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Advent (Descent of the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70)
일령이라 불리는 노인의 질문에 천여운이 턱을 쓰다듬었다.
대자연을 넘어서 우주와 공간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지만 특별히 이것에 대해서 어딘가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우주를 완전히 깨닫는다는 것은 삼라만상을 이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흠. 글쎄.”
그렇게 답하는 천여운에게 노인이 말했다.
“만사경에 이르면 대자연을 넘어서 공허와 여의를 깨닫게 되면 탈각한다는 구절이 적혀 있지. 마신 네놈은 공허의 경지에 이른 것 같구나.”
만사경(萬思經).
선백진경과 더불어 중원 삼대 괴서(怪書)라 불리는 고서 중의 하나이다.
이 만사경은 삼황오제 시절에 명망 높은 호로 선인이 저술한 고서로 도가의 경전만큼이나 만사의 진리를 서술해놓았다.
“공허….?”
공허(空虛)라는 말은 아무 것도 없이 비어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우주의 진리를 일부 깨닫게 된 천여운은 그 공허라는 말이 현재 자신이 깨달음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고 여겼다.
“공허경이라….뭐 괜찮군.”
적이라 할 수 있는 노인이 붙인 표현이었지만 천여운이 이른 경지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지금을 넘어서 우주의 경지를 확실하게 깨달아 의지대로 자유로이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노인의 말처럼 여의(如意)라는 말이 어울리리라.
‘말도 안 돼! 자연경을 넘어섰다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블레이드 식스의 회장 금성룡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설이라 불리는 자연경의 경지 역시도 무림 역사를 통틀어 그에 이른 자들이 손가락에 꼽히고 있었는데 그 마저도 넘어섰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를 어찌하지?’
금성룡은 이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일령의 태도를 보면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포기한 듯 했다.
물론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부딪쳐도 어쩔 수 없는 상대라면…..’
모든 것이 허탈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 정도로 마신과 일령의 무(武)에는 확연한 격차가 존재했다.
일령이라 불리는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그분께 썼던 그 검을 쓰지 않은 것이냐?”
그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정도 역량의 차이라면 굳이 공간검이 아니라 그 흉폭한 기운을 담아 검을 썼더라도 자신을 제압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노인에게 천여운이 피식 웃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네놈은 불사가 아닌데 굳이 쓸 필요가 없지.”
그런 천여운의 말에 노인의 주름이 떨려왔다.
“역시…..알고 있었군.”
“모를 리가 있나. 정상적으로 오령의 영력을 취했다면 불로불사의 존재가 되었겠지. 그 노화가 증거겠지.”
천여운은 오령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진원의 영력을 전부 흡수하여 불노불사를 이루게 되었다.
말 그대로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일령이라는 노인은 오령의 기운을 전부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서 노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노인은 불로불사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 네놈 말이 맞다. 본좌는 오령의 진원이 아닌 피를 취했지.”
오령이라 불리는 영물들은 진원이 아니더라도 그 피에 영력을 지니고 있다.
이 피를 마신 자들은 공력이 증폭하는 것뿐만 아니라 뛰어난 재생력을 얻게 된다.
“제대로 된 영력을 취하지 않았기에 본좌는 노화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섯 영물의 피에 담긴 영력 덕분에 노인은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
이에 천여운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난 놈이로군.’
아무리 다섯 영물의 피를 먹었다고 천 년이라는 세월은 굉장히 길었다.
그 세월을 견디기에는 피에 담긴 영력만으로 현저히 부족했다.
허봉과 같은 세 수하들 같은 경우 역시도 영물의 피를 먹었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수명을 보장할 수 없기에 얼음 속에서 동면을 취한 것이다.
한 가지 의아해진 천여운이 물었다.
“여타의 영물들을 구해서 진원을 취하면 되지 않았나?”
그런 천여운의 물음에 일령이라 불리는 노인이 피식 하고 웃었다.
“오랜 세월 동안 잠적했다고 하더니, 세상 일에 전혀 관심이 없구나. 마신.”
“뭐?”
“오령이라 불리던 영물들이 사라진지가 언제적이더냐.”
“영물이……사라져?”
처음 듣는 이야기에 천여운이 놀라워했다.
블랙 아테나에서 구한 이무기의 피 때문에 아직까지 영물들이 존재한다고 여겼던 그였다.
“본좌 역시도 영물을 구하려고 했다.”
영물의 피에 담긴 영력만으로 버티기에는 불완전했다.
그러기에 일령이라 불린 노인은 오령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이 너무 많았다. 네 덕분이지.”
근 몇 백 년 동안은 천마신교를 비롯해 황실, 정도 무림이 공적이었던 극도육무문의 잔재를 척살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재건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힘겹게 극도육무문을 재건했을 때는,
“영물이란 대자연의 기운을 머금고서 태어난 존재. 그런데 지금의 세상은 어떠한가?”
“……그렇군.”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증가하는 인구는 자연에 수많은 영향을 미쳤다.
산림의 훼손, 자원의 고갈.
산업 혁명이 시작된 후로는 공기는 급속도로 오염되었고 오존층이 파괴되면서 그렇게 맑고 깨끗했던 대자연의 기운은 점차 흩어져갔다.
‘그게 원인이었군.’
나노에게 받은 현대의 정보로 어렴풋이 짐작했던 원인이었다.
그런데 그 대자연의 기운이 소멸해가는 것이 오령이라 불리는 영물들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하긴…..’
생각해보면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영물을 모르는 것이 이상했다.
마치 과거에 있었던 화석처럼 여겼었다.
지금의 기술력이라면 영물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이슈화가 되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허무하구나.”
일령이라 불리는 노인이 허탈한 얼굴로 천여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목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본좌의 무는 네게 미치지 못했다. 죽이거라.”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의외로 깔끔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죽이라고 목을 내밀었다.
천 년이나 증오를 가지고 있던 자가 아무리 벽에 막혔다고 하지만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포기가 빠르군.”
“희생을 막기 위함이다.”
“희생을 막아?”
“생각보다 네 부하들이 강한 것 같더군. 마신 너만 처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일령은 자연경에 이른 고수였다.
그의 기감은 이곳 용천 그룹의 부지 전체를 느낄 정도로 민감했다.
그런데 상위 육문주들 중 누구 하나 용천 그룹 부지 내부로 진입한 부대가 아무도 없었다.
“본좌의 목숨으로 그들을 살려주길 간청한다.”
“일령! 흡!”
일령이라 불리는 노인에게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블레이드 식스의 회장 금성룡이 자신도 모르게 그를 크게 불렀다고 입을 틀어막았다.
항복도 모자라 스스로를 희생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내가 살려줄 것 같나?”
천여운이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절대로 후환을 살려두거나 하지 않는다.
애초에 일령 역시도 재가 되면 고스트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육신을 보존하게 하려고 공간검을 멈춘 것이었다.
“알고 있다. 마신 그대의 성정은.”
“날 굉장히 잘 안다는 듯이 계속 이야기하는데. 네놈 누구지?”
나노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검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에 일령이 말했다.
“끌끌, 네놈도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나 보구나. 본좌의 이름은 황헐. 한 때 그분의 명으로 도주를 관리하며 네놈을 상대해왔지.”
“황…..헐?”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이름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하는 천여운의 모습에 일령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하긴 마신 네가 내 이름을 기억할 리가 없지.”
“하나하나 기억이 날 만하면 기억하지.”
“온몸에 붕대를 하고 있던 도주 곁은 마지막까지 지켰던 자를 기억하나?”
천여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 하나의 설명에 불과했지만 붕대의 남자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극도신이 내세웠던 얼굴 마담이라 할 수 있는 도주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항전했던 그 붕대의 남자.
“네놈…..분명히 죽였는데.”
천여운의 기억 속에 붕대의 남자는 죽었다.
그것도 천공섬광에 의해서 가슴이 꿰뚫려서 말이다.
“죽지 않았다. 단지 대법으로 겨우 숨을 유지하고 있었지.”
일령이라 불리는 노인, 아니 황헐은 그 당시에 숨이 멎어가고 있었다.
그때 사령 중에 다른 누군가가 도착해서 영물의 피를 복용시키지 않았다면 정말로 죽었을 지도 몰랐다.
“그때도 영물의 피를 흡수했었군.”
“…..그래.”
영물의 피를 복용한 자는 남다른 재생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천여운은 이를 눈치 채지 못했었다.
붕대를 온몸으로 감고 있는데다가 특수한 대법으로 영력을 막고 있던 황헐이다.
만약 그걸 천여운이 눈치 챘었다면 진즉에 육신을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전부 파괴시켜버렸을 것이다.
천여운이 문득 뭔가를 떠올렸는지 말했다.
“……그렇다면 네놈 말고도 영력을 지닌 자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보면 천여운 말고도 숙적 극도신은 오령의 진원을 취하고서 불로불사가 되었다.
당연히 주변의 심복들에게 영물의 피를 하사했을 것이다.
그런 천여운의 물음에 황헐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본좌가…..마지막이다.”
“그걸 어떻게 믿지?”
이런 식으로 속이고 나서 세력을 숨길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물론 기억을 읽어낸다면 간단히 알아낼 수 있었다.
“그분께 영력을 하사받은 자는 총 네 명. 그분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령이라고 불렀다.”
“네 명이나 있었나.”
“흥! 그 중 한 사람인 굴원을 네 손으로 죽이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구나.”
“굴원?”
“하…..”
황헐이 자신의 아미를 쥐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천여운의 손에 죽은 극도육무문의 사람이 한 둘이겠는가.
거의 수백, 수천에 가까운 자들을 몰살시킨 천여운이다.
“불기린의 영력을 가진 자다.”
“아아.”
황헐의 그 말에 천여운이 기억이 났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 자연경의 경지에 이르자마자 가장 먼저 죽인 자가 불기린의 영력을 지녔던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였다.
‘그놈이었나.’
그렇다면 나머지 셋이 남았다.
황헐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운명이란 참으로 모를 일이더구나. 오직 우리는 사라졌던 네놈에게 복수하고자 이 질긴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뭔가 그 분노가 천여운에게 향해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의아해진 천여운이 물었다.
“……정말 네놈만 살아남은 것이냐?”
“비록 악연이라고는 하나 자그마치 천 년이다. 본좌가 목숨마저 내놓겠다고 한 마당에 이제 와서 네놈을 속일 이유가 어디에 있겠느냐.”
황헐은 억울한 기색을 보였다.
한 점의 흔들림이 없는 그의 눈빛에 천여운은 본능적으로 거짓이 아님을 느꼈다.
황헐이 다시 목을 내밀며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본좌가 마지막이다. 부디 이 목숨 하나로 끝내다오.”
천여운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극도육무문은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숙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가 천여운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태도를 취했다.
그것도 진심으로 말이다.
“웃기는 놈이로군.”
천여운이 오른 소매를 걷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촤촤촤촤촤촥!
보호대의 형태였던 흑철이 천마검으로 바뀌었다.
“천마검!”
오랜만에 보는 천여운을 상징하는 천마검에 황헐이 과거를 떠올렸다.
그렇게나 천 년 전에 죽이기 위해 안달을 냈던 적이고, 천 년 동안에 복수를 위해 칼을 갈고 닦았는데 뭔가 모르게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졌다.
“악연도 연인가 보군. 클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편안한 미소를 짓는 황헐.
그를 바라보며 천여운이 말했다.
“여기서 네놈 수하들에게 손을 댄다면 치욕을 입는 것은 나겠군.”
“호의에 감사한다. 오랜 악우여.”
황헐이 천여운을 악우(惡友)라 칭했다.
악연도 연이라면 연이기에 그런 표현이 어울렸다.
천마검을 직접 든 것도 그에 대한 나름의 예우이기도 했다.
“네놈의 말대로 되길 기대하마.”
천여운이 검을 들어 올리며 귀기(鬼氣)를 일으키며 말했다.
-스스스스!
음산한 기운이 검에서 발했다.
이에 황헐이 죽음을 가까이서 느꼈는지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본좌만 죽으면 네놈이 우려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본좌를 조금이나마 존경하는 자들이 증오 정도는 할 수야 있겠지.”
천여운이 인상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죽이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이에 황헐이 눈을 감고서 목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죽여라. 죽여.”
그런 그의 태도에 천여운이 기가 찼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웃기는 놈이로군. 뭐 마지막으로 죽이기 전에 하나만 묻자.”
“무엇을 말이냐?”
“네놈이 말한 사령 정도면 제법 강할 터인데, 어쩌다 죽은 거지? 내 후손들의 손에 죽었나?”
그것이 궁금해진 천여운이다.
그 말에 황헐이 살기가 묻어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한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세력?”
“지금은 사라진 것처럼 꾸몄지만….놈들은 아직 존재한다. 놈들은!”
-으득!
그런 황헐의 말과 태도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천여운이 물었다.
“……혹시 그 세력이라는 게 MS그룹이냐?”
‘!?’
그 말에 황헐이 놀란 눈으로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걸 어떻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