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87)
90화. 청강일협 (2)
쿠웅, 털썩.
두 구의 시신이 쓰러졌다.
팽가 무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분리된 몸과 머리를 향했고, 그리고 다시 이벽을 향했다.
동료가 죽었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표정 위로 당혹감이 스쳤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서서히 분노로 변질되어 간다.
후욱.
“이… 이 악적 같으니!!”
“크아아압—!!”
죽은 이들의 양옆에 있던 무사 둘의 도가 이벽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러나 이벽에게는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채앵!
이벽의 검이 마주 휘둘러졌다.
검과 도 두 자루가 부딪쳤다. 이 대 일의 충돌이었음에도 튕겨 나간 것은 오히려 무사들 쪽이었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이 초식, 륙(戮).
끼기긱!
다음 순간, 튕겨 나간 좌측의 도에 이벽의 검이 달라붙었다. 도신을 타고 오르듯 미끄러졌다.
스윽.
“허, 헉!”
타고 오른 검이 이내 무사의 손목을 파고들었다. 피부 안쪽에서 살점을 발라내듯 검이 나아간다.
팔에서 어깨를 지나 칼날이 가슴 안쪽으로까지 파고들었을 때, 마침내 이벽의 검이 회수되었다.
촤앗.
발라진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한 박자 늦게 피가 터져 나왔다.
털썩, 쿠웅.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무사가 쓰러졌다. 헤집어진 가슴팍에서 허연 뼈가 드러난다.
콰득.
이벽의 발이 그 위를 짓밟았다.
쓰러진 이를 딛고 솟구치며 이벽의 신형이 반대편의 무사에게 쇄도했다.
무사가 황급히 도를 뻗었다.
“아, 안 돼!! 도와—!!”
도살지도(屠殺之刀).
일 초식, 난(亂).
탕, 퍼억.
자신의 상대가 아니다.
새삼 그 사실을 깨달은 무사가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이벽의 검이 빨랐다.
두 번의 충격이 일었다.
첫 번째에 무사의 도가 튕겨 나갔고, 두 번째는 고스란히 목을 파고들었다.
“컥, 그르륵.”
“…….”
검은 목의 절반 정도를 갈랐다.
도살지도 일 초식 난의 묘리는 손목의 회전을 통해 연속베기의 간격을 최소화하는 것에 있다.
허나 그렇기에.
한 방의 힘이 부족하다.
깔끔하게 목을 쳐내지 못했다.
쩌저적.
이벽이 검 손잡이를 비틀자 이내 목에 그어진 균열이 벌어지며 피부와 근육이 잡아 뜯어졌다.
툭.
또 한 개의 머리가 떨어졌다.
“포, 포위— 아, 아니, 물러서라!!”
무사들이 동요했다.
참마대의 부대주가 황급히 외쳤다. 언미희와 공손수를 둘러싼 포위를 풀며 무사들이 일제히 산개했다.
“…….”
이벽이 한 바퀴 둘러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무사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저들과는 앞서 선착장에서도 이미 한 번 전투를 벌인 바 있다. 고로 실력의 차이가 있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테다.
‘하지만 왜?’
왜 이제 와서야 저런 눈빛을 보이는가? 진작에 싸우려 들지 않았다면 죽을 일도 없었을 게 아닌가?
저벅.
이벽이 언미희에게 다가갔다.
움찔, 언미희의 어깨가 흔들렸다.
“소저, 괜찮소?”
“…….”
언미희는 이벽을 바라보았다.
흠칫, 언미희는 어깨를 떨었다.
눈빛은 붉되 흔들리지 않는다. 겨울의 밑바닥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냐, 그때와는 달라.’
이성을 잃은 게 아니다. 스스로 살심을 ‘받아들인’ 이벽은… 마치 전혀 다른 사람과 같다.
“크허허헝, 네 이노옴—!!”
그때, 등 뒤에서 일갈이 터졌다.
“공손수와 파진성을 부탁하오.”
언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벽은 곧장 돌아섰다. 흉신처럼 일그러진 표정의 팽무옥이 쇄도하는 모습을 마주한다.
타앙!
“가, 감히, 감히 잘도—!!”
검과 도가 부딪혔다.
그리고 이벽은 팽무옥의 어깨 너머로 철면개가 선우굉을 상대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넝마의 곳곳이 붉게 물들어있다.
잠깐이나마 동급의 고수 두 명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철면개의 표정에는 낭패감이 흐른다. 이미 부상을 입었기에 선우굉 한 명을 상대로도 퍽 위태롭다.
즉, 서둘러 도와야 한다.
타앙, 타앙!
“감히, 감히이이—!! 더 이상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마라! 내 네놈을 천참만륙을 내어 목숨값을 치르고 정의를 바로 세우리라!!”
으드득, 팽무옥이 이를 갈았다.
성난 도가 미친 듯이 휘둘러졌다.
“도통 알 수가 없군. 부하가 죽는 게 싫었으면 공격을 안 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채앵, 채앵!
“크아악, 닥쳐라, 이 악적!!”
“살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주었다. 내가 죽이면 악적이고, 당신이 죽이면 정의구현인가?”
카앙!
검이 도를 쳐냈다.
주르륵, 두어 발 밀려난 팽무옥 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더더욱 핏발이 선다.
“크하! 오냐 그래! 그렇게 나와줘야지! 너무 쉽게 베어져서야 제자들의 넋을 달랠 수가 없지!”
우웅.
그리고 팽무옥의 도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빛무리가 어른거린다.
절정고수의 상징, 강기였다.
이벽은 멈칫했다. 상대가 강기를 꺼낸다면, 이쪽 역시 강기로 상대해야 한다.
“…….”
우우우웅.
이벽의 검이 흔들렸다.
파악, 혈향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이벽에게로 갈무리되었다. 이내 검 주위를 둘러싸며 희미한 붉은 빛을 이루기 시작했다.
“뭐, 뭣이?! 네, 네놈 설마—?”
“오지 않으면 가겠다.”
이벽은 뻐근함을 느꼈다.
적파심공의 강기를 사용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암영각의 백룡강을 상대로도 펼친 바 있다.
허나 내력의 소모는 상당하다.
비록 고통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를 관통한 중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둘러 승부를 봐야 한다.’
콰앙, 쾅!
“크—!!”
강기와 강기가 부딪혔다.
거대한 폭발음이 산등성이를 메아리쳤다.
이벽의 강기를 마주한 팽무옥이 당황한 얼굴을 했으나 곧 신색을 회복했다.
설령 애송이 놈이 강기를 쓴다 해도, 내력의 소모를 생각한다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쾅, 쾅! 콰앙—!!
팽무옥의 도는 거칠고 흉폭했다.
오호단문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상대를 짓이기는 듯한 맹렬한 기세는 범의 발톱을 닮아있다.
허나 이벽은 백룡강과의 일전을 떠올렸다. 그때에도 이벽은 그의 일장에 맺힌 강기를 상대로 맞부딪혔다.
그리고.
채앵, 콰아아앙!
몇 번의 충돌이 지나갔다.
순간 이벽의 강기가 ‘으깨어졌다’.
산산조각이 난 붉은 강기의 조각들이 팽무옥에게로 흩날렸다.
스윽, 슥.
“커헉!”
스치듯 온몸의 살과 근육을 찢어놓는다. 일순 팽무옥이 피투성이가 되며 빈틈이 벌어졌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일 초식, 난(亂).
타다당!
“크아악!”
물론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이벽의 검이 다시 팽무옥의 온몸을 헤집었다.
털썩.
마침내 팽무옥이 주저앉았다.
일순 두 사람의 눈이 부딪혔다.
“…….”
허나 이벽은 망설이지 않았다.
사람이 아닌 범을 사냥하는 것과 같다. 고로 죽이는 것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삼 초식, 참(斬).
후욱.
그리고 이벽의 검이 다시 휘둘러졌다. 날의 끝은 흔들림 없이 팽무옥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주, 죽는다고? 이렇게?’
질끈, 팽무옥이 눈을 감았다.
카앙!
그러나 닿기 직전, 이벽의 검이 튕겨 나갔다. 절묘하게 끼어든 선우굉의 검이 막아선 것이다.
“정신 차리시오, 팽 대협!!”
“큭, 고, 고맙소……!”
“…….”
이벽은 선우굉의 어깨 너머를 확인했다. 철면개가 피를 쏟으며 주저앉아 있다.
더는 싸울 수 없는 듯했다.
허나 이제는 문제 될 건 없다.
“네놈은 대체 뭐냐?! 그 나이에 강기라니, 아니, 조금 전 분명 단전을 파훼했거늘 어찌……?”
“글쎄, 같은 상처를 두 번 연달아서 입고 나면 그럭저럭 익숙해지는 것 같군.”
“그, 그게 무슨—”
이벽의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죽립 사이로 가려진 그 눈빛을 마주한 선우굉은 말문이 막혔다. 그럴 리 없으나 마치 어딘가에서 본 듯한.
카앙! 캉! 캉!
생각은 길게 길어질 수 없었다.
다시 검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선우굉은 대경했다.
터무니없이 무겁다.
그것은 조금 전 상대했던 애송이와 같은 녀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전혀 다른 검이었다.
살기는 짙고, 혈향은 섬뜩하다.
“노오옴—!!”
기세에서 밀리고 있다.
선우굉은 그 즉시 일갈했다.
‘제아무리 날고 기어본들 결국은 애송이에 불과하다!’
채앵, 챙!
선우굉은 청강검식을 펼쳤다.
평생을 갈고닦은 검을 믿는다.
여섯 개의 무리가 교차하며 도살지도의 초식들을 침착하게 걷어내었다.
놈의 검은 분명 거칠고 위력적이지만, 투박하다. 이내 청강검식이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지금이다!’
그리고 선우굉은 비검을 펼쳤다.
청강유엽검식, 발검제이식 쾌검.
쐐애애액.
강기를 머금은 검이 섬전처럼 쾌속하게 쏘아졌다.
그리고 선우굉은 이번에야말로 놈의 단전을 꿰뚫어버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선우세가의 검은 이벽에게 있어서도 어느 누구보다 익숙한 검로임을 선우굉이 알 리는 없다.
탓.
정확히 한 걸음. 그리고.
이벽이 선우굉의 검을 피해냈다.
말 그대로, 번뜩이는 강기를 상대로 방어 초식조차 펼치지 않고서 ‘피해버린’ 것이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그러나 이벽은 성공했고, 그 대가로 선우굉의 큰 빈틈을 얻어내었다.
우웅, 이벽의 검이 울었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사 초식, 압(壓).
이벽의 검이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고 검 끝이 땅에 닿은 순간, 강기가 공간 속으로 스며들었다.
후우욱.
그 순간 선우굉은 직감했다. 무언가가 밀려든다. 그리고 막지 못하면 죽는다.
“하아앗!!”
“크, 크아압!!”
주저앉아 있던 팽무옥마저 그 기세를 느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있는 힘을 다해 강기를 끌어올렸다.
도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콰아앙—!!
“커억!”
“커흑!”
그리고 다음 순간, 바위와 같은 무게가 그들의 어깨 위를 짓눌렀다.
팽무옥은 피를 토했다.
선우굉은 무릎을 꿇었다.
허나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도살지도 사 초식 압이 연달아 펼쳐졌다. 천근과 같은 무게가 그들을 짓눌렀다.
뿐만이 아니다. 땅 전체를 뒤덮은 이벽의 강기가 산산조각이 나며 온몸을 할퀴고 지나간다.
“끄악, 으아아악!!”
팽무옥과 선우굉은 빠르게 피투성이가 되었다. 한 번 부딪힐 때마다 급격히 전의를 잃어갔다.
“버, 버티시오, 팽 대협! 이런 공격이 몇 번이고 계속될 수 있을 리 없소!”
“…….”
틀린 말은 아니다.
강기를 머금은 초식은 무겁다.
이벽의 내력이 훅 빠져나갔다.
그러나 동시에 선천의 힘은 빠르게 그 힘을 다시 채워 넣고 있다. 사파의 내공은 탁하지만, 그렇기에 탁류처럼 빠르게 불어난다.
청강유엽공과는 달리, 강기를 연달아 사용하는 것조차 그리 무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콰앙, 쾅, 콰아앙!
“커헉!”
“끅, 끄윽!”
이벽은 만족했다.
각자의 세력을 대표하는 절정고수 두 사람이 자신의 검 앞에서 일방적으로 짓이겨지고 있다.
간신히 막아서고 있으나, 그들의 기운은 이제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흐릿하다.
짓이기고 짓이긴다.
물론 망설임 따윈 없었다.
콰앙! 콰앙! 콰앙!
“커헉, 꺽…….”
풀썩.
마침내 팽무옥이 고꾸라졌다.
“아, 안 돼……!”
선우굉은 절망감을 느꼈다.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괴물을 막아설 수 없다.
비틀.
그러나 그때였다.
문득 이벽의 신형이 작게 흔들렸다. 끊이지 않고 연이어 펼쳐지던 초식이 한순간 멈추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크, 흐아아압—!!”
그때, 선우굉의 검이 뻗어졌다.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한 최후의 일검이었다. 다시 한번 청강유엽검식의 쾌검이 뻗어졌다.
이벽은 얼른 몸을 추슬렀다.
컴컴해지는 시야 너머로 뻗어지는 익숙한 검로를 보았다. 그리고 직감했다.
‘피하기는 늦었다. 그렇다면.’
먼저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삼 초식, 참(斬).
선우굉의 검을 무시하며 이벽의 검이 휘둘러졌다. 두 자루의 검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교차했다.
채애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