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00)
# 62장 마교 귀환 (1) #
강소성 금릉의 서남쪽의 삼산(三山).
이곳은 양자강 근처에 있는 산으로 동서로 강에 의하여 잘렸는데, 세 봉우리가 남북으로 접하고 있기에 삼산이라고 부른다.
삼산의 근경에 자리 잡고 있는 큰 궁궐 같은 산장이 있다.
이 정도 규모의 산장이라면 현판을 크게 붙일 만도 했지만 이곳에는 아무런 이름이 없었다.
궁궐 같은 산장 담벼락은 미로처럼 얽혀 있고, 그 내부에는 자그마치 스물여섯 채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이어져 있다.
이름 없는 산장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본당 건물.
그곳의 한 집무실에서 가느다란 눈매에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있는 한 중년인이 누군가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보고를 듣는 내내 시종일관 중년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한참을 듣던 도중에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론은 이백의 고가 터졌다는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그것을 회수하러 가지 않았나?”
그것이라고 지칭했지만 보고하는 사내는 곧장 알아들었다.
그 분께서 남기신 물건을 의미하는 것이다.
“맞습니다.”
담담하게 답하는 사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중년인이 앉아있던 집무실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쾅!
강한 공력이 실려 있었는지 일순간에 책상이 박살나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저 표정만으로 불쾌함만을 내보이던 사내가 직접적으로 그 감정을 표출하자, 그제야 보고하는 사내가 움찔하며 당혹스러워했다.
“그렇다면 녀석의 시신이라도 찾아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소, 송구스럽습니다.”
중년인은 ‘이백’이라 불린 자의 죽음에 화를 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중년인은 이백의 단 하나뿐인 친형제인 이욱이었다.
“저희도 곧장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간자들을 보내서 수색했지만 도검문주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도검문도들의 시신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내의 보고에 이욱의 오른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하! 도검문의 한 개 단이 전부 사라졌다고?”
자그마치 백 오십 명에 달하는 일류 고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경의 경지에 이른 단주를 비롯해 이들의 수장인 도검문주 이백만 있어도 어지간한 중소문파 세 곳 정도는 하루 사이에 멸문시킬 전력이었다.
“전부는 아닙니다. 정확히 백다섯 구의 시신이 사라졌고, 나머지 오십구는 창천회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창천회? 그놈들이 그랬다고?”
이욱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이백이 명을 받고서 폐검곡으로 향하기 전에 창천회에 심어진 간자들을 통해서 그곳에 주둔해있는 전력을 파악했다.
듣기로는 분명 다섯 간부 중 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고작 사십 여명 정도만 지키고 있다고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 고작 그 정도 전력으로 녀석과 한 개 단을 없앴다고?”
“알아본 결과 창천회에서 다른 전력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문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누군가 개입한 것 같습니다.”
“크으으으! 감히 어떤 놈이 개입했단 말이더냐!”
철저하게 중원 각 세력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사파 연맹을 비롯해 마교, 정파 무림맹, 심지어 창천회까지도 그 전력의 유동이 없는 것을 확인 후에 진행된 계획이었다.
“그분이 남긴 그것을 얻지 못했다면 결국 내 아우는 이도저도 못하고 개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느냐!”
이백의 죽음보다도 명예가 더럽혀진 것이 화가 났다.
누가 개입한 것인지는 몰라도 찾아서 찢어 죽이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때 보고를 전하던 사내가 등 뒤에 매고 있던 원통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바치면서 말했다.
“…..상심이 크신 줄 알겠지만 진정해주십시오. ‘도주(刀主)’께서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붉은 비단에 금빛 용 무늬가 수놓아진 화려한 두루마리였다.
심지어 두루마리를 묶고 있는 끈마저도 금빛 줄로 만들어져 있었다.
“기다리셨던 그 전서입니다.”
“아아!”
이욱이 두루마리를 봉하고 있는 금빛 줄을 풀어서 그것을 펴보았다.
그곳에는 문장가가 적은 듯한 수려한 필체로 적힌 글이 적혀 있었는데, 맨 왼쪽 밑에는 위엄이 담겨 있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드디어 대계의 세 번째가 시작되는 것인가.”
동생의 죽음으로 분노로 가득했던 그의 눈빛이 떨려왔다.
고대하던 대계의 세 번째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 같이 있어야 할 동생이 없다는 것이 참담할 뿐이었다.
두루마리에 적혀있는 글귀를 마저 읽어 내려가던 이욱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통허현? 그곳의 바로 밑이 아닌가. 그곳에서 하는 게 아니었던가?”
“늘 그곳에서 했던 적은 없다고 합니다.”
“…..하긴 그런 위험을 감수할 리가 없지. 뭐, 상관없다. 장소가 어찌되었든 대계의 목적은 다 하나니까.”
이욱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지 않아도 손에 피를 보지 않으면 이 분노를 해소시킬 수 없다고 느낀 판국이었다.
* * *
호남성의 북쪽 마교 지부.
그곳의 제 이 객당에서 한 노파가 아기를 끌어안고 오열을 하고 있었다.
근육이 잘 발달한 노파는 바로 신의 감로수였다.
그녀는 어찌나 슬펐는지 꺽꺽 거리면서 얼굴이 빨개져서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응애! 응애!”
덕분에 아기가 같이 울어대는 통에 제 이 객당이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앞에서 난처한 표정으로 서있는 안대를 쓰고 있는 훤칠한 중년인이 있었으니, 그는 사 장로 양단화였다.
벌써 이 각이 넘게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같이 울어대던 아기는 울다가 지쳐서 쉬다가, 우는 것을 반복했다.
‘상심이 컸나보군.’
신의 감로수가 이렇게 오열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바로 앞에 눕혀 있는 손녀 감미양의 시신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구출하고 싶어 했던 손녀가 죽어서 시신으로 돌아왔는데 슬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후우.’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나선 일이었지만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통곡을 하는 게 며칠은 갈지 몰랐다.
한참을 울어대던 신의 감로수는 아기를 안은 채, 싸늘한 시신이 된 감미양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
“꺽꺽! 이놈들….이놈들 감히 내 손녀를 죽이다니! 용서치 않겠다! 흐흐흑.”
감로수는 그녀를 죽인 범인을 창천회로 알고 있다.
어찌 본다면 미안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아는 편이 훨씬 나았다.
만약 감미양을 살려서 데려왔다면 어떤 식으로든 방해를 하고 들려 했을 테니 말이다.
‘증손주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군.’
증손주의 존재가 절묘한 한 수였다.
손녀를 잃은 슬픔이 크겠지만 감로수는 절대로 목숨을 헛되이 던지진 않을 것이다.
복수를 해야 하고 유일한 혈육을 위해서라도 악착 같이 살아남으리라.
“이놈들! 이놈들!”
절규를 하는 신의 감로수를 차갑게 바라보며 양단화는 생각했다.
‘본교를 위해서라도 그 분노를 이어가시오. 감 파파.’
진실을 모른다는 것이 잔인할 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은 정의나 위선으로 살아가는 정파인이 아니었다.
이것이 마교였다.
같은 시각, 지부의 본당 좌측에 있는 약당.
그곳에 환자들이 머물 수 있는 침구들이 놓여있는 방이 있다.
방에 있는 한 침구에 은발의 여인이 상반신을 일으켜서 등을 기대고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무쌍검 왕전과 그의 딸인 왕여군이었다.
늘 하얗기만 했던 뺨에 혈색이 돌아온 모습을 보면서 왕전의 얼굴에는 연신 흐뭇함으로 가득했다.
머리카락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이렇게 건강해진 모습을 보기 위해서 그 동안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가.
‘가연. 우리 아이가 이렇게 이뻤다오.’
홍조가 돌아온 왕여군은 생기가 돌면서 더욱 아름다웠다.
새하얗기만 할 때도 절세미인이었는데 지금은 못 남성들을 한 눈에 반하게 할 만큼 꽃과도 같았다.
자신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아마 전 무림을 통틀어서 세 손가락에 꼽는 미녀일 것이다.
“흠흠.”
왕전이 아까부터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아이가 건강해져서 좋기는 한데, 참으로 난감하구나.’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화를 잘 나누던 부녀가 서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데 차마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구음절맥을 치료하기 위해 왕여군은 자의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천여운과 음양교합을 했다.
물론 이 사실에 대해서는 그녀 역시도 인지하고 있었다.
음양교합 중도에 깨어나기도 했고 음기에 사로잡혀 있을 당시에 기억들이 돌아왔다고 했으니 말이다.
비록 치료를 위해서라고 하나, 외간 남녀가 서로 몸을 섞었으니 이유야 어찌되었든 혼사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 교주 정도면 절대로 나쁜 조건이 아니다.’
처음에는 딸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라는 미명 아래 음양교합을 부탁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이상하게 천여운이 마음에 들었다.
어찌 본다면 사위라는 조건을 두고 본다면 그만큼이나 뛰어난 신랑감이 없었다.
‘흐음.’
왕전은 무(武)에 대한 자부심은 높지만, 딸을 위해서 긴 세월을 은거할 만큼 물욕이나 명예욕, 권력욕 등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진지하게 딸의 혼사를 고민해보니 천여운 만한 사람도 없었다.
‘무위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호승심에서 겨뤄본 결과 천여운은 정말 괴물이었다.
고작 약관에 불과한 자가 오대 고수 중 한 사람인 자신을 비무로 꺾었다.
물론 자신이 비기나 살초를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동쪽에 그 괴물도 있지만. 훗날을 보면 천 교주는 차기 천하제일이 될 지도 모른다.’
여태껏 무림에서 천하제일이라고 들은 자는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 천여운은 그리 될지도 몰랐다.
아직 앞날이 창창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무림의 삼대 세력 중의 하나인 마교의 수장인 만큼 사파 연맹과 척을 지고 있는 자신과 달리 딸을 더욱 잘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네가 다소 원망할 수 있겠지만 그가 인연일 수도 있다.’
딸이 거부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평생 혼자 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마음을 다 잡은 왕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흠흠, 여군…”
“아버지.”
“응?”
그런데 공교롭게도 왕여군 역시도 할 말이 있어보였다.
방금 전까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것도 그 때문인 듯 했다.
잠시 망설이던 왕여군이 말했다.
“처, 천 교주님에게 패했다고 들었어요. 사실인가요?”
그 말에 왕전의 인상이 굳어졌다.
무자로서의 자긍심과 아버지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일부로 말하지 않은 그였다.
“그걸 누구에게 들었느냐?”
“…..그게 허봉이라는 분에게 들었습니다.”
“하!”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이!’
허봉이라는 자에게 들었다는 말에 왕전이 눈꼬리가 무섭게 치켜 올라갔다.
설마 그걸 딸에게 얘기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심부름으로 신의 감로수를 데리러 왔던 허봉이 주절주절 몇 가지를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래도 차마 허봉이 그에게 부인, 부인하면서 불렀던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이야기하기에는 괜히 부끄러웠다.
‘정말 사실이었구나!’
왕전의 반응에 그녀는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의외로 말수가 없다뿐이지 감정표현에 솔직한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정말로 패배한 것이리라.
주책 맞게 자신의 패배를 나불거린 허봉에게 화가 난 왕전이지만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원래 자신이 꺼내던 말을 하려 했다.
“여군아. 그건….”
“아버지. 저 결심했어요. 허락해주신다면 천 교주님을 따라가고 싶어요.”
“뭐, 뭣?”
미처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딸의 입에서 먼저 천여운을 따라가겠다는 말이 나오자 왕전은 순간 말문이 막혀서 어안이 벙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