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94)
# 93장 장백산으로 (3) #
감격해 하는 두 사람의 반응에 멋쩍어 하던 전 태상교주 천인지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몇 년 간의 준비를 마친 이 할애비와 구중 대사는 각각 강한 사명감을 가슴에 품고서 그들에게 제압되는 척, 뱀의 아가리로 잠입하게 되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이야기였기에 천여운은 다시 그의 말에 집중했다.
붙잡힌 두 거성들은 내공을 금제 당했다고 한다.
내공이 금제된 상태로 정신을 잃고서 깨어나 보니, 극도육무문의 근거지로 추측되는 장소에 도착해있었다.
“각오는 했었지만…..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들은 두 정파와 마교의 거물들을 붙잡았다고 당장에 세뇌를 시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설득하여 자진해서 양대 세력의 비밀을 토해내게 하려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고, 처음에는 예우를 갖춘 제안이 어느새 협박과 고문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구중 대사의 심신을 쇠약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그때를 떠올렸는지 천인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심신이 강한 그라고 해도 극도육무문에서 고문을 당한 기억은 뼛속에 새겨질 만큼 강하게 남게 되었다.
‘조부님…..’
천여운 역시도 생환한 천인지의 몸을 보았었다.
빙장석 봉인에 갇혀있는 동안 더러워진 그의 몸을 씻기기 위해, 벗기게 했다가 빼곡한 고문의 흔적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 할애비가 어리석었다. 대책을 강구했고 강한 인내만 있으면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원하는 바를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여겼지.”
십 년 가까이 지속된 고문은 그들을 피폐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어지던 고통 속에서 그의 자아는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놈들의 암시에 걸린 것이다.”
역근경을 익혔기에 주암 선사처럼 암시에 대항할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이 대책을 강구할 동안 극도육무문의 암시 기술은 전보다도 훨씬 보완되었다.
나름대로 전대 고수들을 조정하기 위해 그들 역시도 연구를 거듭한 것이다.
“십 년 동안 내공이 금제된 것도 한 몫 했지.”
내공이 금제되면서 역근경을 운기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고문으로 심신이 약해지면서 제대로 암시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지만 암시에 걸려있는 동안에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하지만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암시에서 영원히 깨지 않을 거라 여겼지만 천운이 일어났다.
완전히 그를 귀철대의 일원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 극도육무문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대계에 투입시켰다.
그때 역근경을 운용하기 시작하면서 암시에 드문드문 벗어날 수 있었다.
“역근경을 운용하는 동안은 암시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틈틈이 그들의 목적을 알아내려 했다.”
그러나 극도육무문 내에는 뛰어난 고수들이 많았기에 상시 역근경을 운용할 수 없었다.
어쩔 때는 한 달이 지나서 정신을 차릴 때도 있었고, 그보다 길어졌을 때도 있어서 점차 기억에 혼선이 찾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점차 역근경의 기운에 암시나 고가 적응하고 있더구나.”
역근경을 펼친 동안은 머릿속이 맑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마저도 점점 흐릿해지고 통증이 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구중 대사 역시도 같은 상황에 처했으리라 짐작했다.
“……무언가 알아낸 것은 있으십니까?”
그 질문에 천인지가 고개를 무겁게 흔들며 말했다.
“참으로 대단한 자들이더구나. 그들은 한자의 획을 간결하게 만든 글씨로 암호를 만들어서 사용하기에 반 이상은 이해할 수가 없어, 큰 정보를 얻지 못했다.”
‘아! 설마…..간자체인가?’
그 말에 천여운의 머릿속에 한자의 간자체가 떠올랐다.
폐검곡에서 극도육무문이 노렸던 신의의 보물이라 불린 서책에도 간자체가 적혀 있었다.
천여운이었다면 나노의 뇌로 전이를 받아서 읽는 것이 가능했다.
‘아아….아깝구나.’
그것을 가지고 빠져나왔다면 해석할 수 있었을 텐데, 조부 천인지의 상황 속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타까워하는 차에 천인지가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암시가 풀릴 때마다 시간을 들여 그 글씨들을 필사하는데 투자했단다.”
“그게 정말입니까?”
다소 격해진 반응에 천인지가 의아해 하며 대답했다.
“아무리 해석이 불가능하다고는 하나, 그들의 목적을 알아내려고 했는데 그냥 내버려뒀겠느냐. 다만 필사한 것들을 빼돌리는 것이 문제였다.”
외부로 대계에 투입되기를 기다렸지만 그리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암시에 걸린 귀철대가 투입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다림 끝에 그 기회가 왔다.
“용귀의 진원을 얻는데, 이 할애비를 투입시킨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얻어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천인지는 북상하는 도중에 하북성의 어느 곳에 필사한 종이를 숨길 수 있었다.
좀 더 가까운 곳에 숨기고 싶었으나, 갈수록 강해지는 암시로 인해 하북성 쪽에서 잠시 깨어나면서 급한 데로 그곳에 숨겨야만 했다.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이 할애비가 기억하기로 그 암호로 된 정보들은 그들의 조사가 남긴 것 같더구나.”
이 말에 천여운이 눈빛이 반짝였다.
만약 극도신이 남긴 기록이라면 그의 목적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북해빙궁의 궁주인 단백현에게 들었던 것과 거의 같았다.
용귀를 상대하면서 극성의 역근경을 운용하면서 암시에서 일시적으로 풀려난 천인지는 자신의 신분패를 맡겨 도움을 요청하게 했다.
“천운이 따라 여운이 네가 이렇게 이 할애비를 구할 줄은 누가 알았겠느냐. 모두가 천마 조사님의 은덕이라고 생각한다.”
“조부님……”
진심이 담긴 천인지의 목소리에 천여운은 순간 목이 메여왔다.
그는 진정한 천마신교의 참된 교주였다.
감정이 복받쳤는지 먹먹해져서 서로를 바라보던 중에 천여운이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물었다.
“그런데 아까 전에 조부님께서 그들의 손에 오령의 진원이 전부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그 연유가 무엇입니까?”
이에 천인지가 심각해진 눈빛으로 대답했다.
“믿기지는 않는다만……그들이 했던 말이 사실이라면 오령의 진원을 전부 얻게 되면 큰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더구나.”
“그게 무엇이죠?”
“……영생불멸을 얻는다고 했단다.”
“영생불멸?”
영생불멸(永生不滅).
그것은 말 그대로 영원히 삶을 누리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영생불멸이라니? 어르신, 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입니까?
“놈들의 말이 맞다면….아마도 그럴 것이네.”
“허어!”
왠만한 일에는 천여운 못지 않게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마라겸 역시도 많이 놀란 듯 했다.
불노불사와 다를 바 없는 말이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극도육무문이 기를 쓰고 이것을 얻으려는 이유가 될 만 했다.
‘아!’
문득 천여운의 머릿속에 그것이 떠올랐다.
나노가 용귀의 뇌전으로 자가 수복에 들어갔을 때, 미래의 영상을 출력했었다.
그때 분명 극도신이라는 자가 자연경의 경지에 올라, 천 년 가까이 살아왔다고 들었다.
‘그랬구나! 도주라는 자가 영상 기록 속에서 보았던 극도신이 맞다면 정말로 영생불멸을 얻은 거였다.’
천여운은 그때 영상으로 보았던 것이 사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서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인지하게 되었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그가 오령의 진원을 전부 얻었겠지만 그것을 내가 얻은 것인가?’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그것은 천여운이 의도해서 일어난 일들이 아니었다.
천마검에 담겨 있는 이무기의 영력부터 시작해 황릉의 불기린, 북해의 용귀, 신물 오한빙장에 있던 대붕의 영력은 우연이 거듭되어 얻은 것들이었다.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모든 진원을 자신이 취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풍백호의 진원뿐이었다.
만약 천인지가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풍백호의 진원의 영력마저 얻게 되면 천여운은 영생불멸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
특별히 영생불멸까지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천인지가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구나.”
“?”
“극도육무문의 수장인 도주라는 자가 영생불멸을 얻게 된다면 본교를 비롯하여 무림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네가 진원을 셋이나 취했다니 정말로 다행이다.”
‘……넷…..후우, 아니다.’
사실은 넷이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여운아. 다행히 용귀의 진원은 네가 취했지만 도주 역시도 포달랍궁에서 대붕의 진원을 얻었을 것이다.”
북해빙궁으로 향하는 도중에 문주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 도주가 직접 포달랍궁으로 가서 대붕의 진원을 취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천인지였다.
‘응?’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자신 역시도 대붕의 진원의 영력을 얻었는데, 아무래도 살아있거나 다른 대붕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아, 북해빙궁의 신물이 오래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손자인 천여운이 대붕의 진원의 영력 역시도 얻었는지를 모르는 천인지가 그것을 우려하는 듯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자가 만약 대붕의 진원을 얻었다면, 용귀의 진원을 빼앗긴 것을 의식해서 분명 남은 하나인 풍백호의 진원을 취하려 할 게 틀림없다.”
그는 이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고 여겼다.
“네가 진원을 셋이나 취했다지만 도주 그 자는 이 할애비가 보았던 어떠한 고수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괴물이다.”
극도육무문의 근거지에서 처음 그 자를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귀철대를 시험해본다며 암시에 걸린 은자림과 전대 고수 스무 명이서 도주에게 합공을 가했었다.
역근경을 운용하면서 암시에 풀렸던 천인지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수를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현경의 고수 두 명과 화경의 고수 열여덟 명이 합공을 가했는데, 일 각도 버티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여운아. 도주는 정말 괴물이다. 만약 그자가 진원을 두 개 이상을 취한다면 아무리 네가 세 개의 진원을 취했다고 해도 힘든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흐음…..’
겨뤄봐야 알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진원의 영력을 흡수한 것과 별개로 그의 역량이 뛰어나면 어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천인지는 이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둘러 그자보다 한발 앞서 풍백호의 진원을 취하거라.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도주라고 해도 너를 감당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천여운에게서 흘려져 나오는 무의 기운은 전율적이다.
그런 그가 진원을 넷이나 취한다면 아무리 도주라고 해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천인지는 이런 상황이 정말로 천마 조사의 은덕이라 여겼다.
“여운아. 이 할애비가 이렇게 살아서 너를 보게 된 것은 정말 운명일지도 모르겠구나.”
“……저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다.”
천인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이 할애비는 놈들의 수장인 도주가 펼치는 도법을 눈앞에서 보았다. 그것은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도 초식이 아니더구나.”
인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법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인지가 본론을 꺼냈다.
“극도신의 도법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천마 조사님께서 남기신 불세출의 검법인 천마검공뿐이란다. 너도 교주전에서 탁본을 보았겠지?”
그 질문에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전의 비고에는 검마가 청옥석 비석에서 탁본을 떠놓은 천마검공의 비급서가 있다.
다만 마지막 오 초식과 운기법이 없는 미완의 비급서였다.
“이 할애비가 극도육무문에 잠입하기 전에 틈틈이 천마검공의 운기법을 만들었단다. 적어도 초식의 위력을 칠 할 이상은 발휘할 수 있게 말이다.”
천인지는 이러한 노고가 잘됐다고 여겼다.
천마검을 가진데다가 천여운 정도의 역량이라면 칠 할의 완성도에 불과한 천마검공일지라도 이것을 익힌다면 능히 극도신무와 대적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서둘러야 할 터이니, 네게 오늘부터 이것을 전수해주마. 이 할애비는 칠 할에 그쳤지만 네 역량이라면 어쩌면 사장된 천마검공을 완전히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천인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전 태상교주이자 조부로서의 소임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듯 했다.
‘아…….’
이에 천여운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왜 그러느냐?”
천마신교 최강의 검법인 천마검공을 전수해준다는 말에 어느 정도 기뻐할 거라 여겼는데,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이상했다.
“저….조부님. 송구스럽습니다만. 이미 청옥석 비석에 조사님께서 남기신 운기법을 발견해 천마검공을 완성했습니다.”
“……뭐엇!?”
그 말에 더 이상 놀랄 일은 없다고 여겼던 천인지의 얼굴이 벙 찌고 말았다.
노고가 일순간에 무색해져 버렸다.
‘……노, 노부가 지금껏 무얼 한 거지?’
.
눈빛에 황당함과 허탈함이 동시에 묻어나고 있었다.
여기서 천마검공과 극도신무를 합친 새로운 검법까지 창안한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