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96)
# 60장 일거양득(一擧兩得) (2) #
왕전의 얼굴은 황당함과 분노가 뒤섞여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음양 교합이라는 말에 화가 폭발하여서 일순간 신의 감미양을 죽일 뻔 했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듣고 나자 차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중원 최고의 의원이라 불리는 신의가 구음절맥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음양 교합뿐이라고 하는데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소림방장이셨던 구휼 대사가 실패하신 일이라니….’
더군다나 전 오대 고수 중 일인이었던 구휼 대사가 무림에서 은퇴한 사정마저 듣고 나니 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결국 당장에 죽어가는 딸을 구하려면 음양 교합을 통해 음기가 폭주하는 시작점인 자궁에서부터 막힌 경맥을 뚫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서책에서나 보던 일이 내 여식에게 벌어지다니….’
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면 허봉이 크게 동의했을 지도 모른다.
천하에서 인정하는 오대 고수의 일인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무쌍검 왕전은 탄식했다.
이런 왕전과 마찬가지로 난감하기는 천여운 역시도 같았다.
“음양 교합이라니…..음양 교합…..”
문규가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같은 말을 대뇌였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연모하는 이가 다른 여인과 몸을 섞어야 한다고 하면 좋아할 여인이 어디 있겠는가.
‘너무 싫어.’
그녀가 고개를 파묻으며 울상을 지었다.
“후우.”
천여운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침울해져 있는 문규를 바라보는 천여운은 오죽 답답하겠는가.
다른 이들이었다면 그 분위기가 신비로우면서 천하의 절색인 여군을 안을 수 있다고 한다면 좋아서 난리였겠지만 천여운은 달랐다.
‘다른 여인이라니….’
천여운은 평생 단 한 여인만 보기로 결심했다.
여섯 종파에 대한 폐해를 겪고 나서, 처와 자식들이 많은 것은 결국 분란의 씨앗만 남긴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교주님.’
마도관 시절부터 지켜보았던 수하들은 그 심정을 이해했다.
천여운은 한 번 정한 것은 끝까지 관철할 만큼 확고한 사내였다.
그런 그가 스스로 결정했던 것을 꺾는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저 구음절맥의 여인을 살리는 게 옳다.’
문규와 친한 호상화마저도 그렇게 생각했다.
감정적인 부분을 떼어놓고 본다면 중원 오대고수인 무쌍검 왕전에게 빚을 만들 수 있다.
오히려 빚을 넘어서 그를 장인이자 아군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시간이 없네.”
모두가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 신의 감로수가 서두르기를 권했다.
“하아….하아….”
여군의 벅찬 호흡에서 하얀 김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침을 꽂아서 흐트러진 내기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이걸로는 여군의 목숨을 연명시키기보다 오한을 완화시켜줄 뿐이었다.
“아버지.”
분왕이 그를 안쓰럽게 불렀다.
예상대로 그의 정체는 무쌍검 왕전의 장남이었다.
그리고 그의 실제 본명은 왕분이었다.
“분아.”
“아버지…..저도 불편하긴 하지만, 일단 여군이를 살리는게 우선이 아닐까요?”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죽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왕분의 말에 왕전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생판 처음 보는 자에게 몸을 맡기게 한다는 것은 아버지로서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딸의 몸을 허락한다면 그것을 하룻밤의 인연으로 그치게 할 수 없다.
한 번 몸을 섞었으면 당연히 딸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내 소중한 딸을 저 자에게 맡긴다고?’
신분이야 훌륭하다.
무림 삼대 세력 중에 하나인 마교의 교주가 아닌가.
더군다나 무림인으로서 그 무위조차도 훗날의 오대 고수를 맡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고절했다.
다만 왕전 역시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크흠.’
내색하진 않고 있지만 천여운의 모습을 보니, 저기서 고개를 푹 숙이고서 침울해하고 있는 여인의 눈치를 상당히 보고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뛰어난 무위와 아름다움, 그리고 기품이 느껴졌다.
마교에서도 아마 꽤 지체 높은 가문의 여식이리라.
아무래도 그녀는 차기 교주의 부인이 될 사람인 듯 했다.
‘나 왕전의 딸이 정실도 아니고 마교 교주의 첩이 되라고?’
무림에 적이 많고 자식들을 위해서 몸을 숨겼지만, 중원 오대 고수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였다.
그런 자부심을 가진 사내가 여식을 타인의 첩으로 보내고 싶겠는가.
왕전이 다시 한 번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내가 될 사람의 눈치를 보는 걸 보면 여색이 있는 자는 아니다.’
역대 마교의 교주들은 부인을 많이 두었다고 들었는데, 천여운의 태도를 보면 그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하아….하아….”
깊은 고심에 빠져있는 왕전의 귓가로 앓고 있는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은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왕전은 결국 자신의 복잡해진 머릿속을 간결하게 만들었다.
‘어리석구나. 왕전아. 왕전아. 우선 딸을 살려도 모자랄 판국에.’
딸이 죽게 생겼는데 이것저것 고려할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대청 위에 있던 왕전이 다급하게 천여운의 앞으로 다가와 포권을 취했다.
-탁!
“천 교주. 나 왕전은 살면서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오. 하나, 오늘만큼은 스스로의 맹약을 깨야할 것 같소.”
-털썩!
그 말과 함께 왕전이 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다.
뜻밖의 행동에 객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중원 오대고수인 무쌍검 왕전이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왕전 공!”
천여운이 난처한 기색으로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그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왕전이 무릎을 꿇은 상태로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본인의 딸을 살려주시오. 오대 고수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아비로서 이렇게 간절히 빌겠소.”
-쿵!
왕전이 이번에는 바닥에 자신의 이마를 박았다.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고 머리까지 숙여가며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하아…..”
이에 천여운은 참으로 난감했다.
어찌 본다면 지금의 상황은 진퇴양난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림의 명숙이라 할 수 있는 왕전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는데 거절한다면 그에게 빚은커녕 척을 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두렵지 않다.’
어차피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서 마교주의 자리를 쟁취한 그였다.
설사 오대 고수라 할지라도 적이 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더군다나 정파인도 아닌 마교인인 그는 누군가를 살려야 한다는 도덕심 따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내 의지를 관철하는 게 맞다.’
오직 문규 한 사람만을 바라보기로 결심하지 않았는가.
오대고수를 얻을 기회를 잃는 것아 아쉽지만 더 훗날을 바라보는게 맞았다.
그가 여기서 다른 여인을 받게 된다면 여섯 종파와 같은 폐해가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
쟁탈전이라는 미명 아래 배다른 형제끼리의 권력을 위한 학살극.
‘문규 이외에 다른 여인이 아이를 가진다면 또 다시 비극이 일어나겠지.’
천여운 자신은 복수를 위해서 그러했지만 자신의 자식들이 그러기는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천여운의 머릿속에 나노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용자가 피임(避妊)을 원하신다면 자체 정관 차단 모드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뭐?’
피임이라는 것은 임신을 피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관 모드라는 것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정관 모드는 체내의 나노머신들이 사용자가 성 행위 시에 정자가 이동하는 통로인 정관을 일시적으로 막습니다. 정관 수술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피임을 할 수 있습니다.]‘!?’
천여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말은 원하는 대상자에게만 임신을 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혹시나 여군이 임신하는 것을 우려하는 천여운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노가 정보를 제공한 것이었다.
‘……..’
나노의 말에 천여운이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노의 말대로라면 정관 모드를 발동한다면 문규 이외에 어떠한 여자가 아이를 가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해도…..’
처음부터 그녀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몰라도, 받아들였는데 정관 모드로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기도 했다.
‘난감하구나.’
바로 그때 천여운의 귓가로 문규의 전음이 들려왔다.
[교주님!]‘응?’
이에 문규를 바라보자 어느새 그녀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서 뭔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천여운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속상하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요.]문규의 그 말에 천여운이 차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실 객잔에서 천여운은 문규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면서,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맹세를 했었다.
오직 그녀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부인으로 받겠다고 말이다.
눈빛은 결의에 차있는데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뭔가 그런 모습이 미안한 한편으로 이상하게 귀엽게 느껴지는 천여운이었다.
[……그러니까. 왕전 공의 부탁을 들어주세요!]그녀의 결의는 바로 이것이었다.
고개를 푹 숙여가면서 고민을 한 문규는 이것이 마교에 있어서나 천여운에게 이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절대로 손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다만 자신만의 남자가 아니게 되는 것이 속상하고 슬플 뿐이었다.
[문규…..원하지 않다면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원하지 않죠! 교주님이라면 제가 다른 잘생긴 남자들! 응! 막 만나고 그러면 좋겠어요?] […….]그렇게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말하니 할 말은 없다.
사실 마교에서 천여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문규뿐이었다.
그녀만이 천여운에게 안식처이면서 편안하게 해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결국 문규의 두 뺨으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속이 상하긴 많이 상한 듯 했다.
천여운이 그런 문규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전음을 보냈다.
[뭐가 예쁘다는 거지? 내게는 문규 네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그런 천여운의 말에 눈물을 흘리던 문규가 그를 흘겨보며 전음을 보냈다.
[흥흥! 교주님은 순애보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아니네요.] [응?] [……피! 거짓말. 그렇게 낯간지러우면서……괜히 부끄럽게 만드는 말을 쉽게 하실 수 있어요.]문규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모습에 당장에 뛰어가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보는 이목도 많았고, 머리를 숙인 왕전에게 예의가 아니었다.
[네가 우선일 뿐이다.] [흥흥! 어디 지켜볼게요. 그리고…..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이해하지만, 왕 소저 이외에는 안 돼요. 정말로!] [……그래.]문규의 허락이 떨어지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가 그 자신 이외에 단 한 사람의 여자를 허락한 것이니 말이다.
우려마저 씻게 만들만큼 현명한 여인이었다.
천여운이 머리를 바닥에 박고 있는 왕전에게 허리를 숙여서 그를 일으켜 세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왕전 공이 딸을 살리려는 마음을 어찌 외면하겠습니까?”
“천 교주!”
천여운이 부탁을 받아들이자 왕전의 얼굴이 환해졌다.
지금 여기서 유일하게 딸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천여운뿐이었다.
물론 그 자신도 음기를 감당할 수 있으나 천륜을 어기고 짐승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부탁하겠소. 부디….부디 내 여식을 살려주시오.”
“알겠습니다.”
천여운의 손을 붙잡는 왕전의 눈빛은 정말로 간절했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오직 그의 삶의 원동력은 자식들뿐이었다.
결정을 기다리던 신의 감로수가 잘됐다며 말했다.
“흠흠, 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으니 다행입니다. 교주님. 서두르시죠. 더 지체했다가 음양 교합으로도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흠흠!”
천여운의 물음에 신의 감로수가 헛기침을 하면서 넌지시 객당에 있는 다른 이들을 쳐다보았다.
이에 왕전을 비롯한 천여운의 수하들이 살짝 민망해하며 객당 바깥으로 나갔다.
그들이 물러나자 감로수가 앞으로 천여운이 해야 할 음양 교합의 치료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치료라는 명분을 떼고 듣는다면 천여운조차 낯 뜨거운 단어들이 오갔다.
모든 것을 전해준 신의 감로수가 마지막으로 신신당부를 하면서 객당 밖으로 물러났다.
“교합을 시도하는 도중에 강하게 거부할 겁니다. 그리 된다면 교주님께 격한 싸움이 될 겁니다. 절대로 중도에 멈춰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죠?”
“…….”
뭐라고 대답하기 참 애매했다.
고개를 끄덕인 천여운이 한기를 내뿜고 있는 여군을 안고서 객당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있는 침구에 그녀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나서 천여운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그 역시도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혈도부터 풀라고 했지.’
음양교합을 할 때 혈도에 막고 있는 공력을 해소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걸 풀고 나면 여군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정말로 격한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혹시 모르니, 미리 옷부터 벗겨야 겠구나.’
여군이 도중에 격렬하게 반항한다면 음양교합을 하는 것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다소 떨리는 눈빛으로 천여운이 침구에 누워있는 여군의 겉옷에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