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ignore the joint again! RAW novel - Chapter 139
139. 서역인.
일이 생각보다 꼬이고 있다.
고창신궁에서 제법 중요한 직책을 맡은 흑수단의 단주, 고력강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모는 것에 박차를 가했다.
서역인 다운 외관, 하얀 피부에 굽이짐이 더해진 머릿결, 그리고 붉은 머리 색까지. 모든 것이 이민족에 부합하는 그의 외모답게 말을 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차간. 궁 내부의 상황은?”
서장과 전쟁을 겪은 신궁. 그런 신궁의 당당한 단주로서 전장을 누볐던 고력강은, 조금 서둘러 신궁으로 귀환하는 중이다.
무림맹이 중원을 빠르게 안정시키고 서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그들이 진을 친 곳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국경의 밖. 다른 누구보다, 감숙 안에서 정보를 모으며 활동했던 고력강이 궁에 제일 필요한 시점이 지금일 것이다.
“좋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북경의 압박에 궁주께서 심기가···”
“더러운 북경 놈들. 그깟 지원 아닌 지원 조금 해줬다고 아주 신궁을 부하처럼 다루는군.”
“···처음부터···”
손을 잡아선 안 되는 이들이었다. 고력강의 충직한 부하이자, 서하(西夏)의 잔당인 차간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그만. 이미 지난 일이 아니더냐.”
북경과는 연을 맺고 싶지 않았던 건 고력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현실은 생각보다 각박하다.
서역이라는 곳이 넓게 퍼진 황야와 같은 땅이고 이런 곳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풍요로운 곳의 누군가가 도와야 하는 것이 현실.
이상이 가득한 이들도, 현실의 앞에서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는 있다.
“해도···”
“이번 일만 끝나면. 북경 역시 본궁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는···, 관계를 새로 정립할 필요도 있겠지. 허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저들은 늘 서역을 짓밟았고 이용해 왔습니다. 북경이라는 자들이 그 중심이었고요. 헌데도 계속해서 저들과 함께 하는 이유를 속하는···, 알 수가 없습니다.”
중원은 당(唐) 대부터 계속해서 서역을 침공하고 수탈해왔다. 그런 수탈의 중심은 당연히 황실의 역할. 그럼에도 다시금 황궁의 인물과 손을 잡은 상부의 결정을.
차간은 이해하지 못한다.
“궁주께서 손을 잡은 인물은 단순히 중원 황궁의 인물이 아니다. 수보는 뭐랄까. 조금 더···, 그래. 욕망의 괴물이지.”
“그저 황실의 인물은 아니란 말씀이군요.”
“그저 개인으로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황실이 아닌 개인이다. 조숭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통찰적인 입장을 밝혀보는 고력강. 그의 분석이 제법 날카롭다.
“무림맹의 동향은?”
“국경 밖에 진을 치고는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본궁이 연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좋지 않군. 양쪽으로 전부.”
무림맹이 펼친 진을 뚫는 거도 쉽지 않고 저들을 그저 내버려 두는 것도 북경의 인물과 관계에서 쉽지 않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지금의 상황이, 신궁의 상황일 것이다.
“우선 궁으로 서둘러 귀환한다. 가자.”
우선 궁으로 들어가 모든 상황을 살피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고력강은 수하들과 함께 말을 모는 고삐에 힘을 실었다.
그렇게 고력강과 수하들이 협곡 사이를 달려 신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려 할 때.
누군가.
이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 히이이이잉!
크게 울며 앞발을 들어 올리는 말.
선두에서 달리던 고력강과 차간은, 자신들의 앞을 막는 인물의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다.
질기고도 긴 인연, 무림맹을 이끄는 정도 무림의 고수, 무정검 이정문을 말이다.
“오랜만이네.”
가볍게 웃으며 말을 뱉는 정문. 그런 정문의 앞에 선 서역의 무인들은 당황한 모습이다.
“고력강···? 맞지?”
계속해서 친근하게 말을 거는 정문. 고력강은 당황한 표정을 하며 정문의 눈치를 살핀다.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눈빛이다.
“단주.”
그런 고력강의 곁으로 차간이 다가선다. 뒤를 살핀 차간의 얼굴빛이 어둡다. 이미 뒤에도, 정문의 사제들이 길을 막아 오가지 못하는 이들의 상황이다.
“쳇···”
수는 많지 않다. 오히려 건방지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앞에는 고작 한 명이고 뒤에는 고작 넷. 스물에 가까운 자신들을 상대로 이런 포위망이라니.
다른 경우였다면 크게 코웃음을 치고는 돌파를 강행했을 고력강이란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무정검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뒤는 몰라도, 적어도 앞만큼은. 절대 뚫을 수 없을 거라. 고력강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야.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아무런 답이 없냐?”
“무정검···. 여기서 뵙는군요.”
어쩔 수 없이 고력강은 포권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정문을 맞이했다. 우선은 이렇게. 차후는 조금 더 머리를 굴려보기로 하는 고력강이다.
“응. 저기가 신궁이라던데.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네.”
이전에는 공동의 영역인 감숙에서 마주했던 둘. 지금은 반대로. 신궁의 주변에서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다.
“해서···, 여긴 무슨 일로? 설마 자진해서 잡히러 오신 건 아니실 테고···?”
“그 반대지.”
“반대?”
“잡으러.”
– 씨익.
정문은 나름 재치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입꼬리를 밝게 올렸다.
“신궁의 주변임을 모르시는 건 아니실 테지요?”
“소리라도 치게? 닿을까?”
아쉽게도.
여기서 전투가 일어나거나 내력을 담은 큰소리를 외친다고 해도 신궁까지는 들리지 않을 것이 뻔했다.
적당히 계산된 거리.
이 모든 게 계산된 작전이라. 고력강은 그런 생각에 조금 더 당황하는 눈치다.
“제가 뒤를 뚫겠습니다, 단주.”
그런 고력강의 귓가로 차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작게 속삭이며 말을 전하는 차간. 고력강은 그런 수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좋은 생각이다만···, 내가 앞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잠시면 충분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잠시라···”
그 잠시가 얼마인지에 따라 답은 다를 것이다. 자만이 곧 죽음인 곳이 무림이고 강호다. 이를 잘 아는 고력강은 머릿속에 신중함을 기했다.
“오래 버틸 자신은 없구나. 서두를 수 있겠느냐?”
“맡겨만 주십시오.”
차간이 속삭이듯 작당 모의를 마치고는 슬쩍 손을 뒤로 뻗었다. 말 안장 위에 눕혀 놓은 장창에 손이 닿는 차간.
이들은, 돌파를 강행할 예정이다.
“뭐, 상황 파악은 된 거 같고. 적당히 말로 넘어올 생각도 없어 보이네. 맞지?”
“···위치가 위치인지라. 상황도 그렇고.”
떠돌이 들개도 제 구역에서는 반절을 먹고 들어간다. 무인은 더할 말도 없을 터. 그런 생각에 고력강은 대범하게 일을 준비했다.
“그럼 됐네. 와.”
까딱거리는 손짓과 함께 말을 일축하는 무정검.
그와 동시에.
강기(强氣)를 가득 실은 고력강의 손이 정문을 향해 날아갔다.
– 콰아아앙!
정문과 고력강의 손이 섞이는 소리를 시작으로.
고력강의 수하, 차간이 장창을 뽑아 들며 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고력강의 수하들 역시, 차간을 따른다.
– 타타타탓!
빠르게 땅을 차며 창을 내뻗는 차간.
관건은 자신들이 얼마나 빨리 뒤를 뚫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걱정은 없다. 차간의 머릿속에서 고작 일대제자에게 패할 거라는 그런 생각은. 조금도 존재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무위에서 만났던 일대제자들의 기도는 이미 파악이 끝났다. 무인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법. 이들과 만나고 세월이 흘렀다지만, 그게 고작 몇 년인가. 성장해봤자일 것이라. 차간은 그렇게 여기며 공격을 서둘렀다.
차간의 창이 재빠르게 자신의 절기, 서하오창식(西夏五槍式)을 뿜어낸다. 일전에 무위에서 대공무관을 위기에 빠트렸던, 바로 그 창식이다.
– 슉! 슉! 슉!
거칠게 도인들을 향해 뻗어오는 창영(槍影).
분명 검수들은 저 창영을 검면으로 막아내려 할 거라.
차간은 확신에 찬 믿음으로 창을 뻗었다.
하지만.
– 칭! 칭! 칭!
뿜어지는 차간의 창끝을, 한 검수의 검이 모조리 쳐내버리고 만다. 정확히 창의 날만을 노려 찌른, 예리한 검식이다.
– 스스슷.
뒤로 물러서는 차간. 자신의 첫 창식을 막아낸 검수를 보는 그의 눈빛이 매섭다.
앞으로 나서는 검수. 차간의 창식을 막아낸 도인은, 다름 아닌 공동의 일대제자, 진사풍이다.
사풍은 일전에 무위에서 저 서하오창식이란 창술에 대해 정문에게 들은 적이 있다. 파훼를 모르면 필시 당하고 만다는 서하인 최강의 창술.
차간에겐 아쉽게도, 사풍은 이미 저 창술을 파훼를, 정문에게 배운 적이 있다.
“파훼···, 인가?”
“그렇다더군.”
“흥, 아무리 파훼를 안들!”
파훼를 알아도 무인 개인의 무위에 따라 파훼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된다. 그를 아는 차간은 저 일대제자가 감히 자신의 창술 전부를 막을 수 없을 거라 믿으며 다음 창식을 펼쳐갔다.
뒤로는 하나둘 쓰러지는 수하들의 모습이, 급격하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쳇, 시간이 없군.’
아무래도 다른 도인들까지 수하들에게 맡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차간이 창을 돌려 잡는다. 그대로 사풍에게 달려들며 창을 높이 드는 차간.
마치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창술을 펼칠 법한, 그런 자세다.
자세는 상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 후우우우웅!
그대로 바람을 가르며 내려찍는 차간의 창. 실린 내기가 제법이어서, 다른 이들이라면 이게 진정한 실초일 거라. 그렇게 믿기 딱 좋은 공격이다.
하지만, 사풍은.
속지 않는다.
‘상창식(上槍式)이군.’
– 콰아아아앙!
큰 공격은 크게 피할 수 있다. 사풍은 가볍게 뒤로 뛰어 내려찍는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진정한 공격은 여기서부터. 차간 역시 사풍이 이를 피할 걸 예상이라도 한 듯 입가를 비릿하게 올렸다.
파훼라면, 여기서 저 도인이 금나수를 준비할 것이다. 땅을 찍고 그대로 뛰어오르는 창을 잡기 위한 금나수를. 이는 이미 대공무관의 한수량이 보여줬던 파훼.
진정한 승부는 창의 빠르기와 금나수의 빠르기. 거기서 갈릴 거란 생각에 차간은 승부를 걸기로 한다.
– 슈우우욱!
그대로 뻗어지는 차간의 창.
마치 직선을 그리듯, 바닥에서 창은 그대로 사풍의 목을 향해 떠올랐다.
그리고.
– 콰지익!
하는 소리와 함께.
– 퍼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차간의 무릎이 바로, 바닥에 닿는다.
– 툭.
‘······?’
비릿한 맛이 느껴지는 입가. 묵직한 기운 일곱 줄기가 그대로 자신의 속을 진탕시키며 휘젓는다. 칠상권이라 부르는 그런 주먹이라. 차간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승부에서 패배한 모양이다.
사풍은 목으로 날아오는 창을 비봉수(飛鳳手)로 멋들어지게 잡아챘다. 얼마나 비봉수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차간의 창은 그대로 부러졌으며 사풍의 목에는 아무런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대공무관과 금마세가의 비무를 보며 자신의 창술이라면 파훼 되지 않을 거라 확신했던 차간. 그런 차간의 확신이. 고작 일대제자라 자신이 자만했던 상대에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다, 단주가···’
위험하다.
차간은 내부가 뒤섞이는 고통을 부여잡고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뒤를 처리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무정검과 맞서고 있을 단주를.
하지만.
“응? 끝났냐?”
그의 고개가 향한 곳에는.
이미 정신을 잃고 혼절한 고력강의 모습과 그를 누르고 앉아 있는 무정검의 심드렁한 표정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벌써···?’
잠시라는 말도 무색하게.
고력강은 단 한 수만에.
무정검에게 제압당한 것이다.
애초에.
돌파는 불가했을지도 모르겠다.
– 쿨럭.
차간 역시 그대로 의식을 놓는다.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정신 줄의 일말이, 이제는 소용없으니까.
– 털썩.
쓰러지는 차간의 신형.
그를 보며 사풍 역시 자세를 갈무리했다.
당장에 파훼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상대였다. 아니, 높은 확률로 패했을 것이 분명한 상황.
서하인의 서두름과 사풍의 높은 성취, 그리고 정문에게 배운 파훼가 합쳐져 저 서하인을 잡을 수 있었다.
문득, 무위로 속가행을 갔던 때가 사풍의 머리에 떠오른다.
– 내가 사문을 떠나도 한 명 정도는 파훼를 알고 있어야지.
왜 자신에게 파훼법을 가르쳤냐는 말에 정문이 뱉었던 말. 그 말이 사풍의 머리에 울린다.
정말 그런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사풍은 그런 의도가 아닌, 사문에 남은 정문을 위해 파훼식을 휘둘렀다.
당시로는 절대 상상도 못 했을, 그런 결과.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사풍의 몸을 휘감는다.
“끝났습니다.”
간단하게 말을 뱉는 사풍.
정문을 향해 보고를 올리는 사풍의 눈에 이채가 가득하다.
어쩌면, 사형은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이런 상황까지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으로.
– 탁! 탁! 탁
다른 사제들 역시 무인들을 제압한 후, 손을 턴다. 이미 혈도까지 모두 제압한 도인들이 정문을 향해 몰려들었다.
“자, 이제 어쩌시려구요? 왜 잡은 거예요, 얘들은? 인질? 아님···, 고신?”
“확실히 신궁의 인물을 잡은 건 처음이군요. 일전에 잡은 이들은 중원 출신이었으니.”
“저, 정보가 많을 겁니다!”
“이대로 당가에 넘기면 되겠군.”
“당 언니가 좋아하겠네요!”
사제들은 잡은 서역인들을 보며 저마다 말을 뱉는다. 아직, 정문이 이들을 잡은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당가에는 안 넘겨.”
“직접 하시게요?”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 근데···, 본진으로 가는 건 조금 늦추려고.”
“더···, 보실 게 있으십니까?”
진명은 불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정문을 바라본다. 이들을 여기서 잡는 것만 해도 제법 무리였던 행동이다. 당장에 스물이 넘는 이들을 본진으로 옮기기도 힘들고, 이대로 두면 다른 이들의 눈에 보여 뒤를 잡힐 수도 있으니까.
헌데도 아직 본진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정문의 말을 들으니. 더 불안해지는 진명이다.
“한번 만나보려고.”
“누굴 말씀이십니까? 신궁의 인물을···?”
“응. 궁주.”
“아. 그러시군요.”
······.
“예?”
잠시. 아주 잠시 아무렇지 않게 답한 정문 덕에 고개를 끄덕였던 사제들의 반응이 격해진다. 너무도 평화롭게 말한 정문 덕에 궁주라는 이가 신궁의 문지기 정도라고 착각했던 이들.
그런 사제들을 뒤로, 정문이 정신을 잃은 고력강을 차분히 내려다본다. 자신을 신궁이라는 곳의 궁주 앞에 데려다줄, 그런 길잡이를.
정문의 손길이 단잠에 빠진 고력강을 흔들어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