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ignore the joint again! RAW novel - Chapter 55
55. 도사는 바쁘니.
“오늘은 확답을 들을 때까지 못 돌아갑니다!”
“왜 이러십니까? 도장.”
“저도 명을 받고 온 몸입니다. 말씀이라도 전하게 해주십시오!”
“안 계십니다. 계시질 않아요!”
“개방이 청성을 이리 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청성은 어찌 개방을 이리 대한단 말입니까?”
시끄러운 소리가 조용한 거지촌을 울린다.
방에서 조용히 서류를 읽던 개방의 장로 철면노개(鐵面老丐) 오봉학이 눈매를 좁힌다.
밖의 소리가 신경 쓰이는 것이다.
“흐음.”
– 탁.
오봉학이 서류를 내려놓는다.
서찰에는 청성과 공동이 화산에서 겪었던 일들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 스륵.
자리에서 일어서는 오봉학.
오봉학이 조심히 벽에 붙어 밖을 살핀다.
하얀색에 파란색을 더한 무복의 도인이 잔뜩 화를 내더니 이내 발길을 돌린다.
– 똑똑.
“들거라.”
“예, 노개. 청성의 제자가 오늘도 다녀갔습니다.”
“확실히 말했겠지?”
“예, 화음에 계시지 않다고 말을 전했습니다.”
“계속해서 청성에는 내가 없다고 말을 전하거라.”
“예. 노개.”
“나가보거라.”
오봉학이 다시금 서류를 집어 든다.
청성.
청성의 장문인이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오봉학이다.
하지만.
‘지금 청성과 엮여서 좋을 것이 하나 없다.’
오봉학은 그런 청성과 어울려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청성이 강대한 문파임은 사실이다.
구파일방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를 증명할 것이며 계속해서 중원과 사천에서 세를 유지하는 것 또한 그를 증명할 것이다.
다만.
‘좌세경은 장문인의 그릇이 아니로다.’
좌세경에 대한 오봉학의 평가만큼은 확고했다. 그런 청성의 위명을 언제고 땅에 처박을 사람이라는 것이 오봉학의 평가였다.
청성파 장문인이 자신을 찾는 이유는 뻔했다. 공동에 대한 뒷조사나 공동과 관련된 무언가를 부탁하려는 것.
자신의 손에 들린 서찰이 그 모든 내용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인배인게지. 소인배야.’
오봉학이 속으로 혀를 찬다.
자신 역시 공동은 주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청성과 엮인다면 되려 역풍을 맞아 개방이 곤란해질 것이 분명했다.
지금 개방의 조사는 어디까지나 확인을 위한 것. 감정이나 문파 간의 이익이 더해진다면 이는 곧 큰 분쟁으로 번지고 말 것이다.
‘흐음.’
“밖에 승환이 있느냐?”
잠시 눈매를 좁히던 오봉학이 다시금 제자를 부른다.
“예, 노개.”
서둘러 달려오는 젊은 거지.
그의 허리에는 네 개의 매듭이 달려있다.
“화산의 산문에 가 있거라. 오늘이면 공동이 하산한다는 말이 들리더구나.”
“공동 말씀입니까···?”
“그래. 공동의 대제자 이정문에게 말을 전하거라. 개방의 철면노개가 좀 보잔다고.”
“예, 노개.”
“딱히 손을 섞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말만 전하거라. 직접 데려오면 더욱 좋고.”
오봉학의 명을 들은 사결개(四結丐)가 읍하며 몸을 물렸다.
사결개는 아직 명문 정파의 일대제자에는 미치지 못하는 무공을 익힌 제자다. 당장에 거칠게 데려오는 것이 아닌 이상 명을 수행하기에 충분할 것이라 오봉학은 생각했다.
이정문.
화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흥미가 동했던 무인이다.
거기에 흑시창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분타주의 예측까지.
오봉학은 논검회가 열리는 동안 감숙에 전서를 날려 공동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시 보낼 것을 명했다.
물론.
딱히 새로운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둘의 연관점을 찾겠다던 감숙의 분타주 역시 더는 접근할 수 없음을 보고해왔다.
이럴 때는.
당사자를 직접 만나보는 것이 최선일 거라 오봉학은 생각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
흑시창과의 연관점을 묻는 말에 그가 진실을 답하리라 믿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눈을 믿어보려는 오봉학.
개방에 발을 들인 지 50년이 넘는 그였다.
설령 거짓을 답하더라도 자신의 눈이 젊은 무인의 거짓을 꿰뚫지 못할 리는 없을 거다.
‘만약 흑시창과 연관이 있다면··· 조금 겁을 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처음보다는 오봉학의 반응이 많이 누그러졌다.
책상에 놓인 서찰을 조금 뒤지는 오봉학.
그의 손에 청성과 공동이 논검회 전날 충돌했던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흠···,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은 아닌지고.’
청성과 있었던 일, 주일도의 개입 및 정문의 대처, 후의 응징까지. 거기에 다른 문파와도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봉학의 시선이 조금은 누그러든 것이다.
공동의 갑작스러운 중원 진출이 곧 알 수 없는 변화라 생각했던 오봉학에게 이런 행보는 오히려 안심해도 되는 일이라는 믿음을 심어준 것이다.
‘후기지수들과 의형제까지 맺었다지···, 운양과의 독대도 무사히 마치고. 또 감숙에 화산의 속가라?’
이상한 의도가 있었다면 후기지수 및 각 문파의 장문들이 몰라봤을 리는 없을 것이다. 또한, 화산에 청한 요구가 개방의 입장에서 썩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흑시창과 연계를 하려면 자신들의 속가를 밖으로 내거나 감숙을 꽁꽁 묶으려 들었을 것이다.
오봉학이 눈이 밖을 향한다.
화산의 사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창가.
‘감숙에만 너무 박혀있어 흑시창과 개방의 관계를 모를 수도 있다. 그런 거라면 따끔히 혼을 내고 가르치면 될 일.’
오봉학은 정도 무림의 선배이자, 개방이라는 거파의 장로로서 정문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내릴 생각을 품었다.
그저 그의 눈에는 정문이 아직은 중원 무림에 대해 무지한, 그저 총기와 무재가 조금 있는 그런 변방의 후기지수로 보인 것이다.
조금은.
정문을 만나길 기대해보는 오봉학이었다.
* * *
“형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우렁찬 외침과 함께 다섯 도인의 허리가 직각으로 접힌다. 자신이 흑도굴에 있을 때 자주 봤던 인사라 정문은 그렇게 회상했다.
오늘은 공동이 화산을 내려가는 날.
화산파의 운양을 비롯해 백강, 백경, 백준 등의 제자와 무당의 허륜, 종남의 냉겸, 점창의 주일도까지.
제법 걸출한 무인들이 공동의 가는 길을 배웅하러 나온 것이다.
“허허허, 어느새 이렇게들 친해지신 겁니까?”
운양을 비롯한 화산의 일대제자들이 신기하다는 듯 이들을 바라봤다.
“어, 어쩌다 보니 이리되었습니다. 허허.”
당황하는 표정만 지으며 정문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형님! 제가 공동산에 꼭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점창의 주일도가 정문의 손을 맞잡으며 다짐하듯 말을 뱉었다.
“그, 그래. 일도도 건강하고···!”
“저 역시 공동으로 형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곧 감숙에 속가를 내니 그때까지 잠시만 안녕입니다, 형님!”
백경 역시 정문의 손을 마주 잡으며 눈을 빛낸다.
“배, 백경! 감숙에서 다, 다시 보자!”
도대체 이들과 무슨 대화를 나눴기에 사이가 이리도 돈독해진 것인지 정문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형님, 꼭 아우들을 다시 찾아주십시오. 무당산에서 언제든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정문에게 배를 그인 허륜이 굳건한 표정을 지으며 정문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래, 허륜. 다음에는 태극혜검을 꼭 보여다오.”
정문이 허륜의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그래, 여기까지는.
여기까지는 이해는 안 가도 받아들일 수는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형님! 종남의 냉겸! 이제는 형님의 그림자만 쫓겠습니다!”
“이 백준 역시 형님을 믿고 따릅니다! 백경 사형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이 둘은.
정문이 도저히 머리를 짜내어도 아무런 기억은 물론이고 감정조차 떠오르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그, 그래. ···냉겸과 ···백준! 수일하거라!”
그렇게 다섯 아우에게 하나씩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나서야 정문은 산에서 내려갈 수 있었다.
그들은 공동파 도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는 겨우 그 모습을 감췄다.
“아휴, 뭔 기억에도 없는 동생들이 그렇게 많대요?”
“부, 부럽습니다!”
명화의 이죽거림과 묵환의 순박한 추임새에도 정문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미 기억이 날아간 것을 모두 들켰기 때문이다.
“내, 내가 죄인이다.”
“흠, 백경도 주형님도 모두 좋은 분들이다. 너무 그러지들 말거라.”
진명은 어느새 저들에게 정이 들었는지 의형제다운 칭호를 부르며 정문을 두둔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사풍 아우?”
!!
“뭐···, 뭐요?”
사풍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대사형께서 그날 밤 정해주신 서열을 잊었느냐? 쎈놈이 형인 법이다. 원래도 내가 사형이고.”
“그럼 댁이 내 아우를 하셔야 하는 거 아니오?”
“사풍. 팔 강 탈락자가 말이 많구나.”
“이···! 그때 한묘에서 양검만 얻지 않았어도 내가 이겼을 승부였소!”
“그게 모두 팔자고 운명이란 것이다. 네놈은 내게 졌을 운명일 따름이야.”
“닥치시오! 어디 그런···!”
이를 꽉 물며 악다구니를 쓰는 사풍을 뒤로 진명이 고개를 절레 흔들며 먼저 내려간다.
“기다리시오! 기다리란 말이오!”
“어휴, 언제 철들 드실래요?”
명화마저 사풍을 지나치며 못 살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절레 흔든다.
“처, 철드십시오!”
“······?”
묵환의 더듬거리는 일침에 사풍이 마침내 어이가 나가버리고 만다. 자신이 언제부터 이런 취급을 받았단 말인가.
사풍이 시선을 돌린다.
그의 뒤에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신의 파벌인 사제들이······
“풉······.”
“철 좀···훕······.”
“푸흡······.”
“사제도 아니고···아우···풉.”
최선을 다해 웃음을 참고 있었다.
사풍의 고개가 낙엽처럼 떨어졌다.
공동의 도인들은 제법 긴 시간이 걸려서야 화산의 산문을 맞았다. 제법 산세가 험하고 길이 멀었기에 시간이 걸린 것이다.
“어휴, 오늘은 화음이 전부겠는데요?”
“아직 해가 있으니 위남이나 대려까진 갈 수 있을 거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형?”
“흠···, 글쎄. 우선은 화음까지는 가서 생각하자.”
“옙!”
공동의 도인들이 산문을 넘어 막 발을 떼려던 찰나.
“공동의 도인들이시오?”
넝마를 주워입은 젊은 거지가 하나 모습을 나타낸다.
“그렇소만. 소속을 밝히시오!”
구천각에서 일하는 제자, 노각이 나서서 거지의 신분을 확인한다.
사실 넝마에 죽봉을 든 모습이 누가 보아도 개방의 제자는 확실했다.
“개방 제자, 승환이라하오.”
승환이라 자신을 밝힌 거지의 허리에는 네 개의 매듭이 걸려 있었다.
“개방 제자께서 어찌 공동을 찾으시오?”
“이정문 도장을 찾아왔소.”
이정문이란 말에 공동파 도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명에게 향한다. 귀찮다는 표정을 잔뜩 머금은 제법 날티 나는 도인이었다.
“나?”
정문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승환에게 되물었다.
“이정문 도장이시오?”
“응, 그런데?”
“······논검회 우승하신?”
“응, 맞아.”
“대제자?”
“맞대도.”
승환은 너무도 날티 나는 도인의 모습에 자신이 아는 정보가 맞는지 계속해서 되물었다.
“장문 대리?”
“맞다는 대도 이 거지 새끼가!”
계속되는 되물음에 정문이 슬쩍 주먹을 들어올리자 개방 제자 승환이 움찔한다.
사결개는 아직 완숙하지 않은 개방의 제자.
공동이나 되는 문파의 일대제자에게 무공으로 이길 처지는 아니었다.
“그, 그저 말을 전하러 왔소!”
양팔로 얼굴을 겨우 가린 승환이 서둘러 소리쳤다.
“아니, 근데 이 거지새끼는 말이 왜 이렇게 짧지?”
자신의 말은 일 할도 고려하지 않는 정문의 물음에 승환이 따지듯 말한다.
“도, 도장께서 더 짧지 않으시오?”
이상하게도 다른 구파의 제자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다른 태도가 개방 제자를 맞이한다.
“그거야 거지새끼가 상대니까 그런거고. 거지가 뭘 따져?”
당당히 말하는 정문.
그의 눈에 거지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가득했다.
“아.”
의외로 개방의 제자는 빠르게 수긍했다.
“다시 해봐.”
“······정문 도장께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어쩔 수 없다.
거지는 부끄러움을 피하지 않는 법이다.
쪽박 깨지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말? 뭔데?”
정문의 물음에 승환이 입을 살짝 올리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이 이름을 들으면 너도 놀랄 거라는 생각이 그대로 나타나는 표정이었다.
“개방의 장로, 철면노개 오봉학 장로께서 찾으십니다.”
* * *
좋은 날씨다.
바람도 적당하고 햇빛 역시 적당하다.
비록 이곳이 내리는 비 정도를 겨우 막아주는 자그마한 판잣집 아래라도 자연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들려오는 새소리마저 감미롭다.
이런 날은 그저 본분에 충실해 쪽박이나 하나 들고 동냥이나 다니면 딱 좋은 날이라 오봉학은 생각했다.
“흠···.”
오늘 정오를 기점으로 공동의 도인들이 화음에 닿을 것이라 전해졌다.
오봉학은 그런 공동에 사람을 보내 잠시 자신을 만나고 가라는 말을 남겼다.
이제 공동의 떠오르는 젊은 고수가 방문을 하면, 오봉학은 짐짓 다정하면서도 근엄한 선배로서 가르침을 내리면 되는 것이다.
“읍읍!”
오봉학이 목을 가다듬으며 정문에게 전해줄 말을 다시금 상기한다.
조금은 혼을 내고 조금은 다독이는 그런 말을 준비해보는 오봉학이다.
슬쩍 수염을 쓰다듬으며 오봉학이 밖을 살핀다.
아직 아무런 소식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왔는가?’
오봉학이 표정을 갈무리한다.
제법 근엄한 표정이 얼굴에 자리했다.
“흠, 들라하라.”
– 스르륵.
문이 열린다.
어디 보자, 신성이라 불리는 새로운 고수의 얼굴을!
오봉학이 뒷짐을 쥔 채 조심히 돌아섰다.
하지만.
“승환?”
“예, 노개.”
아무래도 나중에 따로 들린다는 말을 전한 것 같다.
“흠, 나중에 들린다더냐?”
“저···, 그게···”
“어허, 똑바로 말을 하거라.”
“······.”
오봉학의 재촉에도 승환의 입이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서 말하래도!”
“마, 말을 전하라 했습니다!”
“말을 말이냐? 무슨 말을? 똑바로 말 하거라.”
오봉학의 명에도 개방 제자의 입이 우물쭈물한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음이 확실했다.
“···그저 시키시니 뱉겠습니다.”
“어허, 사설이 길도다.”
오봉학의 눈치를 한 번 본 승환이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눈을 꾹 감은 채 말을 뱉었다.
“도, 도사는 바쁘니, 거지가 직접 오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