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ignore the joint again! RAW novel - Chapter 86
86. 마적과 결탁한 도인들.
익숙한 길에 비해 익숙하지 않은 길은 더욱 고된 법이다. 특히나 청록이 무성한 산중에서 수도하던 승려에게는 석림(石林)과 사막만이 잔뜩 있는 감숙의 풍경이 더욱 낯설고 힘들 것이다.
정기(精氣)란 말이 실제로 있는 것인가. 평생을 수도한 불학(佛學)을 되짚어봐도 그런 개념은 없었기에 지금의 힘듦이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소림의 장경각주, 고상이었다.
‘무공도 더욱 매진했어야 하는 것을···’
사람은 궁할 때가 되어야 과거를 후회한다. 아직은 수련이 부족한지 제법 불기 있다는 승려도 이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래도 자신을 도와주는 다섯의 사질들과 천수에서 만난 맥적산 서응사의 만중 선사가 잘 도와주어 어렵지 않게 이곳 무위까지 닿을 수 있었다.
이미 옷도.
황포를 벗어 던지고 서응사의 붉은 법복으로 환복한지 오래였다.
누가 보아도.
이들은 서응사의 탁발승으로 보일 뿐일 것이다.
저 멀리 무위의 성벽이 보인다.
돈황으로 가는 길목의 반절이 이제 지난 셈이다.
오늘은 풍찬노숙(風餐露宿)이 아닌 따스한 객잔에서 몸을 녹일 수 있을 거라, 고상의 얼굴에 조금은 안도감이 자리했다.
“곧 무위에 닿겠구나.”
“예, 사숙. 조금만 더 힘을 내시지요.”
불자의 대자대비한 마음을 가득 품은 나한승 무각이 사숙을 배려한다.
고상의 사형 고암이 무공이 약한 사제를 걱정해 붙여준 나한오승 중 무각은 첫째를 맡고 있었다.
나한오승(羅漢五僧).
분명 강호에는 이 아이들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나한당에서도 오로지 무공 수련에만 전념해 강호에는 별로 알려진 무명이 높지 않은 그런 무승들이 이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에는.
이 아이들도 큰 결심을 해준 것이다.
‘산을 떠나기 싫었을 터인데···’
만민을 위해 지옥으로 뛰어드는 지장(地藏)의 마음으로. 사문을 위해 이들이 산문을 나섰을 것이라, 고상은 그렇게 기특한 눈빛을 보냈다.
“무각아.”
“예, 사숙.”
“나는 괜찮으니, 만중 대사의 안위를 먼저 챙기거라. 내 아무리 사형들에 비해 무공이 떨어진다 한들. 대(大) 소림의 장경각주가 아니더냐? 너무 걱정은 말거라.”
잘 모르는 이들은 소림사 장경각주가 무공서를 다루기에 무공 역시 뛰어날 거라 예상할지도 모른다.
허나 장경각은 무공서만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불경과 학술서 등의 많은 서책이 보관되는 곳이 장경각이다. 그렇기에 장경각주는 무공이 아닌 학문에 대한 깊이가 더 중요한 직책이다.
그런 소림의 장경각주를 맡은 고상은.
무승보다는 학승에 가까운, 그런 승려였다.
“만중 대사께서도 무공을 익히신 분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나만 힘을 내면 되겠구나.”
사질들이 배려해주는 것에 미안해 괜스레 오기를 부려봤던 고상. 허나 소림이 일방적으로 서응사를 배려하면, 이는 만용일 것이다. 무각은 그를 알기에 사숙의 말을 적당히 잘 잘랐다.
– 스윽.
고상이 석림에 앉았던 자신의 몸을 일으킨다.
성벽이 시야에 들어왔다는 말은 곧 걸음을 재촉하면 몸 역시 곧 성벽에 닿을 거란 뜻일 것이다.
잠시의 휴식보다는 도착 후 만끽하는 긴 휴식이 나을 터.
고상은 노구를 일으켜 걸음을 계속하기로 한다.
무위의 주변은 온통 사막과 석림이 잔뜩이다.
서량하면 떠오르는 그런 풍경이 정확히 무위를 관통하는 것이다.
관도마저 조금은 쓸쓸한 풍경의 감숙.
사막과 석림의 옆으로 그저 흙으로 닦인 관도를 따라 고상과 다섯의 나한승, 그리고 한 명의 서응사 승려가 함께 길을 걷는다.
그렇게 반 시진.
딱 반 시진 정도를 앞만 보고 길을 걷고 있을 때.
–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무언가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이들의 귀를 때린다.
여러 개의 갈래로 나눠져 들러오는 소리.
잠시 주변을 둘러본 승려들은 이내 이 소리가 말발굽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숙, 대사. 몸을 조심하십시오. 마적일 수도 있습니다.”
무각이 나서서 사숙과 만중을 보호한다.
연이어 무량, 무주, 무구, 무천이라 불리는 나머지 나한승 역시 이들을 둘러싸고 서둘러 기력을 끌어 올렸다.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전력을 다해 말을 몰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도의 옆길로. 또, 외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말을 저리 전력으로 모는 이들은 마적뿐일 것이다.
“아미타불-. 어찌 마적이 대낮에 관도를···”
분명 사형 고암의 말에 따르면 공동이 명성을 떨친 이후 감숙의 치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는.
저 멀리 평량이 있는 남감숙에만 한정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모래바람이 불어온다.
중원의 인물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바람.
고상과 나한승은 소매를 들어 입과 코를 막으며 시선만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에 고정한 그대로 안력에 집중했다.
– 다다다다다다!
점점 가까워지는 말발굽 소리.
나한승들이 주먹에 잔뜩 권기(拳氣)를 모으던 그때.
– 히이이잉!
하는 말 우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마떼가 그들의 옆을 무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
“??”
잔뜩 끌어올린 권기가 무색하게 아무런 일도 없었던 이들. 조금은 휑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챙긴다.
“가, 갔습니까?”
“다치신 분은··· 없겠군요.”
적포로 입을 가리며 말을 묻는 서응사의 만중.
감숙에서도 관도를 향해 전력을 다해 말을 모는 이들은 마적 뿐이 없기에 만중 역시 마적을 생각했다.
허나, 그저 이들을 스쳐간 것을 보면 마적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저기! 저기 가고 있습니다.”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모래바람도 함께 사라지자. 저 멀리서 무위를 향해 달려가는 다섯 마리의 말과 그 위에 올라탄 이들의 복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옆으로는 대도를 차고 몸에는 가죽으로 엉킨 옷을 걸친 기수들. 저런 행색은 필시 마적이 분명할 것이다.
다만, 조금 이상한 것은.
“저, 저거··· 도복(道服)이 아닙니까?”
그런 마적들의 뒤에 착! 달라 붙어 함께 말을 타는 이들이 모두 도복을 입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너무 빠르게 지나갔기에 도복을 자세히 보진 못했다. 도복이 모래를 잔뜩 머금어 색상도 확신할 수 없었고.
허나, 한 명.
딱 한 명의 도인이 슬쩍 고개를 돌리다 이내 고상과 눈을 마주치고 만다.
잘 생겼다. 어리고. 조금은 표독스러움이 얼굴에 묻어있었으나, 확실히 어리고 잘생겼다는 느낌은 멀리서도 받을 수 있는 고상이었다.
아마 쉬이 잊혀질 인상은 아닐 것이다.
“어찌 저리 어린 이가···”
“도사겠지요···?”
“분명 긴 머리에 도복을 입은 도사 넷과 짧은 머리의 도사 하나였습니다.”
“여도사도 있었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목격한 단편적인 정보를 모아본다. 이들은 무인답게 그 찰나의 순간에도 저들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은 목격한 것이다.
“아미타불-. 중원의 폐단이 이곳까지···”
중원에는 수많은 수도자들이 타락하고 범법을 저지른다. 때로는 산속에 도관을 지어 도문인척하며 노략질을 하는 이들도 있고, 돈을 받고 기도하러 온 사람을 산적과 수적에게 팔아넘기는 승려도 존재하는 법이다.
감숙 역시 이런 점들은.
중원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무각아.”
“예, 사숙.”
“무위에 닿거든···, 마적과 결탁한 도인들에 대해 알아봐야겠구나.”
“사숙···. 지금은···”
지금은 소림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 그저 넘어가지는 말을 하려던 무각이 슬쩍 말을 삼킨다.
자신이 생각해도 불자로서 불경스러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무각은 쓸데없는 걱정을 지우거라. 그저 관에 고하거나, 무위에 있는 무파에 고해 일을 맡기기만 할 것이니.”
무각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자리한다. 사숙 역시 안배를 두고 있는 일에 대해 불자답지 않게 나선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 것이다.
“······아미타불.”
“무위에는 대공무관(大崆武館)이라는 무관이 있습니다. 그리로 가시지요. 관주 한수량이 정의감이 넘치고, 또 공동의 속가이기도 하니, 그들에게 의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조금은 침전하려는 무각의 옆으로 서응사에서 함께 온 만중이 나서며 말을 전한다. 조금은 무각의 짐을 덜어주려는 모습이다.
“아미타불-. 다 좋습니다만···. 공동의 속가라는 것이 조금···”
“서응사에서 온 승려들이라고만 전하면 될 것입니다. 대사께서도 만(滿)자 항렬을 쓰셔, 만상이라 칭하면 될 겁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불자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아미타불-.”
승려들의 여행은 다 이런 법일까.
고상한 말들이 서로를 오갔다.
차후의 일을 논의한 승려들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다시금 걸음에 나섰다.
멀리서도 시야에 들어오던 높디높은 무위의 외성.
국경에 가까운 도시답게 웅장한 그 외성에.
이들의 발이 닿았다.
* * *
무위는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멀리서도 한 눈에 볼 수 있는 외성뿐 아니라, 도시 안의 풍경도 중원의 여느 도시와 다를 게 없는 그런 대도시말이다.
아. 굳이 다른 하나를 꼽아보자면.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의 외견이 조금은 이민족에 가까운 자들도 많았다는 것.
그게 유일한 차이점이라 고상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공으로 가시지요. 한관주와 제가 연이 있으니, 박대하진 않을 겁니다.”
우선은 무위에 들어선 후 관병을 찾아가 마적에 대해 신고를 할까 고민도 했던 고상과 일행들이다.
허나, 관병들이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하는 건 시간이 제법 걸릴게 뻔하다. 관이 움직이는 데에는 많은 절차와 보고 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에 관도 주변을 제집처럼 달리는 마적은 중인에게 눈앞에 닥친 위험. 이럴 때는 무림의 문파가 나서는 것이 관병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아미타불-. 그리하시지요, 마적과 타락한 도인들이 얼른 소탕되어야 중인들이 편히 지낼 것입니다.”
딱히 무위의 성내가 마적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거나 중인들이 관도를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도인으로 보이는 그 악적들이 어찌 이들을 밖으로 꾀어낼지 모르기에, 대자대비한 소림의 승려로서 가만히 넘어갈 수는 없는 고상이었다.
만중의 안내에 따라 소림승들이 무위의 저자를 가로지른다.
서응사야 감숙에서 제법 이름을 알린 사찰이기에 무위를 돌아다녀도 딱히 이들을 신기해하는 이들은 없었다.
“대공은 어떤 곳입니까? 공동의 속가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조금은 저자를 벗어나 한적한 길이 나오자, 고상이 만중에게 대공에 대해 묻는다.
소림에서도 장경각에 박혀 무림에 잘 나가지 않던 고상이기에 감숙에 있는 작은 무파인 대공무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무위에 있는 유일한 무파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공동의 속가지요. 요즘 명성이 자자한 무정검도 작년에 이곳으로 속가행을 왔었다고 합니다.”
“허어. 무정검이 말입니까?”
“대사께서도 무정검에 대해서는 아시는군요. 아미타불-.”
“어찌 모르겠습니까? 허허. 지금 전 강호가 그 이름으로 떠들썩하지 않습니까? 제 사형, 고암 선사께서도 무정검에 대해 후한 평가를 매번 내리십니다.”
고상의 사형, 철견권승(鐵肩拳僧) 고암은 난주에 다녀온 후로 늘 무정검에 대해 이야기했다. 후한 평가야 후한 평가였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두일지도 모른다는 평가도 함께였다.
허나, 지금은.
그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권승께서 말씀이십니까? 과연, 무정검께서 대단하시군요.”
중원의 모든 이는 자신이 머무는 지역에 자부심을 가진다. 그런 지역에서 특출난 무림인에 대한 자부심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만중은.
같은 감숙의 무인이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미타불-. 정도 무림의 홍복이지요.”
고상은 그저 그런 만중의 반응에 장단을 맞췄다.
“저기 장원이 보이는군요. 저곳이 대공무관입니다.”
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공터 앞쪽으로 넓게 담벼락이 이어지는 한 장원을 가리키며 만중이 밝게 말했다.
“아미타불-. 무관의 규모가 큰 것이 마적의 소탕은 염려가 없겠습니다.”
“가시지요.”
앞장서는 만중의 뒤로 고상과 소림의 나한승이 뒤를 따른다.
얼른 마적과 그들과 내통한 무인들에 대해 말만 전하고 자리를 뜨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승려들의 발이 대공무관의 대문 앞에 닿는다.
‘공동속가 무위제일 대공무관 (崆峒俗家 武威第一 大崆武館).’
용사비등한 필체가 서량 무인의 당찬 기세와 같이 이들을 반긴다.
서둘러 자신이 왔음을 전하는 만중.
서응사란 말에 안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이내 멀리서 관주를 뵙는다는 인사말이 들려온다.
– 끼이이이익.
열리는 대문.
고상은 어떤 이가 자신을 맞을지 조금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대문에 시선을 두었다.
문과 문 사이.
점점 넓어지는 틈 사이로 수염과 눈썹이 멋들어진 한 중년인이 모습을 나타낸다.
과연.
정순한 기운의 무인이라, 고상은 그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런 중년인의 뒤로 다섯 정도의 무인이 더 자리를 빛낸다.
서둘러 시선을 그들에게 던지는 고상.
짧은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어린 여성, 퉁명스럽게 잘생긴 청년, 그저 잘생긴 청년까지.
그런 이들을 지나쳐 고상의 시선이 마지막 무인을 향해 움직이는 순간.
!!!!!
고상이 눈을 번쩍이며 크게 놀라고 만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에는.
조금은 표독스럽지만 잘생기고 또, 어린.
마적의 말을 타고 달리던 그 도인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