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12
111. 타락귀족이 너무 많다 4
기욤발트는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란타릭 백작은 사랑을 베풀어준 자상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귀족의 부자지간이란 원래 그런 것.
검술도 못하고 못생겨서 남들에게 은근히 무시당해 온 기욤발트에게 그나마 유일한 자긍심이라면 자신이 야에가스 신족의 말예라는 것, 란타릭 백작의 아들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가 그런 악인인 데다가 이제 와서는 그의 존재마저 부정해서 막내인 애들러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했고, 그 사실을 자신만 빼고 가신단은 전부 다 알고 있었다니.
어떻게든 란타릭의 백작에 걸맞은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을 뿐 아니라, 가신단 앞에서 광대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더 수치스러운 것은 빨리 지치는 그의 몸이었다.
“히, 힘들군요. 조금 쉬어가지 않겠습니까?”
명색이 기사인데 기욤발트는 기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달리는 말이 지면에서 튕겨 오르는 충격을 다리근육으로 흡수하다 보니 지쳐서 또 쉬고 싶어졌다.
“너무 자주 쉬는데요?”
미디암이 투덜거렸다.
그녀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이 튀어 오르는 산양을 타고도 능숙하게 충격을 흡수했다. 심지어는 안장 위에 두 발로 섰다가 산양이 튀어 오르는 순간을 이용해 도약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곡예까지 선보였다.
그렇게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라 주위를 둘러보고 착지한 미디암이 기욤발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게 기욤발트에게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이 어린 소녀가 말도 아니라 산양을 자유자재로 타는데 자신이 먼저 지치다니. 어지간하면 그냥 말안장에서 혀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버티고 싶었다. 그런데 어지간하지가 않다.
아자딘은 기욤발트가 내심 고통스러워하는 걸 알고 미디암을 말렸다.
“너무 구박하지 말고. 그래서 뛰어올라서 뭐 특이한 건 발견했어?”
“아. 앞에 길이 막혀 있어요.”
“길이 막혀 있다고?”
“네. 병사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던데요?”
미디암이 말한 대로 고개 하나를 넘자 병사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일단 막혀 있는 곳까지 가서 거기서 쉬도록 합시다.”
아자딘은 선두에 서서 길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
황제 야에슬라트가 건설한 황제 가도의 넓은 길 위에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그 주위로 병사들과 하사관들, 그리고 피난민들이 잔뜩 몰려 텐트를 치고 야영 중이었다.
길 너머에는 짙은 안개가 깔려 있어서 마차 한 대 분만 거리가 벌어지면 안개에 자취가 감춰질 정도다. 분지 지대라 안개가 깔려서 빠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비현실적이다.
‘마력이 느껴지는군.’
아자딘은 저 안개에서 강력한 마력을 느끼고 혀를 찼다.
“멈추시오!”
“워워!”
병사들이 아자딘 일행을 멈춰 세웠다.
“이 너머로 지나가지 마시오.”
“돌아가시오! 돌아가!”
그러자 아자딘 일행보다 전에 와 있던 상인들과 여행자들이 따지고 들었다.
“아니 무슨 이유인지 설명은 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그게….”
병사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살폈다. 술병을 입에 물고 갑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번쩍거리는 보검을 들고 허공에 막 건들건들 휘두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으어허헝. 이놈의 여편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너희들! 돌아가! 돌아가라면 돌아가라고! 이 안개가 안 보이냐! 안개 안에 들어가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그는 상인들과 여행자들에게 횡포를 부리며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브록 경?”
“어?”
기욤발트가 그 남자를 알아보고 놀라워했다.
“기, 기욤발트 공자님?!”
브록 경이라 불린 남자 또한 기욤발트를 알아보고 기겁했다. 술기운이 달아났는지 정신을 좀 차리고 몸을 바로 세우는 걸 보면 기욤발트를 존중하는 걸로 보인다.
‘보아하니 봉신 기사인 것 같은데 배신한 가신의 무리가 아닌가?’
아자딘은 그가 기욤발트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의아해했다.
“어쩐 일인가? 지금? 자네는 란타릭의 봉신으로 이곳 새높이 요새와 그 인근 장원의 주인 아닌가? 그런데 왜 나와 있지? 바리케이트는 왜 치고 있고?”
“아 그, 그게 말입니다.”
브록 경이라 불린 기사가 난처해하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냐? 그럼 왜 길을 막고 있나? 게다가 저 안개는 아무리 보아도 자연적이지 않은데?”
“…….”
“제대로 대답하게. 무슨 일인가? 여편네라고 언급했지? 자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그게 말입니다.”
브록 경은 한숨을 내쉬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저도 모릅니다.”
“모른다고?”
누가 봐도 거짓말이다. 너무 뻔한 거짓말이라서 기욤발트는 오히려 충격을 받았다.
‘이놈이 내가 실각했다고 우습게 봐서 이러는 건가?’
그러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교두보 요새에서 그를 배신한 가신들은 봉화도 깃발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파발 정도라면 보냈을 수도 있지만.
“예. 갑자기 사악한 안개가 깔리더니만 새높이 요새를 집어삼켰습니다. 저는 주민들을 데리고 탈출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제 아내는 저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여기는 왕국 가도 아닌가. 왕화의 빛이 강한 곳이야. 사악한 마법이 접할 수 없을 텐데?”
“저도 잘은 모릅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서.”
그때 길이 막혀서 항의하고 있던 상인들 일부가 아자딘에게 다가왔다.
“어?!”
그들 중에는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 즉 전령일족들도 있었다.
“아. 당신들은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이로군.”
아자딘은 그들을 알아보고 다가가 섰다.
“잠깐 이야기를 나눌까요?”
아무래도 저 기사는 기욤발트에게 뭔가 숨기고 있었다.
기욤발트가 추궁하는데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를 휘청휘청 흔드는데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저래서야 절대 말하지 않을 거다.
그리 판단한 아자딘은 브록 경을 기욤발트에게 맡기고 같은 아라가사들과 정보를 교환하기로 했다.
*********
“그런데 그전에 물어보겠소. 저 성기사는 뭐요?”
보부상 조합원들은 지벡 경을 경계하고 있었다.
“동지라고 해두지요.”
“동지? 아니 어쩌다가 성기사를 동지로 맞이할 수 있단 말이오?”
‘여기에서도 내 뜻이 높아 동지가 생겼다고 말하면 놀린다고 여기겠지?’
아자딘은 보부상 조합원들에게는 그런 경솔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
“상사를 잘못 만나서 교단에서 방출당할 위기의 성기사라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음 그래도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교단으로 복귀하려고 할 텐데….”
“지금은 동지이지만 나중에는 갈라설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말입니까?”
“네.”
“그건 공감합니다. 그래서 좀 떨어져서 이야기합시다.”
아자딘은 지벡에게서도 거리를 벌려 이야기할 준비를 했다.
“아 그 전에 하나 더. 당신은 장로 파요? 아니면 아라엘 파요?”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하인들이 대뜸 아자딘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라엘 파?”
아자딘은 이들의 어휘가 상당히 중립적이라는 걸 눈치챘다. 아라엘에게 우호적이 아니라면 반역자라던가 배신자들이라고 불러야 할 텐데 아라엘 파라고 부르다니.
“야야. 이 사람 그거잖아. 그거. 무안의 아자딘.”
“아 무안의 아자딘? 아라엘 님의 동생이라는? 그럼 아라엘 파겠군.”
“우리도 아라엘 파로 전향할까 생각 중입니다. 하인들 입장에서는 각지에서 돈 벌기도 빠듯한데 세금을 낮춰준다면야.”
“아라가사의 나라를 만든다면 뭐 그것도 좋지요. 히히히.”
“…….”
아자딘은 그들의 말을 듣고 혀를 찼다.
“왜 내가 아라엘 파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들이 자신을 이미 아라엘 지파로 생각하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같은 핏줄인 아라엘의 편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구역질 났다.
아라엘이 아자딘에게 무슨 짓을 했는데.
눈알이 본래 없었기에 그냥 얼굴에 흉터가 남는 거로 끝났지, 만약 눈알이 있었다면, 그래서 실제로 얼굴을 도려내고 눈알을 후벼팠다면 그러고도 형제라고 함께 화목을 다지면서 지낼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이들은 아자딘의 흉터를 어린 시절의 치기 정도로 여긴다. 눈알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원래 아자딘은 얼굴에 눈알이 없어서 기괴한 모습이었으니까.
그런 상처 정도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고 나중에 아라엘이 성공해서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었으니 아자딘이 웃으면서 그녀와 손잡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 천박함이 싫다. 아자딘이 아라엘을 미워하기로 한 그 결의를 이들이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아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
“아하하. 떠본 거요, 떠본 거. 우리는 물론 장로 파요. 당신이 아라엘과 한 핏줄이라 걱정해서.”
“반역자가 잘될 리가 없지! 아라엘 그것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잠깐 반짝할 뿐이고 결국에는 장로 파가 승리할 거요.”
아자딘이 분노하는 모습을 본 이들이 즉각 방향전환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전향이라니.
‘아무래도 전령이 되지 못하고 상인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이들대로 생각이 있는 것 같군.’
결국 아라엘이나 장로들이나 어느 한쪽이 이기면 그때 가서 손을 잡겠다. 그렇게 보아도 되리라.
아라엘이건 장로 측이건 간에 전령일족의 대외활동과 수입을 담당하고 있는 상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자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일로 길이 막혀 있는 겁니까? 왜 저 기사는 술 먹고 칼을 휘두르고 다니면서 정작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거지요?”
아자딘이 상인들에게 물어보자 그들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저 기사의 마누라가 사교도가 되어서 뭔가 사교의 의식을 행했다고 합니다.”
“사교도라면 어느 쪽의?”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사해보실 겁니까? 안개가 깔려 있는 걸 보니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음.”
아자딘은 보부상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일행들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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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가 없군. 브록 경은 성실함과 신실함으로 유명한 사람이오. 우리 봉신들 중에서도 침착하고 신실한 사람이라서 새높이 요새와 그 부속 봉토의 징세를 맡겼는데…. 게다가 여긴 대륙 가도가 아니오?”
아자딘은 황제 가도라 부르는 길로 황제 야에슬라트가 건설한 것이지만 왕의 교회의 사람들은 왕의 가도라던가 대륙 가도라고 부르곤 했었다.
“왕화의 빛이 약해지고 있다니까.”
휠체어에 앉아서 강행군을 따라오면서도 별 탈이 없는 스콧 맥그린이 보란 듯이 말했다. 자신의 말이 맞았음이 증명되었다고 좋아하는 것 같은데 성기사인 지벡에게는 속을 뒤집어놓는 짓이나 다름없다.
“제 자신의 수양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군요. 진실이라는 걸 알고 있는 데도 들으니 화가 납니다.”
“괜찮아. 이해한다. 지능이 낮은 종족들이 종종 감정에 휩쓸리는 걸 보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 심지어 오크들 중에도 장래를 포기하고 그냥 근육의 힘을 쓰기로 한 놈들은 뇌까지 근육에 지배되어서 막 나간다니까.”
“…….”
지금 말이 더 화난다.