이고 자시고,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의협으로 이름 높으신 철면개께서 어찌 더러운 사도를 이 호북 땅에 들여놓으시오?”
“…….”
빠직.
철면개의 이마에 또 한 개의 핏줄이 일어났다. 힘겹게 웃는 낯을 유지한다.
“…그저 지나가는 길일 뿐이오. 이 땅에서 아무 짓도 할 생각은 없으니 부디 길을 좀 비켜주시면 좋겠군.”
“물론 그럴 수는 없소.”
팽무옥이 비릿한 표정을 지었다.
이벽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을 잇는다.
“듣자 하니 이놈이 남궁가의 창천옥룡에게 삿된 짓거리로 모욕을 했다 하더군. 그런 놈이 겁도 없이 우리 팽가의 앞마당을 지나치려 하는데, 같은 의혈맹의 일원으로서 어찌 지켜보고만 있겠소?”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소?”
빠직.
또 하나의 핏줄이 일어났다.
이벽은 철면개의 얼굴이 점점 핏줄로 시퍼렇게 물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쩐지… 정면의 팽무옥보다도 철면개 쪽이 더 신경이 쓰인다.
그때, 이벽은 소매가 잡아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다름 아닌 철면개의 손끝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이 뭍을 가리켰다.
‘…우선은 빠져나가란 뜻인가.’
이벽은 의미를 이해했다.
저만치에 선 비룡대원들에게 시선을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언미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흥! 할 얘기가 있다면 본가로 압송한 뒤에 천천히 들어주겠소. 어쨌거나 그 녀석을 놓고 썩 사라지던가, 그도 아니면 우리를 원망치 마시오.”
빠직.
마침내 철면개의 얼굴이 파랗다 못해 시커멓게 물들었다.
이벽은 불현듯 철면개(鐵面丐)라는 별호를 생각했다. 철의 얼굴이라는 건… 말 그대로 이런 의미였나.
“으하하! 껄껄!”
별안간 철면개가 웃기 시작했다.
“이 철면개가 개방의 이름까지 걸면서 귀한 손님을 어렵게 모시고 있는데, 참마일도 대협께서 나를 자기 말도 못 지키는 천박한 동네 잡거지로 만드시는군!”
“흥, 개방의 이름을 앞세우려 해도 소용은 없소! 우리 팽가가 물러설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
까앙!
그때, 타구봉이 휘둘러졌다.
대경한 팽무옥이 즉시 도를 꺼내 들었다. 안면의 한 치 앞에서 가까스로 봉을 막아낸다.
도를 꺼내는 것이 찰나만큼만 늦었다면 타구봉이 두드린 것은 팽무옥의 이마가 되었을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예고도 없이 기습이라니, 비겁하기 짝이 없군! 그러고도 그대가—”
“닥쳐, 이 쒸뻘롬아!!”
까앙, 깡, 까앙!
흑빛으로 물든 철면개의 얼굴에서 거친 쌍소리가 튀어 나갔다. 타구봉이 거듭 휘둘러졌다.
“새끼가 뒤질라고 어디서 혓바닥을 놀려?! 오냐, 네놈이 날 잡거지 취급하니 내가 기꺼이 잡거지가 되어주마!! 어디 그 혓바닥만큼 네놈의 도도 매끄러운지 그 맛 한 번 보자꾸나!!”
“큭, 이, 이 자가—!”
카앙, 타앙! 카앙!
타구봉이 춤을 췄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분노에 휩싸여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듯한 모양새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개방의 절기 타구봉법(打狗棒法).
그 안에는 타점을 흐려 상대로 하여금 닿기 직전까지도 어디를 노리는지 알기 어렵게 만드는 절묘한 무리가 숨어있다.
이벽은 내심 감탄했다.
채앵, 서걱.
“커헉!”
“커윽!”
그러나 물론,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벽 역시 곧장 행동에 나섰다. 검을 휘둘러 배 위의 올라선 나머지 무사들을 쓰러뜨렸다.
타앗, 그리고 땅을 박찼다.
선원들을 말려들게 할 수도 없을뿐더러, 발밑이 불안한 배 위에서 다수의 적에게 둘러싸이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실상 철면개는 스스로 팽무옥을 묶어두고 이벽들이 달아날 시간 벌기를 자처한 것이다.
탓, 타앗!
그리고 비룡대원들이 그 뒤를 따라 배를 박찼다. 이내 일행들이 모두 뭍으로 착지했다.
물론, 안심하기는 이르다.
일행은 빠르게 주변을 확인했다.
적들은… 적지 않다. 서른 명, 혹은 그 이상. 그리고 모두 일류 혹은 그에 근접한 수준.
후기지수가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실질적인 팽가의 주력에 해당하는 참마대의 무사들이다.
챙, 채앵!
“놈들이 달아나려 한다!”
“물 샐 틈 없이 봉쇄하라!!”
적들이 일제히 도를 뽑아 들었다.
비룡대 일행은 시선을 교환했다.
적들은 반원 형태의 진을 유지한 채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주춤주춤 한 걸음씩 좁혀오기 시작한다.
유일한 퇴로인 등 뒤에는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말 그대로 배수의 진을 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케헤, 정파 새끼들 거 오자마자 환영식 한번 거창하네. 이봐 쥐방울, 괜찮겠어? 오빠 뒤에 숨어있을래?”
“됐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파진성이 검을 꺼내 들며 말했다.
공손수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창백한 안색을 숨길 수는 없다. 뱃멀미에 시달리던 공손수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다.
“…….”
따라서 전황 역시 좋지 않다.
물론, 강기를 드러내지 않고.
죽이지도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 * *
‘…빠르게 제압해야 한다.’
이벽은 책임감을 느꼈다.
허나 상대는 정파 무인들이다.
무림의 은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목숨을 빼앗는다면… 두고두고 팽가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적대할 각오를 해야 할 테다.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면 모르되, 아직은 아니다. 최소한 시도해 볼 가치는 있을 터이다.
“제압할 테니 조금만 버티시오.”
“…네? 뭐라고요? 혼자서요?”
타앗.
언미희가 되물었으나 답할 여유는 없다. 이벽은 그 즉시 땅을 박찼다.
적들의 진형이 지척까지 다가오기 전에 역으로 달려든다.
훅, 후웅!
“하, 빨리 죽고 싶으냐?!”
“애송이 주제에 겁도 없구나!”
그 즉시 도 두 자루가 뻗어진다.
타앗, 이벽은 적들의 지척에서 청강유엽공을 제어했다. 그리고 만월무변심공을 일으켰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만월(滿月).
이벽의 검끝이 원을 그었다.
채앵!
“커윽?!”
“뭐, 뭣—!!”
뻗어진 도 두 개가 원 안으로 거짓말처럼 빨려들어 갔다. 서로 부딪히며 땅으로 떨어져 버린다.
이벽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삭월(朔月).
푹, 푸욱!
“커… 커억.”
“커윽, 끅!”
이벽의 검신이 흐릿해졌다.
다음 순간, 도를 놓친 적들의 맨몸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검이 회수되자 대번에 적들의 복부에서 피와 장기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풀썩, 힘을 잃고 주저앉는다.
퍼억!
이벽은 주저앉은 이들을 밀쳐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으로 냉큼 파고들었다.
진형의 안쪽으로 파고들자 적들의 도가 일순 멈칫했다. 섣불리 공격하지 못한다.
“이, 이 새끼가 감히!!”
후욱!
도 하나가 과감하게 뻗어졌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만월(滿月).
푸욱!
“커흑?!”
재차 펼쳐진 만월에 빨려들어 간 도가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졌다. 근처의 다른 적을 훑고 지나갔다.
도를 뻗은 자와 그 도에 베인 자.
두 사람의 흔들리는 눈이 서로를 마주했다. 즉, 빈틈을 보였다. 이벽의 검이 어김없이 둘의 몸을 훑었다.
풀썩, 풀썩.
다시 두 명이 더 쓰러졌다.
그리고 진형 안에서 쓰러진 동료들의 몸은 발 디딜 곳을 더욱 어지럽게 만든다.
물론, 이벽을 제외하고서는.
타앗, 후욱!
이벽의 신형이 종횡무진했다.
쓰러진 적들을 짓밟고 검을 휘두른다. 만월은 적의 공격을 왜곡시키며, 삭월은 빈틈을 드러낸 적의 몸을 파고든다.
팔절구궁필법이 번뜩였다.
“지, 진형을 바꿔라! 사 조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모두 놈을 포위해라!! 사 조는 나머지를 제압하라!!”
실력의 격차는 명백하다.
그러나 적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여섯이 연달아 쓰러지자 적들은 전진하던 진형을 멈추고 이벽을 기민하게 둘러싸기 시작했다.
팔절구궁필법에 대비하여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그럭저럭 합격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양.
그러나.
그것은 이벽이 바라던 바였다. 적들의 시선이 이벽에게 집중될수록, 뒤의 일행은 편안해진다.
후욱.
적들의 포위가 완성될 즈음 이벽은 다시 내력을 전환했다. 청강유엽공이 일어난다.
챙, 채앵!
그리고 청강검식을 펼쳤다.
선우세가의 검식까지 숨길 여유는 없다. 난전 속에서는 가장 익숙한 검을 꺼내 드는 수밖에 없다.
이벽의 검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발검식과 회검식이 빗발치며 사방에서 밀려드는 도를 쳐냈다.
“이, 이런 미친—!!”
“거, 검이 달라졌— 커헉!!”
하나씩. 천천히.
신중하게 쓰러뜨린다.
후우욱.
“공자! 위험해요—!!”
그때, 언미희가 외쳤다.
이벽은 등 뒤에서 도가 날아들고 있음을 눈치챘다. 이벽은 고개를 좌측으로 꺾었다.
후욱.
목을 노리고 뻗어진 도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뒤를 돌아 처리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하앗—!!”
퍼억—!
“꺼…억.”
등 뒤의 적이 허물어졌다.
어느새 언미희가 다가와 있다.
이벽의 위기를 목도한 순간, 자기도 모르게 몸이 튀어나와 버린 모양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 그게……!”
언미희는 흠칫했다.
그녀가 여기 있어선 안 된다.
그러나 일단 포위망 안으로 들어와 버린 이상 빠져나가기는 여의치 않다. 두 사람은 등을 맞대었다.
챙, 채앵! 퍼억!
빠르게 검을 휘두르는 한편, 이벽은 시선을 돌렸다. 파진성과 공손수의 모습을 찾는다.
“케헤헤! 크케, 으헤헤헤헤!!”
“…….”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고 가는 칼날 속에서 이벽은 파진성의 흥분한 웃음소리를 향했다. 파진성과 공손수는 예의 합격술을 펼치고 있었다.
두 사람의 합격술은 훌륭하다.
성격과는 별개로, 손발이 매우 잘 맞는다. 그것은 이벽 역시 여러 차례 겪어본 바 있었다.
파진성의 검이 과감하게 뻗어지면, 공손수의 섬세한 비수가 그 빈틈을 메꾼다.
실제로 비슷한 수준의 적들 다섯에게 둘러싸이고도 두 사람은 밀리지 않고서 안정적으로 버티고 있다.
“그니까 내가 말했잖아!! 앙?! 더 이상 짐덩이는 안 된다고!! 이 해남의 파진성을 뭐로 보고—!!”
“아, 시끄럽고 칼이나 휘둘러요!!”
‘…괜찮겠군.’
이벽은 안심하고 시선을 뗐다.
다시 눈앞의 적들에게 집중한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비틀.
“…어?”
일순 공손수의 몸이 기울어졌다.
멀미로 인한 가벼운 탈수증세를 회복할 새도 없이 전투에 나선 것이 문제였던 것.
물론 그녀는 숙련된 무인이므로 곧바로 균형을 되찾았다.
그러나 칼날이 오가는 전투 중 잠깐의 빈틈은 치명적이다.
파진성의 등 뒤에 있어야 할 그녀의 몸이 반보 앞으로 튀어나가 버렸다. 그리고.
“하! 더러운 사도 년 같으니!”
“제법 끈질겼지만 여기까지다!!”
쐐애액—!!
그 즉시 도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서너 자루가 동시에 쏘아진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절체절명을 예감한 순간 질끈, 공손수는 눈을 감았다.
후욱.
그러나 다음 순간, 공손수의 몸이 훅 뒤로 당겨졌다. 파진성이 공손수를 끌어당기며 검을 뻗은 것이다.
채앵—!
“케헤, 이 새끼들이 어딜 감히!”
파진성의 검이 도 하나를 튕겨내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였고, 뻗어진 도는 세 자루나 더 남아있다.
빠드득.
위기의 순간, 파진성은 이를 악물었다. 몸으로 공손수를 감싸며 등 뒤로 돌아섰다.
퍽, 퍼억, 퍼억!
그리고 이내 세 자루의 도가 파진성의 등에 틀어박혔다.
“…파, 파 소협?”
“컥, 케헤, 커, 커허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