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ignore the joint again! RAW novel - Chapter 51
51. 이 정도는 해줘야지.
“백경은 준비가 끝났느냐?”
“예, 스승님. 백오가 점창 제자에게 패했으니, 이제 백경이 마지막 남은 화산 제자입니다.”
“흠···, 백강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백경이 공동의 제자를 이길 수 있겠더냐?”
화산의 장문 대리이자, 일대제자 운양이 뒤에선 도인에게 말을 묻는다.
뒤에선 도인은 화산의 이대제자 백강.
그는 이미 논검회에서 우승을 거둔 전적이 있기에 이번 논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공동 제자의 검이 강맹하긴 합니다. 다만, 백경의 검 또한 최근 크게 진일보를 이뤘으니, 해볼 만할 것입니다.”
“네가 본, 공동의 검은 어떠하고?”
“흥미롭습니다.”
백강은 검에 대한 자세한 풀이보다는 흥미롭다는 말로 대답을 일축했다.
스승 운양의 얼굴에 미소가 자리한다.
백강의 말은, 꼭 맞붙어 보고 싶은 검이란 뜻이다.
공동의 검이라.
운양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저 패도적인 검법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나 또한 흥미롭구나. 허허허.’
운양의 눈이 비무대로 향한다.
비무대에는 공동의 무인과 화산의 백경이 비무를 준비하고 있다.
“전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힘차게 소리치는 백경.
“무엇을요?”
“정문 도장께서 반드시 본선에 오르실 것을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저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을요?”
“백경 도장과 본선에서 만날 것을요! 하하하!”
“하하하!”
“호호호!”
여전히 죽이 잘 맞는 둘이다.
“그럼, 한 수! 크게 배우겠습니다.”
– 스릉!
매화의 문양을 간직한 백경의 검이 날카롭게 빛을 뿜었다. 일정 경지에 오른 제자들에게만 하사한다는 매화검이다.
“제가, 배워야지요.”
– 스릉!
마주 검을 뽑는 정문. 소박하지만 강한 기력이 검에 아려있다.
“사형이···, 화산도 이길 수 있을까?”
“무당을 꺾었습니다. 무당을요! 사형이 화산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화산은 화산이 아닌가.”
“공동이 정말······, 화산을 이길 수 있는 건가?”
공동의 제자들이 웅성거린다.
그들의 눈에는 화산과 검을 맞대고 있는 저 무인이 자신들의 사형이란 사실조차 생소한 것이다.
“잘 보거라. 공동의 검이 어디까지 가는지. 대사형이 확실히 보여줄 테니.”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집중하거라!”
진명과 사풍이 차례대로 말을 뱉는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목발까지 짚은 상태지만, 정문이 없을 때는 가장 헌헌한 사형들이다.
– 콰앙!
진득한 진각 소리와 함께 두 무인의 신형이 가운데서 만난다.
– 챙! 챙! 챙!
빠르게 세 합을 주고받는 둘.
백경은 낙매검(落梅劍)을, 정문은 혼원검(混元劍)을 택했다. 날카로운 기세들이 일시에 겹친다.
– 차아앙!
백경의 매화검이 크게 바람을 가르며 검기를 발산한다.
– 파앙!
위에서 아래로.
간단하게 검을 내려치며 검기를 흩어버리는 정문.
이건, 아직.
인사일 뿐이다.
‘인사는 또 거친 사람이군.’
정문이 안광에 힘을 집중한다.
화산의 검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불안해서, 질까 봐, 이기기 위해서 등의 이유는 아니다.
그저 화산의 검.
매화를 품은 화산의 검을 정문은 더 보고 싶은 것이다.
백경이 검을 들어 올린다.
위에서 아래로, 그대로 낙하하는 검이 펼쳐질 게 불 보듯 뻔했다.
‘그 녀석도 늘 낙매검으로 시작하곤 했지.’
정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전에 보았던, 누군가가 열심히 홀로 검을 휘두르던 모습이 정문의 머리를 스친다.
‘다음은··· 낙화불원 초식인가?’
정문의 머리에는 이미 화산의 검법이 모두 들어있다. 비급을 읽어서 그런 이유도 있고, 직접 본 경험도 있다.
물론, 검을 들고 마주 선 것은 처음이다.
그렇기에, 정문은 더욱 설레인다.
자신이 늘 옆에서 수련하는 것을 보기만 했던 그 화산의 검이. 이제는 자신을 노리며 날아오는 순간이니까.
낙매검의 검로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던 백경의 검이 바닥에서 춤추기 시작한다. 좌우를 흔들며 이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가는 백경의 검이다.
– 낙화불원(落花不怨).
‘떨어진 꽃은 원망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정문이 가장 좋아했던 낙매검의 초식을 백경이 펼쳐 보인다. 정문은 몸을 뒤로 빼며 일부러 검을 피했다. 다음에 펼쳐질 한 수도 보고 싶은 것이다.
– 낙위갱시(落爲更始).
‘다시 시작하기 위해, 떨어지는 거니까.’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검이 내려치는 것보다 기세가 좋은 경우는 드물다.
다만, 화산의 낙매검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트리는 이유가 그저 다시 올려치기 위한 것.
강호의 통념과 정확히 반대되는 검로가 정문을 덮쳐왔다.
진한 미소가 정문을 떠나질 않는다.
그의 코 바로 위로 백경의 매화검이 스쳐도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 촤아아악!
낙매검이 통하지 않자, 백경이 검을 뿌리며 공간을 만든다. 그대로, 공간을 허용해주는 정문.
– 탓.
정문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검을 갈무리한다.
백경의 검이 몸 뒤로 빠진다. 자신의 몸 보다 더 뒤에서 검을 눕히는 자세. 정문이 잘 아는 자세였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화산이 자랑하는 검술, 이십사수매화검법의 기수식이 딱 저런 모습이었다.
정문이 검을 돌려 잡았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은 그저 피하는 거로는 피할 수 없는 검법이다.
보법을 고치며 중심을 움직이는 정문.
이십사수매화검법을 구경할 준비를 겨우 마친다.
‘와라.’
백경의 매화검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날을 따라 아름드리 피어나는 수십 송이의 매화가 백경의 검을 채웠다.
이제 저건 검이 아니다.
그저 한 줄기의 매화 가지.
백경이 매화 가지를 품으로 당긴다.
그리고.
정문을 향해 세차게 매화를 뿜어대기 시작한다.
– 화르르르륵!
가지에서 떨어진 수십 송이의 매화가 수백 장의 매화잎으로 산화한다. 떨기마다 따로 나뉘지만, 그 모두가 매화였다.
“아···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는 정문.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이 그의 눈을 매혹한다. 그래, 이게 바로. 환검(幻劍).
‘매화빈분(梅花頻紛).’
정문이 매화잎을 향해 손을 뻗는다.
– 서걱.
이내 정문의 살을 베어버리는 매화잎.
장미를 꺾으려거든 가시 상처를 남겨야 하는 법이다. 장미보다 더한 매화는, 검상을 남긴다.
‘녀석이 그토록 매화를 떠들던 이유가 이거였나···.’
그리운 얼굴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어쩔 수 없다. 여긴 화산이 아닌가.
이제 정문의 눈을 홀리던 매화잎이 동시에 정문의 신형을 덮는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매화점점(梅花漸漸) 초식이 정문의 팔과 다리를 노려왔다.
하지만.
– 쉬익!
자신을 덮어오는 매화의 막을 향해 오로지 양의 기운으로 검을 꽂아 넣는 정문. 소양검의 태양무음(太陽無陰) 초식이 매화의 검막을 향해 날아간다.
– 촤르르르륵!
양(陽)은.
오로지 밝고 따뜻함으로만 뻗어가는 기운. 그렇기에 모든 사특함과 음(陰)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것이 바로, 양(陽)이다.
정문의 검이 검막에 닿자, 매화 잎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화산의 검은, 음의 기운을 품은 환검.
그런 모든 기운이 정문의 소양검에 빨려들기 시작한다.
물속에 뚫린 동혈(同穴)처럼, 모든 매화가 정문의 검으로 몰려든다.
– 치징-! 치징-!
화산의 기운은 쉬이 흡수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더구나 몸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닌 검의 경우에는 더더욱.
정문의 검에 무리가 온다.
그러자.
– 촤아아아악!
패도적인 기세로 검에 품은 모든 기운을 발산하는 정문. 소양검에서 이어진 현천검의 초식이 매화를 날려버린다.
정문을 향해 덮쳐오던, 정문의 검에 감싸졌던, 매화가 모두 사방으로 퍼져버렸다.
날아가는 방향은 정문과 완전히 반대 방향.
백경을 향하는 방향이다.
– 서걱. 서걱.
백경의 팔에 핏물이 배어 나온다.
백경은.
자신이 뿜어낸 매화에 팔을 베인 것이다.
– 살랑살랑.
모든 매화가 사라지고 홀로 내려오는 한 떨기의 매화.
여전히.
백경의 눈에는 투지가 가득하다.
정문의 눈이 감긴다.
조금은 백경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자신이 정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황궁에서 화산의 검을 봤던 강찬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마지막 화산의 수가 정문을 향해 내려온다.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모든 매화가 사라질 적에도 홀로 내려오는 마지막 한 떨기의 매화.
백경의 투지는 저곳에 담겨있을 것이다.
‘미안합니다.’
죽이 잘 맞는 백경에게서 우정이라도 느낀 것일까.
정문의 눈이 조금은 미안함을 품는다.
다음에는 꼭.
자신도 모르는 검으로 자신을 대해주길 간절히 바래본다.
– 지이잉.
정문의 검에 일곱 줄기 기력이 흐른다.
칠살검(七殺劍).
공동의 검 중 가장 패도적인 칠살검이 살랑이는 마지막 매화를 향해 슬프게 뻗어갔다.
– 파파팟!
매화를 꿰뚫은 검기가 계속해서 날아간다.
이내, 들려오는 잔인한 소리.
– 서걱! 서걱!
– 툭!
검기가 몸을 스치고 가자, 백경의 몸이 뒤로 쓰러졌다. 큰 충격에 몸이 뒤로 넘어간 것이다.
이미 매화검도.
바닥에 흩뿌린지 오래다.
쓰러진 백경의 목으로 정문의 검이 위협을 가한다.
– 쉬잉.
여전히.
경력이 가득 실린 검이다.
고개를 절레 흔드는 백경.
“이럴 줄은 몰랐는데······.”
영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정문이 손을 내밀자, 백경이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정문이 건네는 말이 거짓임을 백경은 잘 안다.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은 거짓이다.
정문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한 번 지어주곤 양손을 겹치며 백경이 입을 열었다.
“졌습니다.”
– 와아아아아아아!!!!!!
– 고, 공동이 화산 마저 꺾었다!!!!!!!!!
– 내가 뭘 본 건가???
– 매, 매화가 깨졌다!!!!!!!!
화산이 움직이는 것만 같은 크기의 함성이 쏟아진다. 논검회를 주최한 화산이, 결승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양보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정문이 돌아선다.
공동의 대기석을 바라보는 정문.
사제들의 입은 이미 땅에 닿았다.
“와아아아아!!”
“대사형!!!”
“화산을 이기다니요!!!”
“무당에 이어 화산까지!!!”
“여, 역시 공동이 최곱니다!!!”
버선발로 뛰어나와 정문을 맞는 사제들.
화산과 무당, 종남은 논외라던 사제들도.
공동이 여기까지면 잘한 거라는 사제들도.
모두.
정문에게 달려왔다.
“됐다, 이놈들아.”
“사형이 이길 줄 알았어요!”
“저, 저도 그랬습니다!”
“화산의 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변화의 묘리를 그렇게 풀어내는군요. 끝은 또 날카롭고.”
“흥, 이 정도는 해줘야지.”
저마다 성향에 따라 말을 다르게 뱉지만, 모두의 얼굴에 미소만은 확실히 걸려있었다.
* * *
– 콰지직!
귀빈석에 마련된 작은 탁상이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무언가 강렬한 기운이 위를 내리친 탓이다.
“자, 장문인!”
서둘러 소리의 근원지로 달려드는 제자들.
파란색과 하얀색이 적절히 섞인 도복을 입은 것이, 그들이 청성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찌···! 어찌 저놈이 또 이긴단 말이냐···!?”
좌세경의 눈이 매섭게 공동파의 대기석을 향한다.
그의 시선 끝에는 공동의 대제자 이정문이 앉아 있었다.
사실 청성은 전날 이미 화산을 떠났어도 상관이 없는 이들이었다. 이미 해남이 먼저 발을 돌렸기에 그들이 떠난다해서 손가락질하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좌세경이 남아있었던 이유는.
바로 정문의 패배를 보기 위함이었다.
좌세경의 시선이 제자들 중 가장 큰 중상을 입은 제자에게 닿는다.
두영해.
나름 똘똘하게 머리가 돌아가며 무공 또한 나쁘지 않은 제자였다. 어제까지는.
“어버버···어···”
– 후우우.
한숨만 나온다.
제자의 빠진 턱이 더는 닫히지 않을 것임을 좌세경은 아는 것이다.
몸을 상한 제자는 두영해 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제자는 큰 검상을 배에 입었으며, 다른 제자는 내상을 입어 한달을 정양해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모두.
공동의 작품이었다.
‘우리랑 무슨 원수를 졌길래···!’
좌세경으로서는 너무도 억울한 상황이다.
저들이 청성을 보며 눈에 불을 켜지만 않았어도, 다른 제자들의 기세는 달랐을 것이다.
제자들은 동문이 하나 둘 몸이 상하는 것을 보고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청성은 처음으로 본선에 오르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다.
사실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제자들의 보고를 받은 좌세경도 알고는 있었다.
다만, 그에게는.
‘그깟 오랑캐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기본적인 사상이 다르게 박혀 있을 뿐이었다.
“후우우.”
“사천으로 가시겠습니까?”
그나마 몸이 멀쩡한 제자가 다가와 말을 물었다.
“잠시간, 화음에 머문다.”
“화음이요?”
“내···, 공동에 대해 조금 알아봐야 겠음이야.”
“이상한 점이 있습니까?”
제자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물었다.
이미 청성의 모두가 공동을 달갑지 않게 느끼는 것이다.
“이상한 점? 그럼 없단 말이냐?”
“그···그게 무슨···?”
“구파의 말석인 저 공동이! 감숙에만 박혀 살던 저 공동이! 어찌 저리 강해질 수 있단 말이냐? 이게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더냐?”
너무도 차갑고 날카로운 말들이 제자에게 향한다.
“자, 장문인···”
“내 저들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칠 것이다. 반드시 숨기는 것이 있지 않고서야 감히 공동이 이런 일을 해낼 수는 없음이야!”
너무도 확신에 차 뱉어대는 좌세경의 어투에 제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 역시 공동이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래도 같은 정파가 아닌가.
지금 좌세경은 공동이 당장에 사파의 악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뱉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개방을 만나야겠다. 연통을 넣거라.”
“개, 개방을요?”
“철면노개가 화음에 와있다. 그에게 내가 보잔다고 전하거라.”
“···예, 장문인.”
그렇게 청성은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화산을 내려갔다. 무언가 다른 속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