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11
110. 타락귀족이 너무 많다 3
“크아, 이렇게나 폭력적이라니. 말로 감정을 해결하지 못하는 지능을 가진 존재들은 참 불쌍하구만.”
이스마일에게 한 대 맞은 스콧이 코를 어루만지며 투덜거렸다.
“닥쳐. 더 맞고 싶지 않으면. 그리고 내가 널 때린 건 미디암에게 함부로 수작을 걸어서 그렇다.”
“아니 수작이라니? 방금 전 그 대화를 듣고 어떻게 수작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지? 설마 어휘를 이해하는 이해능력이 그 정도로 낮은 건가? 이거 참 아둔한 놈들의 멍청함이란 늘 상상을 초월한다니까.”
“…….”
“잘 설명해줄게. 나는 나의 지적인 매력과 우월한 용모에 혹시 너희들이 내게 어떤 성적인 환상을 품을까 봐 걱정해서 그러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오크들에게 있어서 너희 같은 저능한 종족과 육체관계를 맺는 건 참을 수 없는 끔찍한 범죄거든.”
-철컥….
이스마일이 참지 못하고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아니 잠깐. 지금 내 말 어디에 분개할 요소가 있지? 모르던 사실을 가르쳐주면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아 그런가? 그것이 열등감이라는 것인가. 이거 참.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군.”
스콧은 이스마일이 분개하자 당황했다.
“그만. 이동하자. 시간이 없어.”
아자딘은 란타릭 백작군을 피해서 우선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마 셀 소드 조합의 용병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저들도 뭔가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 챌 거다. 다행히….”
기욤발트가 너무 못 싸우기 때문에 설마 셀 소드 조합원들이 기욤발트를 죽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리라. 아자딘의 목구멍 안에서 그 말이 맴돌았다.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말하는 건 실례지.’
다행히 기욤발트도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이렇게 많은 용병이 전부 다 날 죽이려 했다면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겠지. 병사들과 연락이 끊겼다면 아마도 뭔가 착오가 있거나 운 좋게 내가 도망쳤을 거라고 여기겠지.”
“…미안.”
“음? 뭐가 말입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당신이 이 무리의 리더인 것 같은데 특이하군요. 성기사 지벡 경이 아니라 당신이? 대체 당신들은 뭡니까?”
“아 우리는 보물 사냥꾼이라고 할 수 있지.”
“보물 사냥꾼?”
“백작의 회고록을 찾으려고.”
“아버님의 회고록? 그건 왜?”
“그 회고록에 우리가 찾는 보물의 위치를 찾을 단서가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날 돕겠다는 거요?”
“그래. 아무래도 란타릭 백작 저택이나 성에 들어가려면 명분이 필요하지 않겠어? 담벼락 넘어서 잠입해서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서 물건을 찾는 것보다 정당한 상속자의 도움으로 정문으로 들어가서 탐사하는 게 낫지. 그래도 서재를 제대로 뒤지려면 한참 걸릴 텐데 어떻게 야음을 틈타서 정보를 얻겠어?”
백작의 회고록이나 편지 뭉치 사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낸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걸 이미 해냈던 서기, 브란드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데 현재 브란드는 다시금 광기에 사로잡혀 놋쇠의 기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란타릭까지는 얼마나 걸리지요?”
미디암이 물어보았다.
“서둘러 가면 나흘입니다. 다만….”
지벡은 그리 말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무사히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괜찮아. 그래서 남긴 편지 아냐?”
아자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시체들 있는 곳에 편지를 남겼지요? 무슨 편지였습니까?”
“뭐 그건 차후의 즐거움으로 놔두고 가 보자고.”
*********
란타릭 백작의 가신들은 곤란해하고 있었다.
란타릭 백작이 장남보다 막내인 애들러 공자를 후계자로 밀어주고 있다는 건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기욤발트를 성기사들에게 훈련받게 하고 언제든지 출가시켜 서열을 정리할 준비까지 했다.
그러나 기욤발트를 훈련한 성기사들은 난처해했다.
‘너무 재능이 없소.’
‘성기사단에 들어와도 임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소이다.’
야에가스 신족의 피를 이어받은 귀족들은 아무리 못해도 보통 농민들보다 강력한 존재이다. 농민들이 밭일하는 동안 그들은 남이 해주는 밥 먹으며 훈련과 교육에 힘쓸 수 있으니 당연하다.
그리고 성기사단이라고 해서 다들 엄청난 검술가인 것도 아니다. 검술이나 전투능력은 아주 최소한만 요구할 뿐이고 성직자나 성기사가 된 이후 한 번도 옥외임무를 맡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무능하다고 성기사들이 그를 자신의 수련기사로 받아들이길 거부한 것이다.
‘이거 일부러 그러는 거 아냐?’
가신들은 기욤발트가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알고 일부러 무능력자를 연기해서 출가를 미루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그러나 그런 의심은 곧 사그라들었는데….
기욤발트가 너무나 볼품없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말처럼 긴 얼굴에 약간 사시가 있는 눈은 빈말로도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용모였다.
거기에 하는 짓도 하나같이 모자라서 다들 기욤발트가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무능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째서 소식이 없지?”
가신들은 셀 소드 조합에 기욤발트의 처리를 맡겼다.
마물들이 나타나 기욤발트 경을 죽였다.
그렇게 보고하려고 했는데 분명히 아침에 정찰을 나간 셀 소드 조합원들이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일단 날이 밝으면 조사단을 보냅시다.”
그들은 요새를 지키면서 하루를 허비했다.
*********
다음 날 아침 정찰대가 갈대밭에 시체로 누워 있는 셀 소드 조합원들을 발견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가신들은 주위의 상황을 돌아보았다. 보아하니 매복된 궁사들이 화살을 쏴서 셀 소드 조합원들을 공격하고, 칼과 둔기 등으로 그들을 완벽하게 살해했다.
셀 소드 조합 외에 다른 이들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일방적인 승부가 펼쳐졌으리라.
“매복에, 암습이라고? 대체 누가?”
“백작님을 공격했던 마물들이 아닐까?”
“아니면 백작님에게 접근한 전령일족들?”
“화살이니까….”
가신들이 그렇게 썰을 풀 때 한 명이 뭔가를 발견했다.
“잠깐! 이 시체에, 편지가 쥐여져 있어!”
“편지라고?”
“어디 보자. 앗?”
그들은 편지 위쪽에 진흙을 모아 인장반지를 찍은 걸 발견했다. 밀랍이 아니라 진흙을 사용하긴 했지만 이 인장반지가 기욤발트의 것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능력 있는 매가 발톱을 감추는 법. 내가 먼저 너희를 속였으니 너희의 불충함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란타릭과 아디로프를 다스려야 할 몸, 신상필벌을 엄정히 하지 않으면 어찌 정무에 도가 서겠는가? 그러니 당부하노라. 명명백백한 반란을 일으켜 그대들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라. 약간의 불충은 향후 처신에 따라 용서받으리라.’
“!!!!”
편지를 본 가신들은 충격을 받았다.
“마, 말도 안 돼!”
“기욤발트 경이?”
“맙소사.”
가신들은 그 편지를 돌려보며 당황했다.
그러니까 기욤발트는 지금까지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철저히 못난이를 연기하면서 살아왔다는 게 아닌가?
란타릭 백작이 실종되자 그동안의 못난이 가면을 벗어던지고 이제 진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건가? 본격적인 후계자 경쟁을 위해서?
“말도 안 돼. 어떻게 그게 연기일 수가 있어?”
“돈도 부하도 아무도 없을 텐데?”
“하지만 그걸 감추는 게 바로 목적이었을 거 아닌가? 우리 모르게 인적자원과 자금을 확보했을 수도 있지!”
“어쩌지? 애들러 공자에게 봉화나 깃발 신호를 띄워야 하나?”
“아니 그러면 우리가 애들러 공자에게 알리는 걸 알게 될 거 아니오?”
봉화나 깃발신호는 황제 가도에 배치한 요새를 통해서 릴레이식으로 전달하는 신호다. 즉 누구나가 볼 수 있다.
여기서 봉화를 피우거나 요새에 깃발을 걸어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면 기욤발트도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은 가신들이 명명백백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지 않을까?
“만약 정말 기욤발트 경이 능력을 감춘 것이었고 그가 란타릭 백작이 된다면 깃발이나 봉화로 신호를 한 우리들을 처벌할 게 아니오?”
“어차피 우린 이미 반역자입니다. 애들러 공자가 백작이 되어야만 우리가 살 수 있는 거요!”
“아니 여기 편지에 용서해준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이야 그렇게 말하겠지! 하지만 백작이 되고 난 뒤에 우리를 싹 밀어 버리면 그땐 어찌하시겠소? 칼자루를 이미 상대에게 쥐여 주고 우리는 그저 수동적으로 그의 자비만 빌어야 할 거요!”
“그런데 우리가 그의 역량을 모르는데 이제 와서 그를 해치려고 해봤자 실패하면 어떻게 합니까? 용서를 약속한 사람을 배신했다가 치이게 되면 그때는 지옥이 우리의 차지일 것이오.”
가신들은 어떻게 해야 자신들이 살 수 있는지를 두고 갑론을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봉화와 깃발을 올리는 것은 기욤발트에게 들킬 가능성이 있으니 올리지 말자. 단, 파발을 따로 보내서 애들러에게 경고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 말상이 무서워서 깃발신호도 못 쓰고 파발을 보낼 줄이야.”
란타릭 백작은 아주 오래전부터 살라스마 백국을 적으로 생각하고 전쟁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살라스마 인근과 란타릭 간에 요새와 깃발대를 설치해 깃발신호 체계를 만들어두었다.
엄청난 돈과 인력을 투입한 이 자랑스러운 깃발신호 체계를 쓰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
“좋아. 잘 먹히고 있군.”
아자딘은 봉화나 깃발신호가 올라오지 않고 있는 걸 보며 자신이 기욤발트에게 쓰게 한 편지가 유효한 성과를 내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냥 아직 시체를 발견 못한 거 아니에요?”
“설마. 용병들이 돌아오지 않으니 정찰을 보냈을 거고 20명이나 되는 놈이 죽은 현장을 못 찾을 리가 없다.”
아자딘 일행은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도망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20구나 되는 시체를 치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자딘은 시간을 끌기 위해 편지를 만들어서 시체들에 놓아두고 온 것이다.
“살짝 주저해주기만 해도 효과는 달성하는 거지. 문제는….”
아자딘은 브란드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브란드는 신이 나서 기욤발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기욤발트 경이 백작이 되시면 저를 가신으로 맞이해주시는 겁니까?”
“아 네. 된다면 말이지요.”
“이야. 그럼 이 나이에 기사가 되는군요. 훈작 기사긴 하지만 진짜 기사가 된다니 어렸을 때나 꾸던 꿈을 마침내 이루게 되는 겁니다. 소인 감개무량이로소이다.”
“아하하.”
기욤발트는 난처해하고 있었다. 브란드가 말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는 란타릭 백작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분노와 적개심은 기욤발트에게도 향해 있었다.
기욤발트가 백작에게 별로 사랑받지 못하는 버리는 자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분노와 적개심으로 다시 광기에 사로잡힐 정도였으니.
게다가 그의 나이는 이미 적지 않았다. 세습되지 않는 훈작 기사위를 받아봤자 딱히 이득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이렇게도 기뻐한다는 건 정말 기사가 되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리라.
눈앞에 있는 이가 그가 알던 서기 브란드가 아니라 정말 놋쇠의 기사 브란드 경이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 정도로 아버지와 아버지의 공작원들이 그런 짓을 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