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touch Eldmia Ega RAW novel - Chapter (429)
한 일주일 가까이 급조된 비룡 공수 부대와 함께 레비엥 인근 마왕군의 후방을 쑤시고 다녀본 바, 이들의 임무 성공률은 문외한인 내가 봐도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이는 꽤 여러 가지 이유와 조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는데, 적들이 기존의 비룡 기사들과 다른 점을 깨닫지 못해 대응이 늦다라거나, 일반적인 비룡 기사인 줄 알고 지레 겁을 먹는다거나, 비룡에서 사람이 뛰어내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해 대공 방어 대비만 과도하게 하는 둥 참으로 온갖 것들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그런 조건들 중에서도 단연 압권인 것은, 이 공수 부대의 비룡들이 죄다 하자있는 놈들이라는 점이다.
비룡 기사라는 건 탑승자인 마법 기사의 능력만큼이나 비룡의 피지컬도 중요하다. 하지만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비룡도 개체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최고급 군마를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리하는 것처럼 비룡 역시 엄격한 절차에 따라 비룡 기사 전용 전투 비룡과 운송용 비룡으로 구분 지어진다. 대충 쉽게 구분지으면 근력, 지력, 지구력, 속도, 덩치 정도로 나뉜다고 알고 있다.
즉,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다섯 개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 하는 비룡들은 전부 ‘하자’있는 놈들로 전투 비룡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놈들은 2개에서 많게는 3개까지 합격점을 받지 못한 놈들이었다.
근력, 지구력, 덩치.
근지구력이 미달이기에 전부 비룡이 걸치고 다녀야 하는 갑옷의 무게를 오래 버티지 못하고, 거의 한 명만 탈 수 있는 크기를 유지해 피격 면적을 줄이고 기동성을 높이는 전투 비룡과 달리 덩치가 큰 놈들. 대신 속도만큼은 합격점이기에 갑옷없이 날면 일반적인 전투 비룡보다 훨씬 빠르고 날랜 동작을 보여 준다.
지난번 오크 게이트 때 보고 겪은 것과 얼추 비교하면 일반적인 비룡 기사보다 1.5배 정도는 빠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 비룡 기사들에겐 별거 아닌 그 차이가 우리에겐 아주 크나큰 이점으로 다가왔다.
비단 강습을 시도할 때 뿐만 아니라 2개조로 나뉘어 보급 부대를 터는 동안 주변을 경계할 때도 유용하다. 빠르게 날 수 있다는 건 같은 시간에 더 멀리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이자, 도망치는 것도 빠르다는 뜻이니까.
-피이익! 피익! 피익!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하늘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휘파람 소리가 열심히 보급품을 태우던 우리에게 적의 본대가 접근중이라고 경고한다. 혹시라도 못 듣는 이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복명복창하듯 산발적으로 휘파람을 부는 기사들 사이에서 나도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는 비룡을 부르기 위해 휘파람을 불었다.
웃기게도 이젠 이게 빠른 의사소통을 위한 신호가 되어버렸다. 처음엔 피리 기사라며 나에게만 반응하던 마족들이 우리에게 피리 부대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하더라.
-피이이익!
기다렸다는 듯이 비룡이 날아오고, 놈을 따라 까마귀처럼 하늘을 배회하던 다른 비룡들도 그 뒤를 따라 땅으로 내려온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대해가며 포착된 보급 부대들을 쓸고 다닌 탓인지 공수 부대의 비룡들은 내 비룡을 대장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키우기로 했으니 이름을 지어 줘야 하는데. 휘파람만 불면 알아서 따라오니 너무 자연스럽게 잊고 있었다.
“남은 보급품은!”
“내버려 둬! 튄다!”
마왕군도 바보는 아니다. 후방 부대가 습격받을 것을 감안해 철저하게 대비를 한 군대는 소수였지만, 습격을 당한 부대들은 우리의 기습에 빠른 속도로 익숙해졌다. 보급을 파괴하고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던 추가 병력이 신호탄이 올라간 뒤 한 시간 이내로 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신호탄이 터지면 20분 만에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5분 대기조 같은 걸 운용하기 시작한 게 분명하다. 그것도 실력자들을 차출해서.
공수 기사들이 약한 건 아니지만 요 며칠 우리에게 당한 게 많아 작정하고 잡으려 드는 놈들이 준비한 손패가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확실하게 몸을 사리는 쪽을 택했다.
다행히 기사들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비룡에 올라탄 뒤 박차를 가했다. 덕분에 우리는 늦지 않게 진지를 벗어날 수 있었고,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뒤통수를 노리며 날아드는 얼음 화살과 화염구 같은 것들을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다.
“놈들의 대응이 점점 빨라지는군!”
“솔직히 너무 날뛰긴 했지! 여단장님도 이를 인지하고 계획을 수정하실 예정이라고 하던데!”
“좋은 날 다 갔구나!”
방금 전까지 힘든 전투를 이어왔음에도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한탄하는 기사의 외침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웃었다.
실제로 오늘이 내가 참여하는 마지막 작전이었다. 지금까지 한 모든 게 적들이 레비엥을 포위하고 진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굳히기 작업이었다고 하는데, 후방을 날아다니는 우리보다 본대가 훨씬 바쁘다는 것만 안다. 우리의 노력으로 알트 여단장이 원하는바를 이뤘는지는 곧 알게 되겠지.
최근에는 서둘러 움직이느라 야영과 습격 그리고 레비엥 변경백령에 복귀 후 기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취침이 이어진 탓에 자세한 정황을 알고 있는 이들은 적었다. 그저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우리를 맞이하는 이들의 환호와 미소가 짙어지는 것을 지표 삼아 막연하게 잘되고 있겠거니 할 뿐.
“작전 중에 부상당해서 골골거리지 않은 건 좋다만, 귀환까지가 작전이다! 경계는 늦추지 마라!”
연이은 작전 성공에 기뻐하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분대장이란 참으로 듬직하다. 작전 실패가 없다시피해서 어깨에 잔뜩 뽕이 들어갈 만도 한데 이 친구들은 그런 게 없는 게 좋았다.
“그러고 보니 에가 경과의 비행도 이번이 마지막이잖습니까! 돌아가서 한 잔 하셔야죠!”
“아직 정리도 되지 않은 레비엥에서 술통을 까겠다고?”
“누가 마왕군의 악몽, 피리 부대가 마지막 작전을 마치고 들이키는 축하주를 막겠는가!”
“여단장님이 막지 않을까!”
“아이 씨, 그건 좀 그런데!”
물론 어깨에 뽕이 안 찬 것과 별개로 긴장감이 조금 부족해 보였지만, 저들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공수 부대가 불과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치른 전투는 20회 가량.
다섯 분대를 다 합쳐서가 아니라 한 분대당 출격 횟수가 이 모양이라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쉬지 않고 싸워댄 수준이다. 그냥 훈련을 한 것도 아니고 실전에 이렇게 시달렸으면 반쯤 졸고 있다가도 칼 뽑는 소리가 들리면 각성 상태에 들어가니 조금 풀어지는 건 신경도 쓰지 않게 되더라. 분대장 역시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하지 않고 경계’는’ 늦추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 거고.
“어차피 돌아가면 다음 작전까지는 휴가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 사치는 부릴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여단장님 앞에서 말해라! 나도, 에가 경도 따로 들은 바는 없으니까!”
분대장의 답변과 웃음 섞인 야유 속에서 이어진 비행은 순조로웠고, 우리는 드문 드문 눈에 들어오는 전선을 지나 해가 완전히 지기도 전에 무사히 레비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성문 코앞에 펼쳐져 있던 방어선이 저 앞까지 나간 덕인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요새라는 느낌보다 활기를 되찾고 있는 도시에 가까운 모습을 보고 있자하니 집에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바짝 긴장하고 있던 신경이 풀리고, 성벽과 도시가 점차 가까워짐에 따라 병사들의 환호와 갈채 역시 커져갔다.
피리 부대의 악랄한 후방 공격에 대한 소문이 쫙 퍼졌기에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다른 도시에서 온 지원 병력들마저도 우리를 보면 손을 흔들며 호응해주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우리는 그런 환대를 받으며 잠시 도시 상공을 배회하다가 임시 정거장에 착륙했다.
딱히 관심을 즐기기 위해 그러는 건 아니고, 기껏 착륙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공격이 있을 경우 또 타고 날아오르는 게 귀찮아서 생긴 절차였다. 방어선을 잔뜩 밀어놨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후방을 노리듯 마왕군도 육로를 통해 비슷한 시도를 하다보니 의외로 그렇게 다시 출격한 경우가 적지 않더라고.
착륙 할 때마다 매일 같이 새롭게 추가되는 물자들과 비전투 요원들에 감탄하는 사이, 수도에서 파견된 비룡 관리자들이 능숙한 동작으로 우리들이 타고 온 비룡의 고삐를 받아쥐며 입을 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알트 여단장님께서 보고서만 올린 뒤 휴식을 취하라고 전언을 남기셨습니다.”
“여단장님께서?”
“예. 전시인지라 과음을 허락할 수는 없으나 와인 한 잔씩은 허락한다는 말씀도 함께.”
밑바닥부터 올라간 양반이라서 그런가 기사들의 속내를 아주 제대로 꿰뚫어 보고 있구만. 뒤에서 기사들의 한탄이 터지는 것과 별개로 나와 분대장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음주를 허용하지 않았던 여단장이 겨우 한 잔이라고 할지라도 음주를 허용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른 기사들을 우선 관리자가 알려 준 술집으로 보낸 분대장이 까슬까슬하게 자라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솔직히 이번 탈환 작전이 이렇게까지 수월하게 이뤄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잠 줄여가며 날아다닌 보람이 있군요.”
“아직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동감입니다.”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에가 경 덕입니다.”
“모두의 노력과 왕실의 결단 덕이죠.”
외성을 이틀 만에 돌파하고, 급조한 공수 부대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게 한몫했다고는 하나, 왕국이 본격적으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기회가 오자마자 즉각 행동에 나선 것이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다는 느낌이었기에 나름 진심어린 대답이었다.
지금의 레비엥 변경백령은 온갖 도시에서 몰려든 군대와 상인 그리고 노동자들로 북적이며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
마법으로 무너뜨렸던 성벽은 마법사와 드워프들의 힘으로 빠르게 복구되었고, 시가전으로 인해 무너진 거리와 건물들 사이로는 목수들의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왕실의 과감한 결단 덕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 후폭풍으로 인해 라그니스가 도시의 책임자로서 온갖 서류 업무에 시달리느라 아주 진한 다크 서클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만 빼면 매우 훌륭한 결과였다.
아마 거울을 보지 못해서 그렇지 나도 다크 서클이 장난 아니긴 할 거다. 바로 옆에 있는 분대장도 그러니까.
“이제야 좀 푹 쉴 수 있겠군요.”
“전 내일 안 일어날 겁니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은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내성으로 향했다.
도시를 되찾기 일보 직전이라는 자각이 생겨서인지 우리의 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