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97)
# 32장 변수의 육 단계 시험(1) #
오기가 생겨 자신감 넘치게 검은 물을 마셨던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목구멍부터 압박하는 지독한 맛에 허봉은 기절하다시피 했다.
천여운조차도 이를 참지 못하고 토악질이 올라오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끄르르르륵!’
뭐가 그리 괴로운지 끈적거리는 거품까지 물고 있는 허봉이다.
‘…..이걸 마시라고?’
‘허봉이 죽을 것 같은데.’
본의 아니게 허봉이 선발 주자로 임상시험을 한 덕분에 수하들은 검은 물을 마시는 것을 더욱 꺼리게 되어버렸다.
그들이 검은 물을 마시게 된 것은 후에 허봉이 깨어나서 모공에서 노폐물이 배출된 후에 운기가 원활해진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였다.
‘공자님. 정말! 정말! 정말! 감사한데, 저는 사양할게요.’
‘주군, 저도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우욱.’
악취를 비롯해 여러모로 거부감을 일으키는 검은 물에 비위가 상한 문규와 호상화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극구 사양했다.
검은 물을 마시는 족족히 그 지독한 맛에 체통이고 할 것 없이 온몸을 뒤틀면서 쓰러졌으니, 아무리 좋은 영약이라도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천 공자님. 저는 절대 안 돼요. 아시잖아요!]‘아!’
모두가 있는 이곳에서 모공에 노폐물이 흘러나온다면, 인피면구가 어찌될지 몰랐기에 문규로서는 무조건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 번 더 권하려고 했던 천여운은 문규의 전음을 듣고 나서 그것을 포기했다.
어쩌다보니 여자 생도들만 검은 물을 마시지 않게 된 셈이었다.
그렇게 평소보다 시끌벅적했던 밤이 지나가고, 이른 아침 천여운은 마도관의 북쪽에 있는 대장간을 찾았다.
이무기의 뿔을 무기로 제련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새벽부터 내린 함박눈으로 마도관 전체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굴뚝 타고 흐르는 화로의 열기 때문에 유일하게 지붕에 눈이 쌓여 있지 않은 곳은 대장간뿐이었다.
“천 단주! 이, 이건 대체 어디서 구했소?”
얼핏 보면 흰 몽둥이로 보이는 이무기의 뿔을 처음 보게 된 대장장이 구선웅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재질에 그 강도가 철보다도 훨씬 단단했다.
시험 삼아 대장간에 있는 무구들로 내리쳐 보았으나, 제련도 하지 않은 뿔의 강도에 오히려 무구들이 부러져버렸다.
“그건….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천여운은 단호하게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봉마동에서 구했다는 사실을 굳이 구선웅에게 알려서 괜한 파장을 남길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사실 대장장이의 입장에서 재료의 출처는 그리 중요하진 않았다.
‘캬아! 이런 멋진 재료라면 최고의 무기를 탄생시킬 수 있지.’
한철을 만질 때보다도 더욱 흥분되었다.
좋은 재료를 가진 장인은 병기 제작에 대한 의욕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구선웅은 흔쾌히 이무기의 뿔로 무구를 만들어주기로 약조했다.
“그럼 이걸로는 도를 만들면 되겠소?”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핫, 알겠소. 내 최고의 도를 만들어서 드리리다.”
과연 이무기의 뿔로 만든 도는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해졌다.
원래는 검을 만들어달라고 하려했었지만 그에게는 흑검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었다.
“흠흠. 천 단주에게 한철이 지급될 텐데. 혹시 그것으로는 검을 만들 텐가?”
“전에 하나의 무기만 제작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주와 단주의 직위는 다르다네. 천 단주가 부탁한다면 무기 제조는 언제든지 가능하다오. 단지 본교에서 하나의 무기만 제조할 수 있는 양의 한철을 지급하기 때문에 다른 무기를 가지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재료를 직접 구해야 하지. 이것처럼 말일세.”
구선웅이 이무기의 뿔을 가리키며 말했다.
재료만 주어진다면 무기를 제작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하였다.
“아! 잘됐군요. 그럼 검도 한 자루 부탁드립니다.”
흑검을 당분간 숨길 생각이었기에 대신할 검을 만들어서 나쁠 건 없었다.
검신에 천마검(天魔劍)이라 새겨져 있는 이유를 알아낼 때까지는 자중할 필요가 있었다.
쓸 만한 독문 무기를 두 개나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천여운이 밝아진 표정으로 물었다.
“무구를 만드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흠, 아무래도 재료들이 좋다보니, 두 달 가량은 걸릴 것 같소.”
“두 달씩이나요?”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다.
지난 번에 접무도를 만드는데 보름이 걸렸으니 그 네 배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원래 그는 무기가 완성되는 시점에 맞춰서 육 단계 시험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두 달씩이나 걸린다면 꽤 지체되고 만다.
“도와 검을 전부 만들려면 그 정도는 걸리지 않겠소? 아니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받으러 오겠소?”
“아! 한 자루 당 소요되는 시간이 한 달이었군요.”
“후후, 무기가 필요한 가보구려. 먼저 어떤 것을 제작할지 고르겠소?”
잠시 고민에 빠졌던 천여운이 선택한 것은 도였다.
어차피 흑검이 있기 때문에 검을 만드는 것은 급할 게 없었지만 이무기의 뿔로 만들어질 도는 꽤 궁금했다.
“하하핫, 알겠소. 내 천 단주가 오기 전까지 최고의 도를 완성시켜놓을 테니 한 달 뒤에 보도록 합시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무기의 제작을 부탁한 천여운의 발걸음은 남쪽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일은….’
그곳은 마도관의 본관 건물로 가는 길이었다.
육 단계 시험을 치를 시기와 그 상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수뇌부인 열두 장로들은 교내의 업무 등으로 공사다망하기 때문에 사전에 시기를 알려서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밤새 고민을 거듭했던 천여운은 여섯 종파 중에서 겨룰 상대를 정했다.
일 각 후,
마도관 본관 관주 집무실.
집무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있는 좌호법 이화명의 표정이 묘하다.
육 단계 시험으로 천여운이 지목한 상대 때문이었다.
며칠은 신중히 고민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하루 만에 찾아와서 고른 상대는 뜻밖의 인물이었다.
“천 단주. 정말 이대로 괜찮나?”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음.”
이화명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이건 대담하다는 수준을 지나쳤는데.’
천여운이 선택한 자는 바로 현마종의 종주이자 일 장로인 무진원이었다.
현 마교에서 교주를 제외한다면 대호법 마라겸과 더불어 이삼 위의 무공 서열을 다투는 최강의 실력자였다.
교주와는 겨룰 일이 없기 때문에 부딪치지 않았지만, 여태껏 교내의 어떠한 무인도 이긴 적이 없다고 알려진 최악의 상대를 대뜸 선택해버렸으니 당혹스러웠다.
‘허참, 이 녀석. 정말 제 정신인가?’
상대가 너무 나빴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천여운으로는 불가능했다.
이제 막 화경의 경지를 밟은 그가 십여 년 전부터 화경의 극(極)에 이른 무진원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공교롭게도 마도관의 서재 내부를 지키는 고수들은 방명록을 담당하는 교두들과 다르게 종일 그곳에서 근무를 서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는 마도관주에게 즉각 상황 보고를 하지 않는다.
좌호법 이화명은 아직까지 천여운이 환골탈태하여 화경의 극에 오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역시 눈치 채지 못했나?’
이것은 천여운이 자신의 기운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도 원인이었다.
화경의 극에 이르면서 내부의 기운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된 그는 마도관에 들어올 때부터 일부러 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내기를 조절했다.
가진 힘을 완전히 드러내기보다는 삼 할은 숨기는 편이 유리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좌호법 이화명이 기감으로 전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그 무위의 차가 극명해진 천여운이었다.
“천 단주, 정말 그 생각에 변함이 없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섯 종파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현마종.
처음에는 예전부터 악연으로 이어진 독마종이나 복마종을 선택하려 했던 그였지만 최종적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가장 위협적인 머리부터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 탓이었다.
다른 장로들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교주에 버금갈 정도의 실력자인 일 장로 무진원을 공식적인 대결을 통해 제거할 수 있다면 현마종은 그 힘의 삼 할 가량을 잃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별 수 없군.’
이화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이 제법 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무모한 것은 여전했다.
천여운도 그를 노리겠지만 현마종의 종주인 무진원 역시도 이번에 그와 겨루게 된다면 무조건 제거하려들 것이다.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니 말이다.
여기서 이화명 본인이 더욱 개입해서 상대를 바꾸라고 종용하는 것은 편향적인 간섭이 되어버린다.
“알겠네. 현마종으로 정식 공문을 보내도록 하지.”
* * *
그렇게 천여운이 육 단계 시험에서 붙게 될 장로를 지목한지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좌호법 이화명은 일 장로인 무진원에게 교주의 인장이 담긴 공문을 보내서 육 단계 시험에 대한 비무 요청을 알렸다.
일 장로 무진원은 그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소교주 후보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천무연의 적수가 될 상대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이라는 것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는 법이었다.
열흘째가 되는 날 십만대산 마교의 성으로 무림맹의 사자가 도달했다.
마도관에 있는 생도들은 외부의 소식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기에 알 수 없었지만 근 십 년 만에 방문한 무림맹의 사자로 인해 마교 전체가 들썩였다.
무림맹의 사자는 정확하게 나흘째가 되는 날에 다시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변수가 발생하게 되었다.
육 단계 시험을 치르기로 한 날의 이레 전, 무공 교두들이 찾아와 관주 집무실로 그를 호출했다.
격세석 연공실에서 훈련 도중이던 천여운은 영문도 모른 채 관주 집무실로 향했다.
“관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천여운이 집무 책상에 앉아서 서류를 훑어보고 있는 좌호법 이화명에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그런 천여운의 인사에 이화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말했다.
“왔는가? 천 단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의아해하는 천여운을 바라보며 이화명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생긴 듯 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미안한데, 천 단주. 육 단계 시험을 위한 비무 상대를 바꿔야하네.”
“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미 일 장로인 무진원이 공문 요청을 받고 비무를 위한 일정을 조율한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대를 바꿔야 한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천여운이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어째서입니까? 일 장로께서 심중이 바뀌신 겁니까?”
육 단계 시험에서 생도가 비무 상대를 지목할 수 있지만 장로 측에서도 무작정 강제적으로 요청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거절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장로로서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여태껏 거절했던 경우는 없었다.
“그건 아니네.”
“그렇다면 왜 상대를 바꿔야 하는 건지?”
천여운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이화명이 집무실에 진기를 둘러서 외부와 소리를 차단시켰다.
누군가가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인 듯 했다.
“본교의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알려줄 수 없네. 다만 현재 본교에 남아있는 장로 분들은 네 분밖에 없네.”
“네 분이라면?”
“그 네 분 중에 한 분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일세.”
단주의 직위를 가졌으나 천여운은 아직 마도관의 생도였다.
자세한 정보는 기밀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알려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당초의 계획과는 완전히 어긋나버리자 천여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일 장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을 하기에는 이제 마도관의 남은 기간도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남은 장로들 중에 지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누가 남아 계신 겁니까?”
“구 장로님부터 십이 장로님까지 남아계시네.”
“아….”
상위 직에 있는 장로들은 지금 전부 자리를 비웠다는 소리였다.
천여운이 알기로는 여섯 종파의 종주들은 일 장로부터 육 장로까지 자리를 맡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국 그들 중에 누구도 상대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 천여운의 노림수를 좌호법 이화명이 모를 리가 없었다.
‘쯧,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네 장로들 중에 누구를 선택할지 뻔했기에 그냥 알려주기로 했다.
“근래에 장로님들의 직위 변동이 있었네.”
“직위 변동이라면?”
“독마종의 백 종주께서 십이 장로로 직위가 격하되었지.”
독마종의 종주 괴독마장 백오.
이 년 동안 뇌옥에 투옥되어 있던 백오는 불과 석 달 전에 장로 직에 복직했지만 원래의 육 장로에서 십이 장로로 좌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본교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여섯 종파 출신의 장로였다.
‘독마종!’
꿩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계획이 틀어져서 여섯 종파의 장로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실망했던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십이 장로님과 비무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