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95)
# 60장 일거양득(一擧兩得) (1) #
허공에 떠서 역으로 그를 겨냥하는 사십 자루의 검들.
검끝에서 느껴지는 예리한 기운은 언제라도 그를 꿰뚫은 기세였다.
‘참으로 특이하구나. 이 많은 검에 간섭하려면 그 만큼 세밀하게 진기를 다뤄야 한다는 것인데.’
당혹스러웠던 것도 잠시였고 곱슬머리의 중년인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기어검이라고는 하나 자신은 실상 방대한 내공으로 허공섭물을 펼친 것에 불과하나, 저 젊은이는 분명 이 많은 수의 검에 진기를 부여한 것이 틀림없었다.
‘고작 약관에 불과해 보이는데.’
느껴지는 기운은 자신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중원 오대고수에 버금가는 무위를 지녔다고 봐도 무방했다.
분명 내당 전각 쪽에서 걸어온 것을 보면 마교의 사람이 틀림없을 텐데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때 곱슬머리카락의 중년인의 머릿속에 최근에 들었던 정보가 기억났다.
신의를 찾기 위해서 하오문에 정보를 의뢰했다가 들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교에 젊은 교주가 부임했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중년인을 견제하느라 정신이 쏠려있던 외당주 지현과 외당 무사들이 뒤늦게 천여운을 발견하고는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미천한 교도가 대 천마신교의 하늘이신 교주님을 배알하나이다!”
“교주님을 배알하나이다!!!”
‘!?’
쩌렁쩌렁한 외침에 중년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마교의 신임교주일 줄은 몰랐다.
십만대산에 있어야할 마교의 교주가 정파의 영역과 가장 경계지점이라 할 수 있는 호남성 최북단에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하겠는가.
‘잠깐 그렇다면 내 딸 아이를 제압한 자가 저 자란 말인가?’
여기서 느껴지는 기운들 중에서 그만한 능력자는 천여운 밖에 없었다.
화경의 고수로 짐작되는 한 명의 기운도 느껴졌지만 그자의 능력으로는 폭주하는 구음절맥을 완전히 제압하기에는 무리였다.
-착!
천여운의 앞으로 다가온 외당주 지현이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을 취하며 보고했다.
“호남 북부 지부의 외당주 지현이 보고 드립니다.”
“말해라.”
“저기 있는 고인이 막무가내로 본교의 지부로 쳐들어와서 경비 무사들과 외당 무사들을 해한 뒤에 자식을 내놓으라고 위협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자식을 내놓으라고?”
보고를 들은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전율적인 기운을 느끼고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 자인 듯 했다.
구음절맥의 여인인 여군의 아버지.
그리고 두 대검을 쓰는 분왕을 통해 짐작하는 그 이름.
“무쌍검 왕전!”
천여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이름에 외당주 지현을 비롯한 무릎을 꿇고 있는 외당 무사들의 두 눈이 커졌다.
그 이름을 듣고서 놀라지 않을 무림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원 오대고수 중의 한 사람이자 하룻밤 사이에 삼천 명의 수적을 몰살시킨 악명을 가진 절대고수가 아닌가.
-웅성웅성!
“무쌍검이라니?”
“지금 우리가 오대고수와 대적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 파장은 굉장했다.
아무리 절개 높고 용맹한 마교의 무사들이라고 해도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를 보게 되었으니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정작 당사자인 곱슬머리의 중년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에 천여운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무쌍검 왕전 공이 맞으시오?”
직접적인 물음에 곱슬머리의 중년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부정이라기보다 긍정에 가까웠다.
중년인의 머릿속은 지금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 정체를 안다는 것은 역시 아이들을 데려간 자가 마교의 교주라는 말인가.’
상당히 곤란한 일이었다.
수적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 세력의 수장이 아닌가.
그런 자가 무엇 때문에 자식들을 데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자를 상대하려면 상당한 진기를 소모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된다면 화경의 고수나 이곳에 있는 고수들이 개입하겠지.’
어떤 식으로든 불리한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판단이 선 곱슬머리의 중년인이 위압적으로 뿜어대고 있던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러자 외당 마당을 짓누르던 공기가 한층 가벼워졌다.
-탁!
곱슬머리의 중년인이 천여운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천마신교의 신임 교주를 뵙게 되어 영광이오. 본인은 왕전이라고 하오.”
“오오오!”
외당 무사들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천여운의 짐작이 맞았다.
곱슬머리 중년인의 정체는 바로 중원 오대고수의 일인인 무쌍검 왕전이었다.
위압적인 기세를 거뒀다는 것은 말로써 상황을 풀어나가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리라.
-스륵!
천여운이 손을 잡아당기자 허공에 떠있는 검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댕그랑! 댕그랑!
“아! 내 검!”
외당의 무사들이 자신들의 검을 얼른 주워들었다.
천여운이 무릎 꿇고 있는 외당주 지현에게 말했다.
“쓰러져 있는 외당 무사들을 데려가서 치료해라.”
“네?”
지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당 바닥에 쓰러져 있는 네 명의 외당 무사들이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가벼운 내상만 입고서 기절한 상태였다.
“손에 사정을 둬서 고맙습니다.”
천여운이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사실 왕전은 외당 무사들 뿐만이 아니라 대문에 쓰러져 있는 경비 무사들까지 누구도 목숨을 거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교의 지부 내에 자식들의 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이 목숨을 잃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겠지만 아직까지 무사한데 살생을 해서 마교마저 적으로 삼기는 그로서도 벅찼다.
단지 무력 시위를 한 것은 자신의 무위를 보임으로써 자식들을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경고이자, 구음절맥인 여군을 제압한 자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게 마교의 교주일 줄이야.’
이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자식들을 데려간 자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본론을 꺼내야만 했다.
“천마신교의 수장인 교주를 뵙게 되었으니, 더욱 예를 갖추고 싶으나 그러지 못함을 양해해주길 바라오. 내 자식들의 기운이 이곳에서 느껴지오. 어째서 그들을 데려갔는지 그 연유를 듣고 싶소만.”
최대한 예를 갖춰서 말을 하고 있었지만 힘이 들어간 목소리에는 불쾌함으로 가득했다.
아내를 잃고 나서 그의 삶은 목적은 오직 자식들뿐이었다.
‘좋은 기회다.’
그 질문에 천여운은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빚은 만들어두고 싶었던 당사자가 나타났으니 오히려 모양새가 그럴 듯 해졌다.
왕전이 애타게 찾는 인물이 신의라고 들었으니 말이다.
“미처 왕전 공이 오해하게 만든 것을 사과드리겠습니다. 따님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기에 서둘러 이곳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아…..”
그 말에 왕전이 인상이 어두워졌다.
용호채에 있는 여자 의원인 감미양에게 임시로 약을 처방받았지만 갈수록 음기의 폭주가 잦아지는 것이 걱정스러웠던 그였다.
아직까지 신의를 찾지도 못했는데 이런 사달이 날 줄은 몰랐다.
“교주께서 좋은 의도로 그러셨다니, 본인 역시도 조급한 마음에 실수를 한 것 같소이다. 하지만 내 아이를 돌볼 의원이 황산 쪽에..”
-오싹!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딘가에서 한기가 일어났다.
사방의 공기가 일순간에 차가워지면서 외당 건물에 서리가 생겨날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한기에 천여운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객당 쪽으로 돌렸다.
‘설마 혈도제압술이 풀렸단 말인가?’
불과 한 시진 전에 한 번도 혈도에 공력을 심어놨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한기가 몰아친다는 것은 혈도제압술이 풀렸다는 의미였다.
왕전이 심각해진 얼굴로 외쳤다.
“교주!”
“따라오십시오!”
-탓!
천여운이 다급히 객당 쪽을 향해 경공을 펼치자, 그 뒤를 왕전이 따랐다.
서둘러 객당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외당 마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한기가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쩌저저적!
바닥과 건물 벽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다른 별개의 장소로 온 것처럼 허공에는 차가운 서리들이 둥둥 떠있었다.
객당 앞의 마당에는 허봉이 한쪽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신의 감로수를 보호하고 있었고, 두 사람이 긴 은발을 흩날리고 있는 여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요.”
“교주님이나 양 장로님이 오셔야 할 것 같아.”
그들은 문규와 호상화였다.
천여운이 자리를 비운 후로 갑자기 깨어난 여군으로 이 사태가 벌어졌다.
전신에서 소름끼칠 만큼 싸늘한 한기를 내뿜는 여군은 아무리 초절정의 고수들인 그녀들이라 해도 감당키 어려웠다.
“하아.”
문규의 입에서 뿌연 김이 흘러나왔다.
마치 겨울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는데도 한기로 인해 떨릴 만큼 추웠다.
“온다!”
호상화가 다급하게 외쳤다.
-팍!
은발을 흩날리는 여군이 객당 마루바닥에 가볍게 진각을 밟자, 이를 중심으로 바닥에서 새하얀 얼음 가시가 튀어나와 그녀들에게 쇄도했다.
-촤촤촤촤촥!
“이런!”
“뛰어요!”
바닥 전체에서 얼음 가시가 튀어나오자 그녀들이 동시에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객당 마루바닥이 얼음 가시밭이 되고 말았다.
“에잇!”
문규가 뛰어오른 상태에서 장력을 날렸는데, 그것이 여군의 몸에 미처 닿기도 전에 하얀 김으로 변해 사라져버렸다.
‘말도 안 돼!’
놀라할 틈도 없이 여군이 두 손을 교차했다가 활짝 펴자, 새하얀 서리 돌풍이 일어나서 허공에 체류 중이던 그녀들을 강타했다.
-휘이이이잉! 파팍!
“꺄악!”
“으윽!”
두 사람이 다급히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했지만 이것은 거대한 진기 덩어리나 마찬가지라 그들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털썩! 데굴데굴!
두 여인은 바닥을 뒹굴다가 낙법을 치면서 겨우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어느새 그들의 주위 허공에 수많은 날카로운 얼음조각들이 둥둥 떠서,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 이건 대체?”
“상화.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죠?”
일반적인 그들이 알고 있는 무림인의 규격이 아니었다.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설녀(雪女)나 백발 마녀의 화신이라도 되는 것만 같았다.
은발을 흩날리면서 그녀들을 노려보고 있는 여군의 눈동자가 점점 투명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우우웅!
호상화가 들고 있는 거대한 도끼에 푸른빛 강기가 일렁였다.
문규 역시도 두 손바닥에 장강을 형성하여 언제든지 초식을 발휘하기 위한 기수식을 취했다.
두 여인들의 눈빛이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그때 여군이 그들을 향해 뻗은 손바닥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스스스스스!
그러자 허공에 떠있던 수많은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만천화우의 암기처럼 일제히 그녀들을 향해 쇄도하려 했다.
-슈슈슈슈슈슈!!!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녀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던 얼음조각들이 중간에 멈춰 섰다.
각자의 절기를 펼쳐서 얼음조각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던 그녀들이 영문을 몰라 하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앗! 교주님!”
“교주님!”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천여운이었다.
때마침 객당에 도착한 천여운은 얼음 조각의 공격들을 막아낸 것이었다.
그런데 도착한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탁!
“아?”
그녀들의 앞으로 곱슬머리의 중년인이 나타나 얼음조각들을 향해 양손으로 만든 검결지를 휘저었다.
-촤촤촤촤촥!
그러자 놀랍게도 허공에 날카로운 예기들이 선을 그리더니, 이내 얼음조각들이 산산조각이 나다못해 가루로 부서지고 말았다.
이런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 자는 바로 무쌍검 왕전이었다.
‘대단하다. 이런 쾌검이라면 아까 전의 이기어검도 충분히 막았겠구나.’
천여운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중원 오대고수라 불릴 만한 검술 실력이었다.
“여군아.”
왕전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엄청난 한기로 인해 폭주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상태가 최악인 듯 했다.
‘서둘러야 겠구나.’
왕전이 객당 마루 위에 서있는 은발의 미녀, 여군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는 왕전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여군이 허공에 있는 서리들을 응집시켜 두꺼운 얼음 장벽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천여운에게도 통하지 않은 것이 왕전과 같은 절대고수에게 그런 것이 통할 리가 없었다.
-쿠르르르! 촤악!
얼음 장벽이 미처 만들어지기도 전에 그것이 갈라지며 왕전의 신형이 여군에게 도달했다.
어느새 객당 마루바닥에 치솟아 있던 얼음 가시들도 가루처럼 변해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위였다.
-타타타탁!
여군에게 도달한 왕전의 손이 그녀의 혈도를 눌렀다.
그런데 약을 먹기 전이라면 오성 공력만으로도 먹혔던 혈도제압술이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음기가 반탄력을 일으켰다.
‘더욱 심각해졌구나.’
안 되겠다고 생각한 왕전이 단번에 팔성 공력으로 혈도제압술을 펼쳤다.
-타타타타탁!
심후한 공력이 주요 혈도를 파고들자 여군의 몸이 움찔거리더니, 이내 사방을 겨울로 만들어놓았던 한기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군의 주위로는 입김이 나올만큼 한기가 강했다.
-덜덜덜!
특이하게도 혈도제압술에 당한 여군은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기에 추위를 느끼는지 몸을 떨었다.
왕전의 눈빛에 당혹감이 서렸다.
아무리 상태가 심각해도 이 정도까지인 적은 없었다.
‘허어,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용호채까지는 반나절은 걸릴 터인데.’
얼른 용호채에 있는 감미양에게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이대로 가다간 여군이 음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동사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때 그들 부녀의 곁으로 근육질의 노파와 천여운이 다가왔다.
노파는 바로 신의 감로수였다.
‘아?’
왠지 낯익은 모습에 왕전이 인상을 찡그리는데, 감로수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는 여군의 맥을 짚었다.
“의원입니까?”
왕전의 말에 천여운이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진맥을 하던 신의 감로수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아, 결국 음기가 체내에 완전히 퍼진 듯 합니다. 이대로 가면 반나절도 못넘길 겁니다. 교주님. 이제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르신. 제 딸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딸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힌 왕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신의 감로수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음양 교합 이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엥!?”
뜬금없이 튀어나온 음양교합이라는 말에 왕전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