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1)
# 8장 네놈이 자초한 거다(4) #
천여운이 손바닥으로 펼친 일도의 기세는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일도에 실린 묵직함은 칠 성 공력으로 방어를 했는데도 두 보나 밀려났을 정도였다.
‘이 녀석 공력이 가볍지가 않다.’
내공을 익히지 않겠다는 맹약만을 생각하고 만만하게 여겼던 천무금으로써는 원래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실력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때다!’
이 기세를 몰아 천여운이 접무도법의 제 이 초식을 펼쳤다.
-사르르르!
쾌속한 접무도법의 제 이 초식 회원접경(回圓蝶警)은 빠른 회전이 가미된 도초를 펼치는 것으로 원래는 방어를 위한 동작이었지만 근접해 있을 때도 효과적이었다.
-파파팍! 맨손으로 펼치는 도초였지만 초식의 운기 경로를 통해 내공이 순환하는 순간 천여운의 오른손이 하나의 도처럼 날카로운 예기가 서렸다.
도기(刀氣)는 아니었지만 손날을 휘두르는 풍압이 제법 날카로웠다.
“공자님! 위험합니다!”
그때 뒤늦게 도착한 여섯 생도 중에 한 소년이 다급히 소리쳤다.
날카롭게 회전하며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천여운의 맨손 도초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천무금이 보법을 펼치며 뒤로 삼 보 정도 물러났다.
‘피했다?’
그가 아직까지 놀라는 틈을 타서 단번에 승부를 보려했던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 순간 뒤로 물러났던 천무금이 앞으로 튕겨 나오며 도리어 천여운의 가슴에 연타로 권을 날렸다.
복마공권의 삼 초식인 타연격공(打聯擊攻)이었다.
-퍽!
“큭!”
곧바로 반격해 오는 바람에 일타는 맞았지만 이타는 뒤로 몸을 젖히며 피해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타를 펼쳤던 상태에서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좌측으로 틀면서 팔꿈치로 천여운의 우측 어깨를 때렸다.
천여운이 급히 왼쪽 팔목을 들어 올려 방어했지만 팔꿈치에 실린 공력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타타타탁!
우측으로 발바닥이 사 보 정도 밀려났다.
‘아직 내공에서 밀리는구나.’
처음부터 반 갑자의 내공을 가지고 마도관에 입관한 천무금이었다.
일 단계 시험을 합격하고 나서 마룡단이라는 영약을 얻었으니 당연히 내공이 늘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버틸 만은 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워낙 어릴 적부터 영약을 자주 복용한 천무금이었기 때문에 마룡단의 흡수율이 그리 높지가 않았고, 급한 성격으로 인해 영약 흡수에 만전을 기하지 않아서 절반의 효과밖에 보지 못했다.
제대로 내공을 얻었다면 큰 격차로 상대하기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반격할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해야 해.’
천여운이 접무도법 중에서 쾌속한 도초를 펼치자 그의 팔목부터 손날이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잔상을 남기며 천무금의 우측 어깨로 쇄도했다.
“어떻게 저놈이 저런 무공을?”
천여운이 펼치는 고절한 도법에 여섯 생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공을 익힌 것도 모자라 절학에 가까운 것을 익혔으니 말이다.
만약 우호법 광도 섭맹의 독문신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경악을 할 것이다.
“제법이구나.”
천무금이 짧은 감탄사와 그의 상체를 노리는 천여운의 도초를 미끄러지듯 기이한 각도까지 허리를 젖히며 피한 뒤에 천여운과의 간격을 좁혔다.
복마권공은 권법이긴 하지만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무학이기에 그 움직임이 매우 유연하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파고든 천무금이 순식간에 몸을 비틀며 회전을 하며 좌측 상단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퍽!
“으윽!”
이에 왼쪽 머리를 맞은 천여운의 몸이 우측으로 튕기며 바닥을 뒹굴었다.
초식에 관해서는 터득했지만 정작 기초적인 낙법을 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천여운은 바닥을 뒹군 뒤에 어설프게 몸을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권만 생각했는데 갑자기 발차기가 날아오다니.’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공력이 실린 발차기에 머리를 맞아서 어지럽기까지 하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몸이 비틀거리자 그제야 여유를 되찾은 천무금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격에 맞지 않는 도법을 써서 제법 놀라기는 했다만 역시 급조한 티가 나는구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천여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놀랍게도 천무금은 고작 몇 초식 만에 자신이 이제 막 무공을 배웠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초식에 군더더기가 없지만 정작 상대방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는 전혀 모르는군.’
비록 다혈질적인 성격에 포악하다고는 하나, 여섯 종파 중의 하나인 복마종에서 영재 교육을 받은 천무금이었다.
단순히 벌모세수를 받고 각종 영약과 복마종의 뛰어난 무공을 익히는 것만이 영재 교육이 아니었다.
천무금은 어렸을 적부터 많은 스승들과의 대련을 통해서 실전 감각을 높였다.
무공은 단순히 초식을 익히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활용하느냐가 중요했다.
“크크큭, 역시는 역시구나. 네놈 주제에 작학관보지.”
작학관보(雀學鸛步).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다.
단 두 초식만으로도 천여운이 뛰어난 도법을 배웠다는 것을 파악했고, 그것을 익히기는 했으나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또한 곧바로 알아냈다.
‘천무금을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어떻게 해야 할까?’
천여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수백, 수천 번을 익힌 것처럼 전이 된 접무도법의 초식은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지만 정작 어떤 상황에 어떤 초식을 활용해야 할지 경험이 없었다.
“네 녀석이 어떻게 무공을 익혔는지는 짓밟고 나서 천천히 알아보면 되니까.”
-팟!
자신감을 되찾은 천무금의 신형이 지면을 박차고 튕겨 나와 천여운을 향해 복마공권의 오 초식인 복호공순(伏號攻瞬)을 펼쳤다.
짧은 찰나에 위기의 순간, 천여운은 호랑이와 같은 기세로 두 주먹을 동시에 내지르며 뻗어오는 천무금의 초식에 고민에 휩싸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무슨 초식을 써야 하는 거지?’
바로 그때 천여운의 머릿속에 나노 머신, 나노의 목소리가 울렸다.
[외부로부터 사용자의 위협을 감지했습니다.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자의 시각 정보에 증강현실(增强現實) 개안(開眼) 가동.
전투 튜토리얼(tutorial)을 통해 행동지시 방어 모드를 가동합니다.]
그 순간 천여운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며 미세한 작은 빛이 발했다.
“받아랏!”
천무금의 두 주먹이 그의 가슴으로 직격해오는 순간 천여운이 가볍게 발을 툭툭 뛰며 옆으로 몸을 비켜서더니, 그대로 천무금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크헉!”
예상하지 못한 일격에 오른쪽 턱을 얻어맞은 천무금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공력이 실린 주먹은 아니었지만 턱을 맞는 바람에 뇌가 흔들려 어지러움으로 잠시 균형을 잡지 못했다.
‘이, 이 자식? 방금 도법이 아니잖아?’
만약 공력이 실린 주먹이었다면 기절했을 지도 몰랐다.
어지러움으로 당황한 천무금이 재빨리 보법을 펼치며 뒤로 거리를 벌렸다.
“뭐, 뭐야? 방금 전과 움직임이 다르잖아.”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생도들 역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무금의 자신만만한 말을 들었을 때는 금방 결판이 날 거라 생각했는데 방금 전의 일격으로 짐작하기가 힘들어졌다.
천여운의 두 눈의 시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외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전투 튜토리얼을 위한 증강현실을 개안했습니다.]천여운의 눈에는 보이는 현실 이외에 흰 빛으로 이루어진 선들과 글이 아른거리며 눈앞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방금 전에도 천무금의 초식이 닿으려는 순간, 바닥에 가볍게 뛰는 발 형태의 빛이 동작 단위로 생겨나며 그것을 따라하라는 글이 허공에 새겨졌다.
찰나의 순간 천여운은 그것을 따라서 천무금의 공격을 피해 우측으로 파고들었고, 흰 빛의 화살표가 천무금의 턱을 가리키며 주먹 형태로 빛이 떠오르자 그것을 그대로 행했다.
[주인님의 지정이 없었기 때문에 임의로 프로그램에 내장된 호신 무술 중 하나인 권투로 튜토리얼을 진행했습니다.]‘튜토리얼?’
[개별 지도를 뜻합니다.]‘네가 내 행동을 지시했다는 거야?’
[상대방의 움직임이 빨라 0.01초 단위로 행동 모션(motion)을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시켰습니다.]‘어려운 말은 모르겠고, 방금 내가 했던 동작이 권투라는 거지?’
[권투는 프로그램에 내장된 호신 무술 중의 하나로…]‘아니야. 아니야. 설명은 집어치우고 네가 지시하는 것이 권투라면 그것 말고도 접무도법으로도 가능해?’
[분석 및 전이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접무도법으로 튜토리얼이 가능합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승인할게.’
[행동 지시 방어모드를 권투에서 접무도법으로 교체합니다.]천여운이 잠시 동안 움직임을 멈춘 채, 나노와 대화를 하는 틈에 턱을 맞았던 천무금이 어지러움이 어느 정도 가셨는지 전의가 타올라서 외쳤다.
“권도 익혔어? 더러운 자식. 숨겨둔 패가 많구나!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운은 통하지 않는다!”
천무금이 다시 거리를 좁히며 천여운을 향해 속사포와 같은 권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이 수십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천여운을 뒤덮었다.
그런 천여운의 눈에는 수십 개의 권영(拳影)옆에 빠르게 변화하며 단위가 줄어드는 숫자와 권영들이 어디를 노려오는지에 관한 분석 정보가 허공에 흰 빛으로 떠올랐다.
‘어디로 어떻게 공격해 올지 보인다!’
천여운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파파파파파파팍!
수십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천무금의 권초를 천여운이 보법을 펼치며 피해냈다.
그의 상반신 요혈들을 노리던 권영들이 전부 빗겨나갔다.
‘아니! 내 권을 전부 피해?’
아까 전만 하더라도 상대의 초식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유연하게 보법을 펼치며 권초를 피해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천무금의 속사포와 같은 권초를 피해낸 천여운이 마지막 일권을 피한 순간 손날을 펴서 화려한 도초를 펼쳤다.
“헛?”
-팍! 팍!
놀란 천무금이 복마권공의 방어 초식을 펼쳤지만 두 식(式) 밖에 막지 못했다.
천여운의 손날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잔영이 생겨나더니 어느새 천무금의 오른쪽 어깨를 횡으로 내리쳤다.
-퍽!
“끄윽!”
어깨를 내리 찍히는 감각과 함께 천무금이 강한 통증에 목구멍으로 핏물이 올라왔다.
실제 도를 들고 있었다면 그대로 베였을 것이다.
‘어떻게 이놈이 이런 고절한 초식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천여운의 공력을 본다면 자신보다 한 수 아래였지만 초식에 실린 동작의 군더더기가 없는 것과 힘의 균형은 마치 몇 십 년은 연마한 고수와도 같았다.
내공이나 깨달음을 얻진 못했으나 우호법 섭맹과 같은 수준으로 초식을 구현해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틀!
제대로 초식에 적중당하고 나니, 공력의 여파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쓰러질 것만 같은 천무금의 머릿속에 항상 악몽처럼 반복되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금아, 네가 열심히 한다면…..너만 잘 한다면 교주님, 아니 네 아버지의 관심도 그 더러운 년에게서 내게로 다시 돌아올 거야.] [네가 똑바로 못해서 그런 거야! 다 네가 못나서 그런 거란 말이다!] [그 더러운 년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천무금의 어머니인 자 부인은 복마종의 규수로서 간택을 받아서 여섯 종파의 혈맹에 따라 정략적으로 교주인 천유종과 맺어졌다.
정략이었지만 자 부인은 진심으로 교주를 사랑했다.
지극정성으로 교주에게 관심을 쏟았지만 그는 정략으로 맺어진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교주의 관심은 오직 교주전에 있는 여시종에게 가있을 뿐이었다.
[내 탓이 아니야. 다 네가 똑바로 못 해서야. 네가 못났기 때문이라고!]천무금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어머니, 자 부인은 실성한 눈으로 오열을 하며 어린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조르고 있었다.
‘하필 이 순간에 이딴 빌어먹을 기억이 떠오르다니!’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오직 단 한 사람을 증오하게 되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던 천무금이 분노에 젖은 눈빛으로 이를 악물고 진각을 내딛으며 천여운의 안면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제기랄! 너 따위 천한 놈에게 질 것 같으냐!”
그러나 기습적인 그의 일권마저도 천여운은 고개를 젖혀서 가볍게 피해내더니 초식을 펼치지 않고 천무금의 이마에 손날로 도초를 날리려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잡고선 바닥에 내리찍어버렸다.
-쿵!
“크헉!”
바닥과 부딪치면서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은 천무금이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얼굴이 새빨개져서 목에서부터 이마까지 혈관이 올라왔다.
“너 같이 천한 놈 따위에게! 내가! 내가!”
패배했다는 자괴감에 바닥에 누워서 분에 겨워하는 천무금을 향해 천여운이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전부 네놈이 자초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