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touch Eldmia Ega RAW novel - Chapter (437)
마법의 발동은 굉장히 신속하고 정확했다.
얇은 살얼음처럼 흩뿌려진 마나가 놈들을 얼음 기둥에 가두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바스라지며 얼음으로 된 족쇄만을 남겼다.
졸지에 사지와 몸뚱이에 무거운 추를 달게 된 스무 명의 장정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크게 휘청거렸다. 하지만 세네란의 마법으로 생겨난 얼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 바닥에 늘러붙고, 사내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며 결속을 굳힌다.
부서져 흩어지던 얼음 파편들이 중력을 거스르며 일궈내는 광경은 예술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걸 옆에서 지켜본 나는 세네란에 대한 평가를 상향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영창이나 제국 아카데미에서 만났던 볼타베이의 언럭키 바드가 선보였던 마법도 아닌, 지극히 정석적인 마법을 파훼하기 힘들다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흔히들 하는 착각이지. 도서관에서 책상 놀음만 하던 마법사니까 쉽게 해먹을 수 있을 거라고.”
마법을 시전하며 손끝에 어려있던 서리를 털어낸 세네란이 경악에 찬 남정네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실제로 그녀에게 별거 아닌 마법이었을지, 아니면 그리 보이도록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을 했다는 듯한 반응이라 왜소하고 초췌한 몰골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아무래도 너희를 통해 그 인식을 좀 바꿀 필요가 있을 거 같네.”
다른 건 몰라도 말을 마친 그녀의 입가에 드리운 악랄해 보이는 미소만큼은 진심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
혹여라도 피를 보지 않을까 싶었지만 세네란은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았던 이유를 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제로 마법 각인을 새기는 형태로 일을 해결했다.
그 과정에는 상당한 악의가 담겨 있었는데, 두 번 다시 그녀와 엮이지 않는다는 굉장히 두리뭉실한 조건과 얼음이 녹자마자 이곳을 떠나 두 번 다시 접근하지 않는다는 조건, 마지막으로 이번 일을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메르델라와의 계약 때 두리뭉실한 조건의 위험성을 언급했던 그녀였기에 사실은 놈들을 오래 살려 둘 생각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엮인다’ 라는 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보통 그런 건 계약한 당사자의 의식을 기반으로 해. 예를 들면… 내가 만든 물건을 놈들이 유통한다고 쳤을 때, 그 물건을 만든 게 나인 것을 아느냐 모르냐에 따라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고 해야 하나?”
“유통한 다음에 알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죽지.”
실제로 그럴 의도가 다분했음을 실토하는 세네란을 따라 숲속을 거닐며 떠오른 즉흥적인 의문을 입에 담자, 그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즉답했다.
“살려줄 생각이 별로 없었군요?”
“당연하지. 그마저도 쟤들은 운이 좋은 거야. 네가 한 말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서 다 죽였어. 규칙을 어기는 놈들 특유의 뒤끝도 문제지만, 저 녀석들은 이런 일을 자발적으로 벌일 정도로 대담하지 않아. 누군가 내 뒤를 밟았다는 소리야.”
배후가 있다고?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자 세네란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냥 좀 서둘렀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평소 행실하고 엮어서 생각해 보고 이상하다고 여긴 놈들이 있던 거겠지. 내가 좀 후하게 값을 쳐주는 편이긴 해도 이번엔 좀 이례적으로 썼거든. 끌고 온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비밀에 붙여야 했으니 합리적인 지출이었지만, 모르는 이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거금이 움직인 걸로 보였나 봐.”
“회수되는 게 있기에 시도한 과감한 투자일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사실 내가 밀수로 쓰는 것들 태반은 연구를 위한 과소비에 불과한데 이럴 땐 이명이라는 게 발목을 잡더라고.”
나중에 귀찮아질지도 모른다며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그녀가 걸음을 늦추는 일은 없었기에 목적지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막상 저 멀리서 딱 봐도 인공적인 석재 건축물을 보고나니 이 정도면 그냥 주변만 뒤져 봤어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는데, 세네란은 자신만만하게 스승님과 함께 펼친 결계에 대해 자랑하며 내 의문을 일소시켜주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마법을 익혀야 할 거 같습니다.”
“음? 레비엥에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일어날 일이 있었나 보네?”
“사단장이라는 놈이랑 붙었는데 답이 없더라구요.”
“뭐?! 사단장?!”
내 생사가 곧 연구로 직결된 사람답게 턱이 빠져라 경악한 세네란을 보니 아주 조금은 미안해졌다.
아주아주 조금 뿐이었지만.
“뭐라더라, 이라프라는 이름이었나? 물소 뿔이 인상적인 놈이었는데…”
“미친. 빛을 쏘는 이라프를 상대했다고?”
그래도 나름 설명해야 할 의무는 있는 것 같아서 이야기를 꺼내려 했더니 세네란은 겨우 이름만 듣고도 상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유명한 놈이었나봅니다? 바로 아시는 거보면.”
“마족령에서는 신분 상승의 전설과도 같은 남자였으니까. 마왕군도 엄연히 군대인데 단순 무력만으로 사단장이 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
“안 그래도 엄청 궁금했었는데, 다른 사단장은 무력 차이가 많이 납니까?”
“사단장들 사이에서는 많이 나는 편이라고 들었어. 물론 그 작자만큼 강하고 머리도 좋은 이도 있긴 하지만.”
못해먹겠네 진짜. 저절로 표정이 썩어들어가게 되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나는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근데 사단장들 ‘사이에서는’ 이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사지 멀쩡하게 살아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안심하는 세네란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 하는 표정으로 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조차 이라프만큼 강한 마족들은 꽤 있는 편이라고 들었거든. 그저 부대를 이끌기엔 능력이 부족하거나, 다른 하자가 있거나 해서 단독 병력처럼 운용될 뿐이지.”
정작 대답은 전혀 대수롭지 않은 것이 아닌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무력만으로 사단장까지 올라간 게 특이한 것일 뿐, 그런 놈들은 아래에도 더 있다? 옘병할. 눈앞이 깜깜해지는 소식이로군.
“역시 마법도 빨리 익힐 필요가 있겠군요.”
“넌 그래도 금방 배울 거야. 인족이 마법을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재능도 재능이지만 마나의 총량이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무슨 말인지 알지?”
“그 재능이 문제 아닙니까? 무영창 하는 레비엥 변경백님이나 방금 세네란이 보여 준 마법을 보면 자신감이 사라지는데.”
“글쎄다? 나도 나름 잘났다 소리 들으며 지내온 사람인지라 확답은 못 하지만… 적어도 내가 봤을 때 네가 재능이 없진 않아. 이해력은 남다르거든.”
그런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실리에를 바라보니 그녀는 의외로 격한 공감의 뜻을 내비치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전생자 특전인 늙은이 패시브가 작용하여 큰 착각을 하는 거 같은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반쯤은 체념하고 그녀의 뒤를 따라가니 건축물 앞에 진을 치고 있던 험상궃게 생긴 두 남정네가 우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강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과묵한 거 하나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이미 다 쓰러지고 무너진 돌무더기에 가까웠지만 정작 남자들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니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계단과 돌벽이 우리를 맞이했다.
사전에 고대의 마신전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던전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큰 이질감 속에서 잠깐 당황하는 사이 다 내려온 계단의 끝에는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인원들과 스승님이 마법으로 불을 밝힌 채 무언가 열심히 조사하고 있었다.
그 광경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으나, 오히려 그 탓에 그들 사이 홀로 뿔을 드러낸 채 스승님과 대화하고 있는 마족 성직자가 더욱 두드려졌다. 우리에게 시선이 닿은 스승님이 대화를 끊고 다가오자 그 역시 스승님의 뒤를 따라 다가왔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레비엥이 벌써 정리 되었느냐?”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은수리 여단이 유능해서 빠른 시일 내에 정리될 거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딱히 없는 것 같아 돌아왔습니다.”
질문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미 세네란과 같이 온 시점에서 필요한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여기신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두 사람은 합이 잘 맞는 사업 파트너인 모양이다.
대신 스승님은 옆으로 다가온 마족 성직자를 가리키며 통성명을 해주려고 하셨으나, 성직자는 스승님의 배려를 정중하게 거절한 뒤 나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엘드미아. 저는 마신 에파가 님의 충실한 종 멘데르 라고 합니다. 성녀님께서 안부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그 입에서 나온 인사말이 굉장히 의외였기에, 난 자폭성녀와 성광십자회의 예비 성녀까지 떠올린 다음에야 우리 성녀님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우연인가? 혹시나 싶어서 돌아본 세네란은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 없는 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지난번에 만났었으니 조금이라도 더 우호적이지 않을까 싶어서 일부러 수소문했어. 다행히 괜찮더라고.”
음. 다른 건 몰라도 내 생각을 읽은 게 아닌 건 확실했다. 결국 나는 다시 당혹스러운 시선을 담아 자신을 멘데르라 소개한 성직자를 바라봐야 했고, 그는 조금 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뵙자마자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만… 괜찮으시다면 성녀님을 이곳으로 모셔도 될련지요.”
아니, 지금까지 뭐 하시다가 그걸 저한테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